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나’(Manna
for five days)
모스크바양문교회 편 선교는 전투다……
⑥
필자(아내: 홍영구선교사, 막둥이 세라)가 지난 23년 전 1993년 9월 10일 사전 준비도 없이 러시아선교사로 파송 받아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3답답(눈, 귀, 입)이가 아파트를 얻기까지 조영철선교사 사무실에서 주택을 구입하지 못해 잠시 지내고 있었다.
Ⅰ.
러시아선교에 반기를 든 3일 천하로 끝낸 쿠데타
러시아정부를
반대하는 파의 쿠데타를 일으켜 러시아정부 청사에서 대치하며 탱크가 동원되고 건물 위층에 몰려있는 반대파를 향하여 건물 안으로 포를 쏘아 불이
일어나 감은 연기를 뿜으며 ‘벨로 이
돔’(백악관)이 까맣게 불타며 계엄령이 발표돼 비행장이 폐쇄되고
외국인들은 가능하면 옥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TV방송을 사무실에서 보면서 가슴을 조이며,
한국전쟁의 후견인으로 한국인들을 괴롭혔는데 여기 와서도 전쟁을 보게 되니 만감이
교차됐다.
러시아선교는
고사하고 한국에 돌아가기도 어렵겠다며 낙심하며 추이를 지켜보던 중 3일
만에 진압돼 평정을 되찾아 20여 일을 지내다가 모스크바북쪽에 김나스자집사의 통역을 통해 모스크바양문교회를 개척하게
됐다.
Ⅱ.
모스크바양문교회 개척을 가로막는 영적 전쟁
1993년 10월 2일 통역의 안내를 받아 전철을 타고 김 나스자집사네
가서 창립예배 준비를 하고, 돌아와 잠을 자는데 이른 아침에 조영철선교사가 전하는 말이,
한국인들을 상대하던 ‘나스자집사네 가정에 지난
밤 ‘마피아’가 침입하여
밤새도록 때리며 금품을 빼앗고 구타를 당해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전달을
받았다.
주일 아침 일찍
찾아와 함께 가기로 약속이 있었는데 못 오겠다니? 난감했다. 모스크바 시내 강남에서 강북에 교회를 개척하려면 거리가 멀어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주일 예배
드리려는 조선교사에게 부탁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취소할 수 도 없어 ‘무식이
용감하다’던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약속한 개척예배를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3답답이가
용감하게 가족과 함께 손짓, 발짓, 윙크도 섞어가며 매트로(전철) 남쪽 유고자빠트나야역에서 중간에서 바꿔타고 아뜨라노예역에서 내려 어렵사리 김 나스자네 집을 겨우 찾아
갔다.
창문에 유리가
깨지고 가재도구도 부서지고 피를 흘리며 옷도 못 입고 잠옷바람에 넋을 잃고 있는 부부를 도와 대략 정리하고 그의 부부와 우리 가족이 앉아 ‘모스크바양문교회 개척예배’를 드리므로 1993년 10월 3일 러시아선교가 공식적으로 문이 열리게 됐다.
그 후에 김나스자가
인근에 아파트를 임대해줘서 우리 집으로 예배 처소를 옮겨 러시아현지인을 대상으로 모스크바양문교회는 홈 처치로 가정에서 예배를 들이다가 인근에
‘막스’라는 영화관을 빌려 예배 처소를 옮겨 교회
모습을 찾았다.
교회존립의 최 우선으로 알아 시청 종교성의 정관을 제출하여 등록을 필
하여(No-419) 마음 놓고
선교를 하게 됐다.
Ⅲ.
모스크바양문교회 창립감사예배
필자의 파송기관인 ‘월드선교회’
이춘수회장과 ‘새인천지방’을 대표하여 인천대은교회
신현용장로를 비롯한 일행이 교회개척을
보고했더니 1993년 11월 25일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모스크바양교회
개척축하예배’를 드리며 본격적인 러시아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개인
건물이 없고 러시아는 정부의 통제하에 건축이
이루어져 문제도 많았고, 러시아정교회가 위기감을 느껴 도로에서
교회로 오는 교인들에게 왜 민족교회를 두고
외국인이 하는 교회로 가느냐? 그런 교회는
이단이
라며 선의에 방해를 견제하며 고려인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차차 자리를
잡아갔다.
Ⅳ.
첫 번째 세례예식을 거행하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필자가 줄탁동시(崪啄同時)의 은혜로
첫 번째로 세례식을 거행하였는데,
러시아
한국인(고려인): 황 뽈리나, 박진희, 최화순, 강 지마
북한
한국인(탈북자): 이민복, 전수성, 윤성철, 이태영
중국
한국인(조선족): 방영수
러시아인: 유리 올가, 데르긴 부라지미르 슈신, 바렌틴 루비보브 안드레이,
뽀르세민 샤브츠캬바 지나이다, 마트리바 이리나.
Ⅴ.
창립 제2주년 감사예배
1994년 10월 3일 창립1주년 기념예배를 나의 파송 지방인 새인천지방 고종범감리사 일행이 와서 축하 해줘서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
으며 격년마다 새로 선임을 맡은 새인천지방 감리사일행이 현지를 방문하여 창립주일 감사예배를 드리며 파송 선교사에게 큰 힘을
실어주어
감사했다.
‘모스크바양문교회’는 ‘기독교러시아감리회’ 모 교회로서 필자가
담임하다가 6년 만에
현지인 목회자에게 인계해 주고 영화관을 임대
하여 사용하였으나
주인들의 요구가 있으면 이전을 해야 하는 가운데 자체 건물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나 모스크바 시내에 건물
구입은 거액의 구입비가 없어서 그 후부터 지 교회들이 늘어나면서 모 교회로 장자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다.
◈ 한국에 온 미 선교사님들은 한국에 들어와 정동교회를 비롯해 광화문 교단본부와 중앙교회와 태화관을 보면서
미 감리교선교사들은 한국 서울 중앙에 좋은 터를 잡아 지금 한국감리교에게 이양해 줘서 한국감리교 발전에 크게 공헌케 해줬는데,
필자는 러시아감리회 개척자로서 모스크바 시내에 건물 한 동 남겨주지 못한 나약한 선교사로 안타까움과 저들에게 미얀한 마음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 필자의 러시아 선교는 파송기관 인
‘월드선교회’와 ‘새인천지방’의 몫이며,
필자에게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통역을 맡아 준 황뽈리나권사와 김 나스자집사와 최화순목사의 노고를 아끼지 않고 헌신한 그들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