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가시고기의 사랑을 이시나요? 하나는 치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내리사랑의 본보기다. 흔히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고령사회를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고자 한다.
늙고 쇠약한 부모를 갖다 버리는 경우를 빗대어, ‘인생 칠십이면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와는 무관함에도, 당나라 시성 두보의 시<곡강>중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가 음이 비슷하여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고려 시대는 불효자를 법으로 엄격히 처벌하는 등 효(孝)를 매우 강조하였다고 하니 고려장이 실재했을 리 없다. 어원이 잘못 전해져서 애먼 고려인만 욕 먹인 꼴이라 하겠다.
나는 어머니가 갓난아기인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임계점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내 자식을 키울 때는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육아를 전담시켰으니, 딱히 자식들을 어떻게 키웠다고 말할 거리가 없다. 기저귀도 제대로 갈아준 기억이 없어, 요즘 세대들이 들으면 간이 한참이나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할 게 분명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우리는 조선 시대의 가부장적 사고를 물려받은 세대라는 것. 바깥일은 남성, 집안일은 여성이라는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가 만연할 때였다는 정도, 그래서 아내가 간혹 옛날 일을 회상하며, 장성한 아들이 갓난아기 때 이러저러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면 반신반의한다.
딸이 결혼을하고 아기를 낳았다. 내 자식 키울 때는 미처 몰랐던 일들이 눈앞에서 재연되고 있다. 하루는 백일이 덜 된 손자 녀석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을 때다. 나는 손자를 무릎에 않아 어르면서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표정이 잔뜩 힘이 들어가고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자 얇은 이불보 밑의 내 무릎이 잠시 가볍게 진동을 하더니, 곧이어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녀석의 엄마에게 인계하니까 딸내미 말이 이틀째 변을 못 누고 있었단다. 딸은 엄버지기로 싼 똥 기저귀를 갈면서도 대견한 표정이다. 할아버지 무릎에 볼일 본 것쯤은 안중에도 없다. 나도 왠지 할아비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아 내 무릎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아, 나도 어머니 무릎에서 저렇게 키워졌었구나!’
무릎, 무릎을 이르는 말 “슬(膝)”의 뜻을 아시나요? 자식을 몸에 앉혀 키우다가 검게 된,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깃들어 있는 곳!
장인어른이 생전에 요양원에 입원해 있을 때다. 처남들과 나는 생선회를 좋아하는 장인을 위해 자주 횟거리를 장만해서 요양원에 들렀다. 치매 증세가 있음에도 입맛은 변함이 없는지 정말 맛있게 잘 드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자식 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양원 측에서, 회를 드시고 나면 설사를 심하게 하여 뒤처리가 곤란하니 기름진 음식물 반입을 삼갔으면 하는 뜻을 에둘러 전해왔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회를 대접해드리지 못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생선회를 대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릿하게 저려온다.
근자에 나와 띠동갑인 작은 형님이 평소 앓던 지병이 도져서 고생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문안을 갔었다. 형수는 아버지 생전에 형님의 효성 지극했던 일들을 들며, 조카가 본을 받아서 정말 잘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같이 간 동생과 나는 꼭 죄인 된 심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형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치매기의 아버지를 모시면서 온갖 정성을 다했다. 형제들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들다는 사정을 들며, 그런 형님에게 제대로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다. 고려장과 관련한 기록 설화(耆老說話)의 지게 이야기가 효를 강조하기 위해 전승되어 왔음이 분명할진대, 지난날의 철들지 못한 형태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손자와의 사회적 거리가 제법 멀어져 있다. 한창 옹알이를 하고 방긋거리기도 하며 귀여움을 맘껏 발산할 때인데, 직접 보지 못하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딸은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 수시로 영상 통화를 해 온다. 영상으로 전해 저오는 손자 놈의 동향을 보면, 한시도 내 딸을 자유롭게 두지 않는다. 껌딱지가 따로 없다.
자식들은 하나같이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당연시한다. 그러면서도 노환이 든 어머니 곁에는 잠시도 붙어 있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시절이 그렇다는 명목으로 서둘러 요양원에 모시고 간다. 지금이 오히려 와전되었다는 고려장이 성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하면서도, 믿지 않으려 하는 것뿐.
요즘은 평균 팔십 이상은 산다. ‘인생 칠십이면 고려장’이 아니라 ‘아프거나 정신없으면 요양원’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그만 고려인의 억울한 굴레를 벗겨줘야겠다. 하기야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이 이런 실없는 생각의 단초라 하겠다.
또래 친구들이여! 뜻대로는 안 되겠지만, 제발 머리 쓰는 일을 게을리 말자, 건강관리, 특히 이빨과 무릎 연골 관리를 잘하자. 심신이 허약해지기 전에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행복하게 살려고 애를 쓰자. 요양원에 들어가면 이런 쉬운 것들이 아쉬워지는 신세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나이가 들어 기억이 가출하면, 무단히 집을 나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고 한다. 그럴 때 거부감이 있더라도 어르신 명찰 차는 걸 두려워 말자. 명찰에는 자식들의 연락처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저희 부모님을 보호하고 계시면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기 전, 요양원에 가겠다고 미리 선언해두자. 그것이 고령사회의 아비들이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 아닌가. 온갖 정성으로 키운 자식, 천형(天刑)과도 같은 긴 치매 수발로 불효자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요양원, 요양병원 등에 입원해 계시다가 코로나로 영문도 모른 채 속절없이 숨져간 아버지,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다. 자식들은 꼭 죄인 된 심정이리라.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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