가을 소식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멋진 가을 코트에 한결 산뜻한 차림으로 꾸미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시절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정처 없이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계절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소위 귀소 본능에 의해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물 무리와도 같다. 그러다가 중간에 지쳐 낙오하거나 병들어 죽기도하는 모습이 마치 동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곧 겨울나기에 대비한 각 종의 필요한 물품의 비축에 힘쓰는 일도 비슷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결실의 계절에 과연 무엇을 수확할 것인지를 놓고 각자 나름대로 숙고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무리를 이루어 필요한 물건을 거두어들이고 나눈다. 어차피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따라 각자가 챙기는 양은 다르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것은 변함없이 반복된 자연의 순리이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누구라도 황혼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과연 무엇을 손에 쥐고 걷는 길인지 어느 곳으로 가려하는 것인지 모른 채 정처 없이 무작정 걸어간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만 그만큼 충격을 받으니 더욱 힘은 빠지고 아련한 공포심이 머리를 짓누른다. 낙조가 막 넘어가려는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 여정은 끝이 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부축하거나 안내하는 일도 없이 홀연히 왔다가 혼자서 외롭게 사라진다. 그것이 인생길이다.
이렇듯 가을의 정취를 한마음에 가득 담은 채 문득 허전한 상념에 잠기다가 정신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 왔다. 바로 우리나라의 여성작가인 「한 강」 씨에게 금년도 노벨 문학상이 수여된다는 낭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기쁜 소식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빛낸 역사적인 쾌거로 온 나라의 국민 모두를 환희의 도가니에 넣은 엄청난 소식이었다. 부친도 유명한 소설가로 대를 이어 작가의 반열에 오른 집안인데 이제 딸은 세계문학사에 이름 석 자를 영원히 남기게 되었다.
작가의 가족들이 문학을 한다고 하니 또 하나의 목유이염(目濡耳染: 눈에 젖고 귀에 물들다)의 실례를 보는 듯하다. 평시 일상생활을 통해 수많은 책을 읽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결과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이 음식 섭취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을 때 발생하는 폭력적인 결과를 묘사한다. 그녀는 여성의 존재성을 스스로 식물이 됨으로써 겨우 지켜낸다. 3부로 쓰여 진 이 소설은 자신의 의지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몸부림이다.
반면에 스스로 이처럼 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여성 등 소수자들이 거대한 국가폭력을 만났을 때 어떻게 자기를 보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소설들이 바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어쩌면 이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결코 망각할 수 없는 몸부림이자 해원(解寃)을 통해 용서와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항상 세대와 시대를 떠나 고통스런 문제가 되는 국가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한 나약한 인간들의 삶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누구에게라도 잊을만하면 다시 떠올리는 마음의 상처를 차분하게 보듬어주고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시록(黙示錄)이다. 이는 인간 본래의 양심에 대한 회귀를 촉구하는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목소리다.
그런데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특정한 주장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그들이 토해내는 양심의 행동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비록 폭력에 의해 한 순간은 무너져도 그가 남긴 진실은 마치 유산(遺産)처럼 이어져 되살아 난다.
그녀의 소설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산문(Poetic Prose:시의 감성과 언어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산문 형식)이란 평가를 받았다. 필자는 일련의 작은 서사들이 전체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장편 서사시를 이루는 소설로 완성되는 그 과정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화두를 제시하는 소설이 출현할지가 매우 기다려진다. 욕심 같아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대하소설이나 한국전쟁을 통한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선보이길 바란다.
이러한 작가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역사의 왜곡으로 일축한다면 동시대인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행위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은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 아무리 다양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금도를 벗어나는 맹목적인 비난은 자기부정일 뿐이다. 더구나 진실은 아무리 부정한들 언젠가는 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향후에도 작가가 아픈 역사의 상처를 따뜻이 보듬고 소외받는 약자의 편에서 그들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소설은 말 그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물론 그 속에는 작가의 직, 간접적인 생활의 이야기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실제 그 이야기가 반드시 사실일 필요는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작가 나름대로의 새로운 해석에 의한 각색인 셈이다.
우리는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스』를 역사를 왜곡한 서사시라고 하지 않는다. 비록 로마인의 조상이 ‘트로이 전쟁’에서 패하고 탈출한 난민이라고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오늘 날 세계인이 모두 인정하고 있고, 작가는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는다. 또한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가 있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해 역사를 왜곡한 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축복의 순간이 주어진 것은 다함께 기뻐해야할 하늘의 선물이다. 얼마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주었는가. 더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감과 믿음을 주는 일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인가.
이제 우리 모두는 차분한 마음으로 인생의 가을에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통해 다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이 설령 또 다른 고난의 길 일지라도 애써 회피하거나 모른 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 운명대로 살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면 그만일진대 어찌 번민하고 슬퍼할 틈이 있겠는가.
오늘은 왠지 횡설수설을 하면서 하루를 연다. 막상 생각을 정리하여 적당한 표현을 하려해도 쉽지가 않다. 더구나 쾌청한 가을날의 한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이런 생각에 침잠(沈潛)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이들어 내가 먼저 찾지 않으면 이 세상은 절해의 고도나 사막의 중심과도 같다. 누가 누굴 탓하고 원망하랴, 나의 가을은 이전에 뿌린 씨앗의 결과이거늘!
(2024.10.12.작성/10.14.발표)
※ 개인 사정으로 주초에 글을 올립니다. 널리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