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로마서 13장에 관하여
I. 현 정국과 관련해서 로마서 13장 해석을 두고 이곳 저곳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II. 제안 : 이와 관련해서 A4 3-6장 정도의 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면 좋을 듯 합니다.
III. 내 생각
1. 로마서 13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썰렁한 개그부터 하자. 노래방에서 누군가 김정호의 "두만강 푸른 물에"를 부르면, 그 다음은 혜은이의 "제 3한강교" 혹은 "낙동강 소녀"가 뒤를 잇는다. 그 사이에 "두만강만 강이냐, 낙동강도 강이다"라는 후렴이 따라 붙는다.
국가와의 관계, 또는 부당한 정권과의 관계에 관한 성경 구절은 숱하게 많다. 그런데도 유독 로마서 13장에 해석학적 우선권을 부여할 성경적, 신학적 이유가 있는가?
2. 박대통령과 관련해서라면, 로마서 말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에 쎄고 쎘다. 그리고 예언서들에도 넘치고 넘친다.
내가 보기에, 가장 적절한 본문을 호출해 낸다면, 무당에게 정권과 정치의 안위를 물은 미친 사울왕 스토리이다.
그가 죽은 후, 성서는 기록한다. 무당에게 물은 것<본문을 직접 인용할 것>
3. 또 하나의 본문을 언급한다면, 미가서 3장이다. 이곳에서 미가 선지자는 왕에게 요구되는 것을 잘라 말한다. 딱 하나다. "정의"이다.
여기서 정의는 그 유명한 히브리어, "미슈파트"이다. 이 단어는 법정적 용어인데, 공정한 재판을 말한다. 아다시피 재판은 사실과 진실에 기반해서 판단한다. 정의란 사실과 진실에 기반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가 부자와 강자라고 진실을 굽게 해서는 안 되고, 빈자와 약자라고 해서 진실과 상관없이 편파적으로 옹호해서도 안 된다. 정상참작은 그 후의 일이다.
현 정부, 아니 현 대통령의 행동은 한 마디로 정의에 위배된다.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에 대해 미가서는 분명하게 말한다. 본문 찾아 넣을 것.
4. 이 외에도 신약으로 넘어 오면, 영아 학살한 헤롯, 불의한 재판으로 무고한 의인을 사형에 처한 빌라도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계시록 13장의 음녀 이야기도 좋은 본문이다.
5.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으로 현 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많고 많은 본문에서 우위성과 우선권을 갖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본문들과의 유기적 연관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본문과 상충되는 방식으로 롬 13장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6. 설사 로마서 13장으로 현 상황을 파악하는 잣대로 삼고자 한다면, 그 본문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나는 역사에서 저 본문과 관련된 두 가지 오용과 악용 사건을 떠 올린다.
하나는 '독일 기독교'의 히틀러 지지와 로마서 13장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칼 바르트를 위시한 '고백 기독교'의 "바르멘 선언"이다.
칼 바르트와 본 회퍼 전기에서 증거자료를 찾을 것.
요체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고, 그 어떤 것도 신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마치 신성 모독인양 분개하는 이들은 역사 공부를 좀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김종필이다. 박대통령의 매부(?)인 그는 유신 지지와 로마서 13장을 연결지어 발언한 적이 있다.
정확한 자료를 <한국기독교회사>나 옥성득교수 혹은 강성호의 책에서 찾아서 인용, 사용할 것
내 기억으로, 이와 관련해서 총신대의 <신학정론>(?)에도 어느 신학자가 로마서 13장으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지지한 논문이 있다.
이런 역사적 사례를 모른 채, 현 대통령을 로마서 13장으로 엄호하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이다.
7. 그리고 로마서 13장으로 박근혜 옹호하려려는 이들에게 묻고픈 것이 있다.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에 관해서는 왜 로마서 13장을 잊었는가?
성경의 주인이 되지지 말고,
성경의 노예가 되라!
차라리 일관성이나 있든지. 모든 정권을 향해 그렇게 말하든지.
IV. 로마서 13장 본문에 관하여
1. 나는 오스카 쿨만과 존 요더의 해석을 지지한다.
2. 그 두 사람은 로마서 13장의 앞 뒤 맥락을 유의할 것을 주문한다.
롬 13:1-7절을 앞뒤로 감싸는 본문 흐름 속에서 읽으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12장의 마지막과 13:8 이후는 원수에 관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할 때의 원수의 가장 적절한 사례는 로마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로마 황제와 관료들이다.
바울의 편지를 받아들고 읽는 로마의 기독교인들도 사도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하나님의 왕되심과 다스리심에 관한 최고의 대립과 대결은 결국 로마 제국일 수 밖에 없다.
하여간에 바울의 요지는 원수 사랑의 맥락에서 로마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3. 이는 로마서 전체와 잘 어울린다. 오해를 무릅쓰고 로마서를 요약한다면, 죄인인 인간이 의로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죄사함/의롭다함을 받는가, 일 것이다. 한발 더 나가면, 그 의로운 공동체가 되는가, 이다.
이것을 롬 13장과 엮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인/원수인 우리가 용서받았으니, 우리에게 죄인이자 원수인 타자를 용서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말하면 비폭력적으로, 신학적으로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대할 것인가, 이다.(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더보강할 것)
4. 이런 해석은 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올라온 용으로 로마제국을 묘사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고 일관성있는 성서의 국가이해가 된다.
여기에 앞서 말한 사무엘상 8장과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아벨을 살해한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한 하나님의 결정과도 아무런 상충이나 갈등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로마서 13장으로 불의한 정권을 옹호하려는 이들은 부지지불식 간에 그 정권을 악한 정권,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발람과 같다. 이스라엘에 저주를 퍼부으려고 했던 발람이 도리어 축복의 말을 했다면, 이것은 정반대이지만 말이다.
5. 그런 원수도 절대 악은 아니다. 그도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한에 있어서, 선의 일부는 남아 있다.
로마서 13장은 국가의 순기능을 강조한다.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벌하고, 무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 점마저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부적절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무정부는 피해야 한다.(아나키스트들은 어떤 정부나 권력도 부정하는, 통념적 무정부가 아니다) 조심스레 말한다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없는 것도 문제이다.
다시 돌아오면, 국가나 정부가 한 사회의 질서와 안녕, 복지를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바울은 복종을 말한다.
이것을 우리 상황과 거칠게 연결한다면, "질서 있는 퇴진"이 될 것이다.
6. 하나님이 세운 질서라는 말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신적 질서라는 뜻이 아니고, 태초의 창조 질서라는 말이 아니고, 최악의 혼돈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질서를 말한다.
사무엘상 8장에 하나님은 자기 모순적 혹은 이중적 행동을 보이신다. 왕을 세우는 것은 사무엘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하면서도, 왕을 당신의 대리 통치자로 허용하신다. 그러므로 그 본문의 왕(더 정확하게는 열방과 같은 나라와 왕이다)과 같이 로마서 13장에서 하나님이 세웠다고 했을 때의 의미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
현직 대통령이 물러나는 일련의 과정이 질서가 있는 퇴진이 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가들의 할 일이고, 능력이다.
7. 그러므로 원수의 방식으로, 원수와 똑 같은 마음을 품고 원수와 투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의 비폭력적 촛불시위는 바울의 권면과 성서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부합한다.
8. 로마서 13장에 대한 나의 최종 결론은 원수의 정체를 잘 파악하고, 원수와 똑 같아지지 말고, 예수의 길과 방식으로 투쟁하라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첫댓글 정리 감사합니다 ! ^^
네, 잘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