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애지 문학상 / 이대흠
동그라미 /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강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o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 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창비시선 425)
시전문 계간지 「애지(愛知)」가 제정한 "제1회애지문학상" 시부문에 시인 이대흠(35)씨, 문학비평부문에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장석주(49)씨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동그라미"와 문학평론 "얼굴-풍경의 시학"이다.
제2회 애지 문학상 / 함민복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 생명들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시인세계 시인선)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 근무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고, 대학 2학년 때인 1988년에 ‘성선설’ 등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 1993년 <자본주의의 약속>을 펴냈다. 이 시집들에서 의사소통이 막힌 현실, 물질과 욕망에 떠밀리는 개인의 소외 문제를 다룬 데 이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년)에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다. 이 경향은 <말랑말랑한 힘>(2005년)과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년)에 이어진다.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5년 애지문학상·김수영문학상·박용래문학상, 2011년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제3회 애지 문학상 / 손택수
가시잎은 시들지 않는다 / 손택수
하늘에 매가 없다 솔개 한 마리, 독수리 한 마리 없다 이게 새들을 절망케 한다 매서운 부리와 발톱에 쫓길 때 그는 차라리 그 죽을 지경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 아침 새들이 눈 쌓인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와서 운다 아무런 장애물 없이 펼쳐진 저 드넓은 하늘을 두고 결사코, 여린 가슴을 겨누는 가시 밀림을 찾아든다
오늘 빙벽을 찾아 나선 사내들이 추락사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얼음 속의 가시, 살을 쿡쿡 찔러대는 빙벽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팽팽한 밧줄을 타고 아찔한 빙벽 사이를 날아다녔을 새들
시들지 않기 위해 피어나는 잎이 가시가 된다 연하디 연한 이파리로부터 시퍼렇게 담금질한 무쇠잎이 된다 이파리 투둑 떨어지고 적설량에 와지끈 가지가 꺽어져도 잠들지 마라 잠들지 마라 겨우내 시들지 않고 남아 얼어붙은 땅을 찔러대는 가시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창비시선 264)
문학 계간지 '애지'가 주최하는 제3회 애지문학상 시부문에 손택수 시인의 '가시잎은 시들지 않는다'가, 문학비평 부문에 권혁웅 씨의 '미래파'가 뽑혔다.
시상식은 12월9일 오후 6시 대전 유성 로얄관광호텔에서 열린다.
제4회 애지 문학상 / 이은채
나빌레라 / 이은채
거실에 홀로 앉아 차를 달인다
미수를 넘긴 백통 나비장에 기대어 그만 까무룩 잠이 든 사이
잠결에 양 어깻죽지가 순간 스을쩍 들리는 듯
겨드랑이 비밀스런 숲에서 일어나는 무슨 물결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
그러다가 귓속말처럼 잎 틔우는 소리
이윽고 그 잎새 화알짝 펼쳐지며 몸이 송두리째 붕 뜨는 찰라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 쏜살같이 튀어나와 내 손을 덥석 베어 무는데
나빌레라!
이은채 시집 <북>(문학의전당 시인선 91)
이은채의 시는 외견상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특별히 현학적이라거나 심오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그 특유의 호소력으로 독자들을 향해 잔잔하게 다가선다. 거기에는 일상 속에서 마주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내밀한 관찰의 기록이 있고, 흔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존재물들과의 진솔한 대면을 통한 교감의 순간이 있으며, 그것들에 둘러싸여, 그것들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서민들의 삶에 겨운 눈물과 애환이 있다. 그 다양한 모습들을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솜씨 있게 갈무리하여 독자 앞에 펼쳐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감각적 방식으로 표현된 작은 우화寓話의 세계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김유중(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제5회 애지 문학상 / 김선태
수묵산수 / 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오리 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一群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생긴 산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했더니
아서라, 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 아닌가.
보아라,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 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김선태 시집 <살구꽃이 돌아왔다>(창비시선 299)
김선태 시인(목포대 국문학과 교수)이 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5회 ‘애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수묵 산수」이며, 시상식은 12월에 있다.
김 선태 시인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으며, 현재 계간 시 전문지 [시와사람]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참고로, 역대 애지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한 시인들은 이대흠, 함민복, 손택수, 이은채이다.
제6회 애지 문학상 / 민경환
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들여다보다가 / 민경환
저것을 쟁취하려
부단히 발버둥 쳤다네
저, 속엔 언제나 기쁨이 있으니
아무리 근사한 말로 치장해도
들여다보니 자웅동체였던
그 시절이 그리운가 보네
어여쁜 꽃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저 꽃 터널 속에서 지내던 때가
그리운 탓일 거야
어디서부터 연유한 건지
알 수 없어서 우왕좌왕 했었지
저 꽃을 보니 알겠네
실지로 알고 싶은 건
근원에 대해서가 아니라
방치된 무의식의 그늘인지도 몰라
존재에 대한 구도의 끝을
우린 흔히 깨달음이라 하지
나 오늘 살아있음의 당위를 느끼네
융은 집단무의식라는 말을 명명하면서
이미 우리 몸속엔 시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실려 있다 그러시네
그러니, 지금껏 우리가 살아왔듯
누누이 분신들이 살아가길 바라길래
대책없이 저 꽃을 추구하는 것이리
갑자기 시큼 오싹해지네
생각만으로도 내부의 아니마가
화들짝, 깨어나려는가 보네
민경환 시집 <탈주냐 도주냐>(지혜사랑 시인선 017)
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6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민경환 씨, 문학비평 부문에 오형엽 씨가 11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들여다보다가'와 평론 '평면, 혹은 우발성의 시'이다.
제7회 애지 문학상 / 윤의섭
石魚 / 윤의섭
계곡을 돌아나온 바람 끝에 폭포 소리가 묻어 있다
예민해진 귀는 푸른 물빛을 느낀다
느지막한 휴일 오후에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외로웠냐고 묻자 이번 생부턴 아니었을 거라며
수화기를 일세기에 걸쳐 내려놓는다
물소리는 점점 커졌다
용케도 폭포가 메마를 철을 피해 찾아온 것이다
지난 가뭄에 다 말라붙었어도 물길은 지워지지 않아
사막의 와디 같은 山客들이 여기저기서 합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류를 따라 세워진 돌무더기에
돌멩이를 쌓으며 소원을 빈다
자신들의 운명을 타고 난 별을 옮기는 중이다
사자자리 황소자리 처녀자리 물고기자리 물병자리가 지상에 그려지고
돌탑이 높아질수록 소원은 하도 간절하여
별을 얹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간다
그후로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알리는 것과 알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십년을 헤어져 있다가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십년을 견딜 수 있는 세속의 情理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마다 얼굴을 봐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럴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달을 주워 온다 달을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조금씩 사그라져 감쪽같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바라본다 가끔은 엄한 자리에 달을 놓아주기도 한다 미끄러져 달아나는 눈썹달의 지느러미가 흐릿하다 달을 들고 나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폭포 아래 용소에 石魚가 산다는 소문은 내게 간신히 전해졌다
실은 물속에 시퍼런 돌덩이가 잠겨있을 뿐이지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石魚는 상류로 상류로 헤엄치고 있었다
수 세기를 거슬러 기원전으로
다시 제 나이만큼의 세월 건너 저 자리로 돌아와 외로운 회향을 거듭하는
石魚
온통 푸른 눈물에 잠겨 있는
石魚
윤의섭 시집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현대시학 기획시인선 13)
윤의섭
대한민국의 시인.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 부터 문학과사회에 글을 기고하였다. 2009년에는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사이펀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부임해있다.
제8회 애지 문학상 / 김혜영
J의 연구실 / 김혜영
새벽 2시
바하의 음악이 들리는 시각
사냥꾼 J는 인디언 마을로 떠난다
짙은 녹색으로 물든 숲속
쿠퍼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디언을 만나러 가는 걸까
남자의 어깨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미시시피강으로 내려가는 연어의 뺨을 후려갈기는 곰
퍼득거리는 살찐 연어를 물어뜯는 곰의
뒤통수를 겨냥하며 내티 범포가 다가간다
탕!
곰이 쓰러지면 내티 범포는 순수한 아담이 된다
노사냥꾼 J의 연구실에는 빛나는 총들이
서재 가득히 진열되어 있다 총은 나무의 살결을
얇게 썰어 만들었다 후박나무 향이 나는 총들
사냥꾼 J의 책갈피 사이에서
총성이 울린다 아내는 수염이 덥수룩한 그를
서재의 가장 깊은 심장에서 끄집어내어 바람에 말린다
바람에 휘날리는 흰 수염과 그들의 웃음소리
안개 자욱한 인디언 숲속에서
북극성을 따라가는 말 잔등에 앉아
다시, 총구를 겨눈다
J는 아내를 앞에 태우고 사냥을 떠난다
연구실 문은 남쪽으로 열려있다
* 내티 범포(Natty Bumppo)는 19세기 초의 미국 소설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의 연작소설 레더스타깅 테일즈(Letherstocking Tales)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
김혜영 <거울은 천개의 귀를 연다>(시작시인선 0041)
부산의 김혜영(44) 시인이 시 'J의 연구실'로 계간 시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애지문학상의 제8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 'J의 연구실'은 "문명 사회의 한 가운데서 그 문명의 탈을 벗어버리고, 아담과 이브가 살던 원초적인 에덴동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시인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997년 '현대시'로 등단한 뒤 시집 1권과 평론집 1권을 냈다. 현재 부산의 시전문지 '시와 사상' 편집위원이며, 웹진 '젊은시인들' 발행인이다. 시상식은 12월 4일 오후 5시 대전 유성문화원에서 열린다.
제9회 애지 문학상 / 황학주
자음 이전 / 황학주
한밤중 아파트 뒤안길에서 남자가 울부짖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음으로 이루어진 비명-
나는 골목을 돌아 들어가다 멈칫한다
남자는 이마를 전봇대에 걸어놓은 듯 붙이고 서서 후들대었다
아픈 것이 터져 생기는 소리를
이렇게 둥근 모음으로만 만들 수 있다니
으우어어아아아
둥근 모음들의 낯선 비애가 뾰족한 칼끝에 몸을 싣는다
몸을 떠는 골목, 갈라진 동굴 바닥 균열에서
몇 만 년의 석순이 자음처럼 자라지만
찢어진 자음을 발음하기엔 우리 몸은 너무 둥글지 않은가
둥근 눈동자 둥근 배 둥글게 다듬질된 부드러운 관절들
둥근 폐와 심장과 콩팥의 다정함으로
치욕을 견디는 모음의 존재들이 전봇대마다 하나씩 서 있다
오므리거나 퍼지는 발성을 배워야 살아남는
오오흐흐에에- 생존을 위한 응급처치, 추운 밤 입 벌리고
자음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영악한 영장류가 되거나 자폐증을 품게 된
지친 고독들이 피크닉을 와 서성인다 칼끝을 합치고 쌓은
아파트 빌딩 우거진 동굴들의 원시림에서
골목 담벼락에 매달려 검은 그림자가 울부짖는다 나도 저
울부짖음과 함께 울부짖음으로 동무해주며
수수만 년 전 동굴에 버려진 늑대의 아이가 그러했듯이
멀리 떨어진 부족의 전사들이 동시에 그러했듯이
모음의 발성으로 자음을 애도하며
나도 칼끝 위에서
황학주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시선 372)
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9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남자 시 부문에 황학주, 여자 시 부문에 안정옥이 18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자음 이전'과 '헤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황학주의 시에서 자음의 세계는 현대문명사회의 원시림과 이전투구의 세계를 뜻하고, 모음의 세계는 어머니의 세계이며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뜻한다"고 평가했고 "'헤로인'은 '만병통치약'이 없는 세계에서 '아편의 중독성'을 더없이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성찰한 수작"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상금은 각각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12월 5일 대전 유성에서 열린다.
제9회 애지 문학상 / 안정옥
헤로인 / 안정옥
아편은 양귀비꽃의 상처였다 덜 익은 열매에 흠(欠)을 낸 즙액이다 독이 독을 다독인다 열매의 이지러짐에서 모르핀을, 모르핀의 이지러짐에서 헤로인을 뽑아냈다 누군가 말한 치유의 힘센 이는 헤로인, 힘센 상처는 강렬하다 술값이 비싸서 가난한 사람들이 마셨던 아편, 작가나 시인들 아픈 아기와 여자들에게 흔히 권했던 시절, 얼마 전까진 그랬다 이천 개가 넘는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여자들은 들어가질 못했다 얼마 전까진, 우리 몸은 얼마 전까지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 물질이다 그런 물질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상처들이 포효했기 때문인가 취한 이들의 시간은 거나하다 홀린 듯 산마루 위에 둥둥 떠다니는 나를 잊음이 거나하다 마음을 들어 올려준다 제 몸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젠 마지막이라 말했다 내 성하지 않음을 중얼거려 본다 홀랑 들이키라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붉은 양귀비꽃의 흠(欠)이 당신에게 안착한다 성하지 못한 당신 마음에 양귀비꽃의 그런 마음이 당겨졌다 호주머니 그해엔 다녔다 헤로인을 자주 겉옷의 넣고
깊숙이 그해엔 넣고 호주머니 자주 깊숙이 헤로인을 다녔다 겉옷의
안정옥 시집 <아마도>(지혜사랑 시인선 016)
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9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남자 시 부문에 황학주, 여자 시 부문에 안정옥이 18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자음 이전'과 '헤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황학주의 시에서 자음의 세계는 현대문명사회의 원시림과 이전투구의 세계를 뜻하고, 모음의 세계는 어머니의 세계이며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뜻한다"고 평가했고 "'헤로인'은 '만병통치약'이 없는 세계에서 '아편의 중독성'을 더없이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성찰한 수작"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제10회 애지 문학상 / 함기석
저녁의 비행운飛行雲 / 함기석
아픈 아이를 안고 창밖을 본다
내일이 어린이날인데 하늘엔 어두운 핏줄만 뻗어가고
내가 가꿔온 꿈이 사마귀처럼 사각사각
내 내장을 파먹고 아이의 웃음을 파먹고 있다
옆집 무화과나무 아래 싹튼 상추들이 모두
만 원짜리 지폐로 보인다 저 싱싱한 지폐에 구름과 삼겹살을 싸
배터지게 먹고 돼지가 되고 싶은 날이다
대문가 목발을 짚고 올라온 어린 나팔꽃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저녁의 눈동자는 점점 커져 서녘하늘 전체가 붉은 갯벌로 변해가고
벼랑이 보이는 해안으로 새들이 날아간다
햇살 하나가 가만히 다가와 아이의 상처 난 뺨을 혀로 핥아준다
흰 이가 막 돋아난 햇살의 빨간 잇몸
공기들이 만드는 투명한 파도가 쉼 없이 일렁이고
아이는 약에 취해 잠든다
나는 아이의 등을 다독거리며 놀이터 모래밭을 바라본다
아침부터 온종일 허공을 날다 저녁에
모래밭에 떨어져 죽은 새
새가 남긴 마지막 무늬와 추상의 발자국들이
사람의 문장보다 아픈 저녁이다
나는 잠든 아이를 꼭 안고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점점 붉게 지쳐가는 하늘과 대지
저 두 장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검붉은 침묵들
거미의 입으로 들어간 벌레와 빗방울과 어둠이
환한 허공의 집이 되기까지
삶의 습한 저지대를 비행하는 아픈 비행운들
멀리서 석양에 젖은 새들이 하늘을 돌고
나무의 혼들이 죽은 나뭇가지 끝에서 빠져나와 찬 물결처럼 고요히
허공 저편으로 퍼져가는 것이 보인다
함기석 시집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민음의시 269)
[심사평]
시인에게 문학상을 주는 이유는 특별하다. 뭔가 큰 성취를 얻었다고 칭찬하거나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일반적인 상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 시인의 시적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상을 줘서 격려한다는 것은 문학적이지 않은 일이며 그것은 자칫 시인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문학상을 준다는 것은 어떤 작품이 지금 이 시대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자는 데 바로 문학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이나 시적 표현의 시류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보고자 하는지 그 시선의 깊이를 가진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총 15편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했으나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과 양애경 시인의 「여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자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가난과 비루함으로 점철된 일상의 삶을 시인이 열망하는 자유와 대비시킴으로써 그것이 가진 고통의 함량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시인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욕망과 욕망이 부풀리는 쾌락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름다운 슬픔을 포기하거나 애써 피하며 살고 있다. 함기석 시인의 이번 수상작은 바로 이러한 슬픔을 다시 일깨워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쾌락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의 깊이와 미학적 성취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는 데 있다. 정치도 자본도 모두 인간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너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그런 대상화가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한 존재가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가진 진정성과 허무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인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두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심사평 황정산)
제10회 애지 문학상 / 양애경
여자 / 양애경
양잿물로 삶아
햇볕에 잘 말린 란닝구처럼
하얗고 보송한 여자
가슴팍에 코를 묻으면
햇빛 냄새가 나는 여자
머리칼에 뺨을 대면
바람 냄새가 나는 여자
잘 웃는 여자
낡은 메리야스처럼
주변 습기를 금방 흡수해
쥐어짜기만 하면 물이 흐르는 여자
잘 우는 여자
편서풍에 날아간 여자
빠른 시냇물에 둥둥 떠 급히 흘러간 여자
오래 입고 여러 번 빨아 얇아진
그 여자
지금 어디?
양애경 시집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창비시선)
[심사평]
시인에게 문학상을 주는 이유는 특별하다. 뭔가 큰 성취를 얻었다고 칭찬하거나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일반적인 상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 시인의 시적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상을 줘서 격려한다는 것은 문학적이지 않은 일이며 그것은 자칫 시인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문학상을 준다는 것은 어떤 작품이 지금 이 시대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자는 데 바로 문학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이나 시적 표현의 시류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보고자 하는지 그 시선의 깊이를 가진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총 15편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했으나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과 양애경 시인의 「여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자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가난과 비루함으로 점철된 일상의 삶을 시인이 열망하는 자유와 대비시킴으로써 그것이 가진 고통의 함량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시인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욕망과 욕망이 부풀리는 쾌락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름다운 슬픔을 포기하거나 애써 피하며 살고 있다. 함기석 시인의 이번 수상작은 바로 이러한 슬픔을 다시 일깨워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쾌락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의 깊이와 미학적 성취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는 데 있다. 정치도 자본도 모두 인간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너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그런 대상화가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한 존재가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가진 진정성과 허무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인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두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심사평 황정산)
제11회 애지 문학상 / 곽효환
숲의 정거장 / 곽효환
사람들 드문드문 들고 나는
호젓한 시골마을 간이역 철길을 이어
백두대간 숲 속 깊은 곳에
작은 역 하나 더 지어야겠다
간이역과 간이역을 잇는 기차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오고가게 해야겠다
비자나무 가죽나무 굴참나무 측백나무 팔 벌리고
작은 짐승들 새들 벌레들 분주함 가득한
숲의 정거장엔
철커덕 철커덕 쉼 없이 달려왔을 기차도
같이 온 바람도 잠시 숨 고르리라
플랫폼에 이어진 호젓한 오솔길 따라
나란히 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갔다가
단청 고운 절집 탱화아래 앉아
잠시 먼 산에 한눈팔아도 좋겠다
세상의 시간과 일상이 한동안 멈춰
몸 부리고 쉬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작은 역 하나 숲의 양식대로 지어야겠다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
슬레이트 지붕집엔 전파사와 분식집
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
그리고 방앗간이 더러는 정겹게
더러는 힘겹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간이역
한때는 열차들 분주히 들고 나고
수많은 사람들 멈추고 떠나며
흥성하게 장도 이루었을 텐데
그 기억과 시간이 떠난 자리에
숲의 정거장에 넘치게 붐비는
느림을 멈춤을 고요를 실어다
고루 나누어 줘야겠다
두 역을 오가는 기차의 차장을 해야 할 지
두 역 중 어느 역의 역장을 맡아야 할 지
고민은 초록과 함께 깊어간다
곽효환 시집 <너는>(문학과지성 시인선 517)
[심사평]
에피쿠로스는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의 반대방향에서 쾌락주의를 최고의 선으로 주창하였지만, 그러나 그의 쾌락주의는 주지육림 속의 방탕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나 근검 절약하는 금욕주의 속의 쾌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생의 목표는 쾌락”이지만, 그 쾌락은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과 번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세 가지로 구분한 바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필요한 욕망이고, 두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필요 이상의 허영적인 욕망이며, 마지막 세 번째로는 자연적이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다. 이 세 번째 욕망은 필요 이상의 허영적인 욕망과는 달리, 타인이 가졌으니 나도 갖겠다는 모방욕망을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두 번째 욕망과 세 번째 욕망을 거절하고,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하면서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는 소박한 쾌락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없다.
제11회 애지문학상 후보작품으로는 박형준의 [불탄 집], 고영민의 [민물], 송종규의 [알람에 관한 편견], 이승희의 [결], 박종인의 [고고학적인 악수], 이은봉의 [지구 아가씨], 김지녀의 [선], 김백겸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장옥관의 [달도 없는 먹지 하늘],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이 올라와 있었고, 이 후보작품들 중에서 박형준의 [불탄 집]과 이승희의 [결], 박종인의 [고고학적인 악수],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을 집중적으로 심의한 끝에, 우리는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을 제11회 애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은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 슬레이트 지붕 집엔 전파사와 분식집/ 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 그리고 방앗간이 더러는 정겹게/ 더러는 힘겹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간이역”에서 이 간이역마저도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간이역과 “백두대간 숲속 깊은 곳에” “작은 역 하나 더 지어” 그 “느림을 멈춤을 고요를 실어다” 나르는 “차장”(역장)의 간절한 꿈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대도시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빠름의 시간이고, 시골은 그 도시의 욕망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느림의 시간이다. 빠름의 시간은 거짓, 사기, 폭력, 약탈 등이 난무하는 가짜의 시간이고, 느림의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시간이다.
모든 경전들은 인간의 욕망을 죄악시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이 만악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이 욕망을 더욱더 풀어놓고 그 어떠한 제동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종교배와 고령화 사회, 자원고갈과 원자력발전소의 대폭발은 자본주의 사회의 음화이고, 따라서 인간의 욕망이 만악의 근원임이 그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은 이 욕망의 가속도의 시대에 반하여, 에피쿠로스적인 전원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며, 우리 인간들이 하루바삐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건강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삶의 본능을 옹호한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여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최종적인 구원의 장치이다. 시인은 인간 영혼의 치료사이며, 우리는 시인이 있기 때문에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제11회 애지문학상 수상자인 곽효환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일동
제11회 애지문학상에 곽효환(46) 시인이 선정됐다고 시 전문지 ‘애지’가 20일 밝혔다. 수상작은 ‘숲의 정거장’. 심사위원들은 “에피쿠로스적인 전원 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수상작은 우리 인간들이 하루바삐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건강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찬가”라고 평했다.
제12회 애지 문학상 / 최서림
아청(鴉靑)빛 시간 / 최서림
淸道라는 아청빛 시간에 푹 젖었다 왔다
시인인 나를 부러워하는, 나보다 더 시인다운 농부를 만났다
소들이랑 한 식구처럼 살고 있었다 소를 닮아 눈망울에
초겨울 저녁 검푸른 물빛 하늘이 출렁출렁 담겨 있었다
마들이라는 두꺼운 시간 속에 아청빛 시인이 살고 있다
간판들이 켜질 무렵 얽매이지 않는 말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도봉산 겨울 능선 위 저녁 하늘빛이
노시인의 눈에 흘러내릴 듯 가득 차 있다
광주 진월동에는 이른 새벽부터 푸른 저녁까지
편백나무로 시를 짜는 목공이 있다
총알이 스친 다리처럼 시리지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묘한 빛깔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에 찔리고 베여 갈라터진 이 땅 어디에서도
붕대 같은 저녁이 찾아오듯이
시의 순간만큼 짧은 아청빛 시간이 왔다 간다
최서림 시집 <시인의 재산>(지혜)
최서림 서울과기대 교수(문예창작과)가 제12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6일 청남대에서 열린다.
수상작은 '아청鴉靑빛 시간'이다. 애지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이 시의 제목인 아청빛만큼 깊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지극히 절제돼 시의 품격이 예사롭지 않다"며 "시인과 농부라는 모티프를 통해 아청빛 같은 언어를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한편 올해 처음 수상하는 제1회 애지문학회 작품상에는 김은주 시인의 '이응의 세계'가 선정됐다. '이응의 세계'는 후보 작품 10편 중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작이 결정됐다.
제13회 애지 문학상 / 송종규
구부린 책 / 송종규
켜켜 햇빛이 차올라 저 나무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을 고요히 지켜보던 어린 나방은 마침내 날개를 펴, 공중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바스러질 듯 하얗게 삭은 세월이 우체국을 세워 올렸을 것이다.
숲과 별빛과 물풀들의 기억으로 악어는 헤엄쳐 나가고 행성은 궤도를 그리며 우주를 비행했을 것이다.
천만 잔의 독배를 마시고 나서 저 책은 완성되었다
자, 이제 저 책을 펴자
잎사귀를 펼치듯 저 책을 펼치고 어깨를 구부리듯 저 책을 구기자
나무의 비린내와 꽃과 어린 나비가, 악어와 우체통이 꾸역꾸역 게워져 나오는 저 책
저 책을 심자
저녁의 우주가, 어두운 허공인 내게 환한 손을 가만히 넣어줄 때까지
송종규 시집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의시 213)
[수상소감]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비 같고 회오리 같고 꽃잎 같은 잎사귀들이 내 뜰에 수북수북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고 차고 환하게 얼비치는 그 아름다운 문장 속에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잠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천산북로의 만년설처럼 녹지 않는 눈은 말고, 가슴 에이게 하는 사무치는 싸락눈은 말고, 낯선 손님처럼 처음인 듯 눈이 와서 나는 매 순간, 내가 나에게 바치는 설레는 첫 문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궁전을 내 안에 세워 올리려 했습니다. 시를 통해 당신께 이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변한 집 한 채 짓지 못했고 당신은 너무 멀어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형체가 없으므로 나는 당신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영원한 부재로만 존재하는 모순인 당신, 혼돈인 당신. 흩날리는 이 말들은 또 누구의 혼돈이며 누구의 은유인지요.
작은 움막에 문풍지를 달아 주신 <애지>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송종규의 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그 시선을 통해 세상의 깊이에 도달해 가려는 시인의 지적 탐색에 우리 모두를 동참시킨다. 송종규의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형성하는 시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통해 새로운 세계 인식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나라는 주체가 나의 모든 시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라 상품의 지배에 종속되는 타자일 뿐이다. 시간마저 순전히 내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타자화된 개인이 느끼는 파편화된 현실과 착종된 의식이 파괴된 언어로 나타나 현대시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까지 하다.
송종규 시인의 「구부린 책」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를 만드는 것도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모두 타자들이 만들어 낸 오래된 시간이고 그 오래된 역사가 나의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구부린 책이라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해석하고 그 책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가 되어버린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송종규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이승희, 안서현(글 황정산 대전대 교수)
제14회 애지 문학상 / 문태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 문태준
만일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창백한 서류와 무뚝뚝한 물품이 빼곡한 도시의 캐비닛 속에 있지 않았다면
맑은 날의 가지에서 초록잎처럼 빛날텐데
집 밖을 나서 논두렁길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갈텐데
흙을 부드럽게 일궈 모종을 할텐데
천지에 작은 구멍을 얻어 한 철을 살도록 내 목숨도 옮겨 심을텐데
민들레가 되었다가 박새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비바람이 되었다가
나는 흙내처럼 평범할텐데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시선 387)
[수상소감] 어머니의 들판과 필체와 한 편의 시
해마다 늦가을이면 나에게는 택배가 배달되어온다. 택배 상자에는 여러 곡물이 들어있다. 볶은 깨와 빻은 고춧가루, 까만 콩 등속이다. 육중한 택배를 들어 올릴 때 나는 하나의 들판을 들어 올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그 들판에서 일어났을, 힘겨웠을 노동의 하루하루들에 대해 잘 안다. 논과 밭, 그리고 둑에서 싹 트고 자라 오르고 열매 맺은 작물들의 일이며, 그 작물들을 아침저녁으로 보호하고 돌보았을 농부의 지극한 마음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택배가 배달되어오는 날에 내 심경은 만산중(萬山中)에 있는 것만 같다.
택배가 배달되어올 때 나는 나의 주소지를 적은 필체를 들여다본다. 볼펜으로 꾹 눌러쓴 내 어머니의 필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여간 야무진 필체가 아니다. 어머니는 “부재시 관리실에 배달 부탁합니다.”라고도 써놓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필체가 호미를 빼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특히 ‘ㅐ’, ‘ㅏ’, ‘ㅣ’와 같은 모음을 쓰실 때 어머니는 빨랫줄을 받치기 위해 바지랑대를 높이 들 때처럼 위로 치켜들어 쓰신다. 나는 이 필체가 어머니의 성품과 어머니의 신념과 어머니의 노동의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허술하게 하시는 게 없었다. 깨를 털 때에도, 바느질을 할 때에도, 밥 짓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기도를 할 때에도. 특히 끝맺음의 경우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어머니의 필체 생각이 났다. 동시에 나에게 배달되어오는 가을 들판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한 편의 시도 하나의 필체이며, 하나의 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가 고유하고 특별한 필체를 갖고 있는지 또 나의 시가 하나의 들판처럼 고된 노동으로 이뤄진 것인지도 함께 자문해보았다.
미흡한 것을 잘 채우고 가다듬어가라고 이 상을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격려인 동시에 반조(反照)를 당부하는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상을 받으니 어머니께서 아주 좋아하시겠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함께 사는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문태준 시집 <맨발>(창비시선 238)
[심사평]
상은 목표나 수단이 아니라 단지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 수상을 목표로 시작을 하거나 문학상을 수단으로 상업성과 유명세를 얻으려는 풍조가 지금 우리 문학계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 문학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작가나 시인에게 문학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당위는 사라지고 끼리끼리 상을 나눠 가지고 명망성에 기대 문학상의 위상을 높이려는 반칙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애지문학상의 의의는 이러한 풍조에 대한 비판이고 거부라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우리 문단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보고 또 얼마나 치열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는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10편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김혜순의 「떨어진 별처럼」, 문태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고영민 「붉은 입술」, 문정희 「거위」, 유종인 「방석집」, 박이화 「한바탕 당신」, 정해영 「종이학」, 박형준 「불광천」, 엄재국 「호모 dew」, 김병호 「일요일」이 후보작이었다. 모두 훌륭한 작품이어서 쉽게 선정할 수 없었다. 많은 논의 끝에 가장 애지의 문학 정신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문태준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
문태준 시인의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은 아주 새로운 주제나 표현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문명비판이라는 다소 식상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진정성 있는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삶의 인식에 가닿고 있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루한 삶속에서 우리 자신을 낭비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가두고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새로운 꿈으로 새 삶을 준비할 수 있음을 스스로 믿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읽으면 슬프다. 그 슬픔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비극적 현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시인은 이 슬픔을 통해서 단순한 문명비판을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문태준 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쉬운 언어, 공감의 표현, 소통의 화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투와 단순함을 넘어서는 사유의 깊이 그것이 바로 문태준표 문학이다.
문태준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영광이었으면 한다.
- 심사위원 일동(황정산 글)
제15회 애지 문학상 / 오현정
몽상가의 턱 / 오현정
잠 없는 몽상가들은 얼굴 중앙에서 아래쪽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손을 괴고
오늘밤도 그럴 턱이 있나
주억거리던 생각을 발음하다 턱이 빠질 때쯤
한 턱 낼 일, 터트리지
김수영의 거침없는 기개의 턱은 풀을 일으키고
아고리*의 섹시한 턱은 불멸의 그림을
머라이어 캐리**의 귀여운 턱은 오만대신 사랑을
빨간 바지 복부인의 주걱턱은 파란 집으로 데려갔던 턱
한 턱 내도 아깝지 않은 턱이지
나의 아래 위 턱 긴 곡선을 도려내며
아들 취직했을 때 한 턱
딸 얻었을 때 두 턱, 붉은 포도주를 마시고
브이라인이 되는 동안 귀밑 사각턱부터 옆 턱까지
흘린 피는 가슴에 검은 주름을 만들었지
레드카펫의 문턱에는 몽상가의 삶이 턱을 괴고 사유중이지
버릇과 인상을 턱이 빠져라 하초에 힘을 주고 씹을수록 열리지 않는 궁
꿈꾸는 자의 턱살을 만지려 훗날의 맥을 짚었지
기둥을 세우려 동시교정에 들어간 문리의 턱뼈
턱tuck잡힌 날렵한 턱시도 언제 입을지
* 이중섭의 발달된 긴 턱을 일본사람들이 붙여준 별명. 아고(턱)+리(李)의 뜻.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1970~): Hero, Emotion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히트곡을 부른 미국 팝계의 디바.
[수상소감] 무지개 너머 마리오의 눈빛처럼
창가에서 막 영그는 가을햇살을 백지위에 담고 있는데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느닷없이 날아왔다. 마치『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마리오가 된 느낌이었다. 베아트리체와 마주친 마리오의 눈빛처럼 내 가슴에 온통 붉은 노을이 번졌다.
얼른 냉동실 문을 열고 홍당무 한 입 베어 물고 밖으로 나섰다.
지난 밤 비바람에 성근 산국이 마중 나온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향기로운 당근 속살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들길에 핀 하얀 구절초 꽃을 한 아름 안아본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골똘해지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밤새토록 보스락댔다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출세와 부귀보다는 그저 소박한 시인이라는 행복감에 젖어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리 허전하고 쓸쓸해지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시인의 세상과 인연을 맺어 지나온 길이 그저 아스라하기만 하다. 당신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를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묻고 답하느라 여태껏 철딱서니 없이 눈과 귀와 생각이 여전히 나의 턱을 붙들고 영 놓아주질 않는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화들이 나의 턱받이가 되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 멀고 먼 당신은 되새김질 할 때마다 헬륨을 마신 풍선이 되고 만다.
괴레메 마을의 요정이 굴뚝연기를 들여다보며 캑캑거리기도 하고 풍등은 상상에 나부끼는 샤랄라의 치맛자락처럼 삶의 능선을 타고 펄럭인다.
길치의 쓰린 마음을 달래는 저물녘 몽니처럼 꽃은 피고 지는데 혼자 오르는 산길은 적막하기만 하다.
오직 당신만 생각하라는 갈매 빛 편지로 물든 소나무에 등을 기대면 숲속 오솔길 짙은 나뭇가지에 사랑의 끈질긴 인내와 지혜라는 모성애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옷깃으로 재를 넘어가는 당신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더 넓은 세상의 들판에서 의미 있는 영감靈感으로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저 산마루 그늘에서 종달새와 몰래 나눈 이야기를 차마 잊지 못해 왔노라 며 뭉게구름과 천둥번개 치는 소리를 어린아이처럼 귀담아 들을 것이다.
더욱 열정을 쏟으라는 뜻으로 홍당무와 채찍을 함께 주신 애지의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이 상은 “사랑과 지혜”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여기고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매사에 고인 턱의 각도를 더욱 탄탄하게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시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독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알뜰하고 충실한 감성과 지성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수액을 부지런히 끌어올려야겠다.
늘 격려해 준 가족과 문단의 선후배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시는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이며, 이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지탱해주는 것은 비판의 힘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비판의 힘은 인식이며, 이 인식이 결여되었을 때는 그는 어떠한 비판의 힘도 가질 수가 없다. 비판의 힘이란 K.O펀치의 권투선수와 홈런타자의 그것과도 같다. 한국 시단은 이미 비판의 힘을 상실했고,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연출해낼 힘을 상실했다. 제15회 애지문학상 후보작들로는 장옥관의 [키스], 정용기의 [석이石耳], 이재무의 [애국자], 안도현의 [그릇], 오은의 [벽돌], 장석주의 [키스], 유병록의 [그랬을 것이다], 오현정의 [몽상가의 턱], 김성대의 [장마가 시작되었고 차이나타운에 있었다], 김언의 [완제품]이 올라와 있었지만, 우리는 흔쾌히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펼쳐보이는 오현정의 [몽상가의 턱]을 제15회 애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할 수가 있었다.
오현정 시인의 [몽상가의 턱]은 ‘턱의 현상학’이며, 그 ‘턱’에 의한 말놀이의 향연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얼굴의 하부구조로서의 턱과 관상학으로서의 턱, 위 턱과 아래 턱, 옆 턱과 사각턱, 주걱턱과 그럴 턱, 무턱과 비대칭적인 턱, 한 턱과 두 턱, 문리의 턱과 의상용어인 턱tuck, 기개의 턱과 섹시한 턱, 귀여운 턱과 턱시도의 턱, 레드카펫의 문턱과 절대권력의 턱 등이 바로 그것이며, 동음이의어로서의 턱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답게 변주될 수 있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몽상의 나래가 날실이 되고, 턱의 나래가 씨실이 된다. 그의 시는 총천연색의 몽상의 드라마이자 턱의 드라마라고 할 수가 있다. 극본 오현정, 기획 오현정, 연출 오현정, 감독 오현정, 주연 오현정의 모노드라마가 한국시문학의 무대를 전면적으로 장악하게 된 것이다. 말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우면 그 주체자의 삶이 아름답고 풍요롭게 되고, 말들이 더럽고 추하면 그 주체자의 삶이 더럽고 추하게 된다. 턱은 관상학적으로 인간의 야망과 그 허세를 드러내게 되고, 그리고 그 인간의 사유와 그 실천들을 떠받쳐주는 대들보가 된다.
오현정 시인의 [몽상가의 턱]은 대단히 지적이며 철학적인데, 왜냐하면 [몽상가의 턱]은 그의 오랜 탐구와 성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몽상-탐구는 턱의 유형과 턱의 의미에 대한 집중의 힘이 되고, 탐구-성찰은 그 몽상을 ‘턱의 현상학’, 즉, [몽상가의 턱]이라는 기적----기념비적인 업적----을 창출해내게 된다.
몽상은 시가 되고, 시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된다. 몽상은 사유하고 턱은 그 사유의 대들보가 된다(반경환, {사상의 꽃들}에서).
제15회 애지문학상 수상자인 오현정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더욱더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연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제16회 애지 문학상 / 이경림
자정 / 이경림
가죽혁대처럼 질기고 긴 길의 끝에서 나는 보았네 加恩이라는 유리문을. 나는 보았네 그 속에서 수 세기가 내 몸을 돌아 나오는 것을. 지나간 들판 지나간 산 지나간 마을회관 지나간 밤의 광장이 보여주던 무성영화들. 나는 보았네 똥 장군을 지고 가는 장수아버지,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돌아가던 아랫마을 김 영감,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있었네, 할머니는 방안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네, 이마에 간대라 불을 단 광부들이 막장으로 가는 비탈에 한 줄로 놓여 있었네 한 떼의 개미들처럼 나는 보았네 검고 둥그렇게 서 있는 옥녀봉, 비탈에 자지러지게 피어있는 도라지꽃, 구호물자를 받으려 줄을 선 사람들, 악동 형태는 전봇대를 타고 고압선 쪽으로 오르고 있었네. 그 아래, 누렁개 한 마리가 뉘엿뉘엿 먹이를 찾아 다녔네. 아버지는 눈만 반짝이는 광부들을 지휘하고 있었네. 황금빛 해가 옥녀봉 꼭대기에 우스꽝스레 걸려 있었네. 나는 보았네 멋쟁이 신 선생이 도래실로 가는 모롱이에서 어떤 키 큰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봉암사 상좌승은 시주바랑을 메고 북쪽으로 가는 길 위 놓여 있었네. 나직한 돌담 너머 집들이 비틀 서 있었네
나는 보았네 어린 고염나무가 조랑조랑 매달고 있는 버거운 식구들을. 분홍 양산을 쓴 처녀들은 위험한 레일 위를 걷고 있었네. 도랑마다 물이 넘치고 둑방에는 문득 몸메꽃이 피어 있었네 검은 숲이 검은 새들을 날리고 있었네 나는 보았네 바람난 옥자가 검은 새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고통처럼 길고 질긴 가죽혁대가 그녀가 날아간 허공에 떠 있었네
*가은, 도래실,-경북 문경에 있는 마을 이름
*봉암사-문경에 있는 사찰
이경림 시집 <급! 고독>(창비시선 430)
[수상소감]
상을 받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벌을 받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분명 명예로운 일이지만 반면 채찍이며 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시라는 괴물이 폐결핵에 심한 공황장애 환자이던 제게 운명처럼 들이닥쳐 머리채를 잡고 30년을 조리돌린 일처럼.
문청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했습니다. 정지용의 백록담을 본 것이 초등학교 5학년 쯤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후 아버지의 책들 사이에서 오장환 임화 백석 김기림의 시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반대로 절대 시인은 되지 않겠다 생각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버지의 책상에서 보던 그 책들과 원고뭉치들은 우리의 배고픔에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이과를 선택했으나 가난은 배우는 일 조차 뜻대로 못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입원해 있던 병실에서 그것은 마치 주문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원인불명의 불면이 계속되었고 그 때마다 밤새 받아쓰기 하듯 그것들을 썼습니다. 수면제에 취해 잠이 들면 꿈속에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시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괴로웠으나 황홀했습니다. 마치 오로라 속을 휘몰려 다니는 알 수 없는 기류처럼.
시는 광기입니다 불면입니다. 크라이막스 입니다. 섹스입니다. 유토피아이며 타나토스이며 춤이며 거대한 침묵입니다. 침묵을 찢고 나오는 꾕가리 소리입니다. 우뢰이며 번개이며 소나기입니다. 흐느낌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에 머리채 잡혀 끌려온 지난 생은 아름다웠습니다. 시를 먹고 시를 싸고 시를 타고 시로 달리며 시를 노닥거리며 지나가는 저녁을 바라보게 해 준 시에 감사합니다. 해질녘입니다. 황혼이 아름다운 것은 이글거리던 해가 저 너머에서 반추해 주는 노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저녁이 더욱 아름답도록 제 시에 손 얹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저 때문에 기회를 잃으신 저보다 훌륭하신 몇 분의 동료 시인들게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벌을 받는 거라 생각하고 더욱 삼가며 살겠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애지의 반경환 주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경림 시집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산다>(문예중앙 시선 007)
[심사평]
최근 우리 시단은 크게 활력이 떨어져 있다. 한 동안 문단을 휩쓴 미래파의 시들은 애초의 저항성을 상실하고 분별한 아류들의 언어유희로 전락해 있고, 문단 일각에서는 서정성의 부활을 말하고 있으나 아직은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고답적 서정의 답습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시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많은 시전문지들은 지극히 사적인 일기장 안의 언어들로 채워지고 있다. 언어의 힘으로 사회와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다. 문학상은 바로 이런 작품을 찾아 한 시기 우리 문학의 성과를 확인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 문학상은 상업성과 문단의 권력화의 수단이 된 지 오래이다. 오직 애지 문학상만이, 우리 문학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작가나 시인에게 문학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이나 주제의 시의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시인이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지 또 얼마나 치열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는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10편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정채원의 「홀로그램」, 송찬호의 「종이 공주」, 윤제림의 「달이 즈믄 사람에」, 복효근의 「그리움의 속도」, 이병률의 「어떤 걱정」, 이경림의 「자정」, 이영식의 「달은 감정노동자」, 천양희의 「초미금」, 양선희의 「시를 읽는다」, 장옥관의 「덜렁덜렁」이 후보작이었다. 다들 한 해 동안 우리 문단을 빛낸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많은 논의 끝에 앞서의 선정 취지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경림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
이경림 시인의 「자정」은 사색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 우리의 삶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을 쉬운 언어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추억이 불러오는 익숙한 정서에 빠지거나 과거가 주는 안온함에 쉽게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삶의 아픔과 비극성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슬픔과 고통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진정한 인간애가 이런 것들의 이해 위에서 가능하다는 희망을 함께 보여준다. 이경림 시인의 이번 수상 작품은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고 잔잔하면서도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경림 시인의 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경림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을 통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둘 모두에게 큰 영광이었으면 한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황정산)
제17회 애지 문학상 / 이영식
꽃의 정치 / 이영식
불, 질러놓고 보는 거야
가지마다 한 소쿠리씩 꽃불 달아주고
벌 나비 반응을 지켜보는 거지
그들의 탄성이 터질 때마다
나무에서 나무로 번지는 지지 세력들
꽃의 정부가 탄생되는 거라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네
봄날 내내 범람하는 꽃불을 봐
꿀벌은 꽃이 치는 거지
벌통으로 키우는 게 아니야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들
그게 며칠이나 가겠어
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
같은 꽃 같은 향기더라도
오는 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행복해 하는 거야
봄날은 간다
꽃의 정부가 다하더라도
후회는 없어
튼실한 열매가 뒤를 받혀 줄 테니까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중 ‘전쟁은 다른 수단의 정치“를 변용함.
이영식 시집 <휴>(시작시인선 0139)
[수상소감]
올해는 『애지』 창간 20주년을 맞는 해라지요.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만이 당신의 존재증명이라 주창하며 『애지』를 이끌어 오신 주간님과 편집 종사자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를 올립니다.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등단 20년을 코앞에 둔 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연필을 깎다 보니, 나도 한 자루 연필이 아니었나 싶다. 動亂 통, 탄피처럼 흙바닥에 뚝 떨어진 연필 하나. 시간의 칼날로 매일 나를 깎고 다듬어서 꾹꾹 눌러썼지.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볼펜과 만년필 틈에서 기를 써 봐도 손톱만 부러진 채 다시 나락으로 굴러 구더기 떼만 들끓던 날들이여. 세상 밑그림만 그리다가 어느새 몽당해지고 너무 작아 쓸모없다 내팽개칠 때쯤 연필심처럼 묵묵한 기다림 속으로 시가 왔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울음이 노래가 되었다. 별도 별사탕도 되지 않는 시를 향한 외눈박이 사랑으로 눈멀어서야 흑심 가득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꽃도 좋고 가시도 좋았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경작하느라 솔개그늘만한 밭 한 뙈기 품어 본 적 없으니 세상 뜰 때는 몽당연필 같은 시집 몇 권 달랑 메고 참, 가볍게도 가겠다.
저는 불혹도 한참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시인의 마을에 셋방 한 칸 겨우 얻었습니다. 그러니 뭐 내보일 세간살이도 없었지요. 내 머리맡에 놓인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알 두 쪽은 달렸는데 남자가, 대쪽 같은 기개가 없습니다. 한 때는 사상이니 이념이니 더운피 개천에 풀어 저잣거리에 이름값이라도 한 모양인데, 요즈음은 시 쓰기가 신변잡기 파리채 놀음이나 다름 아닙니다. 作爲만 있고 行爲가 없습니다, 活語라면 살 저며 등뼈 내놓고 초장이라도 튀어야할 거 아닌가요? 가끔 언어를 비틀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성찬을 베풀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개다리소반에 찬밥신세입니다. 시인의 모자를 쓰고 보니 어깨가 자꾸 움츠러듭니다. 걸음걸음이 조심스럽고 그림자조차 낮은 곳으로 눕습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 비틀린 채 땅바닥에 헛바퀴를 돌고 있는 외뿔풍뎅이입니다. 세상의 저녁, 어느 한 불빛이 내 시를 읽고 있는지요. 우리가 상한 날개 껴입고 헛춤을 추는 것은 아직도 추락할 꿈이 남아있음입니다.
문장을 갖는다는 것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지요. 詩, 참 오랜 동안 내 곡진한 마음의 情人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힘들게 할 때는 물고기처럼 잡아 탕을 끓이거나 우려먹고도 싶었고 속이 뻔해 보이는 그의 몸에 붙어 무언가 도모해 보려 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백컨대, 시 앞에 혼자이지 못했습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느라 바람만 들었습니다. 이제, 항복합니다. 시 앞에 무릎 꿇습니다. 끊고, 닫고, 못 박아, 소금 한 줌 속에 녹아있는 열 말의 바닷물처럼 나를 가두겠습니다. 충분히 외롭겠습니다. 혼자인 그 외로움일랑 『애지』와 나누며 살겠습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별처럼 빛나는 작품들 속에서 제 시에 꽃을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과 곡진한 인사를 올립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애지창간 20년을 이어오며 시 잡지 만드느라 옛날 그 좋던 뚝심 다 내려놓은 반경환 주간님께도 위로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시문학을 통해 지금까지 맺어온 뜻깊은 인연 앞으로도 잘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심사평]
우리 인간의 세상에서 말처럼 굳세고 목질이 좋고, 말처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닌 것은 없다. 말은 상냥하고 심지가 곧고, 언제, 어느 때나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모형제, 단군, 하나님, 도덕, 종교, 사상, 이념, 가정, 군대, 학교, 경찰, 회사, 국회, 정부, 진리, 허위, 선악, 남녀 등―, 이 모든 것은 말의 꽃이자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말보다 키가 크고, 말보다 힘이 세고,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높이 나는 것은 이 세계에 없다.말은 명령하고, 말의 명령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말은 모든 것들의 영원을 원하고, 이 생명의 숲을 가꾼다.
2019년은 『애지』 창간 20주년이며, 어느덧 제17회 애지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2018년 겨울호부터 2019년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에 10편의 시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와 이영식 시인의 「꽃의 정치」를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분필의 시인의 「자작나무 自敍傳」,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병률 시인의 「그 배를 타기는 했을까」, 고재종 시인의 「길에 대하여」, 김병호 시인의 「누가 괜찮아, 했을까」, 송승언 시인의 「나 아닌 모든」, 서효인의 「종각에서의 대치」, 김기택의 「발바닥」 등은 모두가 탁월한 시들이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영식 시인은 낭만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꽃의 정치」는 현실 정치에 대한 환멸의 소산이라는 점에서는 낭만적이고, 「꽃의 정치」는 머나먼 저곳의 정치라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고,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꽃의 정치」를 실현시키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는 꽃의 정치의 목표가 되고, 이 ‘꽃의 정치’는 이상세계와 이상세계의 행복을 보장해주게 된다. 정치란 ‘무보수 명예직’으로 꽃 피어나는 것이지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것 같은 꼼수와 “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라는 시구에서처럼, 이웃 국가의 정책으로 꽃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치란 진실이 없으면 피어나지 않는 꽃이며, 전국민의 행복이 보장된 ‘꽃놀이패’의 축제를 연출해내기 위해서는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와 전통은 「꽃의 정치」의 토대가 되고, 이 역사와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이 반목과 대립이 없는 사랑의 정치가 실현될 수가 있다.
꽃의 정치와 꽃의 정부는 우리가 이영식 시인을 통해서 들은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 만인들의 행복의 향기가 천리, 만리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9년부터는 애지문학상 문학비평부문을 다시 부활하여 시상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고 그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는 사상가이며,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비평의 후퇴는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17회 애지문학상 공동수상자인 송찬호 시인과 이영식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부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제18회 애지 문학상 / 조영심
그리움의 크기 / 조영심
그리움에는 닿지도 못할 한 뼘 엽서를 본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간절한 전언인 양
최초의 선언인 양
붙잡고 있는
방금 보았지만 돌아서면 다시, 울컥
보고 싶어지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그림
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에서도 한 줄 소식에 달게, 매달리는 날들
단단한 그리움 아쉬움 모두를 이 작은 종이그릇에 어떻게 다 담을 수 있을까
바다 건너온 바람이 옆에서 소리 높여 활자를 읽어주자
다섯 줄 골똘한 단문
한 뼘씩 목마른 곡절로 행간을 넓혀가며
다섯 장 장문으로 커가는 중인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고 있을
그녀만의 방언,
내 속까지 파고드는 둥그런 파동
자꾸 터져만 간다
조영심 시집 <소리의 정원>(시산맥 시인선 035)
[수상소감]
금방 보고 돌아서면 다시 딸이 보고 싶다는 어머니를 그리움의 높이로만 바라보며 돌아서던 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등으로 바람결에 날아든 낙엽처럼, <제18회 애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당황하여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또한 낭패스럽기도 하여 햇볕 쪽으로 옮겨 놓았던 화분들을 바라봅니다. 시들거리던 화초가 햇살비를 맞고 눈에 띄게 힘이 올라 잎들도 윤기가 흐릅니다.
문득 나의 시간도 거기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2005년 처음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송수권 교수님과 시 공부를 시작하여 <산문시사>문학 동호인들과 시를 공부하던 중 2007년 『애지』로 등단하여 시인의 이름을 달았고, 그 뒤 5년마다 『담을 헐다』 『소리의 정원』 『그리움의 크기』 시집 3권을 내놓았으니 2020년 올해로 15년 차 시인입니다.
신神이 파놓은 시詩의 함정에서 언어의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것이 시詩라면 저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신의 함정에 빠져 버린 셈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마다 그분과 함께 젖은 곳에서는 설움을 대신하는 곡비가 되었고, 필요하다면 광대가 되어 외줄을 탔습니다. 제가 한 일은 오직 그분의 방문에 기꺼이 혹은 기어이 응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응답의 즐거움으로 하루해가 짧았고 한편 한편의 기쁨에 뿌듯했습니다.
나의 시의 모지인 <애지문학상>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를 쓴답시고 남의 울음에 내 설움을 섞어 곡하는 곡비 놀음은 아니었나? 어름사니 흉내 내며 어설프게 외줄에 올라 부채를 펴고 접는 잔재주만 부린 것은 아닌가, 뒤 돌아보게 됩니다.
<제18회 애지 문학상>은 아직 어설프고 빈곳이 너무 많아 그곳을 따스한 햇살비로 채워주신 거라 믿습니다. 나의 시도 어느 누군가에는 한 줌 햇살비가 되어 생기를 불어 넣으라는, 세상의 생명을 북돋우는 곡비요 어름사니가 되라는 주문의 말씀이라 믿습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심사위원님들과 반경환 『애지』 주간님 격려의 뜻을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심겠습니다.
[심사평]
지난해 겨울호부터 이번 가을호까지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된 시들 중에서 엄선된 10편의 후보작을 읽고, 그중에서 <애지> 2020년 가을호에 발표된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를 제18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한해동안 생산된 그 많은 시편중에서 작품 하나를 고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정 기준도 심사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품의 미학적 완결성이 뛰어나고, 앞으로 애지문학상의 위상을 진취적으로 이끌 작품을 고르기 위해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는 선명한 이미지와 깊이 있고 절제된 언어로 그리움의 정서를 실감있게 그려냈다. 이 시에 개입된 서사도‘휠체어에 앉은 그녀’나‘바다 건너온 바람’정도로만 노출되어 있어서, 시상의 전개를 압박하지 않으면서 외려 그런 서사의 여백이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이 시의 화자가 연민의 감정으로 지켜보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는,“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생의 막바지에 도달한 사람일 터이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요양기관에서 지내는 듯하고, 거기서 그리운 사람들로부터 부쳐오는 엽서의 “한 줄 소식에” 매달려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칫 상투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던‘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이 시에서 생의 말년의 고독을 대변하고 그에 저항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의 기호로 절절하게 읽힌다.“작은 종이 그릇”인 한뼘 엽서에 “다섯 줄 골똘한 단문”으로 시작하여 “다섯 줄 장문”을 넘어 “하늘과 땅이 알고 있을/그녀만의 방언”으로, 무한대의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게 그런 연유이다. 요즘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러 병원으로 간다. 현대인의 죽음의 장소가 치료와 재활이 목적인 병원이라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양원도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처소일 수도 있다.
시 「그리움의 크기」에서도 신체와 정신의 쇠락과 질병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되는 노인 세대가 처한 현실을 언뜻 엿볼 수 있다. 그속에서 노년의 고독과 소외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의연하다.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금, 이 시는 개인사적 이야기를 넘어 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삶과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이에 광활한 삶의 영지를 대부분 잃고, ‘휠체어’라는 작은 영토에서 안간힘을 다해 그리움의 제국을 일으키려는, 삶의 비장미를 한껏 고양시킨, 조영심의 「그리움의 크기」를 올해 애지문학상으로 선정하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반경환, 송찬호(심사평 송찬호)
제19회 애지 문학상 / 정해영
압화 / 정해영
산을 올려놓은
가슴이었다
뱉어서는 안 될 말
가파른 높이로 쌓여
핏덩이일 때
작은 집으로 보낸 아들
남의 식구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천륜을 막아서는 그림자
밤마다 바닥에 엎드려
호랑이처럼 울었다
퉁퉁 불은 젖을
눈물로 죄다 말려버리고
일생의 울음
눌리고 눌러
납작해진 아들
신산한 가슴에
눈감아도 지지 않는
꽃으로 박혀 있다
정해영 시집 <왼쪽이 쓸쓸하다>(지혜사랑 시인선 107)
[수상소감]
사과를 깎으면 껍질이 구불구불 살아납니다. 끈 같기도 하고 길 같기도 하였습니다. 제 몸을 깎아야 생기는 붉은 인연의 길 따라 수많은 길을 걸어 왔습니다. 어젯밤, 한 달 전, 혹은 수십 년 전에 걸었던 길, 열 살 즈음 읍내에 있는 사진사가 와서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리꽃 향기를 찍은 가족사진 속의 그 길은 다시 걸어 보고 싶은 길이기도 하지만 죽은 짐승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은 진저리 치는 길도 있었습니다. 어떤 길은 처음은 험난했지만 평탄한 길로 들어서기 위한 감춰진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문학은 삶의 해석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곧 삶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친정에서 26년을 자라고 환경이 아주 다른 남편을 만나 오십 년 가까이 살아 왔습니다. 밖에서 우리 부부를 들여다 보는 시선은 “그러나 또한”으로 이어지는 씨줄과 날줄의 신비라고 하였습니다
이성주의 “그러나 또한” 감성주의
획일주의 “그러나 또한” 다원주의
경제제일주의 “그러나 또한” 문화주의
현실주의 “그러나 또한” 이상주의
능력주의 “그러나 또한” 인본주의
직선주의 “그러나 또한” 곡선주의
상명하복의 방식 “그러나 또한” 하의상달의 방식
이렇게 상반되고 모순된 것 속에서 “그러나 또한”으로 이어져 스며들고 공존하여 통합하는 것이 저의 삶의 환경 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극복해야 할 대상과 마주치게 되고, 어떤 때는 그것이 몇 달이 걸려야 넘을 수 있는 태산준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에게 있어 문학은 늘 밟고 가는 현실과 안고 가는 생각 사이에 있었고,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삶이 비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 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한 조각의 사랑을 얻기 위한 사과 깎기 같은 것으로, 제 살을 깎아야 길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지나간 모든 길은 속살의 긴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뿌리 칠 수 없는 길이었고, 그 길의 가장자리에는 칼끝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습니다. 참회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저의 삶의 갈피에서 나온 시를 뽑아 주시다니 살아온 날들 중 처음 만나는 뜻밖의 일입니다.
부족한 저의 시를 수상작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 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따뜻한 격려 잊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심사평]
애지문학상이 올해로 열아홉 번째를 맞이했다. 애지문학상은 그동안 우리 시단의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내는 일에 열중해 왔다. 이미 보석으로 인정받은 시인에게 뒤따라 박수를 치기보다는, 새로운 보석을 찾아내 우리 시단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올해도 이러한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 사실 문학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요즈음 문학상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학상 선정에서 작품 자체를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작품 이외의 요소들이 작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작품보다는 학연과 지연(地緣/紙緣) 등과 같은 요인이 문학상 선정의 기준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이 새로운 창작의 동력을 제공하기보다 문인들 사이의 친소관계를 확인하는 장으로 변질된 부부도 없지 않다. 이런 연유로 하여 일부 문인들은 문학상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번 애지문학상은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음을 밝혀둔다.
본심에 올라온 애지문학상 후보작은 길상호의 「쌍둥이」, 김추인의 「나를 응시하는 눈이 있다」, 박성우의 「안부」, 안현심의 「굴참나무」, 오은의 「그들」, 이병률의 「기차표」, 이서빈의 「개복숭아꽃」, 이제니의 「너는 멈춘다」, 정해영의 「압화」, 한이나의 「노독」(가나다 순) 등이다. 이들은 우리네 삶과 내면의 다양한 표정을 읽어내는 데 저마다 개성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 현실 비판과 삶의 성찰이라는 시의 오래된 주제를 나름의 언어로 충실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요즘처럼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이제는 시가 읽혀야 한다는 당위를 증명해 주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일은 우리의 삶과 현실을 갱신하기 위한 언어의 혁명이고, 시인은 그 혁명의 주동자가 되어 앞장서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우리가 망각하고 살아가는, 하지만 꼭 필요한 생각과 느낌의 앞잡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심사위원들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정해영의 「압화」를 제19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정해영 시인은 다른 시인들에 비해 시인으로서의 경륜이 길지 않지만,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압화」는 짧은 시 형식 속에 인생의 기구한 사연과 독특한 감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핏덩이일 때/ 작은 집으로 보낸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수많은 사연을 상상하게 하는 서사적 요소이자, 다양한 결의 서정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요소로 작용한다. 어린 아들과의 생이별이라는 비극적인 서사가 슬픔의 “눈물” 혹은 “울음”의 서정으로 압축되고 있다. 그 서정의 절정은 “신산한 가슴에/ 눈 감아도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는 대목이다. 일평생을 남의 집에서 억눌리며 살아온, 또는 스스로 억누르며 살아온 “납작해진 아들”이 압화(壓花)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꽃”은 슬퍼 보이지만 아름답다. 한 어머니의 극단적인 고통이 미적 거리를 획득하면서 아름다운 그림(姶畵)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서사적 요소를 서정적 감각으로 변용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사람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억눌린 사연을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눈물”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것은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에 해당한다. 시인은 그러한 사연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인간의 마음을 위무하고 승화시켜 주는 존재이다. 「압화」는 이러한 인생과 시에 관한 근원적 성찰에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앞으로도 더 새로운 생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계속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 심사위원 일동(심사평;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제20회 애지문학상 / 이순희
말이 머리 깎고 절로 간 까닭 / 이순희
그는 글 동냥하며 근근이 살았다
언어에 굶주려 극심한 눌변에도 시달렸다
어쩌다 곳간이 찼다 싶어 열어보면
가득 들어찬 망상과 허상들.
어느 새벽 그는 길을 떠났다
詩는 말과 절이 합쳐졌으니
말의 신전으로 가서 두 눈으로 직접 말씀을 확인해 보리라 작정했다
험준한 산길 올라 들어선 산사에는
아무리 찾아도 말은 보이지 않고 풍경소리만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처마 끝 바람 고요해지자
가부좌 틀고 면벽한 말씀의 뒷모습,
묵언 수행 중인 듯 말줄임 알로 염주를 굴리고 있다
그 염주 다 닳아 한 점으로 남게 될 때까지
결코 일어서지 않을 듯 꼿꼿하다
[수상소감] 시 앞에 다시 옷깃을 여미며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저는 많은 시집을 버렸고, 그러고 나서도 많이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제 시집은 누구에게 읽어보라고도 못하고 작업실 벽에 기대어 빽빽히 쌓여있습니다.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갓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기쁨보다는 왠지 당혹스러움이 앞섰습니다. 그동안 연유야 많겠습니다만 저는 시에 올인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잘 알기에 기쁨보다는 자괴감 같은 것이 먼저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수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저 또한 여느 수상자들처럼 기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면 이번 수상이 그동안 제 시업의 성취가 특별해서가 아니란 걸 깨닫습니다. 시에 자신을 다 걸고 사는 시인도 있는데, 저는 시를 때로는 소홀히 때로는 너무 무심하게 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시는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는군요. 사실 저도 새벽에 앉아 시를 마주 대하면 언제나 마음이 열리곤 합니다. 일상에 묻어둔 이런저런 응어리도 다 풀어주고 하소연도 묵묵히 받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시가 언제까지 저의 이런 푸념들을 받아주기만 하겠습니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저는 시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곧추세우려 합니다.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게 시 앞에 서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시와 함께 동행 하겠습니다. 저의 삶이 바로 시가 되도록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저의 시를 수상작으로 선고(選考)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상을 제정하고 운영에 진력하시는 반경환 선생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려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시를 쓴다고 이러저러한 저를 한결같이 지켜봐 준 남편과 딸, 아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본질에 이르는 길 찾기의 시학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란 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루카치에 따르면 시는 원초적 고향, 곧 선험적 고향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험적 고향으로 가는 길 찾기이다. 루카치는 이 선험적 고향을 사회철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면 하이데거는 언어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꿈꾸는 세계는 다르지 않다. 루카치가 말하는 선험적 고향은 에덴과 같은 낙원인데, 그곳에서는 인간의 언어와 사물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꿈꾸는 시적 세계와 다르지 않다. 서정시의 꿈은 언어와 사물이 일치하는 상태, 곧 언어가 그 본질적 능력을 회복하는 상태이다. 즉 모든 언어가 대화적 능력을 회복하는 상태이다.
제20회 애지문학상 시부문 수상작이 된 이순희의 시 「말이 머리 깎고 절로 간 까닭」은 언어의 본질적 능력을 찾아가는 구도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말(言)이 머리를 깎았다는 행위는 말이 자신의 머리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에 이르는 인식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는 시의 세계, 곧 언어의 신전(言+寺)을 찾아간다. 언어의 신전이란 언어와 사물이 일치하던 원초적 시의 세계이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해서 모든 시어가 본질적인 상태로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보들레르가 말한 만상조응(萬象照應)의 경지이기도 하다. 시인이 언어를 매개로 사물과 일치하는 경지, 이것이 바로 물아일체이고 소요유(逍遙遊)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그런 경지는 시인, 아니 모든 예술가가 꿈꾸는 절대미의 경지이고 절대자유의 경지이고 황홀경의 경지이다.
이순희 시인은 이제 본격적인 시의 세계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다. 어쩌면 그런 열락(悅樂)의 세계를 이미 맛보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법열이니 열락(悅樂)이니 하는 것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에 막힘이 없고 서로 통하는 게 그런 상태이다. 그게 바로 도에 이르는 길이다. 이순희 시인의 시들이 그런 도에 이르는 길을 찾고, 그 도를 즐기는 것, 도락의 입문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면서 심사평을 마무리한다.
- 심사위원 최서림, 반경환(심사평: 최서림)
제21회 애지문학상 / 권혁재
자리가 비었다 / 권혁재
한 차장이 면직되고 자리가 비었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신입을 뽑지 않았다
그가 키우던 죽은 나무를 내다 버렸다
먼지에 덮인 의자가
눈치 보며 비꼈다
전화가 울려도 받지 못할 빈 자리
지나간 공문이 폐지 더미로 쌓여도
한 차장을 기억하는 직원은 없었다
문상을 마치고 나와
붙여대는 담뱃불처럼
한 사람의 청춘이 연기로 사라졌다
[수상소감]
폭염과 폭우의 계절이 지나갔다. 이제는 서서히 다가올 폭설과 혹한의 계절을 맞이해야 한다. 시도 그렇게 폭염과 폭우 속으로 떠나갔다 폭설이 내리는 날 눈이 시리게 되돌아 올 것이다. 전봇대에 기대어 선 어깨가 좁은 사람 위로 눈물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밤새 돌아가는 기계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어린 노동자의 꿈길에서도 하얗게 내릴 것이다. 그들을 위해, 그때를 위해 쓰다만 시 한 줄을 가지런히 남겨 놓는다.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시 한 줄을.
신춘문예 등단 이후 『애지』로부터 수상자 선정 소식을 이십 년 만에 새롭게 받았다. 주소불명의 편지를 받은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차를 몰아 서산 용현리에 있는 서산 마애불로 향했다. 차창으로 빗방울이 와서 부서졌다. 연이어서 오는 빗물이 차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린 유리 너머로 사물이 뿌옇게 보였다. 처음 시를 쓸 때의 시각이자 초점을 놓친 거리였다. 가까운 빗물만 보이고 유리창을 벗어난 거리의 대상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계단을 올라갈 무렵에 비가 멈추었다. 마애불 앞에 서서 천 년 동안 마지를 드신 연유를 여쭈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나오는 중인지 들어가는 중인지 물어도 웃을 뿐이었다. 계절에 따라 또는 시간에 따라 내 미소가 달라 보이는 게 왜 그런지 물으며 또 웃었다.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너 시 쓰는 시인이라며 시도 똑같은 거여. 시도 점차 진화하고 있잖아. 그러면서 자꾸 웃고만 있었다.
나는 시를 돌연변이로 만들지 않는다. 더욱이 시를 미학적으로 잘 쓰거나 수사로 잘 꾸미지도 않는다. 시는 시 자체로 존재하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시는 “상처 난 기억에 대한 정직한 고백”을 하는 것이며 사유의 집합체를 이루어야 한다. 시는 사람의 땀 냄새고 “고독한 자의 말”이어야 한다. 분명 시는 진화하는 중이며, 시인은 진화한 시를 방해하거나 성급히 해체하는 것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병호 시인에 의하면 나의 시는 “시어로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득하게 삶의 진경을 찾아 그대로 옮겨내는 것이 나의 고유한 시법”이라고 지적한 사실이 있다.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다른 문학잡지에서도 밝힌 바가 있다.
당신은 나의 첫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이다. 그러나 시에서의 첫 문장은 오래전 당신이지만 끝 문장은 아니다. 기원전 내 눈빛에 섞인 당신 눈빛이 즈믄 해를 건너오면서 잔물결로 흘러온다. 당신이 읊은 시가 너울로 와 닿는 맨 가슴 구석마다 소름 줄기로 돋아난다. 온몸을 돌고 돌며 새겨 넣은 당신 흔적에 지금도 내 몸 어딘가 떠돌고 있을 당신. 나의 끝 문장은 당신이 아니다. 언제든 당신을 느낄 수 있는 온기가 나의 마지막 시이자 끝 문장이다. 그래서 나의 문장은 끝이면서 끝이 없는 기원전의 말씀들이다.
시골 어두운 방에서 무말랭이로 말라가며 혼자 중얼대는 노모의 힘없는 소리에도 자식을 걱정하는 사랑이 배어있다. 문학의 시작은 빚진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과 시에게도 빚을 졌다. 빚진 사랑을 갚으며 시를 쓰라고 굴레를 씌워주신 애지문학상 심사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더욱더 정진하고 매진하여 좋은 작품으로 빚을 덜어내겠다.
[심사평]
본심에 추천된 작품은 10편이었다. 산문성이 짙은 시는 시인의 고유한 직관과 통찰이 부족했고 긴 분량을 장악하는 구성의 밀도 또한 떨어졌다. 감각적 비유와 참신한 발상에 기댄 시는 사유의 깊이를 확보하지 못해 아쉬웠다. 비유는 기교적 표현의 차원을 넘어 인식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때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법인데 이 점이 간과되었다. 관찰과 해석에 집중한 시는 낯선 상상력이 부족했으며 철학적 관념시는 관념이 구체적 몸을 얻지 못했다. 철학적 수사를 하는 시와 철학을 담지한 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고심 끝에 「작약을 보러간다」와 「자리가 비었다」를 최종 후보작으로 놓고 면밀히 살폈다.
「작약을 보러간다」는 절제된 심리와 운율감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화자가 백두대간 저수령低首嶺을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간다는 내용이지만 이 꽃놀이가 그리움과 불면에 시달리는 화자의 상처 치유와 갱생의 여정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작약은 화자를 되살릴 그리움의 대상이면서도 없는 당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의 통증과 울림이 깊어진다. 「작약을 보러간다」가 전통적 서정의 색조와 리듬에 기대어 화자의 뼈아픈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면, 「자리가 비었다」는 가면의 조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직접적으로 그려냈다. 수사적 비유 대신 사건과 침묵과 암시로 사색의 메아리를 확장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면직免職된 한 차장이 남긴 빈 자리가 짙은 적막감을 낳는데 시적 정황으로 보아 한 차장은 조직의 어떤 불미스런 사건이 터진 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강제 면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의 면직은 암묵적 경쟁자였던 다른 동료들에게 기회였을 것이며 조직적 무관심과 방치가 떠난 자의 마음을 더욱 황폐화시켰을 것이다.
빈소에서 문상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와 피워대는 담뱃불,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담배연기는 한 차장의 청춘이면서 황폐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미래의 초상일 것이다. 죽음의 전개방식이 다소 단순하지만 이 단순한 정황 속에 숨은 베일의 사건, 화자의 고통과 번민, 직장 동료들의 방임과 은폐심리 등이 후폭풍처럼 밀려든다. 이 시는 점점 더 극악한 상황으로 치닫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향해 울리는 경종警鐘이자 조종弔鐘이다. 현대인의 은폐된 욕망, 현대사회의 야만성을 담담하게 폭로하고 비판한다. 이 비판적 성찰과 사유를 높게 평가하여 「자리가 비었다」를 제21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최종 선정하였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함기석, 반경환 (심사평: 함기석)
제22회 애지문학상 / 엄재국
백비탕 / 엄재국
누가 불 지폈을까?
부글부글 살구꽃 한 세상이 담장을 넘쳐 흐른다
건더기 없으면 넘치지 않을 맑은 물의 봄
사람들은 봄빛에 지쳐 쓰러지는데
약 없는 세상
누가 저 담장너머
지독한 봄을 여태 끓이고 있을까?
[수상 소감]
시를 쓰다가 조각과 회화, 설치미술, 개념미술, 도예등 미술의 전반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미술 작업을 하면서 생각나는 게, 시와 미술은 서로 깊이 연관 되어 있으며, 상호 보완적이고 상승적 관계를 형성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미술의 원천은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뿌리로 미술의 가지가 거침없이 자라는 것 같습니다.
시와 미술을 하면서 언어와 색채의 동질성과 변별성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시는 주로 언어를 통해 인식적, 정서적, 미학적 사유를 표현하는 반면, 미술 작업은 시각적 요소를 통해 이러한 감정과 사유를 형상화 합니다. 시와 미술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깊이 탐구하며, 존재와 무, 유와 무의 경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인 복잡성과 다층성을 복합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조각과 회화 설치미술, 개념미술등 다양한 예술형식을 통해 파괴와 창조, 그를 통한 자유를 만끽하며, 시에서 다룬 철학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나름,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시에서는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고, 미술에서는 형태와 색깔의 경계를 허물며, 두 매체가 함께 작용하여 더 깊은 예술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시를 쓰는 감성과 미술의 작품을 결합 또는 해체 하여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자유를 허락받고 싶습니다.
그 자유는, 개념과 예술이라는 허구를 파괴하는 용병으로 또한 허락 될 것입니다.
이번 애지 문학상 수상이 저의 작업에 주마가편이 될 것입니다.
선정해주신 반경환 주간님 이형권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심사평]
올해에도 애지에 실린 시 작품들이 백화제방(百花齊放)처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피어났다. 공광규의 「겨울동화」, 김기택의 「수염으로 칼날 깎기」, 박분필의 「나의 고도를 찾아서」, 반칠환의 「즐거운 동티-멸종의 기쁨」, 박성우의 「은행나무 길목」, 신대철의 「땅 껍질」, 엄재국의 「백비탕」, 이병연의 「백색 사원」, 이선희의 「바퀴 달린 가죽가방」, 장옥관의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 조용미의 「먹으로 휘갈긴 문장」, 「최병근의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등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인간과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는 시에서부터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소소한 감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비루하기 그지없는 타락한 세상을 향한 비판적 목소리도 주목할 만한 시적 형상을 얻고 있다. 특히 전 지구적 생태 위기와 관련된 시편들이 각별하게 눈에 들어온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도 언어예술로서의 수월성을 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대상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대부분이 애지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성과 시의성을 충실히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 시단에서 이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시인, 국내외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시인의 작품도 있었다. 그런데 애지문학상은 시인상이 아니라 작품상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이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잘 알려진 시인의 익숙한 작품보다는 우리 시단에서 낯설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시인의 작품에 눈길을 주었다. 우리 시단의 다양성을 염원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고심한 끝에, 2024년 애지문학상 시부분 작품으로 엄재국 시인의 「백비탕」을 선정하였다.
엄재국의 「백비탕」은 시의 소재나 시상 전개에서 일반적인 시 문법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살구꽃”이 피어나는 봄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시는 기본적으로 역설적 인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꽃의 계절인 봄날에 오히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문제 삼고 있다. “부글부글 살구꽃”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문제의식과 관계 깊다. “살구꽃”의 개화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미지로 표현하여, 봄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안정과 평화를 상실했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건더기가 없으면 넘치지 않을 맑은 물의 봄”에 암시되어 있다. 세상은 “건더기”로 상징되는 인간 사악한 욕망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아름다운 “살구꽃”이 피어도 “지독한 봄”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는 엘리어트의 유명한 시구 “사월은 잔인한 달”(「황무지」)을 생각나게 하지만, 인간 성찰과 문명 비판을 “백비탕”이라는 특이한 음식 이미지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수상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문학상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까지의 공로를 기리는 것과 함께 앞으로의 공로를 기대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다른 시인들과는 변별되는, 새로운 시상(詩想)의 보고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덧붙여 넘치는 수준에도 불구하고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작품들이 눈에 밟힌다는 점도 숙연히 고백해 둔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