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세운 진(秦)나라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였고 황제라는 직위명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다. 스스로를 첫 번째 황제라는 뜻의 시황제로 자칭했다.
고대 중국의 연, 조, 위, 제, 한, 초 6국을 멸망시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왕조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약 2000년에 걸쳐 이어진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며, 따라서 중국 역사에 큰 자국을 남긴 인물이다.
진시황은 미신에 심각하게 집착했다.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거나 궁궐 구조를 전부 바꾸는 등 사기꾼들에 속아 국고를 낭비했으며, 자신의 무덤에도 재물과 인력을 낭비하여 거대한 무덤을 만든다. 지금 남아있는 진시황릉의 유물과 규모를 생각하면 진시황의 미신 집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시황제는 미신에 집착하게 되어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국력을 낭비하기 시작한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시황릉으로 <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즉위 직후부터 짓기 시작해서 통일 이후에는 70만 명(총인원으로 추정)을 동원해서, 수십 년간 나라에는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초대형 무덤을 만들었고, 결국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진나라는 호 때문에 망한다는 '망진자, 호야'(亡秦者,胡也)라는 점쟁이의 점괘를 믿고 수십 만명을 동원해서 흉노를 정벌하고, 만리장성을 쌓아 국력을 낭비하고, 불로불사에 집착해서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잡초를 사들이거나 고가인 경면주사와 수은을 사는 등 국고를 낭비하고, 최후에는 홍의동자 꿈을 꾸고 꿈속의 홍의동자가 자신의 나라를 빼앗을 거라는 해몽을 믿고 순행길에 올랐다가 병사하는 등 미신에 푹 빠져 버린다.
시황제의 미신에 대한 집착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불로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던 시황제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불로불사에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갖은 사기를 당하며 재정을 낭비했다. 특히 서복이라는 사기꾼이 동해 바다에 살고 있는 신선에게 불로초를 구해오겠다며 뻔히 보이는 사기를 쳤는데도 시황제는 그대로 속아 넘아가 서복에게 엄청난 양의 재물과 동남동녀들을 딸려보내 주었던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제주도의 서귀포시의 이름도 시황제의 불로초를 찾아 온 서불의 전설에서 나온 지명. 이외에도 수많은 사기꾼들이 돈을 노리고 불로불사의 약을 구해오겠다면서 시황제에게 돈을 뜯어 달아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시황제는 늘 속아 넘어갔다.
진시황은 암살의 위험을 두려워해 환관 조고가 없이는 누구도 자신을 만날 수 없게 했고, 그 탓에 조고의 권력은 비대해졌으며 진시황의 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법률 체계를 만든 이사마저도 조고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첨해야할 정도로 조고는 진나라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은 후 거짓 조서로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扶蘇)를 자살하게 만들고 막내인 호해(胡亥)를 2세로 세웠다. 그러고는 어린 2세를 속여 대권을 훔치는가 하면, 후에 다시 2세마저 죽이고 부소의 아들인 자영(子嬰)을 황제가 아닌 진왕(秦王)으로 세운다. 그러다가 끝내 자영에게 살해된다.
결국 진시황 사후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하였고, 진왕 자영의 목숨을 지켜줄 것을 약속하였다. 허나 유방의 뒤를 이어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이만한 아량이 없었고, 함양을 약탈하고 불태운 다음 진왕 자영(子嬰)을 죽여버렸다. 이로 인하여 진나라는 15년 만에 완전히 멸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출처 : 위키 백과 등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