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구원과 침례
침례일과 중생일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가시적인 절차가 있다면 바로 침례이다. 침례는 인간의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기독교의 상징적 의식이다. 우리는 침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축, 중생'이라고 쓴 카드를 보내며, 또 자신의 침례일에는 '중생 감사 연금'을 드린다. 실제로 침례를 받는 날이 참으로 거듭나는 중생일이라면 침례받은 자는 곧 거듭난 자이며, 거듭난 자는 곧 구원을 보증받은 자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침례를 받았으면서도 소위 '중생의 경험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것은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1975년 7월 12일에 강릉시 남대천의 맑은 시냇물에서 침례를 받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 나는 침례의 진정한 의미에 따른 신앙적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그저 교회에서 가르치는 예언과 교리들이 정확하고 틀림없다는 사실을 조금 이해했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침례받은 날은 정확히 표현하면 '생일'이라기 보다 '입교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이후의 신앙 생애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과정으로서의 침례의 본질적 의미와 침례받는 자의 성서적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침례의 본질적 의미
흔히, 침례의 의미를 설명할 때, 로마서 6장 2~3절을 근거로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 본문의 강조점은 그런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강조된 단어에 주목하면서 본문을 다시 읽어보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왕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3~8).
본문이 거듭 말하는 것은 '예수와 합하여(eis),' 혹은 '예수와 함께'(Ouv)이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침례는 내가 스스로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할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뿐이다. 그분만이 "나는 곧 산자라 전에 죽었었노라"(계 1:18)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예수와 합하는 것뿐이다. 침례란 바로 이 예수와 하나 되어 그의 생명을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받은 침례의 의미
물론 침례의 의식에는 분명히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의식은 그것의 실제 실체가 없으면 무의미하다. 침례 의식의 의미를 온전히 이루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의미가 온전히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의 침례이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왔을 때 요한은 자기가 예수에게 침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예수께서 자기에게 침례를 받겠느냐며 시침을 거절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하였다.
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셨는가? 분명히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전하였다. 회개는 죄인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이셨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침례를 받으셨는가? 모본을 보이시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의 침례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의 침례는 곧 인류를 위한 예수의 삶의 압축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침례 속에는 그의 삶과 죽으심과 부활이 요약되어 있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란 곧 예수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한다. 그가 죄없이 사신 것, 그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 그리고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것, 이 모든 것이 온전할 때 “모든 의가 이루어진다." 예수께서는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그와 같은 자신의 삶을 미리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을 때 상징적으로 예수의 삶과 생명이 곧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침례 속에 나타난 세 가지 인생사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침례의 의미로 거론되는 가장 일반적인 사건은'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침례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더욱 광범위한 상징들이 사용되었다. 그중에서도 침례는 '출생, 결혼,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생의 3대사에 적용되었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문제를 논하러 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요 3:1~7). 침례를 새로운 출생으로 설명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면서 그 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였다(엡 5:22~33). 침례가 결혼 관계로 설명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침례를 죽음과 부활로 설명하였다.
이 세 가지 상징 중에서 인간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결혼 관계이다. 자신의 출생에 대하여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은 말할 것도 없다.
출생과 죽음을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혼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결혼을 통해 침례를 이해할 수 있다. 침례식은 곧 결혼식이며, 침례서약은 곧 결혼서약과 일치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그냥 부부가 되기보다 반드시 결혼식을 하고자 한다. 아니 진정으로 사랑하면 반드시 결혼식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예수를 사랑하면 꼭 침례식을 하게 된다. 결혼식의 핵심은 결혼서약이다. 분명히 사랑하는 사이임이 다 알려졌어도반드시 공개적인 시문을 거쳐 결혼서약을 한다. 침례도 마찬가지이다. 공개적인침례 시문을 통해 영적인 언약 관계에 대해 고백한다.
그렇게 엄숙한 결혼식을 통해 부부가 되어도 그날부터 두 사람이 완전히 일치하는 생애를 살지는 못한다. 그렇게 깊이 사랑했음에도 함께 살다 보면 서로다름을 발견한다. 치약 짜는 법을 두고 다투고, 지렁이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로 다투고, 잠잘 때 벽을 향해 눕느냐 벽을 등지고 자느냐로 다투고, 감자를 고추장에 찍어 먹느냐 소금에 찍어 먹느냐로 다툰다. 이렇게 다름을 확인하면서도 서로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한집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결혼식을한 언약 관계이기 때문이다. 침례를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회개하고서 구주를 믿어
침례 요한이 예수의 오심을 예비하면서 외친 첫 번째 기별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1)였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외친 맨 처음 기별도 "때가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였다.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그의 제자인 사도 베드로가 외친 기별도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행 2:38)는 것이었다. 이들의 기별을 통해 회개와 침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된다. 그래서 마가는 아예 요한의 침례를 회개의 침례"(막 1:4)라고 했다.
또 예수께서는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막 16:16)이라고 하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롬 10:17)암는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믿음을 배워야 한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서의 바른 의미를 가르쳤을 때, 그가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행 8:26)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침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고 하였다.
예수 없이 살던 삶을 돌이켜 이제 예수를 구주로 믿으며 사는 삶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다음의 찬미 가사이다. “회개하고서 구주를 내가 믿어 나의 생활이 다 변하여 내가 밟는 길 천국 길되리로다 주의 흘린 피 내 죄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피로 구속함 받았네. 나의 하나님은 구원시도다 내게 정죄함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