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일이 계속되다 보니 집안일은 뒷전으로 밀려있다. 아침을 선식으로 대체한 지가 15년이 됐으니
눈 뜰 때 뭘 해 먹나 하는 고민은 않고 산다, 내 아침이야 대충 먹으면 되니까.
남편의 선식으로 만들어 뒀던 현미가루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시어머니 집으로 물건 가지러 가는 남편께 말했다.
시어머니께 현미 한말을 물에 담가 놓으라고. 그냥 담그지 말고 꼭 씻어서 하라 했다.
밭에 온 남편이 고자질한다. 시어머니가."지가 담그지 "시킨다고 한마디 하셨단다.
"아니 당신 아들 먹을 건데 좀 해주면 어떼서"성질을 내자 못 듣은 척 가버린다.
그것이 어제의 일이다,
오늘은 시부모님과 남편이 대전으로 친척 결혼식 참석을 위해 떠나셨다. 같이 가자는 말에 현미 쪄야 하기 때문에
못 가니 세분이 다녀 오시라 했더니 집 나가는 걸 좋아하는 분들인지라 두말없이 출발했다.
오후에 비가 온다 했으니 서둘러 시집에 들어갔다.
무쇠솥에 채반을 넣고 삼배보를 깔았다. 조리로 건진 현미를 넣고 한동안 불멍을 했다.
솥에서 눈물이 나고 쇅 쇅 거리며 김이 나기 시작했다.
뜸을 들인 후 거실 바닥에 큰 보를 깔고 널어놓고는 휭 하니 내 집으로 돌아왔다.
창밖엔 장맛비처럼 비가 내린다. 책과 tv를 동시에 본다. 귀로는 듣고 눈은 책을 흩는다.
그런데 자꾸만 입이 근질거린다. 군것질 거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냉장고를 뒤진다. 냉동실에는 참 많이도 넣어뒀다.
하마터면 발등을 다칠 뻔했지만 잽싸게 피했다. 오징어며 케이크, 피자 까지 쉴 틈 없이
전자레인지를 오가며 얼마나 먹었던지 따끔거리는 배를 쳐다보며 미쳤지를 연발한다.
이럴까 봐 웬만하면 군것질 거리를 집에 두지 않는데 남편은 자꾸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 하면서도 비 오는 날이면 이렇게 먹어 치운다.
살이 몇 키로는 붙었을 것 같다.
오후 5시가 넘어갈 무렵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좀 늦을 것 같으니 집에 들어가서 안방에 군불 좀 넣으란다. 현미 생각이 나서 "쫌 전에 나왔는데 또 들어가라고?
난 몰라 '그러자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께 "저 놈이 소가지 팩 내네"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끈고 나니 신경이 쓰인다.
안 한다 했지만 잔뜩 부른 배를 안고 시집으로 들어가서 군불을 넣으며 전화한다."불 넣었으니 천천히 와요"
알았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돌아왔다.
나는 빌라에 산다. 그것도 4층에, 내려가면 올라오기 싫고 올라오면 내려가기 싫다.
그래서 전원주택을 꿈꾼다. 하지만 당분간은 여기서 버틸 것이다.
첫댓글 언능 집지으셔야 겠어요.4층 오르내리려면 힘드셔요.
냉동실을 탕탕 비워놓고요ㅎ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