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자비(慈悲)에 머물러 서 있지 않는 한 어떤 확고한 믿음의 상태도 존재할 수 없으며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지 않는 한 구원의 믿음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하기 원한다.
만약 임박한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믿음의 산물이라면
믿음에 대한 정의에서 경고(警告)가 배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은
마치 우리가 믿음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기라도 하듯이
부당하게 우리를 비난한다.
첫째,
단연 믿음은 값없는 약속(約束)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자체를 확고히 세운다.
둘째,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지 않는 한,
달리 우리는 믿음 그 자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없다.
이 두 가지 점 모두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유기된 자들을,
그리고신자들과 불신자들을 구별 짓는 믿음을 추구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모두 의롭게 명령하시는 것이며
참되게 경고하시는 것임을 믿기만 한다면,
그는 신자라고 불리게 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慈悲)에 머물러 서 있지 않는 한
어떤 확고한 믿음의 상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지 않는 한
어떻게 구원의 믿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장 3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