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플라잉 몽키가 되는 걸까
◎#26-0917 인간관계에서 두려워할 상대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다.
by여유시간
4시간전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칠십 평생, 사람을 가장 많이 관찰한 자리는 어디였을까 돌이켜 보면 뜻밖에도 '갈등의 현장'이었다. 조직에서, 가족 안에서, 친목 모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싸움들. 몸은 예전만 못해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을 감고도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의 잔상이 그려질 만큼, 오랜 관찰이 남긴 선명함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켜본 끝에 내가 내린 결론 하나를 오늘 여러분께 전하려 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무섭고 위험한 존재는, 나르시시스트 본인이 아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오히려 다루기 쉬운 편에 속한다. 그의 패턴은 일관되다. 자신을 향한 찬사, 자신의 이익, 자신의 우월감. 목적이 분명하기에 예측이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하면 대처도 가능하다.
정작 사람들이 가장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가장 깊은 상처를 입는 대상은 따로 있다. 바로 나르시시스트의 곁에서 그의 뜻을 대신 실행하는 사람들, 심리학에서 '플라잉 몽키(Flying Monkey)'라 부르는 이들이다.
플라잉 몽키란 누구인가
플라잉 몽키는 나르시시스트 본체가 아니다. 그의 주변에서 그를 옹호하고, 그의 말을 대신 전하고, 그가 지목한 사람을 대신 공격하는 조력자들이다. 겉보기엔 평범하다. 오히려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나르시시스트가 던지는 교묘한 인정과 칭찬이다.
생각해 보라. 리더가 될 역량은 없지만, 누군가로부터 "너만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야", "너 없으면 안 돼"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인정에 목마른 사람일수록 이 한마디에 온몸을 던진다. 나르시시스트는 바로 그 갈증을 정확히 짚어내는 데 탁월한 존재다.
왜 나르시시스트보다 더 위험한가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일 뿐인데, 본체보다 위험할 리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정반대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죄책감이 없다. 나르시시스트 본인은 적어도 자신이 무언가를 '이용하고' 있다는 감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플라잉 몽키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둘째, 집요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사람은 이익이 없으면 물러나지만, 신념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손해를 봐도 멈추지 않는다.
셋째,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플라잉 몽키는 자신이 누군가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설명하고 증거를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 그의 세계 안에서 그는 언제나 '정의로운 쪽'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마지막 특성에 이름을 붙였다. 환상적 정의감(Delusional Justice). 스스로를 구원자로 착각하는 심리다. 이 환상에 도취된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자각 자체가 없기에 가장 잔인해질 수 있다.
알아보는 법: 세 가지 신호
실용인문학의 목적은 통찰에서 그치지 않고 무기가 되는 데 있다. 그러니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자. 플라잉 몽키를 알아보는 신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의 갈등에 지나치게 빨리, 지나치게 확신에 차서 끼어든다. 정작 당사자보다 더 흥분해 있다면 의심해 볼 일이다.
둘째, 특정 인물의 말을 검증 없이 그대로 옮긴다. "그 사람이 그러던데" 하는 말을 자주 하되, 직접 확인해 본 적은 없다.
셋째, 반박이나 증거를 제시해도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방어적으로 나온다. 이는 그가 사실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 흔들리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대처하는 지혜
플라잉 몽키를 설득하려 드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의 확신은 사실관계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하나, 논리로 설득하려 하지 말라. 대신 그와의 관계에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두는 데 힘을 쏟아라.
둘, 그의 판단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라는 근원을 보라. 플라잉 몽키에게 화를 내는 것은 진짜 문제를 비껴가는 일이다. 근원을 이해하면 감정 소모가 줄어든다.
셋, 기록을 남겨라. 환상적 정의감에 사로잡힌 사람을 상대할 때는 감정적 호소보다 명확한 사실과 기록이 나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마치며
칠십 평생 살아보니,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대개 악의보다 확신이었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나르시시스트를 경계하라는 말은 이제 많이들 한다. 그러나 진짜 경계해야 할 대상은, 그의 곁에서 스스로를 구원자라 믿으며 움직이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인정에 대한 갈증과 정의감이라는 도취.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무서운 얼굴이 태어난다.
◎실용인문학#26》AI수정·협업》관찰작가 여유시간 중심에서 본 실용인문학
#실용인문학 #디지털인문학 #인간관계기술 #관찰력 #주체성 #자기다움 #삶의태도 #삶의리듬 #생각정리 #성찰과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