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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편에 선자가 최후의 승리(勝利)를 얻는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하나님이 일으키신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다. 절망하는 것은 불신앙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
기도를 쉬지 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라. 언제나 하나님의 정의에 편에 서는 것이 성도가 할 일이다.
불의와 싸우라. 하나님이 도우시며 최후의 승리를 주실 것이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심판받을 저들이 형통하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몽둥이로 쓰인 후에 버림받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악한 자의 형통을 부러워 말라. 인생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아가야 할 길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진리는 무너지거나 망하는 법이 없다. 역사는 말한다. 악한 자의 형통은 영원하지 않다.
반드시 진리가 이긴다. 믿음이 이긴다. 하나님 편에 선자가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
하나님은 왜 나를 택(擇)하셨나?
노아시대의 사람들보다 우리가 의로워서 심판당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보다 결코 우리가 나은 것이 없다.
타락한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여 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노아를 의인이라 하심은 노아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하나님은 나를 왜 택하셨을까?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것이 갚을 수 없는 한량없는 은혜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아버지니까! 나를 사랑하니까!
한없는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며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치르신 희생과 대가는 그 무엇으로도 값을 수 없는 값비싼 은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 아래 놓여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믿지 마라.
나는 나를 구원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나를 온전히 맡겨야 한다.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공식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믿음에 네 마음을 합하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믿는 기쁨보다 더한 것은 없다.
믿음 위에 네 마음을 합하라. 배가 되어 차고도 넘칠 것이다. 기도하는 일에 네 중심을 더하라.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선을 행 할 때 네 마음과 몸도 함께 실어 보내라. 하늘에서 해 같이 빛날 것이요
네게 주어질 상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 위에 사랑을 쌓으라.
허다한 죄가 가리어지며 행복이 넘치고 인생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하나님을 높여 찬송하라. 천사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이 영광중에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사랑을 받으며 영광스러운 천국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날마다 하늘나라를 꿈꾸라. 하늘나라가 현실이 될 것이다. 믿고 신뢰하는 자에게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질 것이다.
우리의 갈 길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라.
결단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쓸모없는 인생(人生)은 없다
사명을 잃은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죽기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사는 사람의 결국은 허무다.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다 죽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에게 물으니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산다는 말을 하였다. 사람은 기분에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
창조주의 계획과 목적에 맞게 살아야 인생에 참된 의미를 누리며 살 수가 있다. 하나님은 날마다의 사명을
주시며 해야 할 일들을 깨닫게 해 주신다. 할 일이 없어 방황하는 인생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소환하시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쓰임을 받는다. 쓸모없는 인생은 결코 없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환경과
여건을 따라 강도를 높여가며 깨달을 때까지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통하여 말씀하기도 하신다.
우리는 깨닫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짐승과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열정이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목적 없이 대충 살게 되면 표류하는 인생이 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대충 신앙생활하는 사람치고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사람이 없다. 믿음이 실제가 되게 해야 한다.
실제가 되지 못하는 신앙은 이미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의사는 살아 있는 자만 다룬다.
죽은 자는 그의 영역이 아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산 역사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죽음 앞에 한없이 초라하고 무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이야기를 하지 말라한다.
살아있는 자는 산자답게 살아야 할 사명이 있다. 인생을 방황자로 만들지 마라.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는 인생만이 결코 후회가 없다.
한 사람의 순종(順從)이면 충분하다.
세상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지고 있다. 복음의 역사는 전 방위적이다.
위로부터 아래로 전후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박해 속에서도 복음의 역사는 멈춤이 없었고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왕성하게 전해졌던 것이 복음의 역사다. 이렇게 복음이 역사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탄이, 로마가, 공산주의가, 무신론자가, 복음의 길을 막으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불 붙인 복음의 불길을 끌자는 아무도 없었다.참된 부흥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는 맹렬하다. 천하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기에
교회는 어떤 박해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싸움은 수의 싸움이 아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면 충분하다.
요나 한 사람의 외침이 니느웨를 구원하였고 베드로 한 사람의 외침이 삼천 명, 오천명을 구원하였다.
바울 한 사람을 통하여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했다. 이 시대에 순종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면 꼼짝 못 하는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입이 되어야 한다.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어야 하고 복음을
통하여 섬기는 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의 입술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할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던 이사야와 같은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아직 기회는 있다. 세상이 변하여도 아직 소망이 있다. 영적전쟁의 가장 큰 격전지는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자원하는 그 한 사람을 부르시고 계신다.
신앙(信仰)은 가짜와의 싸움
오늘날 우리는 분별력의 혼돈 시대를 살고 있다. 가치관이 상실되고 진리가 왜곡된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저 감정에 휩싸이고 이념에 흔들리고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진리를 외면하고
있음이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남들의 강력한 주장과 충동에 휩싸여 흥분하기도 하고 진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정보와 가짜 뉴스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람은 유혹이 강해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 무관심하고 영적으로 약해져서 제대로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한 목숨을 가지고 늘 두 가지 생각 속에서 헤매고 있다. 말씀과 함께 살지 못하면 세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성도는 죄를 보고 단호하게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죄를 강력하게 다루지 않으면 참자유가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요 타락이다.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듯 세상의 유혹이 그럴듯해도 필경은 멸망의 길이다.
진짜 같은 가짜 진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문제는 분별력을 가지는 일이다. 거짓된 진리에 속으면 안 된다.
가짜를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용기다.
오직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의 기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뿐이다.
사랑 없는 믿음은 허구(虛構)다.
[1] 이 땅에는 사랑한다는 말만 많고 사랑은 없는 허구의 세상이다. 삶은 사랑하며 살아야 할 기회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요 악이다.
미워하며 사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사랑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삶에 에너지요 힘이다.
사랑은 인생이 왜 살아야 하는지 살아갈 이유를 말해 준다. 행복은 사랑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세상은 사랑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세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지옥이다.
인생에 모든 희로애락은 사랑으로 녹여낼 수가 있다. 하나님이 명하신 그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인내하게 하며 견디게 한다.
[2] 성도는 마땅히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다.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제아무리 하나님 잘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8)
주님은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다.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주라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우리를 강권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도 없고 구원도 없다.
인생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의 싸움이요 사랑의 경쟁터이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가서 사랑할 수가 없다. 현재만이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기회다.
[3]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맡기셨고 사랑을 명하셨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달란트를 부여받았다. 사랑을 버리면 행복도 버리고 믿음도 버린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는 입으로만 믿는 위선자다. 사랑은 원수도 친구로 만든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사랑 없는 믿음 없고, 사랑 없는 기독교도 없다. 내 속에 진정 사랑이 있기나 한 것일까?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마지막날에 우리의 사랑 없음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내 인생(人生)의 최종(最終) 목적지(目的地)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나를 바꾸라. 처음도 예수님이요 끝도 예수님이 되게 하라.
믿음은 하늘을 꿈꾸고 사는 것이라 했다. 꿈은 생각만 한다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셉처럼 꿈을 향해 어떤 고난도 견디며 믿음으로 달려가야 한다.
생각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망상에 젖어 사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십자가의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가슴 뛰는 감동이 인생을 이끌고 가게 하라. 성도는 말씀으로 사는 자다.
주님은 항상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계시지만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곁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것이 문제다. 예수님을 오래 믿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다. 믿고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거듭났다는 것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저 막연하게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게 되면 선지자를 보며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겉으로만 믿기 때문에 심령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때문에 사는 사람이다. 이제 지난날의 모든 구습을 버려야 한다.
변화되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어떻게 변했는지 우리는 안다. 고기만 잡던 제자들의 삶이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우리는 보았다.
제자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 누가 주를 위하여 죽을 것을 알았겠는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제자들처럼 주를 위하여 목숨도 버릴 수도 있다.
내 일신에 안일함만 추구하는 자는 결코 주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나의 꿈이요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되고 있는가?
내 인생(人生)의 중심(中心) 축(軸)
지구는 태양을 중심 하여 돈다. 모든 우주 삼라만상은 창조주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 그 무엇인가 중심축이 있다. 국가라는 중심, 가족이라는 중심, 소속되어 있는 중심이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살려고 하기 때문에 삶에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고 책임지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완벽하거나 전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허점이 있고 약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오히려 외면하기 때문에 삶이 고달프다. 자신을 이 땅에 보내 신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다.
성경에도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하였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할 가능성이 제로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누리며 살고 나도 그것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분량만큼 일하는 것이다.
내가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자리다. 나로 하여금 여기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중심축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어야 탈선하지 않는다.
중심축을 떠나 사는 것이 결코 자유가 아니다. 참된 진리를 알면 거기에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중심축은 무엇인가? 물질인가 아니면 명예나 권력인가?
이 모두가 헛되나 하나님만이 영원한 인생의 최종 목적지이며 중심축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도 언제든 틀릴 수가 있다.
착각(錯覺)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바뀌거나 다를 수가 있다.
나의 신념이나 의지를 가지고 남에게 강요하거나 나의 생각을 완전하다고 믿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뜻과 나의 생각은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전혀 다를 수가 있다.
가끔 보면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발 더 나아가
하나님께 응답받았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열매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것이 인간의 생각인지 아니면 사탄이 넣어준 생각인지는 끝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능력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며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언제든 나도 틀릴 수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는 단 한 번도 깨어진 적이 없으시고 모든 일은 그분의 사랑의 성품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늘 옳으시고 선하시다는 것을 잊으면 거기서 불평이 나오고 불신앙이 싹이 트는 것이다.
나를 과대 평가하거나 포장하지 말자. 천국에서는 가장 낮은 자가 가장 큰 자라 하셨다.
모든 것을 기도(祈禱)로 바꾸라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일이다. 무엇인가 얻기 위하여 세상의 복권은 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소원을 아뢰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과 안색까지도 살피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 확신이 있다면 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나님의 응답 하심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그 속에 깔려 있는 것이다.
성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기도하는 사람이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바꾸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염려는 전문가 처럼 하면서 기도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한다.
늘 말하지만 세상에 기도보다 위대한 것은 없으며 기도보다 더 강력한 것도 없다.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차용하여 쓰는 일이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야말로 기도는 신비를 체험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에 부족함은 사라진다.
기도 속에 평화가 있고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이 있다.
인생의 문제는 염려하며 살 것인가 기도하며 살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철저한 불신자다.
세상에 모든 염려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지만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일이다.
기도가 반드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것이다.
기도 속에 응답이 있고 내 인생에 대로가 있다.
기도(祈禱)가 시작(始作)되었다면 반드시 승리(勝利)한다.
스펄전은 염려하는 10년 보다 기도 하는 10분이 낫다고 하였다. 고민할 시간에 기도 하라는 말도 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이미 기도는 시작된 것이다. 기도가 시작되었다면 반드시 승리한다.
기도의 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문제의 연속이다.
인생의 바다애 파도는 계속 몰려오게 되어 있다. 언제는 잔잔하게 오는가 하면 태풍이 되어 올 때도 있다.
문제가 큰 것이 아니고 적이 강한 것이 아니다. 내 기도가 약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는 것이다.
남에게 기도를 부탁할 시간에 먼저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성도는 누구나 기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기도의 순교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기도하는 자를 세상은 결코 이기지 못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현실이 되게 하는 자는 결코 세상이 이기지 못한다.
기도가 막히는 것은 관계가 잘못되었거나 죄를 지을 때이다.
인간은 스스로 살 수 없는 결핍의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기도라는 선물을 주셨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세상에 기도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멍하니 한숨짓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바꾸면 인생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성도에게 기도가 힘이다. 기도가 능력이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기도의 테이블에 올려놓으라. 반드시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기도(祈禱)하는 것보다 중요(重要)한 것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한 대로 사는 것이다.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씀을 들을 때 아멘이라 말했으면 아멘 한대로 살아야 신앙인이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이요 실제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자가 되고 말씀에 대한 지식보다 말씀이 삶이 되어야 한다.
말로만 하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말로 인하여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행동과 생각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사람까지도 판단하실 그날은 반드시 온다.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도 없이 함부로 아멘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아멘은 결단이요 신앙의 결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기도 속에는 기도한 대로 살겠다고 하는 신앙적 고백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신앙생활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나 허튼소리가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그것의 결과를 추적하여 보신다.
사람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말과 행위를 기억하고 계신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적당히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나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믿음 좋은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기도한 대로 살고 들은 말씀대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껍데기 신앙인이 되고 위선적 신앙인으로 추락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