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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들려오는 카리브해 시인의 노래
―앤서니 조셉의 《앨버트를 위한 소넷》
양 균 원 (시인, 대진대 영문과 교수)
I. 음악과 시 사이에서
앤서니 조셉(Anthony Joseph)은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교육자이며 음악가이다. 2007년에서 2021년까지 여덟 개에 달하는 앨범을 발표했고 1994년에서 2022년까지 다섯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소설집을 출판하였다.
첫 시집 《빗나간 곡조》(Desafinado)는 1994년에 출판되었고 둘째 시집 《테라가톤》(Teragaton)은 1997년에 나왔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게시된 작품 설명에서 시인은 둘째 시집이 “무의식의 언어”와 1년 가까이 씨름해온 실험의 결과라고 하였다. 그는 “진실한 텍스트, 더러 가려져 있으면서 심오하고 정직한 어느 텍스트”를 탐색하면서 동시에 시가 지면에서 어떤 “리듬과 형식”을 가져야 할지 의식했다고 밝히고 있다. 흥미롭게도 2009년의 셋째 시집 《새 머리 아들》(Bird Head Son)과 2011년의 넷째 시집 《라버 오케스트라》(Rubber Orchestras)는 동명의 음악 앨범과 함께 동시에 출판되었다. 앨범 《라버 오케스트라》의 타이틀곡 〈그리오〉(“griot”)는 서아프리카에서 특히 과거에 민족의 구비 설화를 이야기나 노래로 들려주던 사람을 가리킨다. 이 곡에서 “그리오”를 예찬하는 것은 아프리카 음악의 뿌리를 옹호하는 것이면서 시인 자신이 선택하고 추구하는 모종의 입지를 웅변하는 측면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시와 음악이 고향의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구어의 리듬에서 활력을 얻고 있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조셉이 구축하는 시와 음악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궁금해진다.
소설 데뷔작 《아프리카 기원의 미확인 비행물체》(The African Origins of UFOs)는 공상과학소설, 초현실주의, 신화, 메타픽션 등의 요소를 혼합하면서 트리니다드 방언의 리듬을 살려낸 실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어 소설로 분류되나 과거, 현재, 미래 사이를 오가는 시적 산문과 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와 산문의 경계가 흐려진 가운데 인종, 기억, 미래에 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키치》(Kitch: A Fictional Biography of a Calypso Icon)는 칼립소 음악을 탄생시킨 전설적 인물에 관하여 소설의 구조 속에 전기적 사실을 다룬다.
지중해의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Republic of Trinidad & Tobago)에서 1966년에 태어나 조부모의 슬하에서 성장했고 1989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아프리카계 이주민의 후손으로서 그리고 트리니다드 풍경과 칼립소 음악에 심취한 카리브해 섬나라 주민으로서 시인 조셉이 런던 시민으로 동화(同化)/이화(異化)되어 가는 과정은 제국주의 그늘이 드리워졌던 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주민의 고통, 혼란, 그리고 성장은 그의 문학과 음악에서 핵심적 제재를 이룬다.
조셉은 “스패즘 밴드”(Spasm Band)의 대표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음반 판매 웹사이트 “밴드캠프”(bandcamp)는 2011년의 앨범 《라버 오케스트라》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조셉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영국에 도달하기 전에 음유 시인, 구전 전설, 축제의 격동으로 가득한 섬에서 성장했다. 곧 도시인이 되었으나 고향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태양의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일곱 번째 앨범을 발표하던 당시에 한 대담에서 자신의 “매우 독특한 지위”에 관하여 “나는 유럽에서 카리브 음악을 하고 있어요 ... 디아스포라 상태에서 ...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 많지는 않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셉은 “칼립소, 초현실주의, 재즈, 조부모가 다녔던 아프리카계 침례교회, 카리브어 발화 리듬”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스스로 진단한다. 그의 작품은 언어의 실험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으나 그만이 다룰 수 있는 시적 제재와 독특한 목소리에서 우선 흥미를 끈다. 트리니다드 주민이 처해온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조셉의 가문에서 삼대에 걸쳐 있다. 남미의 입구에 자리한 트리니다드섬은 “스페인 항구”(Port of Spain)라는 시인의 고향 지명에서 드러나듯이 유럽의 열강들이 세력을 뻗쳤던 곳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거주해온 “태양의 사람들”이 고유하게 잉태한 문화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낸다. 저항과 극복과 긍정의 정신이 문학과 음악을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시인에게 활력을 주는 특유한 울림을 살피기 위해 그의 2021년 앨범 《부자는 인생을 쫓다 망할 뿐이지》(The Rich Are Only Defeated When Running for Their Lives)에서 대표곡 〈영국을 고국으로 부르는 일〉을 골라 그 가사를 먼저 살핀 후 최근 시집 《앨버트를 위한 소넷》(Sonnets for Albert)에서 세 편의 시를 선별해 읽는다. 《앨버트를 위한 소넷》은 2022년도 T. S. 엘리엇 시문학상(T. S. Eliot Prize) 수상 시집이다.
II-1. 〈영국을 고국이라 부르는 일〉(“Calling England Home”)
조셉은 아프리카계 후손이다. 그의 조상이 강제로 이주당해서 몇 대에 걸쳐 살아온 곳은 남미 입구에 자리한 카리브해 남단의 섬나라이다. 오늘날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는 애초에 원주민의 터전이었으나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내디딘 후 1498년에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1797년에 영국 함대에 굴복하여 1889년에 대영제국에 통합되었다가 1962년에 독립하였고 1976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조셉이 성장했던 섬나라는 아프리카계 이주민과 원주민의 고유한 문화가 풍성하게 발전해온 곳이다. 카니발과 디왈리(Diwali) 및 호세이(Hosay) 축제로도 유명하지만 칼립소(Calypso), 소카(Soca), 랩소(Rapso) 등과 같은 여러 음악 스타일의 탄생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Wikipedia).
노랫말 〈영국을 고국이라 부르는 일〉의 화자는 트리니다드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현재 런던에 거주하는 자로서 삼대에 걸친 이주의 역사를 노래한다. 노래를 구성하는 세 부분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화자 자신의 이주 경험을 함축한다.
흑인이었어, 1949년 이후 죽 이곳에 살았지
―이를 앙다문 런던 서부 억양으로, ‘쉬-엄 쉬-엄 해’ 말하곤 했지
우리가 보았고, 당신이 보았지
그가 지난밤 운하로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오늘 축제의 날에
그를 만나 기운이 북돋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가 패러마운트에서 겪었던
그 춤과 밴드 음악들에 관해,
당신이 백인과 섞일 수 없었던,
당신이 춤을 출 수 없었던 그런 장소들에 관해
얘기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런던을 ... 기억하는 일.
얼마나 가혹하게 채찍질을
당했던가. 샘 샐번은 말하지.
영국을 ‘고국’이라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60년 세월이 걸렸으니.
Black and been here since 1949
―West London jaw grind, ‘Take it e-asy’
We saw him, You saw him
walking along the canal last night.
And what a joy to buck up upon him
At the carnival today
To hear him speak about
the dances and the bands
at the Paramount,
the spots you couldn’t mix
with white in, or dance in.
Remembering ... London.
How he been slapped so hard
with the lash. Sam Selvon say.
And it take him 60 years
before he could call England
‘home.’
기록 문서로 보면 그는 틀림없이 1959년에 이곳에 왔지
꼬인 세상만사보다 더 오래 흐르는 게 시간이지
너무 오래전이어서 그는
횡단에 6주가 족히 걸리는
선박 갑판에
단벌을 걸친 채 납작한 트렁크를 들고 있는
한 어린이가 생각나지 않지.
우리는 그의 집 식탁에 둘러앉았고
나는 대충 상황에 따라 그를 영상에 담았지,
그는 할 말이 별로 없었고
내가 시에 집어넣을 만한 것은 아예 없었지,
대신에 그가 내게 보여줬던
사진들―다시키 셔츠와 페즈 모자를 걸치고
앰비언스에서 마이클 엑스와 함께 찍은 것들
밖에서는 밤이 밀려들었고
그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지
(우리도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영국을 ‘고국’이라
불러주기에는
He musta come here in black and white, 1959
time longer than twine
So long ago he don′t
Remember being a child,
Just a suit and steamer trunk
upon a ship which took
a good six weeks to cross.
We sat at his kitchen table
And I filmed him on the fly
but he wasn′t saying much
at least nothing I could put in a poem,
instead he showed me
photographs - with the dashiki and the fez,
With Michael X at the Ambience.
Outside the night came in
And he had moved so far away
(we had moved so far away?)
from calling England
‘Home’
난 1989년 이후 고향에서보다 더 오래 이곳에서 살았지.
봄철의 할레스덴이 생각나지.
크리클우드에서 멜리본 하이 스트리트까지
걸어가서 고기를 잘게 자르고
밀가루 반죽을 치대곤 했지.
식탁에서 손님을 접대하거나
스콘과 커피를 차려주도록 요구받은 적은 없지.
내가 일했던 곳은 지하실이었지.
하지만 나는 품위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방식으로
앞치마 두르는 법을 습득하게 되었고
첫해 여름 모퉁이 가게 위층에서
해적 방송되는 진귀한 재즈 리듬에 귀를 기울였지.
국가의 어떤 관념으로부터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
당신이 사는 곳을
‘고국’으로 부를 수 있으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I’ve lived here longer than home, since 1989.
Remember Harlesden in the spring time.
I used to walk from Cricklewood
to Marylebone High Street
to cut up meat to punch out dough.
I was never asked to wait tables
or to serve scones and coffee.
I worked in the basement.
But I learned to tie my apron
in a way that retained some dignity
And in my first summer above the corner shop,
I listened to rare groove on pirate radio.
I was flung so far from any notion of nation.
How long do you have to live in a place
before you can call it
‘Home’?
노랫말에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째 연에서 할아버지에 관하여 그리고 둘째 연에서 아버지에 관하여 그들의 런던 이주사를 회고하고 마지막 셋째 연에서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직접 진단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인 적이 있다. 이때 “대영제국 윈드러시 호”(Empire Windrush)를 타고 이주한 사람들을 가리켜 “윈드러시 세대”라고 한다. 1949년에 런던에 이주한 할아버지는 가혹하게 인종차별을 당해야 했다. 가사의 첫 행 첫 단어가 “흑인”이다. 첫 행 “Black and been here since 1949”은 한 문장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두 문장이 접속사 “and”로 연결되는 중문이다. “He has been black and been here since 1949”라는 문장이 축약된 형태로 보인다. 문장에서 화자의 할아버지를 지시하는 주어와 조동사가 생략되고 “Black”이 불쑥 내던져져 있다. 영국에서 죽 “흑인”이었고 그렇게 여기서 차별받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할아버지는 채찍질을 당해가며 런던 생활을 견뎌냈다. 그에게는 패러마운트 나이트클럽에서 재즈 음악에 맞춰 춤추던 즐거운 기억이 있으나 백인과는 아예 섞이지 못하고 춤도 출 수 없었던 그런 곳들에 대한 기억도 살아 있다. 이제 60년의 긴 세월을 거쳐 런던을 사랑하게 되고 고국 혹은 고향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고통의 기억은 남는다. 할아버지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사투리와 억양 그리고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일부러 삽입하고 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보다 10년 늦게 런던에 왔고 그가 겪은 차별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의 인생역정에 시에 담을 만한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화자는 가족의 역사에 관한 관심에서 그런 아버지를 영상에 담고 있다. “꼬인 세상만사보다 더 오래 흐르는 게 시간”이어서 세월과 함께 아버지가 성취한 모종의 평화를 읽어내려 애쓰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흑인 인권 운동가 마이클 엑스와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다른 시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어머니와 자식에게 살뜰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아버지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화자의 목소리에는 거칠고 투박했으나 자신의 방식으로 인생을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모종의 긍정이 묻어나온다. 흑인 이주자가 겪어온 부당한 처우에 저항해온 삶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동병상련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화자는 영국을 어떻게 고국으로 부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끈끈하게 맺어지고 있다.
1989년에 삶의 거처를 옮긴 화자는 현재 트리니다드에서보다 런던에서 더 오랜 세월을 살고 있다. 런던에 옮겨와 식당에서 그가 맡은 일은 손님을 직접 접대하는 일이 아니라 지하실에서 식자재를 다듬는 일이었다. 그렇게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도 무허가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재즈 리듬에 심취했고 그런 세월을 통해 런던 거리 곳곳에 동화되었다. 그에게는 어떤 국가의 개념도 생소하게 여겨졌을 듯하다. 영국이라는 국가의 테두리 안에 있으나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주민의 지위에서 화자는 가족 삼대를 대신하여 우리가 어떻게 런던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묻고 있다.
II-2. 〈조기 로드〉(“Jogie Road”)
《앨버트를 위한 소넷》은 시인 조셉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시집이다. 사람의 존재는 언젠가 잊히게 될 운명 속에 있다. 시인은 점차 사라지게 될 아버지를 자신의 시 속에 영원히 새겨두고 싶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시집 표지에는 물론 시들 사이에 아버지 사진이 간간이 등장한다. 소넷 형식을 취하는 가운데 각 시가 구체적 장소, 상황, 사건 등을 다루는 경우가 잦다. 소넷이라고 하지만 14행의 형식은 유지하되 리듬과 각운은 전통적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전체가 어울리고 있으나 각 시가 독립적이다.
살아온 인생에서, 거쳐온 사랑에서, 겪어낸 수치심에서.
조기 로드에는 삼나무의 결 그 섬유질 외양을 지닌
붉은 제재소가 있었다. 붉은빛.
오래된 기찻길과 다리
그곳에선 엄마의 분노가 어둠을 멍들게 하고 있었다.
엄마의 손톱이 잡아 뜯을 듯 덤벼들던 아버지의 셔츠, 얼굴.
이것은 피다: 아버지가 처음엔 그저 외면하다가
체념하여 두 손바닥을 펼친 채 시선을 내려뜨리던 방식.
하지만 기억에는 기이하게 찔러오는 통증이 있다.
붉은 제재소는 조기 로드가 아니라 실버밀에 있었고
대초원에서 베어졌을 때 우는 소리를 내는 새먼나무는
여섯 그루가 아니라 다섯 그루였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나를 무동 태워주셨다.
아니, 난 그저 길에서 위를 바라다보고 있었을 뿐.
From life, from love, in shame. The red
sawmill on Jogie Road with cedar grain
in its fibrous air. Red. The old train
track and the bridge where my mother’s rage
was bruising the dark. Her fingernails ripped
at my father’s shirt, his face.
This is blood: the way he looks away,
then down with open palms in resignation.
But memory has a curious sting. The red sawmill
was not on Jogie Road but on Silvermill.
And in the savanna there were five samon trees
which cried when cut, not six.
My father held me over his shoulder that night.
No, I was looking up from the road. (p. 10)
첫 문장이 범상치 않다. 두 차례 반복되는 전치사 “from”은 뭔가의 이유 혹은 원인을 가리키는 듯하고 이후에 오는 전치사 “in”은 그로 인해 혹은 그런 과정에서 처하게 되는 모종의 상황을 지시하는 듯하다. “삶”과 “사랑”이 이유 혹은 원인이 되어 처하게 되는 “치욕”은 무엇을 뜻하는가? 시인은 아버지의 시신을 대하는 순간을 다룬 시집의 첫 시 〈숨결〉(“Breath”) 이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수치심〉(“Shame”)과 〈수치심 II〉(“Shame II”)를 통해 아버지가 감추고 싶어 했을 법한 측면을 읽어내고 있다.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일반적인 애도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품어내는 방식에서 아버지는 인생을 열심히 살고 뜨겁게 사랑했으나 수치심을 감내하고 있기도 하다.
소넷은 둘째 행에서 곧바로 제재소에 대한 묘사로 넘어간다. “조기 로드”와 “실버밀 스트리트”라는 거리는 둘 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소도시 산후안(San Juan)에 있다. 두 장소는 부모의 갈등에 관한 기억이 배어있는 곳이다. 실버밀에 있던 제재소가 어떻게 해서 조기 로드에 있는 것으로 다가온 것일까? 화자 자신의 설명은 없다. 조기 로드는 화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가 갈라서는 과정을 겪었던 곳일 듯하다. 그가 제재소의 외양과 그 분위기를 묘사하는 방식에 주목해 보자. 아마도 그 제재소는 삼나무를 켜서 만든 널빤지로 외벽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화자의 기억은 그 나뭇결과 섬유질 질감이 만들어내는 붉은빛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있다. 제재소 주변을 오가면서 느꼈던 분위기와 부모의 갈등이 일으켰던 상처는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혼합되었을 것이다. 조기 로드 시절의 상처가 제재소의 거칠고 붉은 나뭇결을 통해 표상되고 있다. 기억의 혼돈을 바로잡는 순간에서 화자는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목말라하고 있었는가를 에둘러 고백하고 있다. 대초원이 어디를 뜻하는지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했던 아주 드문 순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어떤 기억은 소중하게 간직되고 때로 성장하기도 한다. 다섯 그루가 여섯 그루가 되는 것은 화자가 기억 속에 상주하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 결과일 것이다.
기억은 불안정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쉽게 흐려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화자가 아버지의 흔적을 단단하게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남아 있는 것이라도 확실하게 사진을 찍어 보관하듯 자리를 잡아주려는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 〈조기 로드〉는 불안한 기억이 실재와 그리움 사이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II-3. 〈엘 소코로〉(“El Socorro”)
“엘 소코로”는 카리브해 남단에 여러 섬으로 이뤄진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소도시 산후안(San Juan)에 소재하고 있다. 여러 섬 가운데 트리니다드는 시인 앤서니 조셉이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그의 시는 고향 섬의 지리적, 정치적 및 문화적 특수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어느 해 사월엔가 토요일마다 엘 소코로에 거주하는 아버지를 방문한다.
아프신 게 분명했고 다시 독신으로 사신다.
―5년의 여생이 덤으로 주어진다면, 그 시간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런 인생철학에서 그는 이곳으로 자그루프 레인에 있는 아파트 1층으로 옮겨왔다.
두 방 모두를 관통하는 햇살 속의 먼지. 낡은 가구.
접힌 옷가지가 쌓여 있는 낡아빠진 마분지 상자들 귀 닳은 성경책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약상자가 전부. 사진을 찍다가
아버지가 70대에 이르러 종국에 도달한 곳을 보니 슬프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실까?
내가 운전해서 약국에 모시고 가는 날 아버지가 약사의 마누라와
시시덕거리는 때 나는 그의 두 손을 사진 찍는다. 그의 두 손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의 팔뚝이 내 팔뚝,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첫 토요일에 아파트 치우는 걸 도와달라고
새어머니가 부탁하시나 난 그곳에 갈 수 없다.
In an April of Saturdays, I visit my father in El Socorro.
He is clearly ill and living again as a bachelor. His philosophy
―that if God gives him five more years, he wants those to be happy―
has brought him here to a ground floor apartment on Jagroop Lane.
Dust in the sun beams through both rooms. The furniture is old.
Cardboard boxes of folded clothes, his tattered Bible
and pillbox on the kitchen table. I take photos saddened to see
where my father has arrived in his seventh decade.
Does my father know he is dying?
When I drive him to the pharmacy I photograph his hands
as he flits with the chemist’s wife. What is it about his hands?
His forearm is mine, his fingers. The Saturday after he dies,
I cannot go when my stepmother asks me
to help her clear his apartment. (p. 39)
한 대담에서 시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곁에 있어 준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말하는 가운데 그의 부재가 자신의 존재를 키웠다고 말한다. 시집 《앨버트를 위한 소넷》은 자신의 근간에 뿌리내리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자리매김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고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자신의 성장에 끼친 아버지의 존재를 지면에 영원히 소환하기 위해 시인은 가물거리는 기억을 붙잡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자칫 애가에 치우치거나 개인적 소회로 느슨하게 풀어지기 쉬운 시적 제재를 조셉은 소넷 형식을 통해 간결하게 통제하는 힘을 보여준다. 시인은 대담에서 전통적 형식이 주는 기율의 힘을 이용하되 그 안에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다소 변화를 꾀하였다고 말한다.
위 시의 정황으로 보면 화자에게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는 든든한 어른이 아니다. 아버지는 이미 재혼했고 타지를 떠돌다가 70대에 이르러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죽어가고 있는 노인이 되어서도 약사의 마누라와 시시덕거리는 인물이다.
어쩌면 불만과 비판의 대상이 될 법한 아버지에 대해 화자는 원망은 묻어두고 동정심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마지막 5년을 행복하게 보내고자 혼자 몸으로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 옮겨와 있다. 화자-아들은 아버지가 변변한 세간살이 없이 불편하게 지내면서도 마지막 시간을 고향에서 보내려는 이유를 헤아리는 듯하다. 고향은 아마도 아버지가 힘든 세상의 파도를 헤치고 종국에 도달하는 항구일 것이다. 그곳은 화자에게도 그에 버금가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핏줄의 연대를 넘어 더불어 겪지 않아도 공유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서로 떨어져 살았어도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엘 소코로라는 공통의 터전이 작용하고 있다. 화자가 사진 찍듯이 그의 기억 속에 새겨두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팔뚝과 자신의 팔뚝이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자주 함께하지 못했고 곧 망자가 될 아버지가 자신에게 물려준 신체적 특성을 깨닫는 순간에서 화자는 그 뿌리를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 자세에서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이 어떤 것이든 그 모든 것들을 따뜻하게 품으려는 듯하다.
위 시 〈엘 소코로〉에서와 같이 한 편의 소넷은 아버지에 관한 일반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구체적 사건이나 상황이 시를 이끈다. 서정시의 범주에서 억누른 감정이 다소 새 나오나 애상에 흐르지 않고 그림처럼 거리를 두고 걸려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한 번에 쏟아지지 않고 시편마다 시적 형상화를 통해 객체화되면서 리듬과 호흡 그리고 간간이 삽입되는 다소 직접적인 표현 등을 통해 조금씩 묻어나온다.
위 시에서 화자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반복한다. 시집에는 표지를 비롯하여 곳곳에 아버지의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은 사라지는 것들을 현장에서 붙잡아 뒤에 남겨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가물거리는 기억의 시간을 붙잡고자 하는 화자의 간절한 욕망을 대변한다.
II-4. 〈포트오브스페인 종합병원 1〉(“P-O-S-G-H 1”)
포트오브스페인(Port of Spain)은 스페인 항구라는 뜻을 지니나 고유명사로서 섬의 북서쪽 해안에 자리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를 가리킨다. POSGH는 그 지명을 따서 지어진 종합병원 이름을 약어로 표기한 것이다. POSGH는 화자에게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이다.
이번에 첫 심장마비를 겪고서도 그 덩치 큰 사나이는
내게 붙잡을 희망을 주려고 세상을 하직해도 좋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병원 간호사들과 시시덕거리는 남자. 샬럿 가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항상 우유 타는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병원,
내가 처음으로 의식을 차린 바로 그 병원을,
고든 가 모퉁이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 들렸다가
불 피넛 펀치 음료와 맙시 비스킷을 산 후에
할아버지가 ― 1977년에 ― 의식을 잃고 앓아누운 그 병원을 방문했다.
창문으로 가득한 그 병원에서 시체 안치소 위로 솟는
푸른 연기를 보았고 저녁 비행기를 타려고 어머니 병상을
떠났다. 이틀 후 그녀가 두 눈을 힘들게 깜박이다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바로 그 예전 식민지 병원 가에 있는
추모 공원에서 아버지는 카니발 행렬을 볼 수 있도록
언젠가 내게 무동을 태워주신 적이 있다.
Having caught this first heart attack, the big man
gives me hope to hold, says he feels good enough to leave.
He flirts with the nurses. He is in hospital, on Charlotte Street,
the hospital that always smells of burnt milk and disinfectant.
That same hospital of first consciousness, where I visited
my grandfather after his black out and sickness ― in 1977 ―
after stopping with my grandmother on Gordon Street corner,
to buy the old bull peanut punch and Mopsy Biscuit.
The hospital of windows from where I watched blue smoke
rise from the morgue and turned away from my mother’s bed
to catch my evening flight. Two days later she blinked hard
into cancerous death. That same ex-colonial hospital
By Memorial Park where my father once lifted me onto his shoulders,
so I could see the carnival pass. (p. 76)
미국의 모더니스트 시인 스티븐스(Wallace Stevens)는 시가 “삶에 대한 상상력”(imagination of life)이라고 했다. 이 언급에서 유의할 부분은 시가 상상력이다, 혹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 상상력이 “삶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와서 자신의 생각이 그것의 분리할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버린 삶의 세부이거나 아주 강렬하게 느낀 나머지 그 느낌이 그것 속으로 들어가 버린 삶의 세부이다.” 스티븐스는 시적 경력 전반에 걸쳐 현실에 고착되지 않은 상상력이 호소력을 잃는다고 여러 차례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시인이 자기중심에서 생각이나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Necessary Angel, p.65-66).
이러한 스티븐스의 우려는 시인 조셉의 경우에 기우에 그친다. 포트오브스페인 종합병원은 화자 자신이 “처음으로 의식을 차린” 곳이고 아버지가 “첫 심장마비”로 입원한 상태에서도 간호사들과 농을 주고받는 곳이면서 “할아버지가 ― 1977년에 ― 의식을 잃고 앓아누운” 곳이다. 또한 그곳은 화자의 어머니가 “두 눈을 힘들게 깜박이다가 / 암으로 돌아가셨”던 곳이고 그 근처 공원에서 자신이 “카니발 행렬을 볼 수 있도록” 아버지가 “무동을 태워주신” 곳이다. 포트오브스페인 종합병원은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가족의 고통과 슬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화자의 생각과 느낌이 “아주 오랫동안” “아주 강렬하게” 배어든 “삶의 세부”여서 그의 존재에 핵심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품고 있다. 조셉은 시 쓰기가 “삶에 대한 상상력”을 언어로 영구히 재현하는 작업임을 예증한다.
III. 생명의 시: 시와 음악, 개인과 정치
가수 조셉은 〈영국을 고국이라 부르는 일〉에서 팽창과 욕망의 근대사를 헤쳐나온 이주자의 삶을 노래한다. 시인이자 가수인 조셉의 노래는 영국의 제국주의와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 정신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 글에서 필자가 노랫말을 소개하고 랩에 가까운 목소리를 설명하려 시도하는 것은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또한 음악가로서 활동하는 조셉의 작업이 시종일관하게 서로 연계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의 공연 실황을 직접 감상해 보기를 권장한다. 퍼커션과 색소폰의 연주는 그 자체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노랫말을 성공적으로 전면화한다. 시 낭송이 음악 연주와 협업한다면 이런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시인 조셉은 가족 및 종족의 뿌리와 유산에 관한 깊은 탐구에서 그리고 목소리에 울림을 더해주는 원초적 에너지, 서정적 공감 능력 등에서 매혹적이다. 카리브해 연안의 풍부한 문화적 토양에서 시적 영감을 받고 있고 생생한 삶의 양상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시의 원천으로 삼는다. 그의 시는 아프리카계 카리브 원주민의 정신, 개인이 만들어 가는 신화, 이주 경험의 복잡성 등을 섬세하게 엮어낸다. 조셉을 독특한 시인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통합하는 능력이다. 그의 작품은 제도적 억압, 인종주의, 불평등에 도전하면서 고난을 헤쳐나가는 회복력과 강한 생명력을 단련(鍛鍊)한다.
출처: Anthony Joseph. Sonnets for Albert. London: Bloomsbury Poetry, 2022.
Anthony Joseph 공식 홈페이지: https://www.anthonyjoseph.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