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마허를 찾아가는 길
박혜영 (인하대 교수)
대개의 만남이 그렇듯 <E. F. 슈마허>와의 만남도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약 십년 쯤 전에 나는 영국의 슈마허 칼리지에서 열린 생태강좌에 참여하면서 슈마허를 처음 알게 되었다. 슈마허를 찾아가던 길은 멀고도 아름다웠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찾아간 잉글랜드의 <토트네스>는 시인 <블레이크>가 예루살렘이 이 지상에 다시 온다면 <악마의 맷돌>이 도는 공장지대가 아닌 잉글랜드의 밝고 푸르른 들판일거라고 말했던 바로 그 눈부시게 푸른 들판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야트막한 언덕과 소박한 농가들로 이루어진 유서 깊은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영국의 아름다운 여름날이 따뜻하고도 평화로운 시간 속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슈마허 칼리지는 매우 넓은 달링턴 영지 한 편에 자리한 대안 교육기관이었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작은 학교에 의미심장하게도 다름 아닌 E. F. 슈마허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토트네스는 마을 전체가 작은 천국 같았다.
나는 무료할 때면 슈마허 칼리지에서 한두 시간 가량 떨어진 시내까지 산길과 들길을 번갈아 가며 걸어 다녔다. 시내라고 해도 가장 높은 건물이 겨우 이삼층 정도인 소박한 곳으로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에는 손으로 만든 여러 가지 아름다운 공예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떠나온 저 바깥세계에서는 지구화, 구조조정, 자유무역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웠지만 토트네스는 마치 중세와 근세의 어느 지점쯤에서 걸음을 멈춰버린 듯 여름날의 풍경도 마을사람들의 얼굴도 더없이 느릿느릿하게만 흘러갔다.
슈마허 칼리지에서 요리도 하고, 밭일도 하고, 산책도 다니고, 공부도 하면서 나는 점차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결코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겐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많은 수의 과학자와 기술전문가들이 있지만 보통사람들이 실제로 좋은 삶을 꾸려가는 데는 그런 지식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우리 할머니 세대가 누린 삶의 지혜보다 더 깊어진 것이라면 과학기술이나 경제관련 지식 정도인데, 이것은 우리가 산업기술사회의 유능한 인적자원이 되는 데는 요긴할지 몰라도 사실상 우리의 영혼을 평화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그다지 쓸모없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가본 적도 없는 우주의 물리적 현상은 꽤뚫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가 사는 고장의 새와 나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며, 인간의 염기배열과 유전정보는 낱낱이 파헤쳤으면서도 정작 자기 아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지혜는 배우지 못하고 있다.
친숙한 자연물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말하던 옛사람들의 풍부한 속담과 우화는 사라지고, 고통 속에서도 삶의 신비를 가르치던 민요와 민담과 전설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과학과 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한 지금, 우리 세대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과도, 전통과도, 다른 존재와도 단절된 채 철학적 성찰도 할 줄 모르는 영혼 없는 유전자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물론 이런 비극은 인간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자연도 마찬가지여서 한때는 신의 공예품으로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연이 이제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각종 자원의 임시저장고로 취급받고 있다. 물과 공기, 숲에도 신성한 영혼이 있다고 믿던 시절에는 인간이란 성스러운 대지 위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자연마저 공산품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오로지 인간만이 이 행성의 주인이라는 무책임하고 교만한 생각들로 가득할 따름이다.
슈마허는 현대 산업사회가 낳은 총체적 난국은 무지와 오만으로 인해 인간이 지상의 ‘순례자’(Homo Viator)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망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슈마허가 대안경제학자로서, 영국정부의 석탄위원회 자문관으로서, 중간기술그룹의 창안자로서, 그리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와 같은 책의 저술가이자 강연가로서 일평생 쉬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벌였던 수많은 활동은 인류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고자 걸어간, 말하자면 일종의 종교적 순례였다. 악마의 맷돌이 돌아가는 거대한 지옥 대신 푸른 들판이 있는 평화로운 작은 천국으로 가는 길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어온 경제와 과학기술, 교육과 노동에 관한 산업사회의 오래된 미신을 버리고 다시 한번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우리 모두 순례를 떠나는데서 시작된다고 슈마허는 보았다.
<성장을 위한 경제에서 인간을 위한 경제로>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는 1911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허만 슈마허는 독일의 본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한 저명한 경제학자였지만 사실 슈마허가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1차 세계대전동안 자신이 직접 겪었던 독일의 비참한 경제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전쟁 중에 생필품 부족으로 겪었던 배고픔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전후 독일에 불어 닥친 높은 인플레이션과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의 고통은 슈마허에게 경제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슈마허는 1932년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나치당과 히틀러에 대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지켜보면서 전후 독일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안으로는 독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밖으로는 또 다른 세계대전을 불러올 수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였다.
이런 까닭에 독일을 떠나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슈마허는 생산, 분배, 소비에서의 국제적 협력관계의 중요성과 함께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불평등과 종속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구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에는 과도한 흑자를 내는 소수의 국가들이 존재하고, 다른 반대편에는 도저히 갚을 수도 없는 빚더미에 허덕이는 대다수 적자국이 존재하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으로는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원인이 국제적 무역불균형과 교환체제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한 슈마허는 나중에 이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전후 다자간 무역을 활성화할 새로운 교환체제의 설립을 고안하였다. 그가 제안한 새로운 방식의 다국적 결제시스템은 케인즈의 논문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슈마허는 히틀러의 등장을 계기로 경제적 고통이 어떤 정치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지 잘 알게 되었지만 경제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차원까지 확대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접했던 마르크스 사상 덕분이었다. 부친의 뜻과 달리 히틀러 정권에 협력하길 거부했던 슈마허는 결혼과 함께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곧 이어 발발한 2차 세계대전으로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진 채 영국정부에 의해 3개월간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불안으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다른 한편 슈마허는 이 때 만난 마르크스주의자 쿠르트 나우만의 영향으로 마르크스 사상에 깊이 몰두하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에이돈 농장에서 일자리를 얻게 된 뒤에도 그는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계속 탐독함으로써 경제학이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수단일 뿐 경제 그 자체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50년 슈마허는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가 국유화한 국립석탄국의 경제자문가로 다시 독일에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몇 년간 지속된 영국과 버마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향후 슈마허가 경제문제를 정치적 차원만이 아닌 전 지구적 환경과 무엇보다도 종교적, 도덕적 차원에서 성찰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국립석탄국에서 일하는 동안 슈마허는 자본주의식 산업농법을 비판하고 유기농법을 강조한 〈토양협회〉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재생불가능한 에너지 문제, 화학농법에 의한 토양문제, 건강한 육체노동의 중요성과 연관된 총체적인 생태문제에 눈뜨게 되었다. 슈마허는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모든 국가가 산업발전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견지하는 한 앞으로 인류는 계속되는 자원고갈, 토양부식, 농촌파괴, 비인간적인 산업노동, 기계에의 종속과 같은 폐해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고 보았다.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간에 무한한 산업발전을 목표로 하는 경제성장체제는 본질적으로 매우 폭력적이어서 자연뿐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혼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서구식 산업주의체제 전반에 대한 반성 없이 현대경제학만 문제 삼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서구경제학은 흔히 전 지구적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물질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량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이다”라고 말한 간디와 마찬가지로 슈마허 역시 빈곤문제가 대량생산과 물질적 팽창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극히 기초적인 욕구이고, 이것은 지금까지 축적한 물질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역적 격차, 계급적 불평등, 국제적 무역불균형, 자원고갈, 환경오염, 비인간화 등은 서로 얽히고설킨 문제이며 이것은 더 많은 생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식의 변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산업사회체제 전반에 관한 슈마허의 도덕적 성찰은 1954년 버마를 방문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버마 정부는 자국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고자 선진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를 초청했는데 아이러닉하게도 슈마허는 가난한 나라 버마에서 오히려 서구문명의 문제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되었고,
나아가 불교경제학을 통해 산업경제체제의 대안까지도 얻게 된 것이다. 경제에서 관심을 가져야할 진짜 중요한 문제는 ‘물질’이 아니라 바로 ‘인간’임을 깨닫게 되면서 슈마허도 러스킨, 간디와 마찬가지로 경제문제를 도덕적,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적게 원했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버마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은 경제의 본래 의미는 물질적 번영이 아닌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안식을 얻는데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꼭 필요한 재화만 생산하는 버마의 불교경제와 급증하는 환경오염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악순환 속에서 남아돌 만큼 재화를 생산하는 서구경제를 비교하면서 진정한 문명이라면 무엇보다 지속가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불교경제학은 재생가능한 자원과 재생불가능한 자원을 구별한다. 임업이나 농업에서 나온 생산물처럼 재생가능한 자원에 토대를 둔 문명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석유나 석탄, 금속과 같은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토대를 둔 문명보다 더 우월하다. 왜냐하면 전자는 지속가능한 반면 후자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연과 협력하는 반면 후자는 자연을 강탈하기 때문이다. 전자에는 생명의 기색이 있지만 후자에는 죽음의 기색만 남게 된다. 《슈마허 전기》
서구문명은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다 경제발전의 목표 자체도 물질적 성장에만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지속될 수 없는 취약한 문명이다. 이런 문명에서는 자연만 신성을 잃어버리고 한낱 물질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인간도 영혼을 잃어버리고 인적자원으로 환원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필요한 내적 성장이나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영혼의 깨달음과 같은 지혜도 사라지게 된다. 슈마허는 참다운 경제학이란 불교경제학처럼 자연 속에서 진정한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자 간디가 생각한 경제학처럼 인간의 ‘도덕’과 ‘영성’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 보았다. 물질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본래의 경제학으로 되돌아갈 때 경제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차가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와 같은 영혼에 필요한 지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서 슈마허는 참된 행복과 풍요는 ‘성장’, ‘발전’, ‘물질’, ‘소유’ 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그런 완벽한 시스템을 찾고 있다”라는 간디의 비판에 공감한 슈마허는 사실상 혁명이 필요한 곳은 시스템이 아닌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정신, 즉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차원에서 몰두한 실험이 바로 1960년대에 자신이 직접 경영에 참여했던 스콧 배더라는 공동소유권 기업이었다.
스콧 배더는 보통의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경영방식과 달리 자발적으로 설립된 ‘직원위원회’를 통해 모든 종업원들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영국 최초의 공동소유권 회사였다. 슈마허는 스콧 배더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기업의 규모와, 임금격차, 수익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제한을 둘 필요가 있으며, 이런 한계를 구성원들이 스스로 결정할 때 지역에 토대를 둔 기업의 이윤이 다시금 지역 안에서 재순환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입증하였다. 소유에 관한 이와 같은 의식 변화의 실험은 지금까지 우리가 맹종해온 서구적 형이상학들, 가령 규모, 성장, 부(富), 소유에 대한 ‘거대주의’의 미신에서 벗어나 작은 것들, 다시 말해 약자들의 관점에서 기업을 경영하기 시작할 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통해 참다운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지 그 지혜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거대기술에서 중간기술로>
1962년의 인도방문을 계기로 경제성장에 대한 슈마허의 비판은 현대과학기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적인 기술에 대한 연구로 확대되었다. 일찍이 버마정부의 경제자문관으로 일할 때 시작되었던 대안기술에 대한 연구는 10년 뒤 자본부족과 빈곤, 농촌인구의 도시유입과 같은 개발 난제에 시달리던 인도를 방문함으로써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에너지 소비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전 세계가 서구 수준의 번영과 소비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일찍이 간디가 서구식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대해 제기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슈마허는 인도를 둘러보며 자연재해의 결과가 아닌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가혹한 빈곤과 전쟁에 시달리는 것은 건강한 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문화든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생존조건에 가장 잘 맞는 적정수준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결코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인도 대륙을 돌아다니며 간디가 제안했던 자급자립의 전통적 지혜가 아닌 서구식의 무분별한 경제개발이 인도 전역으로 확대될 경우 과실은 소수에게 돌아가는 반면 그에 따른 고통은 대부분의 약자들이 떠맡게 된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무차별적인 자연파괴로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없었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값싼 물건으로 지역의 장인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으며, 도시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리느라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래서 슈마허는 서구식 대량생산 양식이 아닌 지역고유의 자원을 이용한 지역적 생산양식을 지켜야 한다고 보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기술이 ‘적정기술’ 내지는 ‘중간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중간기술이란 기술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을 기술에 종속시키지 않으며, 중앙집중화나 관료주의적 운영방식을 낳지 않는 작은 단위의 기술을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권력자나 기술전문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기 지역의 자원으로 스스로를 도울 방법과 여기에 적합한 도구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 바로 중간기술인 것이다. 1966년에 설립된 〈중간기술개발그룹〉은 전 세계 민중들의 오래된 지혜가 담긴 각종 뛰어난 기술적 장치와 도구들을 발굴하고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성과로 중간기술 도구들에 대한 해설서인 〈진보를 위한 도구〉를 발간하였다. 이후 슈마허는 페루, 탄자니아, 잠비아와 같은 가난한 제3세계를 잇달아 방문하여 인도의 빈곤문제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거대기술, 거대권력, 거대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들의 삶터에서 자급자립을 이룩하는데도 중간기술이 훌륭한 대안임을 입증하였다.
중간기술에 대한 슈마허의 관심은 현대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끼치는 막중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줄 지혜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경제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도 인간의 영적 깨달음과 정신적 성숙에 이바지해야 하지만 지금의 과학기술은 너무나 전문적이고, 자본집약적이며, 규모가 거대해서 약자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란 적정한 한계를 유지할 때는 유익하지만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사악할 뿐 아니라 파괴적으로 바뀌게 된다”라는 지적에는 한계를 넘어선 과학기술의 발전이 결국 인류의 미래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잘 담겨있다. 슈마허는 과학에는 인간의 ‘이해력’(오성)을 높이기 위한 과학과, 무언가를 ‘조작’하기 위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과학이 있다고 보았다. 전자가 인간의 사고능력을 높임으로써 자아해방에 기여하는 일종의 지혜로서의 앎이라면 후자는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자기 마음대로 외부환경을 조작하려는 일종의 권력화된 앎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과학기술이 자연뿐 아니라 인간마저도 조작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모두 원자나 분자, 혹은 유전자나 DNA처럼 쪼갤 수 있는 ‘물질’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대자연에 깃든 신비나 인간의 영성을 부인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모두 과학기술을 위한 질료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형태의 과학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깨달음이나 지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결코 우리 마음을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없다. 슈마허는 말년에 가진 물리학자와의 한 인터뷰에서 “서구문명은 조작을 위한 과학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철학적 우를 범하고 있으며, 물리학은 이와 같은 잘못을 심화시키고 있다. 물리학 덕분에 오늘날 인간은 난장판이 되었고, 우주는 목적도 의미도 없이 무질서하게 떠도는 미립자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창조세계에 대한 경외심, 종교적 영성, 지혜의 탐구와는 멀어진 현대의 과학만능주의가 인류와 우주에 앞으로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지를 염려한 선지자적인 탄식이었다.
슈마허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역시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다. 점점 거대해지고, 복잡하며, 자본집약적이고, 폭력적인 현대의 산업기술은 바로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결국은 소수를 위한 기술, 착취를 위한 기술,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반생태적인 기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과학기술의 파괴성에 대한 슈마허의 성찰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한데서도 드러난다. 영국의 국립석탄국에서 일할 때부터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슈마허는 노동당조차도 핵에너지를 효율적인 차세대 에너지로 개발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핵에너지의 위험성은 아직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파괴력이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오늘날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물질적 ‘번영’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어떤 수준의 번영일지라도 ‘안전하게’ 다룰 방법도 모르며, 앞으로의 인류 역사와 지질학적 연대를 통틀어 모든 창조세계에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위험한 핵물질과 같은 고도의 독성물질을 대규모로 축적하면서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번영이란 없다.” 다시 말해 서구식의 번영은 안전하게 처리할 줄도 모르는 핵물질과 같은 위험한 에너지에 토대를 둔 것이기에 결국 자연의 순환 원리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전 세계가 결코 보편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번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도 안전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을 무책임하게 대규모로 후손에게 떠넘기는 문명이라면 절대로 지속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뛰어난 과학 기술자들이 수도 없이 많건만 왜 그들은 핵에너지 개발과 같은 무분별한 과학기술이 초래할 파국적인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왜 독일의 수많은 지식인들은 히틀러의 등장과 파시즘이 초래할 파국적인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알아차리지도 막지도 못한 것일까? 슈마허는 2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의 고통에 시달리던 독일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학기술과 이성으로 무장한 소위 근대지식의 ‘무지’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전문가란 점점 덜 중요한 것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쌓느라 결국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에 대해서만 잘 알게 되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은 산업사회의 소위 전문화된 지식이 전문가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의 좋은 삶을 구현하는데도 지극히 무력하다는 슈마허의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은 오직 쪼개고 나누고 분리할 수 있는 ‘물질’에만 관심을 가질 뿐 좋은 삶을 구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 가령 진리에 대한 올바른 감수성,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인식능력, 영적인 깨달음에 대한 직감과 같은 지혜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에 대해서도 지금의 과학기술은 에너지를 오직 동력을 얻기 위한 물질로써만 취급할 뿐 에너지 그 자체가 바로 모든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며, 우리 삶의 생기이자 창조의 기쁨이라는 영적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만 하다.
따라서 지금의 과학기술자들은 마치 인간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믿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실제로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에너지 창조는 인간이 아닌 신의 창조영역이며, 따라서 오직 종교적 차원에서만 언급될 수 있는 것이다.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란 시에서 에너지란 단순한 물질이 아닌 모든 생명과 분리될 수 없는 육신과 영혼의 기쁨이자 축복이라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인간의 영혼과 분리된 육신이란 없다. 육신이라는 것은 오감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영혼의 일부이자 영혼의 중요한 분출구이다. / 에너지는 유일한 생명이며 이것은 육신에서 나온다. 에너지에 연결되어 에너지를 바깥에서 둘러싸고 있는 것이 이성이다. / 에너지는 영원한 기쁨이다.
우리가 에너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예민한 시적 감수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과학기술의 폭력적 개입은 앞으로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 지상에는 인간의 지식으로 분리할 수 없거나 분리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육신은 영혼과 분리될 수 없고, 에너지는 생명과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산업주의 방식의 분업체제와 환원주의적 과학주의 아래에서는 결국 모든 것이 쪼개지고 나눠지고 분리될 수밖에 없으며, 인간과 우주도 서로 소외된 채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이 떠돌기만 하는 미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일찍이 산업주의를 비판했던 블레이크도 결국 모든 것을 ‘분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보았다. 슈마허의 예언대로 현대과학기술이 겸손과 지혜를 배우지 못한 채 지금처럼 자본과 권력체제에 계속해서 봉사한다면 필연적으로 모든 생명의 그물망은 부서질 것이고, 마침내 생명의 에너지마저도 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혜를 구하는 노동과 교육>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지력으로 현대서구문명의 파국적 여로를 추적했던 슈마허는 결국 종교적 각성을 통한 깨달음만이 이 지상을 다시 신의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슈마허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 프란체스코, 토마스 머튼 같은 래디컬한 가톨릭 사상가들 덕분에 오랫동안 걸었던 무신론의 여정을 뒤로 한 채 마침내 신의 품으로 귀의하게 되었다. 그가 비틀거리며 걸어간 종교적 여정은 그 자체로 슈마허가 얼마나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깨닫고자 분투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혼의 순례였다고 할 수 있다. 1977년에 출판된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와 사후에 출판된 마지막 저서 《굿 워크》에는 슈마허의 이런 깨달음과 삶의 지혜가 잘 담겨 있다.
말년에 이르러 슈마허가 가장 몰두한 것은 ‘노동’과 ‘교육’이었다. 왜냐하면 노동은 인간이 평생 누려야할 신이 주신 은총이자 소명이고, 그런 신의 원대한 의도를 깨달아 좋은 삶에 이르려면 지혜를 구하는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노동과 지혜로운 교육에 대한 슈마허의 관심도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슈마허는 전후 폐허가 된 독일을 둘러보며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시골의 농부들이 소위 배웠다는 전문가들보다 더 세상의 이치를 두루 잘 알고 있는 현자(賢者)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였다. 평생 흙과 더불어 육체노동을 해온 농부가 소위 고도의 지식노동을 하는 전문가보다 더 지혜롭다면 이것은 산업기술체제에서 우리가 하는 노동과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교육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은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버는데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한다. 교육 역시 배우려는 이유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직관력, 감수성, 상상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양적인 지식축적에만 있기 때문에 우리를 지혜로운 삶으로 이끌지 못한다. 그래서 슈마허는 노동과 교육이 지닌 본래의 참된 의미, 즉 노동과 교육의 영성적 의미를 되살리지 않는 한 대안에너지 개발과 같은 기술적 노력으로 산업주의의 파국적 진로를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생각해보면 슈마허뿐만 아니라 현대기술문명을 비판했던 톨스토이, 간디, 시몬느 베이유 같은 사상가들도 산업주의체제에서의 노예노동을 비판하고 흙과 더불어 일하는 신성한 육체노동을 옹호했다. 왜냐하면 흙과 함께 하는 노동은 인간이 자연과 협력하지 않는 한 좋은 수확을 걷을 수 없으며,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고, 생명은 본질적으로 신비로우며,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노동을 통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슈마허에게 ‘지혜’란 바로 인간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는 지혜로운 자만이 한계를 알 수 있으며 한계는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아는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과 같은 서구의 풍요가 정상이 아니며 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곧 막바지에 이를 것이라는 슈마허의 예언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정신을 마비시키는 비인간적인 노예노동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노동이란 신이 주신 소명이며, 그 본질은 마치 음식이라는 자양분으로 육체가 활력을 얻듯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으며, 그런 영적 성숙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창조력을 모두 발휘함으로써 마침내 자유와 해방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은 육체노동이건 정신노동이건 간에 자신의 인격을 개발하고 창조주를 의식하게 되는 영혼의 시간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직 더 많은 물질적 대가를 위해 늘리거나 아니면 여가를 즐기기 위해 가능한 줄여야 할 고통스러운 육체의 시간일 뿐이다. 영혼 없는 노동으로 인간은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고, 악의에 찬 경쟁으로 정신은 굴종과 복종에 순응하게 되었다. 활력과 기쁨이라는 신이 주신 노동의 본질이 굴종과 굴욕이라는 노예노동으로 타락함으로써 노동시간은 더 이상 해방과 깨달음의 시간이 아닌 불안과 근심, 두려움과 절망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일을 해도 일을 하지 않아도 모두 불안한 것이다. 직업이 있어도 직업이 없어도 아이들도 노인도 모두 불안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슈마허는 인간이 노동을 하는 이유가 한편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위해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 마음에 흡족한 일을 함으로써 지상에서의 삶에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고, 모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즐겁게 살아감으로써 〈복음서〉의 가르침을 이 땅에 구현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면 누구나 좋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슈마허는 물질적 팽창을 갈망하는 무지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구하는 참된 ‘순례자’(Homo Viator)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매일매일 좋은 노동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좋은 노동이란 인간이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신의 공예품인 자연을 보살피며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각자의 삶을 하나의 공예품으로 완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이루어야 할 ‘영적인 선(善)’이고, 여기에 필요한 예술적 작업이 좋은 노동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없다면,
그래서 노동을 통해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예술적인 삶을 꾸려갈 수 없다면 인간이란 영혼 없는 한낱 물질에 불과할 것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들처럼 사람에게도 생계를 넘어선 다른 삶이 필요하다. 먹잇감만 찾아다니는 삶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날개 짓도 하여 대기에 온기를 불어넣고, 그래서 다른 존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활력과 기쁨을 주는 그런 삶을 가꿔나가는 것이, 말하자면 창조주가 보시기에 좋은 예술품인 것이다.
삶을 공예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혜를 구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슈마허가 보기에 진정한 교육이란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을 구별할 수 있도록 가르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간을 기계나 시스템, 자본에 봉사하게 만드는 나쁜 노동에 대해 “아니오”라고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올바른 교육은 노동의 본질이 생명의 기쁨이자 에너지이며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혜를 깨우쳐주는 것을 말한다.
교육은 우리가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교육받은 인간이란 모든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핵심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근본적인 신념에 대해서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비록 글로는 이런 문제들을 잘 설명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면에는 분명한 확신을 간직하고 있음을 그의 삶에서 행한 실천을 통해 보여준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란 무엇일까? 먼저 탐욕이나 시기심 같은 자아중심적인 욕구에서 해방되어 더 높은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는 사랑, 동정, 공감과 같은 감수성을 고양시킴으로써 자아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힘껏 돕는 것을 말한다. 슈마허는 산업교육에서는 불가능한 이런 삶의 지혜를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마다 간직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산업교육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고, 서로서로 경쟁시킴으로써 각자가 오직 자신의 욕구충족에만 몰두하도록 만드는데, 남보다 앞서려는 이와 같은 서바이벌 체제에서는 어떤 공동체도 건강한 모습으로 후대에 전승되기 어렵다. 산업교육은 먼저 남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산업기술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속에서 누가 이득을 보는지, 누구의 고통이 가중되는지, 누가 누구에게 비인간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강요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노동은 임금에게, 삶은 생존에게, 영혼은 기계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진리를 향한 슈마허의 66년에 걸친 긴 여정은 인류가 이와 같은 소위 근대적 무지에서 벗어나 오래된 지혜를 구하는 순례의 길로 들어설 때 비로소 새로운 대안이 가능할 것임을 몸소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 순례는 고난이 아닌 기쁨의 길이자 억압이 아닌 해방의 길이며,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길이자 노예가 아닌 자유의 길이 될 것이라고 슈마허는 생각했다.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슈마허가 말한 ‘좋은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삶 속에 묻혀있던 노동은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삶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누구나 손쉽게 노동을 사고 팔수 있게 되자 돈으로 거래될 수 없던 삶의 영역도 소위 사고 팔수 있는 노동상품이 되었다. 삶과 노동이 하나이던 시절에는 노동요와 같은 공동체 문화가 꽃필 수 있었지만 삶과 노동이 분리되면서부터 문화는 사라지고 오직 상품가치만 노동에 남게 되었다. 이제 노동은 오로지 돈이 되는 노동과 돈이 되지 않는 노동으로만 구별되기에 흙을 만지는 손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숫자를 다루는 손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한 때는 노동이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고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활력소였지만 지금은 각자의 물질적 성취와 성공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림으로써 개인의 이기심만이 노동의 유일한 동력으로 남게 되었다. 좋아서 하는 일은 취미가 되고 그렇지 않은 일은 노동으로 분리되자 아이러닉하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노동을 하게 되었다.
이런 노동은 슈마허도 비판했듯이 영혼 없는 노동이며 삶에서 생기를 앗아가는 죽은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통해서는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조차도 좋은 삶을 살기 어렵다. 좋은 삶은 불안이 아닌 기쁨이 삶의 본질이 되고, 고통이 아닌 활력이 노동의 본질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삶에서는 생기를 느끼고, 노동에서는 기쁨을 느끼고, 배움에서는 해방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된다면 그런 변화야말로 블레이크가 노래한 작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자 로렌스가 기다려온 진짜 <제대로 된 혁명>의 서곡이 될 것이다.
혁명을 하려거든 재미로 하라,
너무 섬뜩할 만큼 심각하게 하지 마라,
너무 따분할 만큼 진지하게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이 밉다고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저들의 얼굴에 그저 침 한번 뱉기 위해 하라.
돈을 위한 혁명을 하지 말고,
돈에 천벌을 주는 혁명을 하라.
평등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가 지금껏 너무 많은 평등을 가진 까닭으로 혁명을 하라.
사과수레를 뒤엎은 뒤 어느 방향으로
사과들이 굴러가는 지 쳐다보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누구나 자기 힘으로 조금이라도 귀족이 될 수 있는 그런 혁명을 하라,
그래서 신이 난 탈출한 당나귀들처럼 발뒤꿈치를 부딪치며 춤을 추라.
어쨌든 만국의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마라,
노동은 지금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다.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노동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해 혁명을 하자!
(D. H. 로렌스 〈제대로 된 혁명〉(A Sane Revolu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