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魯面
現在 東魯라는 名稱은 生達1里(고불목) 마을앞에 冬老沼라는 큰웅덩이가 있다.
朝鮮 初期 鳥嶺 通路가 開通되면서 聞慶邑 觀音里와 葛坪里,中坪里를 거쳐 여우목 고개(聞慶邑 中坪里와 東魯面 生達里의 境界)를 넘으면 象徵的으로 나타나는 冬老沼의 名稱 때문에 <東魯>라는 名稱이 붙여졌을 것으로 推定되며, 1914년 慶尙北道 令이 公布되면서 現在의 東魯面으로 漢子 表記가 바뀌었다.
◆ 돌목, 石項里
이곳은 1500年경 周氏가 처음으로 茂盛했던 다래 덩굴을 베고 마을을 開拓한 後 1670년경에는 開城高氏가 移住하여 이곳을 돌목(石項)이라 하였으며 1700년경에는 醴泉朴氏가 現在의 石項1里를 發展시켰고 1770년경에는 旌善全氏가 移住 定着하면서 마을의 主體를 이루고 있다. 이때 이 마을에 우물 하나가 있었는데 그 물맛이 좋고 맑으며 水量도 變하지 않고 溪谷으로 넘쳐흘렀다. 이것을 본 이웃 洞民들이 맑은물이 골짜기에 넘쳐흘렀다하여 마을 名을 무진골이라 하였다 한다. 점마골이라 한 것은 이 마을에서 솥을 만들어 팔았다하여 불려진 洞名이다.
옛날 榮州郡 上里面 一部인 越境洞(지금 龜洛里)과 水眞溪里(무진골)와 돌목을 倂合하여 ‘石項里’라 부르며 1914年 東魯面에 編入되었다. 여러 개의 自然部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네마다 돌이 많아 ‘돌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돌목은 중간마와 윗돌목으로 區分된다.
◆ 솥터매기 : 醴泉郡 龍門面 龍門寺로 넘어가는 고갯길 못미쳐 部落에 솥을 굽던 가마터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무진골(水眞溪里, 점마) : 英祖 46年에 石陵君 龍의 5代孫인 石溪公 旌善人 全鶴文이 旌善에서 醴泉 金谷洞(金堂室)을 거쳐 이곳에 定着하고자 와 보니 現 石項里 801番地에 醴泉 林氏가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以後 全氏 一家의 孫勢가 繁昌하여 약 200餘年 동안 洞里 100餘戶 중 80餘 戶를 全氏 門中이 차지할 程度로 集姓村을 이루었다. 처음 마을 한복판 돌 틈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는데 아주 맑고 물맛이 뛰어났다. 年中 水量의 變化가 없고 恒時 흘러 넘쳤다. 洞民들이 이 물은 七年大旱에도 다할 날이 없을 것이라면서 ‘무진골’(水眞溪里)라 붙여진 이름이 전해오고 있다. 한편 지금도 鮮明하게 남아 있는 솥가마터가 말해 주듯 솥을 만들어 팔던 마을이라 하여 ‘점마’(店마)라고도 불리고 있다.
◆지통마(紙筒마) : 닥나무를 많이 栽培하여 韓紙를 뜨는 紙筒이 設置된 洞里라 하여‘지통마’라 불리어졌다고 傳해오고 있다.
◆ 눌기(臥旗洞, 旗를 눞힌 동네) : 옛날 어느 힘센 將帥가 나타나서 그곳에 오래 留陣할 計劃으로 兵卒들과 陣을 치고, 鬪具는 마을 뒷산 鬪具峰에 벗어 두고, 말은 馬山에 매어 두고, 무리를 象徵하는 깃발을 세워 두었는데 얼마를 가지 않아 그만 그 깃발이 바람에 누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傳해오고 있다.
◆ 구마(舊洞) : 약 500年前에 慶州金氏가 터전을 잡고 들어와 農事를 짓고 마을을 이룩하였는데 이 마을이 이웃 어느 마을보다 오래된 마을이라 하여 ‘구마’ 또는 ‘굿마’로 불리어졌다고 전해오고 있다.
◆ 그나기(龜落里) : 옛적 어느 해 오랜 장마비로 洪水가 심하게 났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 오는 氣象異變이 일어나더니 하늘로부터 홀연히 큰 거북 한 마리가 물줄기를 타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웃 洞里 사람들이 이곳이 거북이의 운을 받은 祥瑞로운 땅이라 하여 집을 짓고 터전을 잡아 살게 되었으며, 거북 ‘龜'와 떨어질 ‘落'을 써서 마을 이름이 생겨 났다고 한다.
◆ 성골(城골), 양지마(陽地마) : 이 마을들은 前後左右로 바람막이 役割을 해주는 산들이 아늑하게 둘러쳐 있어 그 골 안의 모습이 마치 城에 둘러 쌓인 것처럼 보인다 하여 ‘城골’이라 하고, 그 안의 마을에 볕이 들어가 따뜻하다 하여 ‘陽地마’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첫댓글 석항리의 입향조 분들의 성씨와 구전 되어온 오래된 지명에 대한 유래와 재미있는 설명은 처음 들어도 친근감이 넘치고 귀한 자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