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떠올리면 몇가지의 테마가 떠오른다.
푸른빛 바다. 투명한 물빛. 스노쿨링과 프리다이빙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더불어 동남아 여행 부럽지 않은 물빛을 보이는 푸른 바다.
화산섬으로서 만나는 특유의 오름들로 가득한 땅. 각자의 오름이 가진 매력 덕에 동부, 서부의 가지각색의 트레킹 코스를 만날 수 있다.
오름과 바다. 이 둘만 봐도 벅찬 제주도지만 하루라는 시간을 온전히 사용해야만 가능하며, 오직 한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한라산으로 무려 대한민국(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높은 산이지만 난이도는 다른 산에 비해 크게 어렵지 않으며 눈이 오면 유난히 아름다운 산 한라산. 오랜만에 제주도에 내려가면 꼭 한라산을 들리곤 하였다.
이번에 내가 갈 루트는 영실 원점 회귀 코스였다.
한라산
한라산은 1947미터로 명실상부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한라산의 이름을 뜻풀이 하자면 높은 하늘을 당긴다 혹은 은하수를 당긴다는 뜻으로 그만큼 높은 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 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사실 제주도이 한라산을 기점으로 퍼져나간 화산섬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이 한라산을 즐기는 방법으로는 대표적으로 4개의 코스가 있다.
1. 영실코스
2. 어리목 코스
3. 관음사 코스
4. 성판악 코스
이중에서 정상이자 정상부에 위치한 호수인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는 오직 3, 4번인 관음사와 성판악 코스만이 가능하다. 이 두 곳은 사전에 탐방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한 곳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상은 아니라고 한다. 백록담을 둘러싸고 있는 곳 중 가장 높은 곳이 있지만 현재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그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실 탐방로는 1100도로에서 갈 수 있는 곳으로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유리하다. 사실 한라산 모든 코스가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한 편이다. 그렇기에 차를 타고 가서 들머리에 주차한다고 한들 다른 코스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할 수 가 있다. 1100도로는 영실과 어리목 코스가, 5.16도로에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실 원점회귀 코스
5.8km + 5.8km
영실-어리목 코스
5.8km+6.8km
영실과 어리목은 가장 쉬운 코스이자 한라산에 입문하기 가장 좋은 코스다. 이번에 영실만으로 오간 이유는 단순하다. 어리목으로 내려온다면 다른 길로 올 수 있겠지만 함께 가는 멤버들이 다들 보통 제주 여행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서 함께 한라산을 오게 되었다. 이 중에 한 명은 내가 순례길을 걸을 때 만났던 지인으로 지인의 지인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지인의 지인들은 제주도를 엄청 자주 왔고, 한라산 또한 엄청 많이 왔던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함께 하게 된 이유 딱 하나.
“어제 눈이 많이 왔다던데?”
“그럼 눈꽃 보러 갈까???”
눈이 오고 눈꽃이 핀 한라산은 그만큼 특별했다.
이른 아침부터 영실 탐방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긴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이 길이 조금 지루하다면 택시를 탈 수 있다. 만약 눈이 많이 쌓여있다며 여기서부터 아이젠이 없을 시 출입 불가 통제를 받을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영실 코스는 약 4~5번째였다. 그 중에서 겨울이 3번 정도로 대부분의 시기를 눈꽃을 보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영실 코스를 통해 올라가며 제주 남부권의 바다를 보는 것 또한 좋아했다. 거기다 제주를 자주 갈 수도 있는 게 아닌 만큼 매번 가도 늘 새로운 멋진 모습으로 보답하는 게 한라산이었다.
영실코스는 처음엔 숲길을 걷다가 서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 가파른 언덕을 조금씩 오르다보면 뒤로 펼쳐진 멋진 제주 남부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보니 중산간에 펼쳐진 다양한 오름들이 보이며 멀리로는 산방산과 송악산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제주도에는 대부분 오름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 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곳은 많지 않다.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니 점점 새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고도의 차이에 따라 온도가 다르기에 펼쳐진 눈꽃의 정도가 달랐고, 점점 내가 기대하던 그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오른쪽에 보이는 멋진 수직 암벽을 마주하게 된다. 이 암벽의 이름은 영실기암으로 이 암벽에 대한 전설이 하나 있다.
제주를 만들었다는 거대 설문대할망에게 오백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할망은 아들들이 나무를 하러 나갔을 때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아주 큰 가마솥에 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죽을 젓다가 솥에 빠져 죽고야 만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아들들은 집에 돌아와 그 죽을 먹었고, 마지막 막내 아들이 먹으려 하다가 죽의 밑바닥에 있는 뼈를 발견하고 나서야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499명의 아들들은 슬피 울다가 영실 기암의 수직벽이 되었고, 그 죽을 먹지 않은 막내 아들은 형들과 함께 있지 않고 뛰쳐나가 차귀도의 돌이 되어 장군석으로 서 있다고 한다.
참고로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창조주이자 여신이다. 아주 거대한 여신이자 한라산의 정상이 움푹 파이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한다. 제주도에 누워서 기대려고 했는데 너무 뾰족한 한라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 꼭대기만 잡아 던져버렸다. 그렇게 한라산 정상은 움푹 파였고, 그 던져진 산이 바로 산방산이라고 한다.
이 재밌는 설화에 걸맞게 실제로 백록담 부분과 산방산 부분의 크기는 비슷하다고 한다.
영실 기암에 쌓인 눈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고도가 오르며 눈꽃이 서서히 나타난다.
멋지게 펼쳐진 눈꽃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다시 흐려진 한라산. 섬이라 그런지 늘 좋은 날씨를 마주하기 어려운 한라산이었다.
대피소에서 가져온 라면을 해결하고 내려가는 길. 다시금 맑아진 하늘이 펼쳐졌고, 어느새 눈꽃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해가 떠오르며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무에 달린 눈들이 하나 둘 녹아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눈꽃을 즐기고 싶다면 꼭 이른 새벽부터 한라산으로 향하길 바란다.
많은 이들이 한라산을 다녀왔고, 제주를 여행하는 이들이 모여서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주제가 있다.
“어느 코스가 더 좋을까요?”
산행 코스에 대해서는 사실 어디가 더 낫다라는 말을 하는 편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상할정도로 입을 모아 말했다.
“난 영실 코스가 제일 좋아.”
영실 코스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다른 코스에 비해 접근성이 좋고 멋진 풍경을 빠른 시간 안에 만나서가 아닐까?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백록담의 풍경보다 영실-어리목 코스에서 마주하는 윗세오름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만약 한라산 탐방 예약제로 정상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영실이라도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제주도에서 한라산이 가지는 풍경은 독보적이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