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채터의 <생각한다는 착각>
1. 우리는 깊은 성찰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다. 우리 내면에는 특정한 사고의 저장소 또는 집행소가 있어 그곳에서 사고의 기본전제와 방향이 만들어지고 심층적인 사고의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론 우리가 알 수 없는 내부의 어떤 힘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말에서, 때론 정신분석학자들이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확인할 수 있다.
2. 하지만 오랫동안 뇌와 인지심리를 연구한 영국의 행동과학자 ‘닉 채터’는 『생각한다는 착각』에서 이러한 ‘마음의 깊이’에 대한 믿음을 착각이라고 진단한다. 내면의 숨겨진 정신적 깊이를 찾는 노력은 그것이 너무 깊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파헤칠만한 깊이가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라는 것이다. 우리가 내면에 있다고 믿는 신념, 가치. 행동의 원칙들은 없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과거의 찰나적인 생각과 경험에 대한 기억 흔적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 사고의 특징은 오히려 새로운 것을 고안하고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합리화와 정당화 과정에 있다. “자기성찰은 지각이 아니라 고안의 과정으로, 우리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과 설명을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3. 저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생각 작동의 기본 원칙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우리는 오직 의미잇는 조합만 본다.” 둘째, “우리는 한 번에 단 하나의 의미있는 조합만 본다”. 셋째, “뇌는 계속해서 우왕좌왕 동요한다. 새로운 입력이 부족하다는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도 뇌는 필사적으로 현재의 조합에서 벗어나 또 다른 조합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감각적 지각에서 뿐 아니라 상상, 감정, 사고 등 모든 과정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때론 전체적인 사물과 사고의 과정을 한 번에 보고, 통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의미에만 집중할 수 있다. 다만 전체를 본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이러한 하나하나의 집중이 빠르게 연결되어 전체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뇌는 매우 빠르고 영리한 편집자이자 해석자라 할 수 있다.
4. 상상은 내면의 반영이 아니라, 매순간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통한 고안의 과정이며, 감정 또한 내면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생리적 변화와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뇌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감정은 사유와 해석에서 자라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러셀의 회고록에 적고 있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어떤 내면의 불화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고백도 다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해석에 불과하며, ‘낭만적 사랑’도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감각과 감정의 심리학은 우리가 사랑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 할 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이곳에서 생각과 상호작용의 패턴에 집중해 볼 것을 제안한다.”
5. 생각의 비밀은 깊은 내면의 성찰의 결과가 아니었다. 다만 영리하고 빠른 정보의 활용과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수많은 합리적 시도의 결과였던 것이다. “우리의 숨겨진 깊이에 도사리는 위험에 대한 기존의 신념, 욕망, 동기, 태도는 지어낸 허구이며 우리는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도전을 다루기 위해 우리 행동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6. 생각의 깊이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 실망해야 할까? 인간의 갖고 있다고 믿었던 내면의 힘과 성찰의 깊이에 대한 회의는 사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까? 하지만 저자의 결론이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어떤 절대적이고 신비스런 통찰이 없다는 점은 우리가 하는 모든 사고에 대한 개방성을 허용하는 것이며 충분한 비판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상황 그리고 즉시적인 감각의 작동 결과일 뿐이다. 정보가 오염되는 문제와 상황의 부적절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생각의 모순이나 부적절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10. 또한 이러한 결론을 통해 더 많은 경험과 정보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된다. 비록 내면의 저장소에는 없을지라도, 현재의 생각은 과거의 경험과 정보의 파편을 재조립하여 창조적으로 고안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각의 자료가 많을수록 생각의 창의성과 질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 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문화적 전통도 생각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생각을 할 때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빠르고 영리하게 나름 멋진 결과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지닌 ‘창조적 능력’이다. 인간의 생각과 뇌의 작동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견해는 인간의 가능성을 확대시켜 준다. 인간은 고정되고 경직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경험적 확장과 현재에 대한 집중을 통해 변모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첫댓글 -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합리화와 정당화 과정"
- "빠른 정보의 활용과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수많은 합리적 시도의 결과"
- "인간은 고정되고 경직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경험적 확장과 현재에 대한 집중을 통해 변모할 수 있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