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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즘은 사회의 연구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메카니즘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on a study of society and of the mechanisms which made it change) 마르크스는 말년에 사회의 연구를 더욱 확장하였으며, 그 결과 마르크스는 전통적으로 인류학자들이 연구해 왔던 영역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인류학의 저서들을 폭넓게 섭렵했으며, 특히 루이스 모건의 저서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르크스는 모건의 이론이 자신의 이론과 꼭 맞아들어 간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책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 책은 마르크스의 사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에 바탕을 두고 저술하게 되었다. 그 책이『가족과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이다.(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이 책은 내용이 매우 급진적인데,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어 온 것들, 곧 가족과 성별을 규제하는 정신적 규칙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간에 내재적인 성차라고 생각되어 온 것들이 실제로는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사회의 정치경제 체계와도 연관되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존재와 국가의 성격과도 연관되어 있다. 엥겔스는 여러 인류학 저서에서 자료를 얻어 인류는 여러 단계를 거쳐왔고, 그 핵심은 원시 공산주의에서 노예사회로, 봉건주의로, 자본주의로 마침내 공산주의로 이행하는데 있다고 한다. 이 단계들 중에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는 것은 모든 요소들이 체계적인 변형을 거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이스 헨리 모건(Lewis Henry Morgan)
모건은 이로코이 인디언들의 관습과 사회체계를 연구하여 최초의 근대적 민족지라고 불릴 수 있는『이로코이 연맹』(League of Iroquois)과『이로코이족의 혈통의 법칙』(Laws of Descent of the Iroquois)을 출간했다. 이 책들에서 모건은 이로코이 인디언들의 의례와 종교와 정치를 다루었으며, 무엇보다도 혈족과 인척의 연구가 이 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코이 인디언들의 정치조직은 혈통의 규칙에 기초하고 있고, 이로코이 인디언들의 혈통의 규칙은 모계를 따르고 있으며, 친족은 직계와 방계가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로코이 인디언들은 5개의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부족은 여러 개의 씨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씨족에 속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하는 일은 결코 없다. 어머니와 이모는 모두 어머니이다.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는 모두 할머니이다. 나와 이종사촌은 형제이다." 혈통의 개념, 부류적 체계와 서술적 체계 등과 같은 인류학의 기본적인 개념들이 모건에 의해서 시작되었다.(concept of descent, classificatory and descriptive systems)
모건은 친족의 연구를 전세계로 확대해서『인류가족의 혈족과 인척체계』(Systems of Consanguinity and Affinity of the Human Family)를 썼다. 인류의 친족체계는 부류적 체계에서 서술적 체계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이 책의 골격이다. 부류적 체계란 직계친척과 방계친척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범주화하는 체계이고, 서술적 체계는 직계친척과 방계친척을 구분하는 체계를 말한다. 모건은 부류적 체계는 형제들이 그들의 아내들과 한꺼번에 동거하거나 자매들이 그들의 남편들과 한꺼번에 동거하는 관습인 하와이의 푸나루아 관습(Punaluanic bond)의 결과라고 한다.
『인류가족의 혈족과 인척체계』의 제1부에서 모건은 아리안족과 셈족과 우랄족(Aryan, Semitic, Uralic)을 다루고 있고, 이들 민족들은 서술적 친족체계이다. 모건은 이들 유럽민족들이 서술적 친족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유재산제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제2부에서는 가노와노족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은 부류적 친족체계이다. 가노와노(Ganowano)란 모건이 만든 용어인데, 이로코이 인디언의 한 분파인 세네카 인디언들(Seneca)은 화살을 가노(Gano)라고 하고, 활을 와노(Wano)라고 한다. 따라서 가노와노란 활과 화살의 민족이라는 뜻으로 모건이 북미 인디언들을 총칭해서 쓰는 용어이다. 모건은 가노와노족이 부류적 친족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유재산제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제3부에서 투란 체계와 말레이 체계를 다루고 있는데, 이들은 서술적 친족체계이다. 투란(Turan)이란 용어도 모건이 만든 용어인데,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족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모든 민족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용어이다. 결국 투란족은 아시아 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말레이(Malay)족은 말레이-폴리네시아 어족을 가리키고 있다.
모건은 인류가족의 진화도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인류가족은 원시난혼(promiscuous intercourse)에서 시작되었고, 형제들과 자매들이 근친상간적으로 결혼(intermarriage between brothers and sisters)하여 집단혼 가족(communal family)이 되었다. 이것이 인류가족의 최초의 단계이다. 인류가족 진화의 두 번째 단계는 형제들이 그들의 아내들과 한꺼번에 동거하거나 자매들이 그들의 남편들과 한꺼번에 동거하는 하와이의 푸나루아 관습(Punaluanic customs)에서 시작하였고, 여기서 부류적 말레이 체계(Malayan classificatory system)가 파생되어 나왔으며, 형제와 자매의 결혼을 금지하는 외혼적 씨족조직(clan organization)으로 진화하였다. 외혼적 씨족조직에서 투란체계와 가노와노체계(Turan and Ganowano systems)가 진화되어 나왔고, 마침내 한 쌍의 남녀(pair bonding marriage)가 결합하는 미개가족(barbarian family)이 성립되었다. 인류가족 진화의 세 번째 단계는 일부다처혼(polygamy)에서 시작하고, 부권가족(patriarchal family)으로 진화하였다. 인류가족의 최종 단계는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재산의 직계 상속이 확립되어 문명가족(civilized family)이 성립하였고, 친족체계는 부류적 체계가 붕괴하고 서술적 체계로 전환하게 되었다.
모건의『고대사회』(Ancient Society)는 19세기의 진화주의 이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다. 여기서 모건은 몽테스키유(Montesquieu)의 야만, 미개, 문명(savagery, barbarism, civilization)의 3단계 진화 이론을 차용하고 있고, "인류는 기원에 있어서 하나이고, 경험에 있어서 하나이며, 진보에 있어서 하나이다."라는 전제를 내세운다.『고대사회』는 4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지성의 진화를, 2부는 정치의 진화를, 3부는 가족의 진화를, 4부는 상속의 진화를 다루고 있다.
먼저 지성의 발달에 있어서 인류의 최초의 상태는 식물을 채집하던 야만의 하위단계(savagery lower state)였다. 불을 발견하고 고기잡이를 하는 야만의 중간단계(savagery middle state)로 이행하였으며, 활과 화살을 발명하고 사냥을 하는 야만의 상위단계(savagery upper state)로 발전하였다. 이어서 토기의 발명으로 야만에서 미개로(from savagery to barbarism) 진화하였으며, 동물을 가축화하고, 곡식을 재배하며, 관개수로의 발명으로 미개의 중간단계(barbarism middle state)로 발전하였고, 문자의 사용으로 미개에서 문명으로(from barbarism to civilization) 진화하였다.
정치의 발달에 있어서 최초의 단계는 성별에 바탕을 둔 사회조직(social organization based on sex)이었다. 이 조직은 지성의 발달에 있어서 미개의 중간단계에 해당한다. 이어서 씨족(gens)으로 발전하였고, 씨족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협족(phratry)으로 진화하였다. 협족에서 부족(tribe)으로 발전하였고, 부족들의 연합으로 연맹(confederacy)으로 진화하였다. 이 단계가 친족에 기반을 둔 사회인 소시에타스(societas)이다. 이로코이 인디언들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역과 재산에 기반을 둔 사회인 시비타스(civitas)로 진화하였다. 그리스와 로마가 이 단계에 해당한다.
가족의 발달은 말레이 체계를 형성하던 혈연가족(consanguine family)에서 시작하여, 투란 체계와 가노와노 체계를 형성하던 푸나루아 가족(punaluan family)으로 발전하였으며, 대우가족(syndyasmian family)으로 진화하였다. 대우가족이란 일부일처 가족처럼 한 쌍의 남녀가 결합하는 형태이지만 부부관계가 불안정한 가족형태를 말한다. 이어서 가부장이 권력을 갖는 일부다처의 대가족인 부권가족(patriarchal family)으로 발전하였으며, 마침내 일부일처 가족(monogamian family)으로 진화하였다. 아리안체계와 셈족체계 그리고 우랄체계가 이 단계에 해당한다.
상속의 발달에 있어서 씨족(gens)이 성립한 후 상속은 모계 씨족의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그 후 모계가 부계로 진화했고, 상속은 부계 씨족의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마침내 사유재산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 부모에서 자식으로 상속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생산력과 사회진화.
생산양식이란 생산관계와 생산력(생산수단)을 합한 것으로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가리킨다. 예컨대 임금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를 수반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고, 영주와 농노의 관계를 수반하면 봉건주의적 생산양식이다. 어떤 생산양식이 어떤 사회조직을 특징지울 때 그 사회조직을 사회구성체 혹은 사회경제구성체(social or socioeconomic formation)라고 한다. 생산양식은 막시즘과 네오막시즘의 사회이론과 역사이론에서 중심개념이다. 생산양식은 생산관계와 생산수단간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르크스에 의하면 상품을 생산할 때 사람들은 상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사회관계도 생산한다. 이 사회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권과 생산과정에 수반되는 사회관계들이다.(in producing goods for the economy humans also produce specific sets of social relations, which include the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the social relationships entailed by the productive process)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은 생산력(forces of production)을 말하고, 생산력은 생산의 물질력(material forces of production)을 말한다. 생산수단은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자원들, 즉 도구, 토지, 기술적 지식, 원재료 등이다. 생산수단은 경제체계의 실질적인 기반이고, 따라서 사회의 실질적인 기반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관리통제는 그 사회의 계급관계 구조의 결정인자이다. 생산관계(relations of production)는 생산과 그리고 그에 따른 분배와 소비가 조직되는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사회의 진정한 경제적 토대는 생산력에 의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생산력은 발전과 진화에 대한 보편적인 역사적 경향을 보여준다. 사회진화의 특정 단계에서 생산력은 생산관계를 발생시키고, 생산관계에 의해서 그 사회의 생산양식을 특징지울 수 있다. 그런데 생산력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특정 단계의 생산력에 적절했던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이러한 경향 때문에 불가피하게 부적절한 것이 되어가고, 생산력은 그 자체가 묶여있던 생산관계를 추월해서 성장하게 된다.(the social relations of production which at a gven moment are appropriate for a certain level of development of the productive forces will however inevitably become anachronistic due to the ever present tendency of the productuve forces to deveop) 그 결과 계속 진보하는 진화의 과정에서 특정 시점에서의 사회체계는 그 다음 시점에서 퇴보적인 것이 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이러한 모순은 궁극적으로 혁명으로 절정을 이루게 되며, 혁명으로 인해 한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 이행하게 된다.
전계급사회에서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무엇보다도 테크놀로지의 변화로서 특징지워진다.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 대표적이다. 계급사회에서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관리통제하는 지배계급을 전복시키고, 다른 계급이 그것을 대치하는 변화로서 특징지워진다. 신석기는 마제석기의 사용과 농업의 출현 그리고 동물의 가축화로 특징지워지는 테크놀로지적 진화와 사회문화적 진화의 한 단계이다. 신석기는 인류진화에서 최초의 거대 혁명인데, 수렵채집 경제가 전복되어 농업경제가 그것을 대체하고, 그에 따라 사회문화적 변화가 수반되는 혁명이다.(by the use of ground and polished stone tools and by the advent of agriculture and the domestication of animals)(the overthrow of a pre-agricultural by an agricultural economy)
사회계급(social classes)
마르크스에 의하면 계급체계 또는 계급사회는 사회를 수직적 계층들로 구분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지며, 이러한 계급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차별적 접근으로 정의된다.(by their differential access to the means of production)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의 관리통제를 통해서 다른 계급들이 생산한 잉여를 착복하며, 그래서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게 된다. 계급들간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적대적이고, 계급체계에서 계급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진화에 대한 인류학의 이론들은 사회계급의 출현을 사회적 통합의 추장제 수준(chiefdom level of social integration)과 연관시킨다. 이 수준에서는 노동의 전문화가 발달하여 귀족, 장인, 군인, 사제, 농민의 구분을 만들어 내고, 일부에서는 노예도 출현한다. 이러한 구분은 잠재적인 사회계급으로 여겨지며, 도시화와 국가의 발생으로 이러한 구분은 더욱 세분화된다. 계급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들은 막스 베버를 따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사회계급의 구분으로서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권력과 지위의 측면에도 관심을 쏟는다. 막시스트 인류학자들은 종족 사회에서 장로들이 젊은이들과 여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것이 초기적인 계급관계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계급은 계급의 집단적 동일성과 집단적 이해에 대한 자각, 곧 계급의식이 특징이다.(marked by a consciousness of their collective identity and interests) 계급투쟁을 통하여 계급은 공동의 이익과 목적을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사회계급들은 점점 더 양극화되고, 이에 따라 계급의식도 더욱 뚜렷해지며, 노동계급의 정치화도 점점 고도화되어 혁명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계급정당에 대한 막시즘의 이론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계급의식은 혁명과정에서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사회발전의 역사적 법칙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수단으로 사회발전의 역사적 법칙이 표현되기 때문이다.(historical laws of social development express themselves not in spite of or regardless of man's will but by means of his will.)
인간사회의 진화에서 사회계급이 출현하면 계급간의 투쟁이 역사의 추진력이 된다.(the struggle between social classes becomes the driving force of history) 어떤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 어떤 사회구성체에서 다른 사회구성체로 이행하는 것은, 예컨대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다른 사회계급이 생산수단의 관리통제를 떠맡게 되는 것이다.
아시아적 생산양식(Asiatic mode of production)
어떤 방식으로든 일련의 진화단계들을 채택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USSR)에서 그러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인류학적 자료들을 좋든 싫든 이 도식에다 밀어 넣었다. 많은 막시스트들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구속적인 엥겔스의 원시공산주의-노예사회-봉건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라는 진화 5단계의 도식을 거부했다. 많은 학자들은 마르크스가 초기 저작에서 또 다른 진화의 단계를 제안했음을 지적한다. 바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다. 마르크스는 인도와 중국 등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개념화했다. 그 결과 마르크스 인류학은 언제나 이론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 되어 왔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노동의 분업이 거의 없고, 생산체계도 전통적인 형태로 굳어져 버린 자급자족적인 마을 경제를 가리킨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에는 잉여를 착취하는 지배계층이 관리통제하는 군사력과 중앙집권화된 국가 관료기구가 존재한다.(Asiatic mode of production refers to self-sufficient village economies with minimal division of labour and with productive systems which are ossified around traditional forms. There is a centralized state bureaucracy and military force, controlled by a ruling elite of surplus takers.) 마르크스는 발전하고 진화하는 생산력의 보편적 경향에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예외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자급자족적인 마을에서 생산조직의 단순성은 아시아 사회들이 변화하지 않는 비밀에 해답을 제공해 준다. 아시아 국가들이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건되는 이유와 아시아 왕조들이 끊임없이 바뀌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비트포겔의 동양적 독재정치(oriental despotism)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비트포겔은 관개문명의 형성에서 물공급의 중앙집권적 관리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the importance of centralized control over water supplies in the formation of irrigation civilizations)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막시스트 학자들에 의해 별로 연구되지 않은 채 버려진 분야이다. 그 이유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연관된 지리적 범주가 사회구성체의 진화단계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막시스트 이론의 논쟁에 잘 맞아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동양적 독재정치는 중앙집권화된 관료기구가 광범위한 관개사업과 수리공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특징인 아시아 사회들의 정치구조 또는 정치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비트포겔에 의해 고안된 개념이다.(the political structure or political type of Asiatic societies characterized by the centralized bureaucratic control of water supply and extensive irrigation works) 비트포겔에 의하면 아시아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수리체계 혹은 관개체계로 인해 아시아 사회들은 독재적 정치체계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동양적 독재정치의 본질적인 특징은 생산수단의 핵심 요소인 관개체계의 관리통제에 있고, 이 통제는 지배계급과 국가 관료기구에 의해 이루어지며, 나아가 지배계급과 관료기구는 군사력의 독점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전반적인 분야들을 광범위하게 관리통제한다. 국가는 이러한 체계들을 통해 더욱 조직화되고,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반면 각 지역의 농민사회들은 비조직적이고 분산적인 대중으로 남게 된다. 비트포겔(Wittfogel)의 동양적 독재정치는 광범위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고, 아시아의 수리문명, 관개문명(hydraulic, irrigation civilizations in Asia)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봉건주의(feudalism)
마르크스에 의하면 고대적 생산양식 또는 노예제 생산양식은 봉건적 생산양식으로 이행되었다. 봉건적 생산양식은 토지를 소유하는 귀족계층이 지배하고, 농업생산자들로부터 잉여생산물을 착취하는 것이 특징이다.(the dominance of the landholding nobility and the extraction of surplus production from the agricultural producers) 이것은 농노제, 곧 토지에 예속된 노동으로 유지되었다.(serfdom or bound labour) 인류학자들은 봉건주의의 개념을 역사학자들이 적용하고 있는 역사적 지리적 범주를 벗어나 원주민 사회들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여왔고, 이 논쟁은 봉건주의의 역사적 역할과 본질적인 특징들에 대한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논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봉건주의란 중세유럽의 사회적, 정치경제적 관계들의 체계를 가리킨다.(system of social and politico-economic relations pre-valent in medie-val Europe) 일부 학자들은 의미를 확대해서 유럽 뿐만 아니라 일본과 동유럽 그리고 스페인 정복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에도 이 개념을 적용한다. 봉건주의에 대한 논쟁은 봉건주의가 생산양식을 가리키는지, 정치적 체계를 가리키는지, 또는 법적 체계를 가리키는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첫째, 봉건주의의 법적 측면과 규범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군주, 영주, 가신, 농노 등의 사회범주들간에 존재하는 충성과 복종과 봉사와 연관된 일련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연구들로 이끌었다.(between different social categories such as monarchs, lords, vassals and serfs)
둘째, 봉건주의의 정치적 측면의 강조는 권력의 집중과 분산에 관심을 기울인다. 유럽 봉건주의에서 군사적 봉사와 정치적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영토를 보장해 주는 것, 곧 봉토는 영주와 가신들간에 연망의 기초가 되었고, 대영주의 가신들은 소영주로서 자체의 가신들과 연망을 형성했다. 막스 베버는 봉건주의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고, 봉건체계가 만들어 내는 지방 자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베버에 의하면 봉건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은 권력과 권위의 분권화이다.(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 of feudalism was the decentralization of power and authority) 베버는 봉건주의를 세습주의와 대비시킨다. 베버는 세습주의를 중앙집권화된 지배계급에 기반을 두는 체계라고 정의한다.(patrimonialism, a system based on a centralized ruling class or aristocracy) 그러나 마크 블로크(Marc Bloch)는 중앙집권화나 지방분권화는 봉건주의를 정의하는데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동일한 특징들을 공유한 봉건적 사회들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중앙집권적 권력을 가진 크고 작은 군주군들이 지방자치에 대항해 중앙집권적 권력을 얻으려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셋째, 봉건주의를 생산양식으로 파악하는 학자들도 통치계급의 내부적 관계와 군주와 영주들간의 권력 분배에 대해서는 별다른 강조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지주계급이 농민들로부터 추출한 잉여에 기반을 둔 계급 관계들의 체계에 강조점을 둔다. 봉건주의는 이러한 계급관계들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봉건주의의 본질적인 특징은 정치권력이 토지소유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며, 토지소유권은 지주들이 생산자들로부터 잉여를 추출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실이다.(political power was based on the ownership of land, enabling the landholder to extract surplus from the producer)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봉건주의의 법적이고 규범적인 측면은 계급관계의 체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이차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인류학에서 봉건주의의 개념에 대한 논쟁은 봉건주의가 중세 유럽에만 고유한 역사적인 특별한 양식인가, 아니면 좀 더 보편적인 분석의 범주인가 하는 점이다. 월러스타인(Wallerstein)은 중세 유럽의 봉건주의와 16세기의 동유럽과 히스패닉 아메리카(Hispanic America)의 봉건주의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월러스타인은 16세기의 동유럽과 히스패닉 아메리카의 봉건주의는 강요된 현금작물 노동이라고 하며, 이것은 봉건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서 통제된 노동의 한 형태라고 한다.(coerced cash crop labour, a form of labour control in capitalist, not feudal, economies)
유럽의 봉건주의에는 동양적 독재정치에서 볼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방의 권력자들이 생산의 전략적 요소들을 관리통제했고, 중앙으로 가는 조공을 가로챌 수 있었으며, 중앙정부의 권력에 대항해서 또는 자기들끼리 서로에 대항해서 지역적 연대를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릭 울프(Eric Wolf)는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봉건적 생산양식은 생산양식의 유형들로 고정되어서는 안되고, 조공 생산양식의 사례들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as examples of a tributary mode of production) 아시아적 체계는 좀더 중앙집권화된 권력이고, 봉건적 체계는 좀더 지역화된 권력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본질적인 공통된 특징은 생산자들에게서 정치적 군사적 수단으로 공물을 추출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extraction of tribute from producers by political and military means)
봉건주의는 근대에 들어와서 자본주의로 이행하였고,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광범위하게 연구한 생산양식이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의 관리통제는 토지귀족에서 부르조아로 이행되었고, 역사적인 대립도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으로 이행되었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부르조아의 궁극적인 타도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로의 혁명적 이행이며, 그 밑에 깔려있는 생산력의 진화와 일치하는 것이다. 생산력의 진화는 그 형태가 본질적으로 집단적인 생산체계를 확립하게 하며, 따라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권과 모순되는 것이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생산양식의 가장 특징적인 측면은 서로 다른 생산양식들이 특정의 맥락 내에서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식민지 상황에서 전자본주의 생산양식들과 접촉할 때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