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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주의 자유주의
환원주의와 자유의지는 통한다. 환원법칙이 있으므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 환원주의는 앞선 시점의 결정이 아니라 더 높은 층위에서의 결정이다. 환원주의가 옳으냐, 자유의지가 옳으냐 하는 논란은 인간들이 차원개념을 몰라서 생긴 헛소동이다. 환원주의는 상부구조가 있다는 말이고 자유의지는 권력이 있다는 말이다. 상부구조가 있으므로 권력이 있는 것이다.
환원주의 - 결과측은 원인측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자유의지 - 원인측을 장악하면 사건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다.
환원주의가 부정되면 당연히 자유의지도 부정된다. 이쯤 되면 인간들이 얼머나 멍청한지 알 수 있다. 도대체 뇌가 없는 자들이 아닌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유의지의 부정이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생떼임을 알 수 있다. 자유의지가 없다니 왜 없냐? 의사결정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결국 인간들이 힘이 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기는 힘'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들이 차원을 모를 뿐만 아니라 권력을 모른다. 권력은 사건의 앞단계가 다음 단계를 제한하는 성질이다. 바둑이라면 이미 두어져 있는 자리에 둘 수 없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상대방이 두고자 하는 자리를 선점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선택지를 제한한다. 그것이 권력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방법으로 상대를 통제한다.
문제는 인간들의 관점이다. 사건은 원인측과 결과측이 있다. 결과측이 원인측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이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논리다. 반대로 원인측을 장악하면 거꾸로 상대방의 동선을 제한할 수 있다.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말이다. 관점이 틀렸다. 바보들은 사건의 결과측만 보고 원인측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열역학 1법칙으로 보자. 이곳에 없는 것은 저곳에 있다. 결과측에 자유의지가 없다면 원인측에 자유의지가 있다. 노예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주인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승객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운전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는 옮겨다닐 뿐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만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못한다. 거짓말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증거다.
인공지능은 당연히 자유의지가 없다.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전략의 기본은 속임수다. 첫 판을 져주고 두번째 판을 가져온다. 작은 판을 져주고 큰 판을 가져오는게 전략이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팃포탯이 된다. 붙이면 젖히고 젖히면 뻗어라 하는 바둑격언은 기계적으로 간다. 서봉수가 조훈현을 이긴 흉내바둑과 같다. 백을 쥐고 조훈현과 같은 모양으로 둔다.
포석이 같으면 싸움이 강한 서봉수가 이긴다. 자유의지를 없애는 바둑이 포석을 생략하는 조선시대의 순장바둑이다.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을 엿먹인 전술도 같다. 트랙터공장의 복잡한 구조물로 엄폐은폐를 해서 50미터 이내의 근접전만 계속하는 방법으로 독일군의 우수한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백병전만 계속하면 인구가 많은 소련이 이긴다.
자유의지를 없애면 월드컵은 하나마나다. 축구는 감독놀음이라고 하는데 감독없는 축구가 되면 승부가 뻔하다. 과학자들이 죄다 빡대가리인게 원인과 결과는 같은 층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트럼프가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진시황이 자신을 짐이라고 부르게 하는 이유는? 조조가 양수를 죽인 이유는? 예측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예측되면 자유의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임금의 행동이 전부 예측된다면 임금의 권력은 0이 된다. 양수가 조조의 계획을 다 알면 조조는 핫바지가 된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예측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얻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기승전결로 가는 사건의 흐름에서 기에 서는 것이다. 기를 장악하면 승전결은 따라오므로 기가 핸들이 된다.
권력은 핸들을 쥐는 것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중간에 흐름을 끊으면 사건이 중단되므로 자신이 권력을 쥘 수 있다. 원인과 결과가 다른 층위에 있다는 것은 상대의 행동에 반응하지 않다가 갑자기 한방을 먹이는 것이다. 상대가 무리수를 두어도 모른척 하다가 갑자기 3년동안 모아둔 상대의 잘못을 모두 지적하여 한꺼번에 털어내는 수법이다.
상대의 실수를 적시에 응징하면 상대가 조심하여 실수를 하지 않으므로 권력을 빼앗을 수 없다. 상대가 도둑질을 해도 모른척 하다가 결정적인 선을 넘었을 때 CCTV를 깐다. 적을 속이려면 자신도 속여야 한다. 이 수법을 쓰는 사람은 계획적으로 하지 않는다. 속아주는 척 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랜덤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가 있는 이유는 인간이 이득보다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찰보다 경영권을 가지려고 한다. 어떻게든 자신이 핸들을 잡으려고 한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의 범죄는 정신병자의 범죄처럼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 있다. 그러나 양아치도 조폭 앞에서는 양아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정신병자도 사람 봐가며 미친 짓 한다.
뇌과학을 동원하여 의사결정이 1초 전에 일어나므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바보도 있다. 이는 야구선수가 투수의 높은 공에 본능적으로 스윙을 해서 삼진을 당한다는 말이다. 그런 일도 있다. 자판에 익숙하면 손가락이 알아서 글자를 찾아가므로 오히려 엉뚱한 글자를 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집중력이 부족한 것이다. 타자는 0.2초 안에 스윙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0.2초에 스윙이 결정되는데 자유의지가 없다는건 억지에 불과하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도 전에 타자가 스윙을 한다는 말이 아닌가. 설사 1초 전에 결정되더라도 자유의지와는 무관하다. 자유의지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다. 충분히 물을 수 있다. 왜? 권력은 의무와 바꿔먹기 때문이다. 세습군주는 의무 없이 권력을 행사하지만 그래도 부모가 의무를 했다.
덕수 이씨 집안의 무과 급제자 267명이 충무공파에서 나왔다. 충무공의 의무에 자손이 권력을 행사한다. 우주의 법칙은 선의무 후권력이므로 자유의지가 없을 수 없다. 권력을 행사하려면 그 전에 의무를 지불해야 한다. 운전을 하려면 면허를 따야 한다.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나중에 올 권력을 예상하고 미리 의무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권력이 없으면 의무도 없다.
의무 없이 권력을 얻는 방법은 로또 당첨 뿐이다. 그 경우도 집단 전체로 보면 이미 의무를 지불했다. 개인은 운으로 될 수 있으나 집단 전체는 의무 없이 권력 없다. 사지 않은 로또가 당첨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인간은 권력의 획득을 예상하고 미리 의무를 지불하므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 의무의 지불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그것은 본인이 결정하는 영역이다.
젊어서 일하고 늙어서 놀아도 되지만 젊어서 놀고 늙으면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해도 된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은 자유의지가 권력의 행사임을 모르고, 사전에 의무를 지불한 사실을 모르고, 권력은 먼저 한 결정이 나중에 하는 결정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원인과 결과 사이에 사건의 층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떠들어댄다.
엔트로피 증가법칙을 모른다. 엔트로피가 증가했다는 것은 권력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부분의 합은 왜 전체보다 작은가? 인공지능의 창발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권력에서 나온다. 부분의 합과 전체의 차이는 권력의 차이다. 권력은 자원의 공유에서 나온다. 권력은 앞선 단계의 의사결정이 다음 의사결정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먼저 와서 터를 닦는 사람, 다음에 와서 집을 짓는 사람, 그 다음에 와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 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 그 가게에서 소비하는 사람이 있다. 권력은 먼저 와서 터를 닦는 사람에게 있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논리는 먼저 와서 터를 닦은 사람이 방해하면 뒤에 오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자유의지는 먼저 온 사람에게 있다.
열역학 1법칙 - 자유의지는 사라지지 않고 옮겨다닌다.
열역학 2법칙 - 사건 안에서 자유의지는 단계적으로 감소한다.
자유의지의 부정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부정하는 망동이다. 열역학 1법칙은 결과측에 없는 자유의지는 원인측에 있다는 말이고 열역학 2법칙은 단계적으로 자유의지가 감소한다는 말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갈수록 권력이 감소한다. 사장, 이사, 부장, 과장, 말단으로 갈수록 권력이 감소한다. 주변과 연결되는 정도가 줄어든다.
인간들은 어떻게든 권력을 획득하는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돌발행동을 하거나 혹은 관종짓을 한다. 윤석열과 장동혁과 트럼프의 바보짓이 다 무엇인가?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해야 권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예상을 벗어나려면 자기도 모르는 행동을 해야 한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며 권력은 일부러 그 연결을 끊는다.
인공지능이 잘 안 되고 있는 이유도 그런 연결끊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가면 안 되고 불필요하게 사방으로 모두 가되 오답을 하나씩 추려내는 방법을 써야 한다. 단계적인 좁히기가 없다. 인공지능이 되려면 모든 판단을 50 대 50의 대칭구조로 만들고 A가 탈락하므로 B가 선택되는 형태라야 한다. 학습을 통해서 결정하므로 자유의지가 없다.
A가 아니면 B가 답인데 A가 답이 아니므로 B가 답이다 하는 결정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기는 힘을 알아야 한다. 이기는 힘은 힘이 교착되어 밸런스를 이루면 입자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이때 대표자 한 명이 전체를 결정한다. 인간 세상의 많은 웃기고 자빠진 일들이 이 때문에 일어난다. 권력을 쥐려고 의도적으로 교착시킨다. 자유의지 때문에 쉬운 길을 어렵게 간다.
철학은 강자의 것이다
철학은 강자의 것이다. 약자의 철학은 없다. 약자는 그냥 살면 된다. 갑은 미래를 내다보고 스스로 길을 열어가야 하므로 철학이 필요하지만, 을은 갑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므로 철학이 필요 없다. 문제는 우리가 노상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을의 철학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악당한테 두들겨 맞고 복수를 다짐한다. 일진한테 빵셔틀 당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찐따가 주인공이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악당한테서 얻으니, 악당들에게 고맙다고 절해야 할 판이다.
약자의 철학은 반작용 힘에 의지한다. 반작용 힘은 변화의 시작점에서 멈추고 더 치고 나가지 못한다. 처음 0이었는데 악당한테 밀려 -10이 되었다. 복수는 처음 0으로 되돌릴 뿐이다. 분풀이는 되겠으나 피해가 복구되지 않으므로 0에 이르지도 못한다. 모든 복수는 일정 부분 자해를 동반한다. 드라마든 만화든 복수와 응수뿐이다. 네가 먼저 이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한다는 식의 논리는 슬프고 비참한 것이다. 내가 먼저 선수 쳐서 어떻게든 하려면 강자의 철학이 필요하다.
노자의 사상이 인기가 있지만, 약자의 처세술이다. 노자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소비자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바보들이 바보철학에 솔깃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에게는 운전기술이 소용없는 것과 같다. 내가 운전할 자동차가 있다는 전제로 철학은 쓰인다. 힘이 있다는 전제로 그 힘을 어디에 써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철학이다. 공자의 철학은 강자의 철학이다. 인류사의 철학자 중에 공자가 홀로 우뚝하다.
니체가 약자의 철학을 비판했지만, 강자의 철학이 무엇인지 말하지는 못했다. 위버맨쉬는 얼버무리는 말이다. 어쨌든 그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하다. 내 손에 총이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짜 위버맨쉬다. 강자의 철학은 셋이다. 첫째, 현실을 비트는 소인배의 개소리는 하지 말자. 둘째, 현실을 떠나는 몽상가의 현실도피는 하지 말자. 셋째,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 첫째는 괴력난신, 둘째는 술이부작, 셋째는 온고이지신이다.
약자는 괴력난신 관종행동으로 망하고 강자는 술이부작을 뒤집어 술이주작으로 망한다. 온고이지신은 옛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자원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축구라면 포메이션 전술이 그러하다. 전원공격에 전원수비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온고이지신이다. 공격수도 옛날부터 있었고 수비수도 옛날부터 있었지만 토탈풋볼은 네덜란드의 명장 리누스 미헬스와 전설적인 축구선수 요한 크루이프가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이미 주어져 있는 것에 기초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원공격에 전원수비하면 이긴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체력이 안 되어서 실천을 못 한다. 남들보다 두 배는 뛰어야 한다. 혼자는 안 되고 팀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혼자 날뛰는 데는 철학이 필요 없다. 원맨쇼로는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므로 집단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한다. 단기전은 먹히는데 장기전으로 가면 공세종말점에서 무너진다.
괴력난신.. 괴상한 것으로 눈길을 끌어보려는 약자의 개소리는 삼가자.
술이부작.. 강자가 집단의 목표를 제시하지 못해도 현실도피로는 가지 말자.
온고이지신.. 용빼는 재주는 없고 현재 내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자.
플라톤의 이데아, 석가의 해탈, 예수의 천국은 현실도피다. 술이부작에 반대되는 술이주작이다. 약자는 있는 것을 변조하지 말고 강자는 없는 것을 지어내지 말라. 그렇다면 답은 내게 이미 주어져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뿐이다. 바둑을 둔다면 포석단계에 미리 둔 돌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투를 해야 한다. 내가 가진 자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팀과 환경이다. 그것은 대승의 길이다. 동료와의 신의와 의리가 자산이다. 우주의 흐름과 결맞음이 자산이다.
사람과의 팀플레이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팽창하는 우주, 진보하는 문명과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있는 것을 활용하려면 가속도의 힘과 관성력의 힘에 올라타야 한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일어난 모든 액션을 한 줄에 꿰어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중간에 마디가 하나라도 끊어지면 안 된다. 보통은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망한다. 좌파에서 명성을 얻고 우파에서 현금을 챙기는 진중권 소행 말이다.
김어준은 태도를 바꾼 적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중에 하나도 버릴게 없다. 김대중이 바둑의 첫 번째 돌, 노무현이 두 번째 돌, 문재인이 세 번째 돌, 이재명이 네 번째 돌이라면 다섯 번째 내가 둘 자리는 자명하다. 그것은 치고 나가는 기세의 힘을 잃지 않는 결정이다. 관성력을 잃지 않는 결정을 해야 한다. 환경과 결맞음을 이루어야 한다. 내부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결정이라야 한다. 상대보다 효율적인 위치에 두면 이미 이겨 있다.
우주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을 한 줄로 연결하면 그것은 신의 빌드업이다. 남들의 시선은 의식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납득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하면 그만이다. 장기전을 하고 전면전을 해야 한다. 이겨먹기 전술보다 져주고 이기는 원대한 전략이라야 한다. 그래서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그것은 확률 안에서 용해된다. 내가 간 코스에 보물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대신 보물을 챙긴다. 인류 전체의 확률범위 안에서 움직이므로 집단에 기여한다.
나 혼자 사는 방법은 없지만, 내가 희생해서 동료를 살리는 방법은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방법은 없지만, 내가 의무를 다하고 후손들이 권력을 획득하게 하는 방법은 있다. 모든 게임을 다 이기는 방법은 없지만, 최후에 상대보다 반보 앞서는 방법은 있다. 에너지가 가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을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조절이다. 내가 먼저 동력원을 장악하고 계 내부의 압력을 조절하면 된다. 에너지의 입구를 장악하고 상대를 출구에 두면 된다.
철학의 결론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느냐 하는 문제와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둘을 연결하면 철학이 된다. 인간은 만들어진대로 살아야 한다. 소는 풀을 먹는게 맞고 사자는 고기를 먹는게 맞다. 소가 육식을 시도하거나 사자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면 곤란하다.
과학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논할 뿐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서양철학은 원래 지식 일반을 의미했는데 다른 학문이 하나씩 독립하고 껍데기만 남았다. 동양철학은 애초부터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도학이다. 결론은 뻔하다.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설이니 사단칠정이니 하는 논변은 근거를 찾아보려는 모색이다. 뭐든 간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인은 현실주의자다. 그들은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이다.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벼슬을 높이 하고, 오래살면 된다. 그렇게 다들 동물이 된다. 중국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당나라 곽자의다. 안사의 난을 진압하고 벼슬은 정점에 오르고 85살까지 살아서 자식이 16명, 손자는 100명이고 처세술의 달인이다. 그런데 왜 5대 10국의 혼란이지?
그가 처세를 잘하는 바람에 안사의 난을 진압하는데 오래 걸렸다. 반란을 너무 빨리 진압하면 황제가 의심한다. 저 새끼가 반란군을 토벌하고 인기를 얻었다는데 설마 내 자리를 노리는건 아니겠지. 중국에서 반란군을 진압하면 황제가 되거나 아니면 모함을 받아 목이 달아나는게 공식이니까.
동양철학이 진실되고 서양철학은 뭔가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플라톤의 개소리가 발단인데 '술이주작'을 저지르는 바람에 기독교와 엮여서 배가 산으로 갔다. 학문의 족보는 완전성, 구조론, 위상수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순이다. 의사결정의 엔진이 탄생한다.
철학의 본질은 의사결정의 근거다. 보통은 흥분해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짓을 하는 이유는 단지 흥분했기 때문이다. 흥분한 이유는 집단의 무의식 때문이다. 집단 속에서 역할을 찾는게 대본을 받는 것이다. 대본에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 새 감옥에 들어와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도 된다.
동양철학도 제사지내는 종교행위로 오염되었지만 공자의 본의가 아니다. 공자의 직업이 제사지내는 현장에서 사회보는 사람이라 공자도 위선적인 유교를 만든 혐의가 있다. 철학은 실천을 전제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타당한 논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현실도피다.
기독교와 결합해서 천국으로 가버렸다. 굳이 말하면 서양철학은 귀족이 나는 왜 귀족일 수 밖에 없는가를 증명하려는 사상이다. 칸트의 시계는 언제나 정확하다. 왜냐하면 그는 뛰어난 엘리트니까.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엘리트주의자다. 서양이 현실도피라면 동양은 현실매몰이다.
행복, 사랑, 명성, 권력, 돈, 평화, 성공은 모두 개인에 매몰된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내가 너보다 낫다는 소리다. 이건 열등의식을 들키는 짓이다. 중국은 워낙 쪽수가 많아 천하인이 되기 어렵다. 경쟁률이 13억 대 1인데 로또보다 이백배는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로 퇴행하는게 당연하다.
철학은 작위적인 위하여를 배제하고 의하여 차원에서 왜 사는가를 논해야 한다. 내가 좋아서 산다면 위하여다.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이런 것은 위하여다. 그런 것은 호르몬의 장난이다. 눈에 보이는 표적이 있으면 위하여다. 행복, 사랑, 명성, 권력, 돈, 평화, 성공 따위는 입증할 수 있다.
입증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눈에 전시하는 위하여다. 철학은 내가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의 전달경로를 추궁한다. 말하자면 족보를 찾고 동력원을 찾으려는 것이다. 근거가 뭔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원래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간섭과 참견에 따른 오염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판단으로 내가 그 일을 해야한다면 근거는 무엇인가?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동물의 본능에 의해 오염된 생각이므로 의미없다. 행복, 사랑, 명성, 권력, 돈, 평화, 성공은 남들의 평가를 받아보겠다는 것이므로 역시 오염되었다.
타인의 평가는 상호보증이다. 순환출자와 같은 속임수다. 순환의 오류를 저지른다. 더 높은 차원에서 오더가 내려와야 한다. 선이 선을 증명하고 면이 면을 보증하면 가짜다. 낮은 단계가 높은 단계를 보증할 수는 없다. 행복, 사랑, 명성, 권력, 돈, 평화 등은 결과로 원인을 증명하는 속임수다.
화살은 쏘아졌기 때문에 날아간다. 첫 번째 단추가 두 번째 단추의 선택을 제한한다. 에너지의 공급원이 인간의 행위를 제약한다. 에너지가 없는데 어떻게 화살이 날아가겠는가? 우주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화살이 활을 찾는 것이다. 활에 매겨지면 발사되어 날아간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멋대로 해도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은 해봤자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자원이 무엇이고 그걸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아 장기전을 해야 한다.
단기전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아 점수따려는 생각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정답은 총이 있으면 쏘는 것이다. 억울한 것은 총이 있는데도 잊어먹고 쏘지 못하는 것이다. 축구의 포메이션 전술은 근래에 나왔다. 바둑의 포석도 역사가 길지 않다. 수천년 동안 대충 아무데나 두어온 것이다.
이으면 끊고 끊으면 뻗어라. 붙이면 젖히고 젖히면 띄워라 하는 식으로 되받아칠 궁리만 하는 자는 이기지 못한다. 선수를 치고, 선점을 하고, 선빵을 날리려면 철학이 필요하다. 대책없이 선빵 날렸다가는 죽통을 맞는다. 상대의 카드를 확인하고 질러야 한다. 이기는 결정을 계속하면 이긴다.
행위의 근거는 동력이다. 할 수 있으니까 한다. 총이 있으므로 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동력은 집단에서 나오고 집단의 동력은 진보에서 나온다. 집단이 만들어지는 관성력이 진보의 기세가 된다. 동력은 궁극적으로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힘의 자궁은 입자다.
입자의 자궁은 질이고 질은 압박이다. 앞에서 유혹하는 것은 가짜고 등을 떠미는게 진짜다. 내가 사는 이유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온 후 칠백만년 동안 달려오던 길이기 때문이다.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 전에 40억년 동안 진화해온 관성력이 있고 그 전에 137억년 동안 놀던 가락이다.
할 수 있으면 하는데 과연 할 수 있는지는 일단 해봐야 안다. 그러므로 하게 된다. 할 수 없으면 안해도 되지만 해보기 전에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없으므로 일단 해보려다가 낚인다. 해보니까 되네. 계속하게 된다. 해봤는데 안되네. 안하는게 맞다. 그러나 일단은 시도해봐야 한다.
검색해보면 철학은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답을 내는게 아니라고 한다. 답을 내는 논리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답이 없는게 아니고 답을 모르는 거다. 마르크스와 히틀러의 폭주 때문에 쫄아서 하는 소리다. 그들은 그럴듯한 철학이 등장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축구선수는 골을 넣는게 답이다. 게임은 이기는게 답이다. 사건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게 답이다. 문제는 속임수다. 트럼프처럼 져놓고 이겼다고 선언하는 가짜들 때문이다. 히틀러도 죽기 1년 전까지는 이겼고 일본도 원자탄 맞기 전까지는 기세를 올렸다. 이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건 내가 결정하는게 아니고 에너지가 결정한다. 선수가 결정하는게 아니고 주최측이 결정한다. 홍명보가 월드컵에 우승하면 피파는 망한다. 이길 팀이 이기도록 룰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차대전과 마르크스의 소동에 책임이 있는 서양인들은 철학을 논할 자격이 없다. 그들 스스로 알고 있다.
철학을 부정하는 이유다. 자기들이 따먹으면 안 되는 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저 감은 먹으면 안 되는 과일이라고 우긴다. 내가 못 먹는 것은 남도 못 먹게 해야 한다는 도둑놈 심보다. 우리가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면 안 된다. 이기는게 답이다. 단 주최측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반칙과 컨닝으로 이기면 생태계는 초토화 된다.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 치트키를 허용하면 게임 망한다. 영화처럼 카드 카운팅 하는 초능력자가 등장하면 카지노는 문닫는다. 정당하게 이겨야 생태계가 발전한다. 철학의 정답은 생태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정당하게 이기는 것이다.
철학의 죽음과 이념의 종말
양차 세계대전이 인류의 반성을 끌어내긴 했지만 철학자들이 목에 힘 주는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구조주의가 철학에 대한 반성을 핑계로 반철학을 했기 때문이다. 니체 철학이 히틀러의 폭주를 낳았고 마르크스 철학이 소련과 중국의 폭주를 낳았다. 철학 때문에 인류는 더 위험해졌다. 철학자들은 스스로 꼬추를 잘랐다. 서구 구조주의 철학은 철학자의 자기 거세다.
졌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생산력이 산업의 생산력에 밀렸다. 인류 중에 누구도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와 더 황당한 사회주의의 기이한 공존과 이후의 전개를 납득시킬 그럴듯한 논변을 찾아내지 못했다. 산업의 발전이 정체되면 철학자가 어깨에 힘주고 전면에 나서보려고 했는데 산업의 발전이 빨라서 철학자의 설 자리가 없었다. 말이 너무 뛰어나면 기수가 뻘쭘해진다.
금메달 따도 그게 말값이 50억이라서 딴 메달이지 정유라 실력으로 딴 메달은 아니잖아? 이렇게 된다. 최순실이 10억짜리 말은 쳐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린 결과론이지 아는 사람이 각잡고 앉아서 설계한 그림이 아니다. 이념은 얼어죽을. 이념은 개소리고 인간의 역량이 그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에 여우의 신포도다.
이데올로기란 이데아에서 온 말이다. 이상주의가 이념이다. 현실에 없는게 이상이다. 이념과 현실은 반대다.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고 사회주의 하고도 공산주의만 제대로 된 이념이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념이니까. 공산주의가 '우리는 이념이다' 하고 자랑하니까 샘이 나서 자본주의가 우리도 이념이다 하고 받아친 거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과학적 근거가 없다. 민주주의는 전쟁의 축소판이다. 표로 전쟁를 한다. 불신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성적인 도구가 아니다. 더 좋은 것을 만들지 못해서 별 수 없이 받아들이는 차악의 제도다. 윤석열 같은 더 나쁜 인간과 비교될 때만 정당화 된다. 자력으로 올라가는 제도가 아니고 남의 시행착오에 지갑주워 올라간다.
자본주의는 은행과, 증권사, 보험회사, 주식회사의 결합체인데 이건 네덜란드 사람이 얼떨결에 만든 것이다. 원래 해적선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위험을 분산하려고 만든게 의외로 먹혀서 걍 해보는 거다. 과학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다. 사회주의는 더 한심한게 사람을 선발하는 제도가 아예 없다. 알음알음으로 뒷구멍으로 결탁해서 해먹는다.
밀어주고 당겨주며 인맥질을 하는데 만인이 만인의 발목을 잡고 크지 못하게 방해하는 제도다. 발탁인사를 하는데 이게 조선시대 낙점인사라서 후임자한테 뇌물받고 자기 자리를 팔아먹는 제도다. 비공식 엽관제도. 자본주의는 엉성하지만 은행, 회사, 증권, 보험, 재정, 금리, 환율 같은 각개약진하는 콘텐츠가 있는데 사회주의는 그것도 없다. 그냥 폐허. 주먹구구로 간다.
마르크스는 돈이 뭔지도 이해를 못한 멍청이다. 은행이 왜 이자를 받지? 그 머리로 이해불가다. 지금 자본주의 위기는 국제분업이 중국에 막혀 파괴된 사태다. 노조의 발호 때문에 국제분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중국은 노조가 없어 독식이 가능하다. 경쟁만능의 덫에 걸렸다. 자본주의라서 원래 되는게 아니고 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건데 실력으로 착각한다.
영국은 금융 빼놓고 다 멸망, 독일은 러시아에 약점잡혀 멸망, 일본은 노령화로 멸망, 미국은 영국 따라하다가 뉴욕과 LA 빼고 멸망. 공통점은 탈산업화. 그럼 산업은 어디로 갔나? 중국과 인도로 갔다. 무한경쟁이라는게 원래 다 죽는 오징어게임인데 묘하게 신산업이 계속 등장해줘서 기적적으로 연명한 것이다. 자동차, 전기, 전자, 컴퓨터, 바이오, 등 신산업이 와줬다.
그게 다 운빨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깨달아야 한다. 자본주의 환상은 국힘당이 선거하면 자기네가 이긴다고 착각하고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과 같다. 영남 + 충청 + 강원이면 쪽수가 2천만인데 우리가 선거를 왜 져? 아 부정선거? 그렇구나. 딱 이 수준이다. 자본주의 자체에 제도적인 결함이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반칙을 한다. 토지 국유화에 노조가 없어서 유리하다.
당이 영도하는 가짜 노조는 있다. 중국도 시진핑이 알리바바 때려잡듯 하면 한 방에 간다. 민주주의가 없는 것은 중국의 리스크다. 이쯤 되면 뭐가 답인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경쟁만능은 미친 생각이다. 교회가 정치하면 망하고, 군인과 검찰이 정치하면 망하고, 건설사가 언론 가지면 망한다. 멋대로 개판쳐놓고 자유주의라고 변명하지 마라. 중국에 털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합리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노조도 제한해야 한다. 자본가들이 멋대로 해고하니 노조도 멋대로 파업해라? 서로 개판치면 셈셈이다? 언론도 멋대로, 검사도 멋대로. 망하는건 자동이다. 이념이라면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멋대로 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험이다. 지금 자본주의는 우연과, 실험과, 도박의 합작이고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중국의 자비에 기댄다.
자본주의가 사는 유일한 방법은? 중국의 자살골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멘. 일대일로 같은거 몇 번 더하면 망하는건 확실한데 뒷패가 안 붙네. 자본주의가 성공한 제도같은 착시현상은 전성기의 미국과 영국, 그리고 60년대 유럽이 워낙 잘나갔기 때문인데 그것은 전쟁에 따른 기저효과, 비료의 발명,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다. 지갑을 주워놓고 그걸 실력으로 착각한 것이다.
기적적으로 지갑을 주웠다면 다음에는 기적적으로 지갑을 잃어먹을 차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마과장 만화 보면 아주 우주로 날아갈 기세다. 찰나의 행운을 당연한 권리로 착각한다. 이념은 생각에 바탕을 둔 거지 기저효과와 행운과 지정학은 이념이 아니고 도박이다. 1차대전까지 인류는 맬서스의 인구론에 암울했다. 인구론이 틀린게 아니다. 이제 100억을 바라본다.
모든 망하는 것의 배후에는 사람이 있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사람 때문에 망한다. 국제분업을 하는 이유는 귀찮게 하는 사람을 떼버리려고. 경쟁력 문제도 있지만 노조가 임금삭감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산업을 외국으로 넘길 밖에. 일본이 오지게 망하는 이유는 경영진이 노쇠해서 그렇다. 진정한 이념이라면 이상적인 제도를 추구해야 한다. 많은 제한을 걸어야 한다.
노조도 제한하고 경쟁도 제한해야 하는데 그 경우 기득권이 고인물이 되어 더 나빠진다. 결론적으로 문제의 원흉은 사람이며 사람의 부패를 막는 방법이 없으므로 지속적으로 차악을 선택한 결과 죽 쒀서 중국에 헌납하는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은 합법적으로 사람을 조지니까. 유권자가 개새끼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 최악이다. 철학자가 말장난만 하고 있다.
인기발언만 하고 있다. 성찰타령, 진정성타령, 품성타령, 유기농타령, 생태주의타령, 신자유주의타령. 이게 대중에 아부하는 만병통치약이다. 이런 저질발언 하는 자와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한다. 뭐든 말이 나오면 아 그것은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때문이지. 이건 달착륙 음모론 하고 메커니즘이 정확히 같은 것이다. 지구평면설과 뭐가 달라? 그냥 토론거부 우격다짐이다.
진지한 토론을 회피하는 기술. 페북에 아랍인들이 달아놓은 댓글 전부 알라를 찬양하라. 알라께서 보고 계신다. 댓글의 9할에 알라가 등장해. 이런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해? 알라가 들어갈 자리에 신자유주의를 집어넣으면 똑같잖아. 아랍것들은 뇌를 쓰지 않으려고 알라 뒤에 숨고 한국것들은 뇌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신자유주의 전가의 보도 뒤에 숨고. 대화가 가능하냐고?
진정한 길을 찾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바꿔놔야 한다. 철학은 사람을 바꾸는 기술이다. 사람에 아부하며 사람은 죄가 없다는 식으로 가므로 자승자박이 된다. 국민이 개새끼다 하고 진실을 말하는 한 명의 용자가 없다. 자본주의는 경쟁 덕에 낫다지만 실제로는 영남, 호남은 자동 당선이라 경쟁이 없다. 의대를 가는 이유는 경쟁회피다. 딱 한번 입시경쟁으로 끝내자는 심보다.
1. 이념은 이상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2. 사회주의는 제도탓만 하고 사람을 쪼아대지 않으므로 사람이 부패해서 망한다.
3. 자본주의는 경쟁 때문에 사람의 부패가 사회주의보다 적다지만 살펴보면 요소요소에 짱박혀서 경쟁회피로 해먹는게 결국 사람이 부패해서 망한다.
4. 사람의 부패를 회피하려고 무리한 국제분업을 하다가 대놓고 사람을 조지는 중국에 걸려서 제대로 암초를 만났다.
5. 사람은 죄가 없으니 절대 건드리지 말고 이상적인 제도를 만들어와서 헌납하라는 식이라면 그게 신기루를 쫓는 몽상가 행동이다.
6. 사람을 매우 조져서 정신차리게 해놔야 하는데 그런 진실을 말하는 용자는 어디에도 없다.
7. 울면 젖 주는 제도는 다 없애고 강력한 국민 재교육을 해야 한다.
미국은 한때 수학교육을 안했다가 스푸트니크 쇼크를 먹었는데 그게 사람에 아부하는 좌파 특유의 삽질이다. 개인은 죄가 없어. 다 정부 때문이지. 이게 지구평면설과 논리구조가 같다. 어거지다. 다 사람 탓이다. 문제는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 덕분에 사람의 부패가 은폐된 거. 후버국장은 심지어 마피아가 없다고 주장해버려. 마피아는 언론의 상상이라고. 현실에 없어.
이런 식으로 개판을 치니까 배가 산으로 가는데 그래도 압도적인 생산력 덕분에 나라가 멀쩡하게 돌아가버려. 미국 국민의 1/3은 범죄기록이 있는 전과자라는데 그래도 나라가 멀쩡해. 복음주의 개독은 사정없이 조져놔야 하는데 지금 소련을 꺾고 미국이 잘나가는데 왜 개독을 조져? 이러니 망하지. 문제는 조선놈들이 뱁새 주제에 주제를 모르고 미국 황새 흉내를 내는 거.
미국은 개독이 망쳐도 워낙 토지가 비옥해서 옥수수 농사만 지어도 밥 먹는데 한국이 미국 흉내를 내느라고 미친 개독짓을 해버려. 공자 형님한테 잔소리를 좀 들어야 한다는 결론. 너희가 인간이냐? 히피짓을 해도 안망하는 나라가 미국. 그러나 속병이 들어서 지금은? 68 학생혁명은 그게 제 무덤을 판거. 물론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지만 너무 일찍 샴페인 터뜨린 것이 사실.
인간들이 죽어보자고 말을 안듣는게 자본주의 위기의 진짜 원인이다. 미국은 돈을 존나게 줘서 말듣게 만들고, 중국은 천재만 끌어모아도 국가 하나 만들겠고, 게다가 공산주의니까 줘 패면 되고. 인도는 배가 고파서 말 듣고, 일본은 프리터족 하며 말 안들어서 망하고. 사회주의라서 망한게 아니고 대책없이 대중들에게 아부해서 망했다는 엄중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이 개새끼인데 안망하면 그게 이상하지. 비료만 없었어도 3차대전으로 인류는 삭제되었다. 지구가 키울 수 있는 적당한 인구는 2억명이다. 2억이면 한 사람당 10만평씩 소유하면서 다들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진작에 넘었다. 잘못된건 잘못되었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워낙 말을 안들으니. 하긴 백년 전에도 지구는 만원이다로 설레발이 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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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이 뜨는 이유는 유교가 원래 사람을 잘 갈구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독일인도 사람을 조지는 재주가 있다. 유럽은 터를 잘 잡아서 지정학으로 먹었는데 실력으로 착각한다. 결국 사람이 답을 낸다. 사람을 닥달한 철학자는 공자다. 경쟁을 제한하면 부패로 망하고 경쟁을 강화하면 반칙으로 망한다. 어느쪽이든 사람 잘못이다. 중국이 뜨면 다들 중국을 배우려 할 것이다.
자유만능, 경쟁만능은 독재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사상이다. 뭐든 조절되어야 한다. 견제와 균형으로 가되 제도 핑계대지 말고 사람이 핸들링을 잘해야 한다. 미국식 극단적인 종교의 자유, 파업의 자유, 마약의 자유, 성매매의 자유, 총기소지의 자유는 나라를 파멸시킨다. 물론 유기농, 성찰, 생태, 품성, 진정성 팔아먹는 좌파의 금욕주의, 도덕주의도 고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정한 길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걸로 트집잡는건 비겁하다. PC, 페미, 성찰, 진정성, 생태놀음은 이게 이게 트집의 언어다. 하나만 걸려라 하고 칼을 휘두른다.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대화가 된다는 것이며 동료와 합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를 공격하는 똥파리는 말종이므로 일단 제껴놔야 한다.
철학과 욕망
철학에 정답은 없고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각종 질문을 던져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 철학이라고 한다.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이게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렇게 자신감들이 없냐? 사실 그 말이 액면 그대로는 틀리지 않았다. 철학은 위험하다. 양차 세계대전의 배경에 그릇된 철학이 있다.
사회진화론, 제국주의, 공격적 민족주의, 나치즘, 무정부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공산주의가 재앙을 일으킨 그릇된 철학이다. 정답이 아닌 것을 정답이라고 믿으면 이렇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철학은 힘이 있다. 힘이 있어서 문제인 것이다. 자동차가 힘은 좋은데 운전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난다.
인류는 자신감을 잃었다. 철학이라는 힘센 자동차의 운전을 포기했다. 철학을 버렸다. 그리고 망했다. 철학을 외면한 댓가로 인류는 트럼프와 윤석열 같은 짐승들에게 모욕당하는 벌을 받고 있다. 철학에 정답이 없는게 아니고 정답을 모르는 것이다. 철학이 없으므로 백지상태에서 내가 처음으로 철학을 만든다.
철학의 반대는 욕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욕망이 시키는대로 살면 된다. 사랑, 행복, 쾌락, 돈, 명성, 권력, 불로장수를 추구하면 된다. 욕망으로 만족한다면 철학은 필요없다. 문제는 그게 동물의 한계라는 것이다. 욕망으로 충분하다면 짐승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은 이전에 없었던 것을 새로 탄생시킨 것이다.
인간의 몸은 원래 있는 것이고 문명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욕망은 원래 있는 것이고 철학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문명이 있으면 그 문명의 사용법도 있다. 그것이 철학이다. 문명이 없어도 수렵과 채집으로 살면 된다. 철학이 없어도 욕망으로 살면 된다. 그러나 문명이 있으면 더 잘 살고 철학이 있으면 더 잘 산다.
욕망은 호르몬의 작용이다. 호르몬에 지배된다면 짐승이다. 호르몬이 아니면 이성이다. 이성이 개입하면 의사결정이다. 철학은 의사결정학이다. 이성과 욕망과 무엇이 다른가? 이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고, 전략적이다. 자체 에너지가 있다. 자체 에너지가 없으므로 호르몬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욕망이다.
욕망은 수동적이고 단기적이다. 팃포탯과 같다. 의사결정은 자체 에너지가 있으므로 정답이 있다. 팃포탯은 상대가 협력하면 협력하고 상대가 배신하면 배신한다. 배신할지 협력할지는 누구를 만나는지에 달렸다. 이는 운에 달렸으므로 전략이 없다. 수동적이다. 상대가 협력하다가 타이밍 잡아 배신하면 망한다.
자체 엔진이 있다면? 연료탱크가 채워져 있다면? 주유소를 나와서 최대한 멀리까지 운전해 가려면? 정답은 있다. 브레이크를 최대한 적게 밟는게 유리하다. 인간이 좌절하는 이유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이기는 방법은 없고 상대방의 실수를 추궁해서 이겨야 한다.
도박판에서 판돈이 무한대라면 바카라를 종목으로 선택하되 잃은 돈의 두 배를 걸면 된다. 판돈이 부족하면 갈때와 안갈 때를 호르몬이 결정하게 하므로 욕망이 필요하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혼전을 일으켜서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고 우연한 행운에 기대야 한다. 욕망은 권력이 없는 을의 궁여지책인 것이다.
에너지가 있다면 필승법이 있다. 전략을 구사하여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야 한다. 능동적, 적극적으로 덫을 놓고, 함정을 파고, 상대가 함정에 빠질 때를 기다렸다가 적절히 제압하여 이길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철학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는 밑천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정말 밑천이 없는 사람도 있다.
대개는 오판한다. 나는 에너지가 없는데? 나는 을인데? 나는 권력이 없는데? 아니다. 우리는 적어도 글자를 안다. 지식이라는 무기가 있다. 동료와의 팀플레이도 가능하다. 집단을 대표하면 권력이 주어진다. 천하에 빨대를 꽂고 에너지를 빼먹을 수 있다. 지정학은 주변 환경을 이용한다. 사회적 지정학도 있다.
상황을 이용해서 먹는 방법이 있다. 살펴보면 내게도 판돈이 주어져 있고 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알고보니 내 호주머니에 권총이 있었어. 진작 쏴버릴 걸. 우리는 을이 아니다. 빈 손이 아니다. 알고보니 부자다. 지구만 털어도 넉넉하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야 한다. 머리를 사용해서 의사결정 해야 한다.
바둑의 포석처럼 수순을 지켜야 한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동력을 어떻게 조달하는가? 의사결정의 궁극적 근거는 무엇인가? 모순되지 않는 일관된 의사결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공자가 진작에 맞는 답을 제시했다. 극기복례, 괴력난신, 술이부작, 온고이지신이 그것이다.
극기복례는 짐승의 욕망에서 인간의 철학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괴력난신은 소인배의 저급한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술이부작은 엘리트가 해탈이니, 천국이니, 이데아니 하는 거짓 관념을 지어내지 말라는 말이다. 온고이지신은 내게 주어진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는 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극기복례 – 욕망에서 이성으로 돌아오라.
괴력난신 – 소인배는 집단의 주목을 끄는 관종짓을 버려라
술이부작 – 엘리트는 허황된 거짓 관념을 꾸며내지 말라.
온고이지신 – 자신이 확보한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라.
소인배는 관종으로 망하고 엘리트는 주작으로 망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공자의 극기복례, 괴력난신, 술이부작, 온고이지신이 철학의 정답이다. 단 온고이지신은 옛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무엇인가? 인간은 집단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받는다.
팀에 들어야 한다. 대승의 길을 가야 한다.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의리를 지켜야 한다. 에너지를 쥐어짜는 방법은 셋이다. 하나는 자기를 쥐어짜는 것, 둘은 동료를 쥐어짜는 것, 셋은 천하를 쥐어짜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쥐어짜야 한다. 음모론 같은 개소리를 해서 거짓을 지어내면 피곤하다.
극기복례는 자신을 쥐어짠다. 욕망도 자기를 쥐어짜지만 욕망은 집단을 의식하므로 거꾸로 집단에 의해 쥐어짜인다. 착취당한다.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흥분했기 때문이고 흥분하는 이유는 집단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무의식에 조종된다. 남녀가 사랑해도 그게 사실은 에너지를 빨리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페로몬을 뿜어 분위기를 잡고 에너지를 쪽쪽 빨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게 상부상조가 될 수도 있다. 에너지를 빨리지 않으려면 천하에 빨대를 꽂아야 한다. 천하는 이미 존재한다. 이전부터 있던 것에는 관성력이 있다. 계속 가는 문명의 발전과 진보에 빨대를 꽂아야 한다.
에너지를 빼먹는 방법은 둘이다. 하나는 관성력이고 둘은 가속도의 힘이다. 관성력을 얻으려면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이때 수순이 중요하다. 먼저 의무를 지고 다음에 권력을 얻어내야 한다. 그것이 다르마의 길이다. 의무를 지불하지 않고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세습과 상속 밖에 없다. 그런 사람도 더러 있다.
엄친아라면 의무를 지불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개 준 만큼 받는 것이며 주는게 먼저이고 받는 것은 나중이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받아서 태어난다. 몸을 받고, 지능을 받고, 국적을 받고, 성별을 받고, 가족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엄친아도 자신의 결정이 아니므로 가짜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먼저 주고 나중 받는다. 먼저 공부하고 나중 성적표를 받는다. 먼저 포석을 하고 다음에 전투를 하는 것이 다르마의 길이다. 의무가 권력에 앞선다. 내가 의무를 다하는게 중요하고 권력의 행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도 된다는게 다르마의 길이다. 부모도 내게 권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부모가 의무를 지불하고 자식이 권한을 상속하므로 내가 의무를 다하고 후손들이 혜택을 받아도 후회하지 않는다. 가던 길을 계속 가야 관성력을 얻을 수 있다. 독립투쟁과 민주화가 옳은 이유는 그게 인류문명의 가던 길이기 때문이다. 바둑의 포석처럼 이전 단계에 내린 결정과 상충되지 않게 하는게 중요하다.
진중권처럼 명성은 좌파에서 얻고 돈은 우파에서 버는 얌체 짓을 하면 서로 상충되어 에너지가 고갈된다. 가속도의 힘을 얻으려면 범위를 좁혀야 한다. 범위를 좁히려면 처음부터 넓혀놔야 한다.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대승의 팀에 들어야 한다. 진보의 팀에 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우주적인 스케일을 가져야 한다.
주제파악을 한다며 좁혀놨다가 갑자기 찬스가 와서 넓히려고 하면 에너지가 샌다. 윤석열이나 트럼프는 애초에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었는데 기레기가 밀어줘서 인기를 끌자 갑자기 목표를 넓혔다. 이게 망하는 공식이다. 가속도의 힘을 역으로 작용시켰기 때문이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역지렛대 효과다. 넓혔다가 좁히면 수압이 증가하여 강철도 자를 수 있지만 반대로 작은 수레에 무거운 짐을 실으면 축이 부러진다. 세상은 에너지로 전부 설명된다. 에너지는 쥐어짜야 한다. 욕망은 자기를 쥐어짠다. 사실은 쥐어짜임을 당하는 것이다. 남을 쥐어짜려면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정답이 있다.
물에 수압을 걸려면 그릇에 담아야 한다. 바람에 기압을 걸려면 풍선에 가두어야 한다. 에너지를 쥐어짜려면 먼저 닫힌계 안에 가두어야 한다. 내부에 축과 대칭의 지렛대 구조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은 정답이 있다. 우주 안에 의사결정 플랫폼은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열역학 1법칙과 2법칙 안에 다 있다.
철학은 주체의 과학이다. 과학은 객체의 학문이다. 주체는 내부를 보고 객체는 외부를 본다. 당신이 무얼보든 무언가를 보고 있다면 당신은 사물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무얼 결정하든 무언가를 결정하려면 당신은 사건 안에 뛰어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과학과 철학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과학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을 분리하여 각각 따로 보지만 철학은 이를 모두 연결하여 한 덩어리로 본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은 과학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철학이다. 조립은 하나씩 하지만 운전은 한꺼번에 한다. 엔진을 먼저 운전하고 바퀴를 나중에 운전하는 일은 없다.
철학은 나를 떼어놓을 수 없다. 철학은 주체인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내게 어떤 자원이 주어져 있고 내가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다. 나는 환경과 분리할 수 없고 집단과 분리할 수 없다.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정답은 에너지의 효율에 있다. 에너지의 효율은 공유하는데 있다.
공유하면 효율적이고, 효율적이면 이기고, 이기면 힘이 입자로 바뀐다. 그것이 이기는 힘이다. 이기는 힘은 힘이 입자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비행기가 나는 이유를 과학자들은 모른다. 양력과, 중력과, 항력과, 추력이 있는게 아니고 하나의 밸런스가 있다. 힘이 하나 뿐인데 네개로 설명하므로 잘못되고 마는 것이다.
사물을 환원하면 사건이 되고 의사결정을 환원하면 에너지가 된다. 에너지는 언제나 한 방향으로 가므로 정답이 있다. 에너지는 사전에 길을 만들어놓고 가는 점이 다르다. 당구공은 치는대로 굴러가지만 사슬은 어느 쪽을 당기든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인간의 뜻대로 안되고 미리 정해져 있는 법칙대로 된다.
철학의 반대는 욕망이다. 욕망을 버리고 이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사랑, 행복, 쾌락, 돈, 명성, 권력, 불로장수, 평판 따위 욕망의 언어는 지식인이 입에 담을게 못 된다. 욕망은 호르몬의 역설에 당한다. 흥분해서 일을 저지르지만 더 많은 호르몬이 필요하다. 호르몬을 조달하는 방법은 무모한 도박을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든 트럼프든 흥분해서 저질러놓고 호르몬이 고갈되자 무모한 도박을 벌여서 자신을 위협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긴장시키고 집중시켜 없는 에너지를 쥐어짜려고 발악하다가 망했다. 윤석열이 술을 끊지 못하고 트럼프가 트윗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호르몬 뿜뿜에 너무 흥분해서 잠을 못이루기 때문이다.
나를 쥐어짜지 말고 천하를 쥐어짜야 한다. 쥐어짜려면 좁혀야 한다. 좁히려면 넓은 데를 차지해야 한다. 크게 그물을 친 뒤에 벼릿줄을 당겨 조인다. 가속도를 얻으려면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혼자는 안되고 동료와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권력을 휘두르기 앞서 의무를 져야 한다. 망하는 이유는 수순이 틀려서다.
98퍼센트 채워져 있는 곳에 부족한 2퍼센트를 채워주면 환상의 좁히기가 된다. 2로 100를 해결한 셈이다. 그러려면 먼저 98이 모여 있는 팀을 찾아서 그 무리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도록 세상과 친해놔야 한다. 순방향은 흥하고 역방향은 죽는다. 진보는 순방향이고 보수는 역방향이다.
인간들이 보수로 가는 이유는 남들이 모아놓은 98에 뛰어들어 2로 100을 빼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제승방략의 실패와 같다. 지방에 군대를 모아놓으면 중앙에서 내려간 장수가 지휘권을 행사한다. 문제는 병사들과 친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들이 말을 안들어서 망한다. 미리 민중들과 친해놔야 성공한다.
철학의 정답
세상은 상대적일까, 아니면 절대적일까? 상대적으로 보면 상대적이고 절대적으로 보면 절대적이다. 세상이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측법이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다. 어떤 둘이 공유에 의해 축과 대칭으로 엮여 있을 때 이를 각각 보면 상대적이고 묶음으로 보면 절대적이다.
사물은 상대적이고 사건은 절대적이다. 관측자가 밖에 있으면 상대적이고 안에 있으면 절대적이다. 사람들이 철학에 정답이 없다고 믿는 이유는 상대성 착시 때문이다. 상대성을 절대성으로 바꾸면 에너지다. 물체는 작용이 결정하므로 상대적이고 에너지는 내부 질서에 의해 움직이므로 절대적이다.
물질은 외부를 보는 관점이고 에너지는 내부를 보는 관점이다. 가로수가 뒤로 가는지 기차가 앞으로 가는지 헷갈리는 이유는 관측자가 변화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풍선에 변화가 일어나면 내부 압력이 바뀌므로 모든 자원이 변화를 느낀다. 만원버스에서 한 명이 움직이면 승객들 전원이 알아챈다.
에너지는 풍선의 기압과 같고 수도관 내부의 수압과 같다. 계는 내부에서 평형을 이루며 변화는 모두에게 전달되므로 절대적이다. 차원을 높여서 압력이 걸리면 상대성이 절대성으로 바뀐다. 점의 상대성은 선의 절대성이다. 선의 상대성은 각, 각의 상대성은 체, 체의 상대성은 계에서 절대성으로 된다.
공유 때문이다. 선은 점을 공유하고, 각은 선을 공유하고, 체는 각을 공유하고, 계는 체를 공유한다. 낮은 차원의 상대성이 공유에 의해 높은 차원에서 절대성으로 바뀐다. 공유가 차원이다. 개인의 상대성은 집단의 절대성이 된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은 좋거나 나쁘지만 집단은 절대적으로 나빠진다.
철학이 망하는 이유는 개인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사랑, 행복, 쾌락, 돈, 명성, 평판, 성공, 불로장수는 개인의 상대성 관점이다. 관점이 틀어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집단에서 에너지를 조달한다. 개인은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려고 한다. 집단의 무의식이 개인을 통제한다.
개인의 행동은 제각각이나 집단은 한 방향으로 간다. 메뚜기는 제멋대로 가지만 백만 마리가 군집을 이루면 충돌을 회피하므로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간다. 국힘이 외통수로 가는 이유도 충돌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향우 하는 사람과 좌향좌 하는 사람은 충돌한다. 충돌을 피하면 전원 우향우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국힘당원 전원의 좌향좌는 불가능하다. 전원의 우향우만 가능하다. 흥분했기 때문이다. 새가 날지 않으면 제 멋대로 가지만 새떼가 일제히 날아오르면 충돌을 피하여 한 방향으로 간다. 국힘당 새떼가 조용할 때는 우향우도 하고 좌향좌도 하지만 흥분하면 무조건 극우향우를 한다.
낮은 차원의 플러스 상대성이 높은 차원의 마이너스 절대성이 된다. 자녀가 받는 용돈이 플러스 상대성이라면 부모가 용돈을 주는 것은 마이너스 절대성이다. 주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 주는 자가 차원이 높다. 마이너스가 먼저고 플러스는 나중이다. 차원을 올려서 마이너스로 보면 세상은 절대적이다.
돈을 버는 것은 상대적이지만 쓰는 것은 절대적이다. 들어온 월급은 어떻게든 빠져나간다. 100만원을 벌었는데 200만원을 쓸 수는 없다. 수익은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출은 통제할 수 있다. 내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출만 보기로 규칙을 정하면 세상은 절대적이다.
수익=지출이므로 더하고 빼면 같다. 낮은 차원의 상대성을 모으면 높은 차원의 절대성이 되므로 세상을 상대성으로 보나 절대성으로 보나 같다. 단 상대성으로 보면 예측이 불가능하고 그러므로 정답이 없고, 절대성으로 보면 절대적이라서 예측이 가능하고 그러므로 철학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다.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알면 행해야 하는데 실천하기 싫기 때문이다. 도박장에서 필승법은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박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하우스를 운영하면 된다. 고객은 잃거나 따므로 상대적이지만 하우스는 승률을 조정해서 언제나 이긴다. 필승법이 있지만 사람들은 행하지 않는다.
도박장의 필승법은 도박을 끊는 것이다. 정선 카지노에 입장료 9천원 내고 들어가서 구경만 하면 손해가 없다.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저 도박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필승법은 있다. 지출을 줄이면 된다. 연비운전 방법은 브레이크를 안밟는 것이다. 소득은 확률에 맡기고 비용을 줄이면 된다.
자연의 변화는 에너지가 결정한다. 인간의 행동도 에너지가 결정한다. 한번 결정한 규칙을 평생 지킨다면 그 사람은 에너지가 있다. 변덕을 부리는 이유는 에너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간이 문제다. 인간이 말을 안 들어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다. 말을 잘 듣는 무리가 있다면 언제나 이긴다.
징기스칸이 시범을 보였다. 발주나 호수의 흙탕물을 나눠마신 그의 부하 18명 중에 배신자는 한 명도 없다.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지정학적 구조와 인간의 능력과 인간의 신의다. 지능과, 피부색과, 신체적 능력은 어쩔 수 없고 인간의 의리는 바꿀 수 있다. 무리의 결속력이 끈끈한 정도는 바꾸어진다.
약속을 지키는 집단은 유리하다. 신의가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공유의 효율성이다. 공유는 효율을 낳고 효율적이면 이긴다. 네거리는 네 방향을 공유하므로 장사를 해도 유리하고 막다른 골목은 공유되지 않으므로 불리하다. 외부와 연결되는 촉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촉수의 수가 차원이다.
의리는 타인과 공유하는 정도다. 강남 땅값이 비싼 이유는 경부축과 연결되는 교통이 좋아 공유도가 높기 때문이다. 의리가 있는 사람은 타인과 연결되는 정도가 높다. 현대인은 의리가 없다. 개인의 평가를 회사가 대행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좋은 사람이 성공했는데 지금은 좋은 회사가 성공한다.
세상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강남 땅값을 알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고, 세상이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강남 땅값은 오른다고 믿는 사람이다. 둘 다 맞다. 단기적으로 오를지 내릴지 알 수 없고 장기적으로는 오른다. 보는 사람의 관점 문제다. 길게 보는가, 짧게 보는가다. 길게 봐야 한다.
지정학과 타고난 자질은 어쩔 수 없고 일의 성패는 집단의 신의에 달려 있다. 운은 상대적이나 신의는 절대적이다. 운과 신의 중에서 신의를 선택해야 한다. 요행수를 노리고 운을 선택하므로 국힘당 꼴 난다. 윤석열에게 좋은 찬스가 왔지만 검찰집단 전체의 신의를 생각해서 욕심을 눌렀어야 했다.
유교권 한중일이 뜨는 이유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공자의 관성력이 남아있다. 2030은 말 안 듣는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 개인의 신의를 회사에 빼앗겼다. 옛날에는 믿을 만한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믿을만한 회사와 믿을 수 없는 회사 뿐이다. 개인의 경쟁력이 나빠졌다.
일본은 전후세대가 말 안듣고 한국은 2030이 말 안듣는다. 중국은 공산주의라서 말을 안듣고 개기면 죽는다. 그렇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키우지 못하므로 우리가 말을 듣는다면 이길 수 있다. 철학은 정답이 있다. 좋은 자원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좋은 결정을 내리면 된다.
한국인들이 나쁜 자원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과거에는 중국의 변두리여서 나빴지만 지금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만나는 교차로다. 좋은 자원이, 좋은 자리를 차지했으니, 좋은 결정만 내리면 된다. 그것은 내가 먼저 의무를 다하고 나중에 권력을 챙기는 다르마의 길을 가는 것이다.
먼저 최고의 팀을 만들고 방해자를 제거하는 대승의 길을 가야 한다. 김어준, 유시민, 이광재가 능력이 있는데도 선발대를 양보하고 예비대를 자처하니 좋은 팀이 만들어졌다. 이언주, 뉴이재명 같은 방해자만 제거하면 된다. 똥파리부대 같은 브로커들만 척결하면 된다. 나쁜 놈들 조지기는 쉽잖아.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먼저 넓히고 나중에 좁히는 것이다. 그물을 던져도 먼저 간격을 벌리고 나중 벼릿줄을 당긴다. 먼저 넓히려면 혼자로는 안 되고 협력해야 한다. 한국인 특유의 속좁은 낯가림 행동 극복해야 한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성공은 확률이 정한다. 확률이 낮으면 큰수의 법칙을 쓰면 된다.
무엇이 옳은지 사람들은 안다. 매뉴얼이 없으므로 행하지 않는다. 붙이면 젖히고 젖히면 끊어라 하는 바둑격언처럼 누가 매뉴얼을 말해줘야 한다. 구조론은 의사결정 매뉴얼이다. 바둑에 격언이 있듯이 의사결정에도 정답이 있다. 단 즉시 써먹는 상대적 정답이 없고 길게 보는 절대적 정답만 있다.
사람들은 상대적인 정답만 원한다. 도박장에 안 가면 되는데 도박장에 가서 이기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피곤하다. 오답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면 곤란하다. 도박장에서 돈을 따는 방법은 자기보다 더한 호구를 찾는 것인데 이게 상대적이다. 정답은 있지만 인간들이 흥분해 있다는게 문제다.
정답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앉아서 매뉴얼을 만들고, 약속을 지켜서 신의를 얻고, 팀을 만들어 확률을 높이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가서 효율을 얻어내며, 성과를 다른 사람이 얻어가도 화내지 않는 것이다. 나혼자 잘되는 상대적 방법은 없지만 집단의 기세에 묻어가는 절대적 방법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