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생활을 위한 문자. ‘강한 바람이 밤사이 불 것으로 예상되니 특히 비닐하우스 단속을 철저히 하도록’ 당부한다. 초저녁부터 네 차례나 주의 문자가 울린다. 아직 6월인데 웬 바람?. ‘바람이 분다.’ 예보만으로도 이미 몸은 바람을 맞았다. 힘이 쭉 빠진다. 지쳐 일찍 침대에 길게 누워 예상되는 상황을 재보며 애를 태우다 도리없이 ‘에라’ 밤에 맡기고 잔다. 긴 밤이 지났는데, 분명 바람에 잠을 깼을 만한데 무슨 일이지. 조용히 눈을 떠 유리창 너머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조용해진다.
50이 되어 명함 없이 농사를 시작했다.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보리가 자라는 것도 고구마 캐는 것도 다 노동이 아닌 풍경쯤인 초보 농사꾼에게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겠나. 거름은 언제 얼마나 줘야 하는지, 나뭇잎은 보고 어떤 병충해가 생긴 것인지 감 잡기가 어렵다. 큰 화이트보드 하나를 밭에 걸어놓고 때마다 기록하고 적당히 외워두어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비닐하우스 농사는 바람이 제일 큰 복병이다. 바람 길목인 제주. 초여름부터 올해는 태풍이 많다더라, 큰 태풍이라더라 말만으로도 오싹해진다. 해마다 어지간히 바람을 맞는다. 2019년에는 60년 만에 한 해 태풍이 일곱 번 우리나라를 지나기도 했다. 바람 잘 날 없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한 많은 억압의 세월을 고스란히 겪으며 살았을 이들의 거친 마음을 조금씩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작은 섬, 변방에 부는 바람은 막을 도리가 없다. 무너지는 대로, 찢어지는 대로, 넘어지는 대로 바람에 내어 맡길 뿐인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그러려니 순응하며 ‘살아지니 살아진다.’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게 제주 사람들의 삶이리라. 어머니들은 ‘살아지니 살아진다.’ 구슬픈 시절 삶을 한 구절로 노래한다.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는 그녀들만의 농익은 언어. 어려운 일을 만난 딸에게도 조언인지 위로인지 이 한 마디로 ‘참고 살아라’ 한다. 슬픔을 강요당한다.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다 날리고 기울어 종종거릴 때도 그랬다. 더 기막힌 건 매 맞아 피 흘리며 겨우 걸어 찾아온 딸에게도 그랬다는 것이다. 세상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듣고 있자면 내 슬픔이 뒤섞여 울컥하기도 하지만 지나온 삶을 아무렇게나 몽땅 쓸어 담은 기분은 피할 수 없었다.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불행도 할 것 없이 고통스러워도 견뎌 목숨을 부지했다고 퉁 진 기분이다. 분노와 아픔만 남고 애정은 삭제당한 말처럼 불편하다. 사실 난 잘 참지 못한다. 인내가 어떤 느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계속 그 일들을 해 나가면서 어머니보다 더 가차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살림비용』 157쪽)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제초제는 사용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자라는 풀을 그대로 두는 건 게으르다는 어머니의 확고한 신념과 부딪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잡초가 그 신념에 나를 밀리게 한다. 부지런히 호미질해보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의 손을 빌리기도 해 보았지만, 잡초의 성장 속도는 가히 따를 수 없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내가 없는 틈에 살짝 약을 뿌리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제초제를 쓸까’하는 유혹에 넘어질 뻔하기를 몇 차례, 궁리 끝에 예초기로 풀을 베기로 했다. 이것도 동네 남정네 손을 빌려야 하는데 부탁을 매번 하기도 쉽지 않는 일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내가 하자’ 예초기를 장만했다. 손에 설어 어쩌나 하는 마음은 잠시 누군가 가까이 있어 혼자가 아니라 든든했다. ‘누군가’는 기계치인 나에게 녹록치 않았다. 몇 번이고 구조를 눈여겨 살피고, 줄이 돌아가며 풀을 자르는 원리도 기름을 어떻게 넣고 사용하지 않는 때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 사용법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마당에 풀어 놓고 영상을 보며 이리저리 머리도 손도 굴린다. 될 듯 말 듯 급한 성격에 ‘그만두자’를 몇 차례 끝에 ‘어’ 모터 줄을 당기는데 손에 느껴지는 감촉,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흔들림이 ‘윙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순간 난 소리를 질렀다. 다섯 줄이 돌면서 만들어진 원에 풀이 잘리는 소리나 깎인 풀 냄새는 취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등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는 내 삶만큼이나 무겁지만, 제집을 자기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내 집을 등에 거뜬히 지고 있다는 자부심은 또 무엇에 비할까. 예초기 소리에 앞집 여자 삼촌이 무슨 일인가 문을 열고 ‘맞다! 나도 배웠으면 훨씬 편하게 살았을걸’ 여자가 할 수 없는 일인 줄 알았던 듯 아쉬워한다.
종종 ‘여자가 혼자 농사 짓는 게 힘들다’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듣는다. 걱정을 빈 비아냥거리는 소리쯤으로 웃고 말지만, 내 말인즉 ‘아니, 남자 혼자는 안 힘드는가?’ 여자 혼자라서 힘든 게 아니다. 누구나 혼자 하는 게 어려운 것이고 아프니까 힘든 것일 뿐이라고.
오늘은 예초기로 풀을 베는 일을 했다. 언제부턴가 어깨가 불편해 예초기를 짊어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었다. 아쉽지만 예초기를 짊어졌을 때 거뜬히 기계의 무게를 받았던 뿌듯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충분하다. 말끔하게 풀이 베인 밭을 둘러본다. 답답했던 내 마음이 잘 깎인 느낌이다. 언제 하나? 어떻게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잘하고 있나? 불확실했던 물음들이 예초기 덕분에 정리되어 새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한 아침을 선물로 받는다.
첫댓글 ㅎㅎ 저희 아버님도 혼자 농사 짓는데 항상 앓는 소리를 내세요 ㅎㅎ '남자 혼자는 안 힘든가?' 너무 공감됩니다 ㅋㅋ
농사는 누구에게나 고된 일이죠.
그래도 저는 아버님 댁에 놀러갈때마다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써 너무 신기한것도 많고 재미있는 세계에 놀러간 느낌으로 가요.
도시촌년답게 식물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도 다 구별해내시고 저는 그저 슈퍼에서 당연하게 깨끗하게 재배된걸 먹는데 씨앗부터 모든걸 키우시는게 너무 경이롭고 대단해요. 언젠가 처음부터 배워보고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엄두는 감히 못냅니다.
마당 한 구석에 2평짜리 텃밭을 만든 적이 있는데... 한 해 하고 그만뒀습니다. 정말 힘들더라고요. 풀 뽑고, 땅 골라서 심는 것 까지는 어째어째 했는데, 가꾸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거의 매일을 손 보지 않으면 안 되는데, 며칠 내버려뒀더니 정글이 되어 버려서....
나이, 성별 관계 없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스스로 세운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다섯 줄이 돌면서 만들어진 원에 풀이 잘리는 소리나 깎인 풀 냄새는 취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예초기 사용을 포기하기 바로 직전 맛본 성공이 제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풀 냄새가 바로 코앞에서 느껴질 만큼요. 제초제를 쓰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가 '건강'일까요? 혹 특별한 신념이 있지는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에서 농사를 하시다니. 살림비용의 한 꼭지를 그대로 빌려온 듯한 느낌의 글이었어요. 살림과 농사는 다르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살림비용에서의 배관 뚫기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여자라서 혼자 하는 게 힘든것이 아니라, 남자도 혼자 하면 힘들다! 는 말씀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잡초가 무섭게 자라는 여름, 나오미의 농사를 응원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