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귀검신(弓鬼劍神)-제9장 출행랑(出行狼) 수련(修練)-1
이미 겨울임을 알리는 듯 아침 느지막히떠서점심을먹고나면금새지곤 하는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는 것을보니아직점심때를 진않은 것 같았다.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푸르고구름한점없는화창한 날이다. 가만 있어도 기분이 상쾌해 질 정도로맑은날이와어울리지 않게 오만상을 찌푸린 사람이 있었다.
"어허....흔들리면 안된다도그러는구나....그리중심을못잡아서야 어디 밥이라도 먹을 수 있겠느냐?"
냇가 옆에 가지를 길게 뻗은 느티나무 아래에떡하니돗자리를펴고앉아 혼자서 술을 홀짝홀짝 마시던할아버지는계속해서고함을질러댔다.
한켠에서는 철면피가 잡아온 꿩고기가구수한냄세를풍기며 익어가고 있었
다. 철면피는 자신의 친구이자주인의모습이안쓰러운지소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제기랄...힘들어죽겠고만...밥도제대로안주면서냄새까지....미쳐버리겠네...."
소문의 이마에서는 한여름의 소나기 쏟아지듯긁은땀방울이줄줄흘러내렸다. 그런데 지금 소문의 모습은 과거와는많이달랐다.지금이시간이면 점심을 먹고 '포두이술' 연만에힘쓸시간이건만냇가에들어가서 뭘하고 있는 것인가?
소문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양쪽으로가볍게벌린손에는커다란 돌
멩이가 각각 들려 있었고 머리 위와어깨에도각각하나의돌맹이가놓여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들어 가볍게들어올렸는지물위로무릎의 끝이 살짝 드러나 보였다. 평지에서도 이런자세로는오래버티기가힘든법인데, 물속에서 그것도 유속이 아주 빠른물속에서다리하나를들고서 있음에야... 흔들리는 것은너무나당연했다.하지만할아버지에게 그따위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앞으로 반 시진만 참으면 된다. 고작 반시진을참지못하여굶어서야 되 겠느냐? 꾸욱 참거라...."
할아버지가 얄미운 것은 하루 이틀이아니었지만연신술과꿩고기를 뜯으
며 약을 올리는 모습을 보자진짜내할아버지일까....하는생각이 들정도였다.
소문이 냇가에서 이런 해괴한 짓을 한지도벌써두어달이지나갔다.그동안 오전에는 '포두이술'을 연마하고 이렇게 해가중천에뜨면냇가에서이 상한 짓을 했다. 할아버지 말로는'출행랑'을익히는중요단계라했지만 소문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어쩌랴...울
며간장먹기로 어쩔수 없이 따르는 중이었다.
소문의 고생문은 그가 출행랑을 연마하기시작한첫날부터이미예고되었
다.
"출행랑은 위력이 뛰어난 만큼 익히기가 쉽지않다.어제시범을보여준 것
처럼 그렇게 순간적인나아감(出)과물러섬(退)은폭발적인다리힘이 있어야 하며 그런 힘을
적절히 뒷받침 해 줄 수있는기의흐름이필 요하다. 출행랑을 자세히 살펴보면가까운거리에서 의순간적인이동시 즉, 도약할 때를 제외하고는 보폭의 별로 크지않다.하지만먼거리 를 이동하게 되는 경공법으로 쓸데는 한보의길이가약7,8장에이른다.너는 이 차이를 무어라 설명하겠느냐?"
"힘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그말도 일리가 있지만 힘의차이라기보다는기의운용방법에 차이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경공법에서는힘의안배차원에서기의흐름을 비교적 느리게 천천히 하여 그 기운이끊어지지않고계속해서이어지게 하는 반면에, 보법에서는 기운을 일순간에끌어모으기위해서,기의 흐름을 평소보다 빨리 하여 힘을 모으는데용이하게한다.물론이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수도있을것이다.이것이 일반적으로 보법과 경공법이 같이 쓰이지않는이유가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깨뜨렸기 때문에 출행랑은보법과경공법이두가지
방면에서 모두 쓰고 있는 것이다.
출행랑을 시전하면 전후 좌우 어느 곳을 가더라도막힘이없이물흐르듯 자
연스럽게 이동을 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그만큼발을빨리움직여미리 방향을 잡아두어야 한다. 움직인다고해서마구잡이가아니라 그방향과 순서를 따라야 함을 잊지 말아라.또한 출행랑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앞뒤로의순간이동은겉으로보긴 엔 단순 도약으로 보이지만 도약을 하여발이땅에서떨어지더라도그 도중에 발은 계속해서 방향과 순서에 따라움직이고있다.그러한발놈림 과 몸안에 흐르던 기가 일치되면 그폭발력이밖으
로표출되는데표출되는 그 힘이 그렇게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보법으로 출행랑이 이와 같다면 경공법에서는이런한보법이단지확대 되어 사용한다는 것과 이에 가속력을 쓴다는 것만 알면된다."
"가속력이라니요?"
"이리를 보자. 이리는 가까이에 있는 먹이를사냥하고자할때엔몸을 움
추릴 대로 움추려서 한번의 도약으로 모든사냥을끝낸다.그러나멀리이
동을 하거나 혹여 사냥감이 도망이라도 칠랍시면처음몇걸음은 잰걸음으로 쫓아간다. 허나 이는 앞으로내게될폭발적인속도를미리준비하는 것으로 이런 준비단계가 끝나면몸은점점빨라지고보폭은 점점 늘어나게 되어 순식간에 사냥감을 따라잡고사냥을끝마친다.
출행랑 또한 이와 같다. 처음엔 보법으로시작한발의움직임이점차로 그
보폭을 넓혀 5장 6장을 한번의발걸음으로나아가는것이다.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이후에는 별로힘을들이지않고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보폭은 달라지지만발을뻗는방향과방법은 항상 보법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꼭 명심하여라..."
"예 할아버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우선내가하는것을잘보고 따
라하여 그 '보로(步路)'를 몸에 익히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소문이아직어리고무공 이 미약한 관계로 자세히 볼 수 있도록한동작씩끊어서움직였는데할아버지의 발이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땅에발자국이푹푹파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땅에 남겨진 발작국의 방향들이모두다제각각이라는
것이었다.소문이 눈대중으로 대충 훑어보니 전후좌우로난발자국이모두180여 개에 이르렀다
"지금 찍힌 발자국이 네가 앞으로 시전하게될출행랑에서쓰는방향과발을
찍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내가 점점속도를높여볼터이니 잘 보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처음엔 아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움직였으나점차그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동에서 서로 서에서동으로동서남북을오가며똑 같은 발자국을 밟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가히압권이었다.몸에서자연적인 기가 뿜어져나와 주위를 감쌌고내딛는발걸음마다힘이넘쳤다. 특히 보보마다 이어지는 동작이 너무나자연스러워마치하나의 춤을 보는 듯 했다. 소문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지금 시전하는 모습과 어제의모습이사뭇다릅니다.그 이유 가 무엇인지요?"
문득 어제의 일들이 생각난 소문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헐..."
소문에게 출행랑의 시범을 간단하게보이고느긋하게돌아오던할아버지 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험험...어제 내가 너에게 보여준 것은 출행랑의최고경지인순간이동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어제는 몸이과히좋지않아충 분한 도약력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몸을굽혀도약력을얻은후에 순간이동을 시전하였기에 그러한 자세가나온것뿐진정한출행랑의 모습은 아니었다."
'제길...실수다...이따위 말도 안되는변명에속아넘어가는바보가세상천지 어디 있을까?....,'
자신의 한심한 변명에 후회를 거듭하며소문을바라보는순간할아버지는
이 모든 걱정이 그저 단순한 기우에불과하다는것을깨달았다. 어제의 그 이상한 모습의 출행랑을 보았던 소문은그위력에감탄을거듭 했지만 그 엉거주춤한 개구리자세는 영마음에내키지않았다.그런데 오늘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준 출행랑은자신의이런염려를한순간 에 날려버렸다. 자신이 원하던 모습에서 대만족을하고있었다.조금만 생각해봐도 뭔가 이상한 점이 있을 텐데,그런생각은아예해보지도 않는 것을 보니, 개구리자세에 대한 소문의실망이얼마나컸는지 익히 짐작이 갔다.
'휴....이놈이 더 이상 토를달지않아다행이로구나....요놈아!내가 어제
도 오늘처럼 시전 했어봐라...니놈이 불만을갖나...그럼어제네가느낄 수
있었던 공포, 두려움을느끼지못했을걸....진정한출행랑의위력을보여주기 위해서 행한 어쩔수없는나의노력이었느니라...카카카'
역시 어제의 그 모습은 할아버지의계획된연출이었다.그것도모르고 공포에 놀라 오줌까지 지린 소문은 이런할아버지의속을아는지모르는지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 앞에 멈추어 섰다.
'우선 앞으로 갔다가 후퇴를 한 후 다시 좌로 가서는.....'
보기엔 쉬워 보였으나 막상 자신이시전하려하니찍혀있는발작국을 따 라 가는 것도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에구구...."
"어....어이쿠..."
몇 발자국도 가기 전에 몸은 중심을 잃고쓰러지기일쑤였고,온몸에 신 경을 곤두세우고 발자국을 따라간다 싶으면기의순환이여의치않아
가슴이 답답하여 더 이상 나아갈 수가없었다.그렇게쓰러지고포기하기 를 몇 번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땀으로범벅이된소문에게들려오
는건 어김없는 할아버지의 호통이었다.
"이런 밥통같은 놈을 보았나...니놈보고 스스로하라는것도아니고그저 발자국을 따라가라 이른 것뿐인데 어찌 이리 헤메는것이더냐!"
할아버지의 이런 호통을 주식으로 삼아밤낮으로넘어지고구르기를수 천
번...마침내 한번의 일주를 끝마칠수있었는데일주일이란시간이 지난 뒤였다.
"겨우 고까지껏 한번지나가는데일주일이나걸린단말이냐...너같이 둔 한놈
을 가르치는 내 인생이불쌍하다....게다가그꼬라지는머냐?한번 지나고 나서 그리 힘들어 해서야....에잉...."
하두 미련하다...멍청하다는 소릴 듣게 되자소문은자신이정말무공에 는
소질이 없을지도 모른다고생각하여상당히의기소침했다.하지만 그런 소문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경악에 가득차 있었다.
'머냐...이놈은...천고의 기재라던 지아비도1달이걸리고나는달반이나
걸려 겨우 한번 일주를 했을뿐인데....저놈은일주일밖에안걸리다니...
험험....허나....'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지만 그걸 바라느니 여자가남자로변하는걸기 대하지....에잉...잘 들어라 이놈아...아무리훌륭한내공을지니고있어 도그 흐름이 원할하지 못하면
오히려 스스로를해친다.지금내꼴이그 러하지 않느냐? 한발을 내딛을 때마다 기의흐름또한일치시켜나아가야 함에도 그저 미련스레힘으로만나갈려하니...내가니놈의내공을 금제했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두었다면벌써폐인이되었을것이다...미련 한놈"
"예? 금제...라니요?"
'아차 이놈의 주둥이가 또....에휴또어설픈변명을해야하나,....'
"내가 네놈의 몸에 금제를 한 것도 아닌데왜이리기의흐름이원할하지 못
하느냐 이말이다...."
"아..예....죄송합니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난 할아버지는등줄기에흐르는식은땀을인식하 며 말을 이어갔다.
"내공이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막힘이없어야하거늘지금네모습은 어떠하냐? 네가 비록 천하에둘도없는내공심법인'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를 익히고 있다지만제대로운용을하지못함에야.....아차...."
"예....'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라니요......"
지미럴.....또....'
할아버지의 안색은 이미 똥을 씹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험....내가 아직 너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실상네가어렸을때부처 익 혀왔던 내공법은'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였다.좀더지난후에
얘기하려 했건만 기왕지사 알게 되었으니 말을 해주마....
너도 알다시피 '無爲功(무위공)'을익히기위해선반드시반야심경도해를 함
께 익혀야 한다. 하지만 불문의 무공이란본시익히기는쉬우나경지에
이르기가 몹시 어렵다. 이는 자비와 선을바탕으로하는불문무공의 특징으로 무공을 머리로만 익히고 그 기교를배우는것이아닌무공이 지닌 본질을 몸으로 깨닫고 자연스레 체득해야만비로서그무공의 진정한오의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나이를 먹고 세속에물들다보면자연히머리를굴리게 되어있다. 해서 나는 네가 세상을 알기전에우선몸으로'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를 체득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너는아직이무공의 구절 도 모르지만 다른 어떤 고승에 못지 않게수련
이깊다.앞으로도구절따위에는 신경쓰지 말고 지금껏 몸으로익혀왔던감각을 기억하고 정진하도록 해라.. 알았느냐?"
"예 할아버지....한데 제가 생각하기엔 그수준이아직초보단계에이르고 있
는 것 같습니다. 몸이 건강해지기는 했지만내공이라해봐야아주미 미하고.....할아버지 말씀대로 깊은 수준엔이르지못한듯합니다만.,...."
소문이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할아버지는회심의미소를짓고있 었
다.
'이놈아 네가 네놈의 거의 모든내공을금제했으니당연한것을...헌데 어 느새 8성을 넘어서고 있구나...잘못하면 금제가풀릴수도있으니오늘밤한번 더 살펴야 겠어...,.'
"그것은 원래 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의 특징이라할수있는것으 로 10성이 넘지 않으면 내공이 별로 모이지않는다. 네수준이아직 미약함이니 신경쓰지 말아라..그나저나...."
할아버지는 말을 하다말고 소문을 예리하게 째려보았다.
"말이 엉뚱한 데로 흘러갔구나...."
하지만 시작이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뭐라 말은 하지 못했다
"발자국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가슴이 답답할것이다.이는앞서말했이
기의 흐름이 원할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기라는것은물과같아평소 에는 잠잠하다가도 한번 성을 내면감당하기가어렵다.당연히조심스럽 게 운용해야 함이 이치이거
늘 너는 어찌 했느냐? 그저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에만 힘을 쏟느라고기의흐름과순리도무시 한채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기를 너무 급격히이동을시켰다.몸에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네가어느정도의경지에이른다면 네 마음이 가는 곳에 기가 이미 준동 해있을것이나...그런수준에이르지 못했음이니.... 너무 앞서가겠다는 마음을버리고네가
평소에수련할 때처럼 자연스런 기의흐름에몸을맡겨보거라....아마도아까보다는좀 더 편안할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그런 충고가 있었음에도발자국을따라한번완주를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고....기의흐름에신경을쓰다보면여 전히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내 너를 정복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또다시 땅바닥에 뒹굴며 낑낑대는 소문은사방으로퍼져있는발자국이 철천
지 원수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소문이 마침내 아무 별다른 무리 없이 발자국을 완주할수있게된것은 그
로부터 한달이 지나서였다. 일보를내딛을때마다제멋대로날뛰던 기는 별다른 저항 없이 소문
에게 힘을실어주었고마구꼬여댔던다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하하하...드디어 해냈다...면피야... 내가 해냈다...."
몇번의 완주에도 몸에 아무런 무리가 없자 소문은기쁨에겨워어느새
날아와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철면피를붙잡고환호성을질렀다.하 지만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알고나 있는지철면피는반응이없었다.
"이놈아 그거 하나 해내고 무에 그리 즐거워하느냐?이제서야가장기초
적인 과정을 지났건만....앞으로는어찌할려고....암튼이제제법기의 흐름도
다룰 줄 알고 보로도 익혔으니본격적으로다음수련으로넘 어가자...
이번에는 너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마...이제시작될수련은새로운것을 익히
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익혀왔던 것을보다숙달시키는것이다.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장일반적인방법인데발목과허리 에 각각 쇠를 매달고 뛰는 것으로 매일 조금씩그무
게와거리를늘려 나간다. 다른 하나는 물의 반발력을 이용해 익히는것으로집앞에흐
르는 냇물에서 하게 될 것이다. 너는그중어느것을선택하려느냐?"
말을 마친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있는소문을힐끗쳐다보았다.
'네놈은 틀림없이 내 생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암'
"두번째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걸췌...역시....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구나....귀연넘'
소문의 대답에 쾌재를 부르는할아버지였다.도대체무슨이유로....
수련방법을 상의하고 두 조손이 움직인 곳은집앞에흐르는야트막한 냇 가
였다. 비록 수심이 낮고 물이 많지는않았지만산에서흐르는계곡물 이다보니 그 물살이 상상
외로 거셌다.
"들어가거라...."
소문은 바지를 걷을 것도 없이 냇가로들어갔다.비록물은차가웠지만 한겨
울에도 이물에 목욕을 하는 소문인지라별문제될것이아니었다. 소 문은 할아버지의 다음 말
을 기달렸다.
"네가 이 방법을 선택했으니 불만은없으리라믿는다.우선이돌들을 가 져
다가 머리에 하나 그리고 양어깨에 하나씩 올려라."
할아버지가 주신 돌을 받아보니 밤톨만한 조약돌이었다.
'뭘 시킬려구 그러는지....'
소문이 돌맹이를 어깨와 머리에 올리자기다렸다는듯이수박만한돌덩
이 두 개를 더 들고 오는 할아버지였다.
"손을 이리 내거라..."
'젠장 무겁겠는데....'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손을 내민 소문에게느껴진것은돌맹이의묵직 함
과 뭔가 모를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보기좋게맞아떨 어졌다.
"지금까지의 수련이 그 보로와 기의흐름을숙지하는단계였다면여기서 는
그것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과정이라 할수있다.오늘부터너는 이 냇가를 따라 보법을 시
전하여 저 위의 바위에이르러야한다.그시간 이 얼마가 되었던지 네가 바위에 이르러야수련
이끝남을명심해야한다
. 많이도 하지 말고 하루에 한 시진을 연마하되그시간이되어끝나 는 자
리가 다음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명심할것은손은물론 네 어깨와 머리 위에 올려
진 돌이 떨어지는 순간네가이동한것은 인정되지 않고 다시 이 자리에서 시작을 해야한다.그
럼지금부터시작해
보거라..."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변할 때사람들은자신의예지력에감탄을 하 기
보다는 한숨을 내쉰다. 소문 또한이런인간의범주를벗어나지는 못하였다..
'내 이럴줄 알았다.어쩐지불안하더라니...이게무슨수련이야...괴롭히기
지....젠장....'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시키는 대로 해야지.,... 소문은 조심조심 땅을 밟
아 나갔다. 아직은물살이세지않아서그다지 어렵지 않게 나아갈 수 있었다.
'어라...생각보다는 쉽네....좋았어...빨리 끝내버린다'
하지만 소문의 이런 생각에 치명타를먹이는할아버지의한마디가들린 것은
그가 약 2장을 나아갈 때였다.
"한가지 말을 안했구나...연습시간을 하루에한시진이라정했듯이네가 하루
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오장이다. 너는한시진에오장이상을가서는
아니 되고 한 시진이 되기 전엔 결코수련을멈추어서는아니된다.
알겠느냐?"
"켁....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어떻게 한시진을걸으며고작삼장에 머 물 룰
수 있습니까?"
소문은 하고 황당하고 이해도 안되어 재빨리 되물었다.
"흠 네거 요즘 제법 반...문....을많이하는구나....머리가좀컸다.. 이말이 렸
다....좋다...인정해주마....안 그래도힘들것이니...나라도네투정을 받아주어야 하겠지....헬헬헬.....
어떻게삼장밖에안가냐고?잘보거라..."
소문의 반문에 은근한 경고를 던진 할아버지는곧이상한행동을했다.
'머냐...저건....지미...내가미치고말지...어떻게저런짓을,,,,'
소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소문이본것이무엇이기에....
할아버지가 한 행동은 아주 간단했다. 그저 다리 하나를들었다가내려
놓았다. 하지만 한번 올라간 다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그렇다고 아예 멈추어져 있는것도 아니었다. 조금씩아주조금은아래로 .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할아버지가 다리를 내려 놓는데만 걸린시간이무려일다경....
소문은 망연자실했다.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저 하늘을 원망할 밖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돌멩이가 움직이지않느냐?다시첨으로돌아가 고
싶은게냐? 그건 님 맘이다만...."
뜯고 있건 꿩고기가 바닥이 났는지 할아버지는아까보다더욱더큰소리 로
떠들어댔다. 당장이라도 돌을집어던지고싶었지만죽기는싫은지라 꾸욱 참았다.
"휴...우..."
무사히 오장을 지나온 소문은 돌들을내려놓으며안도의한숨을쉬었다.
오늘로 이짓이 두 달째,...이제는 끝이 보이려구 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에는 단오장을벗어나지 못해 번번히제자리걸음을 해야
했다.
그럴때마다 할아버지는전가의보도인 금식이란 무기를휘두루며소문을 더
욱 몰아부쳤다.
처음으로 오장을 돌파했을 때 느낀 그 감동을소문은죽어도잊지못할 것이
다. 다음 날 바로 처음으로 돌아보고 말았지만....
암튼 앞으로 남은 거리는 이제 삼장... 내일 하루면이모든것을끝낼 수 있
을 듯 싶었다.
궁귀검신(弓鬼劍神)-제9장 출행랑(出行狼) 수련(修練)-2
하루만 더 하면 끝이 날 듯 보였던 수련은 하늘의 방해로 칠일을 더 해야만했다.삼장을 남겨놓고 마지막으
로 시도했던 그날 예기치 않은 폭우로 냇가의 물이 급격하게불어났다. 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은 그 힘
이 실로 대단하여 내공이 금제 당하고있던(물론 자신은 아직 모르지만) 소문의 힘으로는 견디기에는 역부족이
었다. 결국버티지못하고 뭍으로 올라온 소문에게 던진 할아버지의 말은 간단 명료했다.
“도로아미타불....”
물이 다 빠지고 냇가가 안정을 찾자 소문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칠일만에 무사히 목표 지점인
바위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흠...근 두어 달간 고생이 많았다. 직접 행하는 너도 힘들었겠지만 그걸안타깝게 바라보는 나 또한 고역이
었느니라....”
안타깝게라....소문은 하도 기가 막혀 말도 안나왔다. 그동안 굶은 밥과 얻어먹은욕이얼만데... 허나...그저 분노
의 눈길로 할아버지를 쏘아보았을 뿐이다. 그런 소문의눈초리를 의식한 듯 할아버지는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험...험....자...그럼 다음 수련에 앞서 그동안 네가 수련이 어느 정도에이르렀는지 한번 짚어보고 가도록 하
자꾸나...”
할아버지와 소문은 집 뒤 분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문은 자신이 얼마나성장했는지몹시 궁금했고....할아버지
는 할아버지대로 자신의 수련 방법을 의심하는 소문을제이차 수련에 앞서 그 마음을 약간은 달랠 필요가 있었
다.
흐르는 물이다보니 냇가는 아직 얼지는 않았지만 장백산은 이미 한 겨울이었다.산정상에는 이미 새하얀 눈으
로 덮여 있었고, 분지 주변의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뿐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아직 눈이 내리지 않
았지만 분지에는 밤새 깔리 서리가하얗게 덮여 있었다.
“여기서 한번 출행랑을 펼쳐보거라. 이미 그 보로와 기의 운용 방법은 익히알테니 내따로 언급은 하지 않
겠다.”
은근히 긴장이 됐다. 자신이 지금껏 한거라곤 처음엔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었고 이
후에는 냇가에서 할아버지의 꼬장을 감당한 것뿐이었다.과연이것들이 얼마나 효용이 있었는지 계속해서 의심
을 해온 터에 막상 이렇게 시전을앞두자 소문이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소문은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그리고는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막힘은 없었다. 지금껏 해온 것이 보로와 그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기의 흐름아니었던가... 눈을 감고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물속과는 달리 몸 또한마치 새가 된 듯 가벼웠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 몸이 움
직이자 소문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떴다.
그리고 방원 10여장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움직이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보고서도믿을 수 없었다. 가장 기본
적인 방위를 밟으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형은눈으로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소문은 그동안 물속에서 거북이보다 느렸던 자신의 움직임에 치를 떨며 눌러왔던울화를 화산폭발 하듯 뿜어
냈다..
이쪽에 있는가 하면 어느새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숨쉴 틈 없이 움직이며
시전하는 소문의 출행랑은 지난번 할아버지가 보여준 것과비교해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내공이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하니 소문이 내공이라도 찾는 날에는....
“그만하면 되었다. 제법 훌륭하게 익혔구나..."
한창 신이나서 출행랑을 연습하던 소문에게 들려온 말은 할아버지의 칭찬이었다.
‘칭찬...이라.....’
소문은 자신이 태어난 이후로 할아버지의 칭찬을 들은 적이 있는가 더듬어 보았다.결단코 없었다.
‘이게 무슨 변이랴....할배가 칭찬을 다해주고....나의 보법이 그리 훌륭했더란말인가....하하하...이것참,,,,’
생전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넋이 나가 혼자 웃고 있을때 그런 소문을 바라보는할아버지의 입술엔 회심의 미
소가 걸려 있었다.
‘흐흐....요넘아...그리 좋아 할 것 없느니라....낚시꾼은 대어를 잡기위해선자신의 손가락이라도 미끼로 쓰는
법이니....’
“자... 이제 출행랑의 기본적이 요소는 충분히 갗추었으니 앞으로는 기본적인보로에서 벗어나....응용하는
방법 또한 익히도록 해라....그것은 네 자질과 노력에 달린것이다....”
“예. 할아버지.....그런데 지난번에 보여주신 그 순간이동은 어떻게 하면 되는것인가요?”
떡본 김에 제사지내라고 소문은 내심 계속해서 순간이동을 염두한 모양이었다.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에
겨웠던 소문을 얼음물에 던지는 듯 싸늘했다.
"바보냐? 이넘아...지난번에 그 순간이동이라는 것이 단순 도약이 아니라 도약한이후에도 계속 발을 움직이
는 것이고, 발놀림과 몸안에 흐르던 기가 일치되면 그폭발력이밖으로 표출되는데 표출되는 그 힘이 그렇게 빠
른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설명한 적이 있을 것이다....그렇지?"
"그런데요?"
"그런데요?....에라이....네놈은 밥상을 차려줬음 됐지...밥까지 먹여주길바라느냐...염치없는 넘 같으니라고...기
의 흐름을 빨리 하여 도약하는 방법과 힘은 기르면 되는것이지...어떻게 하는 것이기는....그저 죽어라 연습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뭘 더바라느냐? 따라오너라"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 말자 몸을 홱 돌려 분지를 벗어나 산 위로 올라가기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저리 방
방 날뛸 때는 그저 가만히, 죽은 듯이, 납작 업드려야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문이었지만 용기를 냈다
(절대 만용이었다).
"그럼 이제 출행랑의 전수는 끝난 것입니까?"
소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는 10여장의 거리를 점하고 소문의 눈앞에나타났다.
"끝나다니...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지 않았느냐? 흠....또냐? 냉큼 씻고오너라....에그냄새야..."
할아버지는 못 마땅하다는 듯이 소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코를 막고 있었다.
'젠장...이게 무슨 꼴이람....'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가는 소문의 가는 발걸음이 영 이상했다. 바지를 움켜쥐고엉거주춤 걸어가는 폼이 꼭
뭐 묻은 강아지 꼴이었다.
그 것은 순전히 소문의 만용이 빗어낸 결과였다.
'출행랑의 전수는 끝난 것입니까?'라니... 소문의 입장에선 당연한 질문이겠지만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죽을죄였
다. 그래서 간단하게 응징을 한 것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출행랑을 시전하면서 살기를 내뿜은 것인데...그 위력은과거와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휴...대단한 넘....살기에 눌려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도 빠져나가려고하다니...하마터면 망신을 당할뻔 했
네....'
할아버지가 안도의 숨을 내쉬듯이 소문도 이번은 호락호락 당하진 않았다. 배우면써먹으라고... 같은 출행랑은
익혔기에 할아버지의 기운을 감지하는 순간, 좌우로신형을 움직이며 빠져나갈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내공과
그 화후에서 할아버지를 감당할수는없었다. 결국 그 살기에 잡혀 오줌은 물론이고 똥까지 싸는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하지만 소문을 잡기 위해 할아버지가 펼친 출행랑이 구성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 그리억울하지는 않았
을 것인데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소문에게는 없었다.
소문이 옷을 갈아입고 산에 오르자 웬 움막 앞에서 소문이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아까의 망신스런 기억이
떠올라 쭈뼛거리며 올라오기를 망설이자 그런 소문을 보고할아버지는 지체없이 호통을 쳤다.
"냉큼 올라오지 못하겠느냐? 해 지겠다....느려 터져서는..."
소문이 움막에 도착하자 그 정경이 한눈에 보였다. 이 움막은 겨울이나 그밖에기후가안 좋을 때 사냥꾼이 잠
시 머무르기 위해서 지어 놓은 것으로, 이곳은 원래 곰이살던 동굴이 있는 곳인데 소문의 선조들이 곰을 쫓고
사냥꾼을 동굴옆에 움막을 만들었다고하기도 했다.
움막에는 다른 특별한 구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다한 취사도구와 잠자리가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움막 앞에는 제법 평평하고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이는사람들이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암튼 이런 움막이 수련과는 무슨 관계가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왔는지는 짐작이 안갔다.
"지금부터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서 출행랑을 익히도록 해라. 내가 이미 지낼동안먹을 음식과 이불은 준
비를 해두웠다. 나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며 밥이며빨래며네 모든 수발을 들어줄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말고
수련에 힘쓰도록해라...알았는냐?"
"옛? 예..할아버지..."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일곱 살 때부터 해오던빨래며 밥을 해주겠다니....기쁘기
에 앞서 걱정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기에 안 하던 짓을 하신댜....'
"따라오너라"
할아버지가 소문을 이끌고 데려간 곳은 움막안이 아니라 그 옆의 동굴이었다.옜날에곰이 살았다고 했던가.,..
동굴치고는 상당히 넓었다.
길이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넓이로 따지자면 움막 앞의 마당보다도 더넓어보였다. 움막은 와 봤으
나 이곳은 첨인지라 신기한 듯 이곳저곳 살펴보던 소문이좀더깊이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으악,...!"
갑자기 비명을 지른 소문은 할아버지 곁으로 뒷걸음 질 쳤다.
"느...늑대예요,...."
소문이 떨리는 목소리로 지적한 곳에는 과연 잿빛 늑대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앞으로 네 수련에 도움을 줄 녀석이다. 친해지도록노력해보거라...."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소문에겐 결코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다.
"예....그게 무슨 말인지....수련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요..."
소문이 영 내켜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잠시후 할아버지는입구쪽으로 몸을 돌리셨다. 이때
만을 기다려온 소문은 재빨리 동굴을 벗어나려 하였다.하지만 막 동굴을 벗어나던 소문은 뭔가 찝찝한 기분에
뒤를 바라보았다. 소문의 행동에어이가 없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할아버지가 소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꼬리를
말고다시동굴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앞에선 소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흠....너는 당분간 예서 지내게 될 것이다. 저기 이불보따리도 미리 가져다놓았고 먹을 양식과 물은 매일
같이 내가 넣어주마..."
"예? 아예 여기서 나오지 말라는 것인가...요?"
"그래 당분간 '포두이술'의 연마는 접어두고 '출행랑'의 수련에 힘을쏟거라...여기가제법 넓으니 보법을 펼
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저....늑....대느...은요...?"
설마 했다. 그 설마가 소문을 잡았다.
"물론 같이 있게될 것이다. 늑대가 비록 사납고 빠르다지만 네게는 출행랑이있지 않으냐?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실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전과 연습은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말을 듣고 보니 딴에는 그럴 듯 했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게 되나요?"
"네가 출행랑의 완성을 보는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은 네 스스로 알게 될것이다."
"그럼 난 이만 나가야 겠다. 이놈아 너무 그리 걱정하지 말아라...겨우 늑대 한마리 아니냐....한!마!리!.....그
래도 이빨은 무섭더라만....".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문을 보며 할아버지는 격려 같지도 않은 격려를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두
꺼운 나무로 된 문을 걸어 잠갔다. 물론 손자를 위해 묶여있는늑대의 줄에 일지(一指)를 날리는 수고는 기꺼이
감수를 했다.
"끼기긱..."
육중한 뭄이 잠기자 마자 소문은 한가지 간과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까는 문이열려있어 밝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동굴안을 살필수 있었지만 문이 닫힌 지금은 상황이전혀 달랐다. 빛이 차단된 동굴은 소문이 손을 뻗
어 자신의 손바닥을 봐도 식별 할 수없을 정도로 어두웠고, 그 적막감은 이제 겨우 열 한살이 되어가는 소문
이 견디기엔너무나 공포스러웠다.
"꽝꽝꽝!!..할아버지....할아버지..."
닫힌 문을 두드리는 소문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문의울먹이는 목소리는 어느새
절규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는 할아버지의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소문이 그렇게 울며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할아버진 동굴 바로 밖에서서 소문의절규를 무표정한 얼굴로 듣
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담담한 얼굴과는 달리 문을 가로지르고있는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견디어야 한다. 네 아비도 그랬고...나도 그랬다... 같은장소는 아니지만 출행랑을 익히
려면 누구나 한번은 겪는 시련이니.... 허나...네가 거길나오는 날이면 선조들이 이리 해왔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허....첫눈이로구나....이런 날 술 한잔이 없을 수 없지.... "
하늘에서는 소문의 앞날에 염려와 축복을 해주는 듯 탐스러운 눈발이 날리고있었다.
궁귀검신(弓鬼劍神)-제9장- 출행랑(出行狼) 수련(修練)-3
"빌어먹을 염강탱이....어떻게 수련이라는 방법들이 다 이모양이지.......앞으로무얼더 시킬지 겁난다...겁나....
흥...그나저나 하나도 안보여서야...이런데서 무슨수련을 하라고...."
.
문 위에 조그마하게 뚫려 구멍을 통해 희미한 빛이나마 들어오고(문이 처음 닫힐때는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
저 깜깜하기만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어둠에도 제법익숙해졌다. 게다가...한참을 그리 울고 나자 마음이 조
금은 진정되는 듯 했다. 이해를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이렇게 갇히고 보니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어차피 갇힌 몸,.. 하루 빨리 수련을 마치고 나가야 되는 데....어쩐다...'
소문이 수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를 굴릴 때였다.
'어라....왜 이리 기분이 찝찝하지....마치 할배가 뒤에 서서 노려보는 것 같네그려....'
우느라고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아까부터 은근히 밀려오는 살기...음산함을이제서야눈치를 채고 천천히 몸을
돌려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막 몸을 돌리던 소문이 그자리에서 문직임을 멈춘 것은 공중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두 개의 불꽃을 본 후 였다.
'헉...이게 왜 여깄어?....이런....제기....할배!!!!!!!!'
할아버지가 동굴을 나가며 소문 몰래 풀어준 늑대가 어느새 소문의 일장 뒤에까지접근하여 소문을 시퍼런 안
광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늑대가 소문에게 접근한 것은 이미오래 되었지만 소문이 하도 발광을 떨어 제 딴에
는 은근히 경계를 하는 바람에아직까지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언제라도 뛰어오를 수 있도록 몸을 있는데
로 잔뜩웅크리고 길다란 송곳니를 내 보이고 있었다. 이런 늑대의 모습을 소문이 막발견하였으니...
숨은 꽉꽉 막혀오고 손가락 한 개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잠시동안 이런 소문과늑대의기묘한 대치는 계속 되
었다. 하지만 소문이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상황은 묘하게흘러갔다. 미처 다 돌리지 못하고 중간에서 뒤틀려있
었던 허리에서 경련이 일어났기때문이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지체했다가는 도망도 못 가보고 그대로 늑대의 저녁거리가 되기에 딱 좋았다.
'미치겠네...어찌한다...조금만 움직여도 덤빌 것 같은데...그렇다고 이대로있음 일각도 못 가고 주저 않을
것 같은데....'
소문의 머리는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하지만 뾰족한수가나올 리 만무했다. 자신
이 비록 무공을 익혔다지만 그것은 권이나, 도검이 아닌궁...게다가 지금은 그것마저 없는 상황이니....
'제길 활만 있었어도 문제도 아닌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결국 지금 소문이 믿을 만한 무공은 '출행랑'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늑대를 풀어준 의도도 그런 것이리라...
소문은 자신을 여기에 가둔 할아버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암만 그렇다고 해도 하나뿐인 손주에게 늑대를 던져두고 가는 할배가 세상천지어디있다냐...그래도 출행랑
이면....'
소문은 발가락을 살며시 움직여 보았다. 아직은 견딜만 했다. 하지만허리에서부터 시작한 경련이 거의 허벅
지에 이르르자 더 이상 지체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간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늑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심호흡을 했다. 기의 흐름은 아직까지는 원활했다.
"하앗..."
"컹"
소문이 기합과 동시에 뒤로 물러나자 웅크리고 있던 늑대도 재빨리 소문에게덤벼들었다. 다행이 간발의 차로
날카로운 이빨을 피한 소문은 뒤로 물러나던 탄력으로동굴의문을 박차고 늑대를 단숨에 뛰어넘어 반대로 넘어
갔다. 늑대 또한 재빨리 몸을 돌려재차 소문을 공격해 왔다.
동굴의 중앙은 제법 넓었다. 어두워서 뭐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출행랑을펼치는데 어둠은 아무런 장애가 되
지 못했다. 또한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것이라곤출행랑뿐이었다. 보로에 따라 신형을 움직였다.
한 순간의 실수가 목숨과연결되는지라소문은 한발 한발을 신중히 움직이고 싶었다.
그러나 늑대는 그런 소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좀처럼 여유를 주지 않았다.전후좌우를 바람같이 움직이는
소문을 결정적으로 잡지는 못했지만 이미 소문의 몸 곳곳에크고 작은 상처를 입혔다. 소문이 비록 출행랑에
익숙하고 실수 없이 시전하고있었지만본능적으로 사냥감을 쫓아오는 늑대의 감각은 소문의 능력을 상회했다.
게다가몸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좀처럼 늑대의 사정거리에서서 벗어나지 못했다.
'큰일이다. 이러다 잡히겠는데.... 어떤 방법을 구하지 않는다면.,...'
잠시도 쉬지 않고 무려 한 시진이나 쫓고 쫓기는 실강이를 계속하자 소문은 지칠대로지쳤다. 몸은 무겁고 다
친 상처의 고통도 그를 자극했다. 발걸음은 발걸음대로무뎌지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이 그나마 버티는 것은 출
행랑의 효용도 효용이지만다행히도 늑대의 발걸음 또한 처음보다 많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소문은 결심을 했다. 비록 활밖에 배운 적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내공을 익혔으니권장의 위력도 제법 있으리
라....그래서 더 이상의 도망보다는 공격을 통해 늑대를물리쳐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평소의 소문이라면 어림
도 없는 생각이지만 더 이상 버티는것이무리였던 소문에게 남은 것은 악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공
격을 하진않았다.
'허점을 찾아야 해...허점을....'
날카로운 눈으로 늑대의 허점을 찾았지만 집요하리 만큼 계속되는 늑대에게서약점을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
지 않았다.
'옳지....이때다...'
마침내 참고 참던 소문에게 기회가 왔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몸을 움직이던 소문의어깨를 노리며 달려드는
늑대의 허연 아랫배가 소문의 눈에 잡혔다. 소문은 있는 힘을다해 주먹을 날렸다.
"악!"
하지만 소문의 주먹보다는 늑대의 이빨이 먼저 적중을 했다. 엄청난 고통이 왼쪽어깨에서 느껴졌다. 소문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그 주먹은 힘의태반을잃은 별 위력이 없는 주먹이었다.
'제기랄...끝이군....'
자신도 믿지 못할 주먹의 위력에 자신의 최후를 느꼈다.
'며칠후면 열 한 살인데...고작....여기서...'
문득 지금까지의 짧은 생애가 작별을 고하듯 머리를 스쳤다. 좋은 것은 생각나지않고맨날 할배한테 구박 받
던 것만 떠올랐다.
'제길 죽는 마당에까지....'
소문이 이렇게 삶을 포기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컹!...."
소문의 연약한 주먹이 어디에 적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의 어깨를 물고 있던늑대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
고 뒤로 물러섰다.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늑대가물러나다니...이렇게 되자 놀랜 것은 오히려 소문이었
다. 늑대가 왜 물러났는지 도무지영문을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소문을 물었던 늑대가
뒤로 천천히물러가는데 그 자세가 영 엉거주춤 한 것이다.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오라...요놈의 늑대새끼....어떠냐? 아프지...다시 한번 덤벼보거라...다시는오줌도못 싸게 해주마...카카카"
늑대는 수컷이었다. 소문이 엉겁결에 뻗은 주먹이 우연히도 늑대의 급소를때렸고...일순 힘이 빠진 늑대는 눈
물을 머금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약한 충격에도 물러서야하는 수컷의 비애....그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
가지인 모양이다....만약암컷이었다면...
소문이 저리 웃지는 못할 것이다.
늑대의 처음 공격은 어찌하여 막아냈지만 결코 안심할 수는 없었다. 곳곳의상처들...특히 마지막에 물렸던 어
깬 살이 한 웅큼이나 떨어져 나가는 큰 상처를 입었다.게다가 몸은 지칠대로 지쳐 움직일 힘도 없었다.
늑대가 물러나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소문은 운기를 시작했다. 이건 모험이었다.비록 늑대가 물러나긴 했지
만 이렇게 무방비로 운기를 하다니...만약 이때 늑대가공격을한다면 소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소문도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어차피 다시 공격을 받는다해도 막아낼 힘이 없었다. 운기라도 해서 체
력을기르지않는다면.,... 그래서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인데, 늑대도 많이 지친것인지 소문의 운기가
끝날 때까지 그런 소문을 노려만 볼 뿐 한쪽 구석에서 움직이지않았다. 늑대에겐 불행한 일이었으나 소문에게
는 하늘이 도운 결과였다.
소문과 늑대의 요상한 동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서로가 기력을 찾을 때마다죽어라공격하고 도망다니는(소
문은 어깨를 한번 물린 이후로는 반격이란 어설픈 짓을 하지않았다) 동굴 안의 풍경은 천하에 보기 힘든 괴사
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동굴의상황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 위태롭게 쫓겨만 다니던 소문이 이제는
제법쫓아오는늑대에게 욕도 하며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혼자 쳐먹으니까 맛있냐? 이 그지 같은 넘아...그래 배터지게 먹고디져라.....나쁜넘의 시키...."
고래고래 욕을 하는 소문의 모습은 어딘지 이상했다(내용도 이상하고...). 소문이원래가 살이 안찌고 마른 체
질이지만 지금 보니 동굴에 온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눈은쾡하고 들어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온몸이
삐쩍 말라 거의 가죽만 남았다. 누가보면 무덤에서 튀어나온 시체로 착각할 만큼 괴상망칙했다. 그 이유는 어
쩌면당연했다.
동굴에 들어와 잠은커녕 휴식을 취할 때도 소문의 시선은 항상 늑대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게다가 이놈의 늑
대가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해대는 통해 이를 피하다 보니살이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는데, 보다 큰 문제는
소문이 동굴에 들어와 먹은 것이라고는동굴 천장에서 흘러 내려오는 약간의 물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었다.
원래 매일 같이 식량을 넣어 주기로 했던 할아버지가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을 주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동굴의 문을 열고 소문에게 직접 주는 것이아니고 문 위에 조그만 구멍을 통해 안에다 집어던
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피하느라고정신이 없는 소문보다는 는대가 그 음식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번번히들어오는 음식을 빼앗기자 소문의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아직은 방법이 없었다.그저자신의 출행
랑이 하루빨리 저 늑대의 속도를 압도하는걸 기대 하는 것 뿐....또다시며칠이 흘렀다.
"카카카....요놈아...어림도 없다...네놈에겐 돌아갈 건 내가 먹고 버리는부스러기뿐이다...."
막 들어온 식량을 챙긴 것은 늑대였지만 그것을 먹기도 전에 다시 빼앗아 온 건은소문이었다. 요 며칠 소문
의 출행랑은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미 늑대의 위협으로부터안전을 지킨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한번 들어오는
식량도 대부분이 소문이 차지했다.지금처럼 늑대가 차지 한 것도 빼앗아 와버리니 늑대와 소문의 위치가 완전
히 반대가되어버렸다...
"흠...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모양이구나...하지만 진짜는이제부터다...준비를 서둘러야겠구나..."
문 밖에서 소문의 외침을 듣던 할아버지는 뜻 모를 소릴 하더니 동굴 앞에서빠르게 사라졌다. 예의 그 출행
랑으로....
"아..잘잤다...."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는 소문의 얼굴엔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소문이일어난자리엔 어제까지만 해도
소문과 먹이를 다투던 늑대가 길게 누워 있었다. 앞발과뒷다리가 모두 꽁꽁 묶여 있었고, 입엔 재갈이 물려 있
었다.
"따뜻하니 좋고만....카카카"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소문만 쫓아 다녔던 늑대가 쓰러진 건 어제 밤이었다. 그동안 늑대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죽도록 그냥 나 두고 싶었지만 이제는 별루위협도되지 않았고...늑대가 사라지면 심심도 할 것 같
았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먹이를 준 다음 자신의 베개 삼아서 하룻밤을 보냈다. 소문은 누워 있
는 늑대에발길질을 했다.
"얌마...일어나...언제까지 퍼질러 잘꺼야...?"
지금은 비록 힘이 없었지만 혹시 몰라서 엉덩이를 쭈욱 빼고 언제든지 도망갈자세를취하고 결박했던 끈들을
풀어주었다. 소문이 끈을 풀고 멀찍이 물러서자 그제서야천천히 몸을 일으킨 늑대는 동굴 한구석으로 걸어가
더니 다시 몸을 뉘었다.
"엥...저놈이 왜 그러지...나한테 잡힌게 쪽팔렸나...."
늑대의 반응에 공격을 대비해 긴장하고 있던 소문은 맥이 탁 풀렸다.
"그럼 인제 뭘 하지...혼자 수련하는 건 별 재미없는데...."
소문이 영 싱겁다는 투로 말을 할 때였다.
"끼이익...."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발견한소문은 고개를 냅다 돌려 버렸다.
"흥..."
"허,..이놈아...할애비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 될 것 아니냐?"
토라지는 소문을 보고 할아버지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을 했다.
"뭐라고요? 할아버지...? 세상 어느 할아버지가 늑대굴에 손주를 밀어 넣어요?나참....
어이가 없어서..."
"이놈아...그게 다 수련 아니냐?"
"수련요? 내가 잘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음 오래 전에 늑대놈에게 잡혀먹었을걸요...."
"에라이.. 미련한놈아...할아버지가 너처럼 미련 한 줄 아느냐? 내 너를 여기집어넣을땐 다 생각이 있어서
였다. 네가 충분히 극복하리라 의심도 않았고....암튼결과적으로너는 살아있고 오히려 좋은 수련이 되지 않았느
냐?"
미안해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할아버지를 보는 소문은 어이가없었다.
"관두자구요....암튼 수련이 끝났으니 나가고 되죠?"
대답도 듣기 전에 어른 동굴을 빠져나가려는 소문의 의도는 할아버지가 꺼낸곰방대에의해 가로 막혔다.
"끝나다니? 벌써? 이제 시작인데...."
"에이....인제 저런 늑대는 무섭지도 않고요...저놈이 날 따라오지도못해요...." "허...나..참... 저 늑대는 나이
가 들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놈이거늘...벌써부터 기고만장해서야...,..."
"예? 늙었다고요?"
늑대가 늙었다는 말에 깜짝 놀라 반문을 했다.
"내가 첨엔 네 수준을 보고 늙고 약한 늑대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제 실력이 꽤늘은것 같으니 여느 늑대를
상대해도 괜찮겠구나..."
소문은 그저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잘 들어라...네게 이런 수련을 시키는 것은 출행랑을 능숙하게 시전하는능력을 키우는 것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네게 살기를 심어 넣기 위함이다"
"살기라니요...."
"이미 너는 출행랑을 다 익힌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技)를익힌 것이지, 심(心)을 익히지
는 못했다"
"......"
소문은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출행랑이면출행랑이지....
기는 뭐고 심은 뭔지....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다만 기(技)는 지금까지 네가 익혀온보로(步路)나 기의 흐름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말함이고, 심(心)이란 지난번 내가 너에게 보여준것처럼 상대방의 전의를 상실케하는 투기(鬪氣)
를 의미한다. 지금 네게 절대적으로부족한것이 바로 투기이다. 너는 이곳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그 부족한 투기
를 키워야 할것이다"
"제가 이미 늑대와 며칠을 보냈지만 그다지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는데요...."
소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비록 늙은 늑대지만상당히강했고 빨랐다. 처음엔 상
처도 많이 입었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기도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투기라든가...뭐...이런 것이
생겨났다고는 생각하지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에 의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네 마음속에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네가 진정한의미에서의 공포와 두려움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말한 투기라는 것은 위의모든것과 싸워나가며 극복해야 만이 얻을 수 있
는 것이다. 내 말을 무슨 말인지알아듣겠느냐?"
"예...."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것이 뇌리에 와 닫지는 않았다.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목숨을 걸 수도 있음에야...."
전혀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는 할아버지가 약간은 이상하게 보였다.
"한번 해 보지요...."
"앞으로 동굴에서 함께 지내게 될 늑대는 한 마리가 아니다. 또한 지난번처럼늙고 약한 놈도 아니다. 늑대
의 수는 매일 한 마리씩 늘어정확히 100일이 계속될 것인 즉,동굴안에 들어가는 늑대수는 모두 100마리가 될
것이다. 너는 기회가 닿는데로 늑대를죽여야만 한다. 네가 만약 손에 인정을 두어 늑대가 한두 마리씩 살아 남
는다면종래에는 동굴이 온통 늑대로 뒤덮여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제부터는식량도넣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늑대도 마찬가지....너를잡기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니 특히
주의하여라"
할아버지의 말은 한마디로 늑대와 소문의 생존 경쟁이었다. 소문이 죽든지 늑대가죽든지....
"네가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낸다면 출행랑의 완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기가 넘치고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소문이었지만 천성적으로 착한 소문이었다.무공수련을 위해서라지만 많
은 살생은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죽을 수도있는것이지만....
"그 동안 힘들었을 것이니 오늘은 움막에서 푹 쉬고 수련은 내일부터 하도록하자꾸나..."
앞으로의 생활이 얼마나 험할지는 소문보다 할아버지가 더 잘 알았다. 자신도 이미50여년 전에 소문이 걸어
온 길을 걸어 왔음에야...
하지만 조용히 대답하는 소문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오늘부터 하지요....들어가겠습니다"
".........."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소문에게 조그만 칼 하나를 내어주었다. 무언의승낙을 받은 소문은 그 칼
을 받아 품에 넣고는 천천히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앞에서잠시뒤를 돌아보았다. 천지사방이 온통 새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이 왔었구나....'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풍경을 뒤로하고 소문의 조그마한 몸은 동굴의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
다.
처음 들어온 늑대는 소문에게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환경에먼저자리잡고 있는 소문이
두려운 듯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조용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에 들어온 늑대의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동료가 하나둘 늘어가면 행동반경
이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들끼리 약간의 다툼이있었는데 마치 우두머리를 뽑는 듯 했다.
하지만 소문은 이것이 폭풍전의 적막임을 느끼고 있었다. 사흘을 굶은 자신도 배가고픔을 느끼건만 늑대야
오죽하랴...처음 들어온 늑대의 눈은 이미 충혈 되어 있었다.
동굴 안에서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진 날은 첫 늑대가 들어오고 꼭 5일이지난날이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늑대들이 첨으로 공격한 상대는 참으로 의외였다. 소문이아니라...소문에게도, 새로 들어
오는 늑대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던 늙은 늑대였다.전투는 너무 싱거웠다. 이미 죽을 날을 기다리던 늙은 늑대는
반항도 못하고 쓰러지고 형체도알아보지 못하게 갈갈이 찢겨 다른 늑대의 허기를 채워주게 되었다.
여지껏 가만히 앉아 있던 소문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가장 먼저 늙은 늑대에게덤볐던 놈이 찢겨 흘러내리
는 내장에 주둥이를 가져 갈 때였다.
"더러운 놈들.....아무리 미물이지만 어찌 자신의 종족을 잡아먹는다는말이냐...."
문득 그 늑대가 쓰러지며 쳐다본 것이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알고 지낸지며칠 되지 않았고 그나마
사이도 좋지 않았지만, 미운정이라도 쌓인 것일까? 소문은자신을 바라보는 늑대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았다. 아
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소문이움직인 것은 늙은 늑대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소문은 자신도 어쩌면 저리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량도 없고 늑대의수는 계속 늘어날 것인데 자
신을 대신해 죽어줄 다른 어떤 것도 동굴 안에는 존재하지않았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싸우기라도 할 것인가...소문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자신의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늑대의 수를 줄이고 또 운이 좋다면 허기진 배를 채울수도있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크르르르르...."
소문의 움직임을 감지 한 것일까? 늙은 늑대의 몸을 정신없이 탐닉하던 다섯마리의 늑대들의 행동이 일순 멈
추고 서서히 소문을 바라보았다. 소문이 다가오자 일순행동을 멈추었던 늑대들이 긴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 거
렸다. 소문은 할아버지가 준 단검을단단히 움켜쥐고 천천히 발을 놀렸다. 동작은 느렸지만 이미 출행랑의 보법
은시작되었다.
"카...오오"
잿빛의 몸통에 검은 줄기가 섞인 늑대가 허연 이를 들어내고 달려들었다. 역시할아버지의 말대로 늙은 늑대
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또한 달려오면서 뿜어내는살기란....
소문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잠시 움찔거렸다.
'이건가...그 투기라는 것이....'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는 공격이었다. 소문이 늑대를 피해 신형을 급히 좌측으로틀었을 때는 날카로운 이빨
이 어깨 죽지를 한번 핥고 지나간 뒤였다. 단지 옷 위를 스친것이었음에도 단번에 피가 쏟아졌다.
'아차....생명이 경각인데...딴 생각을...'
소문의 자신의 경솔함을 질책했다. 하지만 후회는 항상 늦는 법. 자기들 종족의피를 보고, 다시 한번 소문의
피까지 보게되자 늑대들은 이성을 잃었다.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공격은 꿈도 꾸지 못하고 소문은그저있는 힘을 다해 발을 놀
릴 뿐이었다. 세상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죽기엔너무나억울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크흑...."
소문의 등에서 또 한번 피가 솟구쳤다. 소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더 이상피하는것도 힘들었고 피도 너무
많이 흘려 정신마저 혼미해왔다. 그런 소문을 비웃기라도하듯이 늑대들의 공격은 그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마
치 사냥이 끝난 먹이를 눈앞에 둔듯한모습이었다.
공격을 잠시 멈추고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소문의 주위를 맴도는늑대들...일순 늑대들의 눈동자를 본 순
간 소문은 오기가 생겼다.
'빌어먹을 놈들...끝났다... 이건가....오냐...하지만 내가 한놈만이라도 같이나와 같은 꼴을 만들어 주리라....'
소문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무수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용케도 놓치지않은 단검에 마지막 힘을 싣고
목표물을 점찍었다. 처음 자신을 공격한 검은 줄무늬가 있는늑대였다.
"하앗....!"
소문의 몸은 마치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빠르게 튕겨져 나갔고 어느새 단검은 그늑대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크.....르....르..."
정확하게 목 줄기를 찔렀는지 늑대는 잠시 으르렁거리다가 이내 쓰러져 버렸다.소문또한 마지막 남은 힘을
썼는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죽는 일만 남은 것인가....크크크'
조용했다. 소문이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늑대들은 좀처럼 소문에게다가오지 않았다. 이상한 생
각에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떠보았다. 늑대들은 어느새 뒤로물러나 아까 죽였던 늙은 늑대의 몸뚱이를 먹고 있
었다.
'흠...일단은 살았다는 것인가....일단은...좋다 네놈들이 나에게 시간을 준다면내 다시 살아나주지....'
소문이 늑대들이 물러 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늑대의 입장에서 보면 소문은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존
재였다. 하지만 이미 먹이도 있고 의외의 발악으로 동료도죽임을 당하자 자기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가 움찔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이늑대들을 이끌 우두머리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그 우두머리
는 이미소문의칼에 죽임을 당해버렸다. 그래서 잠시 뒤로 물러나 배를 채우면 사태의 추이를살피는것이었다.
'살아주지....살아....'
소문은 다시 한번 단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자기 앞에 놓인 늑대의 다리를잘랐다.
그 모습을 본 늑대들은 잠시 적의를 보였을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리하나를 자른 소문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넓은 곳에 있다가포위공격을 당하면 소문만 위험해지기 때문에 최
대한 자신이 유리한 곳으로 이동을했다.
자리를 잡은 소문은 다리에 천천히 입을 가져갔다.
"욱....우웩"
엄청난 노린내와 피비린내가 풍겨져왔다. 하지만 먹어야 살 수 있었다. 늑대들을쳐다보았다. 태연하게 자신의
종족을 먹고 있었다. 소문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다시입을 가져갔다. 참기 힘든 노린내와 피비린내가 그를
되롭혔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가더강했다.
소문이 동굴에 들어와 먹은 첫 번째 음식이 자신이 죽인 늑대가 돼버린순간이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늑대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늑대 한마리가 들어왔다. 이제는 소
문의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어제는 운이 좋아서 한마리를 죽이고 자신도 살 수 있었지만 다시 다섯 마리...
자신은 계속 지쳐가기만 하는데늑대들은매일 같이 쌩쌩한 놈이 들어오고 있었으니....좀더 시간을 주면 도무지
감당할자신이 없었다.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하면 안돼....기회가 닿는데로 죽이라고 했던가....'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동굴에 들어오기 전에 해준 말이 생각났다. 늑대들이 모이는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소문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이곳저곳이아프고 쑤셨지만 어제의 전투를 생각하면 상당히 양호한
몸 상태였다. 처음의 늙은 늑대에게물린 어깨의 상처가 워낙 깊어 은근히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은 제법 살이
돋아있었다.
요령은 같았다. 한놈을 정한 후 재빨리 다가가서 지난번처럼 해치우기로 마음을먹은소문은 무리에서 약간은
떨어져 누워 있는 놈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바람같이다가갔다.
"컹...."
그놈 또한 어제의 늑대처럼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제서야 사태를파악한 늑대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문도 어제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심오해지는 출행랑과 단검의 날카로움을 무기 삼아 몸에는 다시 많은상처를 입었지만 그럭저럭
버텨냈다. 늑대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늑대들도소문의단검에 조금씩 상처를 입자 상당히 경계를 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점점 지나도 소문과 늑대들의 생활은 매일같이 이런 양상이었다. 소문이어떤수를 쓰던지 매일 같이
한 마리의 늑대를 죽이니 늑대들의 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계속 네 마리가 유지되었다. 소문이 한 마리를 선
택해 죽이면 달려들어 싸움이시작되고그만두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늑대들은 소문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소문은 소문대로 긴장의 끊을 절대 놓지않았다.
벌써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며칠인지 몰랐다. 다만 싸움이 잠시 진정되거나 자신이죽인늑대를 다른 늑대들이
먹어치울 때, 그 짧은 시간 그때마다 조금씩 휴식을 취할뿐이었다.
벌써 소문이 죽인 늑대수가 90여마리에 이르렀다. 매일 같이 상처를 온 몸에도배를 했지만 절대 치명상은 입
지 않았다. 그것이 소문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결정적인이유였다. 그리고 소문은 이 시간동안 몇 가지의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그 동안 기본적인 보로에만 묶여있던 출행랑이 이제는 그때의 상황에맞추어 최적의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응용력을 키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하루에
한 마리를없애야하는 소문이 택한 방법은 늑대가 미쳐 손을 쓰기도 전에 다가가 단검을 목에 박는것이다. 그
러기 위해서는 폭발적인 도약력과 그에 상응하는 기의 흐름이 필요했다. 만약평범하게 수련을 했다면 그것을
이리 빠르게 익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어나 자신의목숨이 걸린 일이다보니 겉으로 들어난 힘은 물론 잠재력
까지 힘이란 힘은 다 끌어다썼다.
그 진보가 빠름은 당연했다.
세 번째는 이렇게 늑대와 생활하며 목숨의 위협을 받고 싸우며 늑대를 죽이는생활이반복되다보니 소문 자신
도 모르는 살기가 은연중에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나순간적인이동을 통해 늑대에게 달려 갈 때 지니는 필살
(必殺)의 기도는 소문의 살기를 더욱강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미 그 살기를 통해 소문이 늑대에게 달려 갈 때에는 표적이 된 늑대가 겁에 질려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소문이기에 다른 늑대와싸울 때는 아직 그 효용을 다 쓰지 못하고 있었
다.
"질겅.. 질겅...이놈은 좀 질기군...."
자신이 막 죽인 늑대의 허벅지를 뜯는 소문은 예전의 소문이 아니었다. 눈은늑대와 마찬가지로 살기로 번들
거리고 온몸은 이미 말라 굳은 피와 새로 묻은 늑대의 피로범벅이 되어있었다. 살을 씹는 소문의 입에서도 핏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누군가보았다면지옥의 악귀를 본 듯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악귀...'
할아버지한테 불만도 많고 속으로 욕도 잘하긴 했지만 순수하고 착하던 소문은어느새사라지고 그저 죽이고
싸우는 것만을 갈구하는 악귀의 모습으로 점점 변해갔다.자신의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여기 들 어 온지 며칠
이 되었는지...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다만 소문이 불만인 것은 며칠 전부터는 더 이상의 늑대가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
른 놈을 목표로 하여 다가갔지만 지금 남아있는 다섯 마리의늑대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늑대들이라 소문도 도저히 잡을 수없었다.
늑대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니 자신이 나갈 때가 된 것을 느꼈다.나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
었다.
소문은 단검을 들고 한구석에 모여 있는 늑대들에게 다가갔다. 늑대들은 털을곤두세우고 경계를 했다. 여지껏
소문이 이렇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 늑대들도 이제는결판을 낼때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소문을 포위했다. 엄청
난 살기를 뿜고 으르렁거리는 다섯마리의 늑대...그 런 늑대에게 포위되어 동굴 한 가운데에 단검을 들고 있는
소문...그러나 소문이 뿜고 있는 살기는 늑대들의 살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이런 대치가 꽤 지났음에도 서로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어설픈 움직임은 바로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이었
다. 결국 먼저 움직인 것은 늑대였다.
"크...엉..."
두 번째로 동굴에 들어온 늑대였다. 다른 놈은 몰라도 이놈만은 기억했다. 자신의등줄기에 길다란 흉터를 남
겨 준 놈이니까...소문의 숨통을 단번에 끊으려는지 정면에서목줄기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뒤와 좌우에 있던 놈
들도 각각 소문의 몸을 노리고달려들었다. 하지만 소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달려오는 늑대들이 아니었다. 정
면으로달려오는 늑대의 뒤에서 잔뜩 몸을 낯추고 있는 늑대였다.
온몸이 붉은털로 덮여 있는 이 늑대를 끝으로 더 이상의 늑대가 동굴에 들어오지않았다. 붉은 빛의 늑대는
마지막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자마자 무리의우두머리가 되어 버렸다. 또한 이놈이 들어온 이후 소문
은 더 이상 늑대들을 죽일 수도없었다.
이놈은 소문이 조금만 움직여도 어느새 경계를 하며 이를 들어내었다. 그리고싸움에 있어서도 다른 늑대들과
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무작정 덤비는 것이 아니라 다른늑대의 뒤에 숨어서 소문의 허점을 집요하게 노렸다.
이놈이 들어 온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이놈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한 것이 지금까지의 지내온 날에서 처한 것보
다 더 많았다.당연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의 공격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소문의 발이 부산하게 움직였다.정면에서다가오는 늑대의 이빨을
고개를 틀어 피하고 그대로 몸을 전진시키며 늑대의 배를어깨로 받아버렸다. 비록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지
만 한 몸 빼내기엔 충분했다.소문이 앞으로 나아가자 순간 목표를 잃었던 늑대들 또한 재빠르게 쫓아왔다. 공
격하고피하기를잠시동안, 문득 소문은 여지껏 자신을 노려보던 붉은 색 늑대가 사라진 것을깨달았다.
'아뿔싸,...실수다...'
소문이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한번 시야에서 사라진 그 늑대를 발견하기란좀처럼싶지 않았다. 그때 또 한
번 공격이 있었다. 자신의 신형이 좌측으로 움직이고있는데 정면으로 달려오는 늑대가 보였다. 소문은 슬쩍 몸
을 피하며 단검으로 그 늑대의목줄기를 찔렀다.
"컹...."
정확하게 목줄기를 찔린 늑대는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한놈'
소문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였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살기가 소문을엄습했다. 순간 당황한 소
문은 잽싸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남은 세 마리의 늑대가자신을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아냐....붉은놈,...그놈을 찾아야 하는데....빌어먹을...'
아무리 주위를 기울여도 그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문은 다급했다.
"윽...!"
결국 주위가 분산된 소문은 오른쪽 다리를 물리고 말았다.
"이놈이..."
뼈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참으며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의 정수리를 단검으로내리쳤다.
"캥...."
다리를 물었던 늑대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소문의 위기가끝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소문은 자신을 노리는 살기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까지 접근했단 말인가...
붉은색의 늑대는 소문의 정신이 흩어진 틈을 타 벽을 타고 천장에 매달렸다.그리고 한번의 기회...단 한번으로
소문을 즉사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기회는왔다. 다리를 물린 소문이 흥분하여 자신을 문 늑대를 죽
이고 있을 때 붉은색의 늑대는공격을결심했다.
'젠장... 늦었다...'
소문이 자신의 노리고 위에서 번개와 같이 내려오는 그 늑대를 발견한 것은 그놈의이빨이 자신의 머리에 거
의 도달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 막고는 봐야 했다. 생각할것도 없이 왼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으악...."
소문의 입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나왔고 엄청난 덩치를 이기지 못해 뒤로 넘어지고말았다. 위기였다. 팔에서
오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넘어져서는보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다른늑대들이 자신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붉은색 늑대와 한데 뒤엉켰다. 그리고
단검을 들어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세도 불안했고 흥분도 하였던 터라.. 정확한 칼질이이루어지기 만
무했다. 게다가 상처를 입은 늑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문을 물고 있는이빨에 더욱더 힘을 가했다.
"크...으윽..."
소문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왼쪽 다리와 허리에서도 고통이느껴졌다. 소문은 발악적으로 칼
을 휘둘렀다. 우연인지 마구잡이로 휘두른 칼이 붉은색늑대의 눈을 찔렀다. 소문은 그 칼을 마구 휘돌렸다.
"크아...아앙"
짧은 칼이지만 눈을 뚫고 들어가 뇌까지 흔들어 놓기엔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결국고통을 참지 못한 붉은
색 늑대는 소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꺼져라...."
"퍽..퍽..퍽!"
소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자신의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단도로내리쳤다. 허릴 물었던 놈
으 벌써 달아났다.
"죽인다...."
자신을 물고 있던 늑대가 죽고 몸이 자유로와 지자 소문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두 마리...우두머리인 붉은색
늑대와 허리를 물었던 놈...
붉은색 늑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큰 상처를 입었고 멀쩡한 늑대는 단지 한 마리가남았을 뿐이다. 소문의 몸
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극한의 고통을 느끼고생명의 위협을 벗어난 소문의 기도는 상상을 불허했
다. 벌써부터 허리를 물었던 늑대는소문을 피해 뒷걸음을 치고 있었고, 붉은 색의 늑대만이 남아 소문을 노려
보고 있었다.하지만 그 늑대도 버티는 것이 고작일뿐 반항 따위를 하지는 못했다.
"넌 강했다.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소문은 붉은색 늑대를 인정했다. 그래서 단숨에 숨을 끊어버렸다. 고통을 주기는싫었다. 붉은색 늑대는 외마
디 신음을 내뱉고는 곧 숨을 거뒀다. 하지만 도망가서꼼짝하지못하던 늑대는 잔인하게 난자한 후에 죽여버렸
다.
"이제... 끝난 것인가...."
소문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가장 심하게 물린 왼쪽 팔은 뼈가 부서졌는지중심을 찾지 못하고 덜렁거
리고 있었고, 다리와 허리에도 살이 뭉텅 잘려나간 것이보였다.
소문은 그런 자신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허탈했다.
"나도 꽤 질기군...."
소문은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동굴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의 감각이틀리지 않는다면 동굴밖에는 틀
림없이 할아버지가 서 있을 것이다. 소문은 할아버지가 벌써며칠째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그리 걱정되면 집어넣지를 말던가....'
문 앞에 도착한 소문은 동굴을 막고 있는 커다란 문을 힘없이 두들겼다.
"할아버지....문...여세요...."
"끼기깅..."
눈이 부셨다. 소문은 잠시 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흐릿하게 보이던 사물들이 제
대로 들어왔다. 온 세상이 자신이 동굴에 들어올 때와마찬가지로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살은 것인가....'
그제서야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문이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문득자신을 안고 있는 할아버지
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고생했다...."
할아버지가 소문에게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소문은 자신의 얼굴에떨어지는 물방울이 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