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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장 백수(白水)의 노래 (4)
완벽한 패배였다.
마치 거대한 괴물에 의해 짓밟힌 듯한 느낌이었다.
공포감이 일었다. 예전의 제(齊)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다. 노장공(魯莊公)은 북행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모든 신하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5년 사이에 제나라가 부쩍 달라졌소. 정녕 이제부터 제나라를 맹주로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노장공(魯莊公)이 자조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노장공의 서출 동생인 경보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제나라가 비록 수나라를 항복시켰다고는 하나 그것은 우리나라 장수 조말(曺沫)이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신이 다시 병사들을 수습하여 성밖으로 나가 싸워 제군을 모조리 우리 영토 밖으로 쫓아내겠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반중(班中)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친다.
"그건 안 되오!"
노장공(魯莊公)이 내려다보니 모신 시백이었다.
시백은 자신의 어조가 너무 강경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얼른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다시 말했다.
"신(臣)은 제나라와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싸워서는 안 되다니요? 그렇다면 달리 좋은 계책이라도 갖고 있소?"
노장공(魯莊公)이 공자 경보를 대신해서 물었다.
"우리가 제나라와 싸워서는 안 될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신(臣)은 일찍이 말한 바 있습니다. 관중(管仲)은 천하기재라고 말입니다. 이제 그가 제나라 정사를 맡은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그 동안 다른 나라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것은 제나라 내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바깥 일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관중이 본격적으로 나라 밖의 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가 내정을 안정시키고 군대를 강하게 길러놓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박(博) 땅 전투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관중(管仲)이 지휘하는 군대는 다른 사람이 지휘하는 군대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가 강할 때는 피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齊)나라와 싸워 이롭지 못한 첫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이오?"
노장공(魯莊公)의 물음에 시백은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말을 이었다.
"이번 북행 모임은 제환공이 소집한 것입니다만, 그 명분은 천자(天子)를 공경하고 높이자는 데 있었습니다. 소집령 또한 왕명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 우리 노나라가 북행 회합에 참석치 않은 것은 왕명을 어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나라가 당당하게 우리 영토를 침범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 때문입니다. 허물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제(齊)나라와 싸워 이롭지 못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
"지난날 주공께서는 제환공과 쓸데없는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규(糾)공자를 죽이고 관중(管仲)을 함거에 태워 돌려보낸 바 있습니다. 또한 제환공을 위하여 왕실과 제나라 간의 혼사도 주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공의 공로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齊)나라와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지난날의 공로를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어찌하여 지난 공을 없애고 새로이 원수를 맺으려 하십니까. 이것이 제나라와 싸워 이롭지 못한 세번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할 방책은 단 하나입니다. 제나라와 강화를 맺고 동맹을 청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굳이 싸우지 않아도 제군(齊軍)을 우리 영토 밖으로 물러가게 할수 있습니다."
시백의 논리정연한 말에 노장공(魯莊公)을 비롯한 모든 대부들은 입을 다문채 아무런 반론을 펴지 못했다. 아니, 반론을 펴기는커녕 시백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다만 그들은 노장공의 뜻이 어떠한지를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궁정에 모여 한창 의논을 하고 있을 때 시종이 들어와 아뢰었다.
"제환공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노장공(魯莊公)은 급히 제환공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제나라와 노나라는 모두 주왕실을 섬기는 형제국이오. 그런데 노후(魯侯)는 어찌하여 이번 북행 모임에 불참하여 천자의 명을 어기는 죄를 범했소? 과인은 천자를 대행하는 몸으로 그 까닭을 묻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만일 노후께서 납득할 만한 답을 보내지 않을 때는 노나라가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알고 그에 합당한 조처를 행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위압적인 글이었다.
노장공(魯莊公)은 치욕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몸을 굽혀 제나라 뜻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할 각오로 독자노선을 걸을 것인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노장공의 생모 문강(文姜) 역시 제환공의 편지를 받았다.
그 날 저녁 문강은 노장공을 내궁으로 불러 말했다.
"노나라와 제나라는 예전부터 혼인해온 사이이다. 어서 화친을 하자는 편지를 제나라에 보내라."
노장공(魯莊公)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시백에게 답서를 쓰게 하여 동맹을 맺자는 뜻을 제환공에게 전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과인이 원래 병이 있어 북행 땅 회맹에 참석하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군후께서 왕명으로 꾸짖으니 과인인들 어찌 허물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성하(城下)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과인이 실로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어찌 조상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군후께서 일단 국경 밖으로 물러나시면 과인은 분부대로 복종하겠습니다.
일찍이 주공 단(但)은 태공망과 아들 백금(伯禽)의 제나라와 노나라의 정치 형태를 보고받고 탄식한 바가 있었다.
- 오호라. 정치는 간소하지 않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 것이거늘, 후세에 노나라는 제나라를 섬기지 않을 수 없겠구나.
3백 년 전의 이같은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간의 동맹 회담. 말이 동맹 회담일뿐 실제로는 항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소는 제나라땅인 가로 정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