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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구찌터널 모형을 찍은 사진입니다.
위키피디아
#지하터널 은 미로같이 매우 복잡했을 뿐 아니라 통로는 너비 80㎝, 높이 80㎝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어요. 하지만 이 안엔 숙소, 부엌, 침실, 회의실, 무기 창고 등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심지어 병원, 극장까지 갖추어져 있었다고 해요.
#베트남 #공산군 은 이 지하 터널에 군대를 수용하고 통신 및 보급품을 수송했어요. 입구는 외부인의 침입이 까다로운 곳에 여러 개 만들었고, 식물로 위장해 베트남 공산군이 아니면 찾기가 매우 어려웠죠. 터널 주변에는 각종 #지뢰 가 매설돼 있었고, 주요 지점마다 위장 통로와 #함정 이 있어 접근하기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미군 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 터널의 실체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요.
◇베트남전쟁의 상징
미군은 이 지하 터널을 없애려고 했어요. 대표적인 것이 #시더폴스작전 이었습니다. 1967년 1월 약 3만명의 미군이 화력을 총동원했습니다. #헬리콥터 가 구찌 터널 위에서 기습적으로 #폭격 했고 다른 지상군은 포위망을 구축했어요. 며칠간 이어진 #공습 으로 지하 터널을 제외한 지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자, 공병들은 폭약을 설치해 터널을 폭파해 나갔어요. 이 작전에 약 1만파운드의 폭탄이 사용됐대요. 약 3주 동안 이어진 작전에서 약 10㎞의 터널이 사라지고 60여 개의 지하 벙커가 파괴됐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공산군은 곧바로 터널을 원상복구해 나갔습니다.
미군은 또 다른 작전을 시행했어요. 직접 지하 터널 안으로 들어갈 몸집이 작은 병사 600여 명을 뽑아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른바 ' #터널쥐 ' 로 불렸죠. 그런데 기대와 달리 산소 부족, 극심한 무더위 등으로 '터널 쥐'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오히려 베트남 공산군의 반격에 희생됐습니다. 독일에서 공수해 온 #탐색견 을 이용한 작전도 있었어요. 3000여 마리의 개들이 터널로 들어가는 문이나 통풍구를 찾게끔 한 것인데, 개들은 #부비트랩 (건드리면 폭발하는 장치)에 속수무책이었고 오히려 베트남 공산군은 곳곳에 고춧가루를 뿌려 개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했죠.
결국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5만명이 넘는 병력을 잃었고, 1973년 #파리평화협정 을 체결하며 베트남에서 철수했어요. 미군이 열심히 공격했던 터널의 범위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출처: 프리미엄조선|[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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