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글쓰기 다이어트 / 정희연
나는 키 178cm 몸무게 83kg이다. 수치로만 보면 정상인에 가깝지만 아쉽게도 배불뚝이다. 힘을 주고 옷으로 가려도 보지만 사진에 나오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멋진 외모로 어질고 정이 깊은 남자이기를 바랐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해 사회에 뛰어들었다. 부임지는 ‘광주 상무지구 택지조성공사’다. 육군 관련 최대군사 교육시설인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광주광역시에서 주택을 공급 하려고 택지를 조성한 곳이다. 도면에 있는 도로 전기 통신 상수도 우수 오수 등을 땅 위에 옮겨 놓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군인들이 사용하던 노후화된 건물, 지하벙커, 체육 시설, 수목, 하늘 높이 솟은 굴뚝 등을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각 공사의 종류마다 법률과 규정이 있으며, 건설기술진흥법 근로기준법 KS 규정에 따라서대형건설 장비와 노무자 자재를 관리하고 일정에 맞추어 투입하여야 한다. 땅을 파고 메우며 외부에 노출된 드넓은 현장에서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현장이 끝나면 또 다른 현장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토목공사는 기피업종(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중의 하나로 살찔 틈을 주지 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가정을 이루고서는 내 몸은 균형을 잃어 갔다. 아내가 차려 준 밥상은 ‘내가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 감탄할 정도로 정성이 담겼다. 개인 숟가락이 생겼고 혼수로 가져온 깨끗한 접시에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빠지지 않았고. 따뜻한 음식은 배 속에 차곡차곡 담겼다. 장모는 주말이면 백년손님 사위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사랑에 기러기와 씨 암탉 그리고 따뜻한 술을 준비 하고 그 덕분으로 손자들의 재롱으로 거실에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승진하면서 조금씩 여유도 생겼다. 설계서를 확인하여 현장과 일치되지 않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수정하고, 공급의 차질과 시공의 오류로 현장이 멈추는 일을 없도록 사전에 확인 하고, 한 달 동안 일한 대가를 청구 집행하는 등 몸을 쓰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내부 업무를 보는 일이 많았다. 그때부터 70kg을 유지하던 몸은 85kg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지금은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맞춤법도 문법도 서툴러 글을 쓰다 보면, 처음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결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글들로 가득하여 고민하고 있는데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 강의가 있어 신청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시기에 온라인 교육은 나에게 안성맞춤 이었다. 2021.09.07.일 이훈 교수님의 인사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목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정년하고 재능기부의 일면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딱딱한 공과대학 강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울림을 주었다.
‘여러분은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히 각오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스스로 괴로울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정리되는 모습을 봅니다. 세상에 한 번에 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요. 글쓰기가 우리 교육에 가장 우선적인 교과목이 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열정이야말로 으뜸가는 사고력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글쓰기가 즐거워야 합니다. 궁금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때나 카톡으로 올려 주세요’ 등 그동안 건설현장에서 접할 수 없는 신선함을 느꼈고,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첫 글쓰기 과제가 시작되자 쓰고 지우고를 수십 번 반복해도 글은 좋아지지 않았다. 기본과 법칙을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주일 후 첫 글쓰기 평가가 있는 날, 이제는 교수가 아니므로 선생으로 불러주라 하시던 선생님의 평가는 정말 암울했다. 검은색 글씨 보다 지적한 빨간색 글씨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끄러움도 잠시 다행이라는 생각과 기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온라인 교육이라 쥐구멍을 찾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잘못된 것을 단어 하나하나까지 빨간펜으로 깨우쳐 주는 선생님이 있어 엉망징창 배불뚝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효과적인 다이어트란 굶고, 덜 먹고 더 움직이며, 저지방 저탄수화물을 먹는 것이 기본이나 알면서도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나에게 글쓰기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상식적인, 상투적인 말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글에 담으라'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어렸을 적에 ‘다.다.다. 로 끊어 쓰지 말고 이어 쓰는 연습을 해라’라는 어렴풋한 기억과 직업의 특성상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겸해 장단점을 비교하며 공법을 선정해야 했기에 생긴 습관이 몸에 밴 듯하다. 많은 시간을 같이하여 지금은 한몸이 되어 버린 지방으로 배불뚝이가 되었지만, 새롭게 시작한 글쓰기만큼은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뜨뜻미지근하게 길게 끌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이어트로 배웠다. 선생님의 큰 울림이 사그라들기 전 완성에 이르려는 끝없는 몸부림과 즐거운 글쓰기로, 겉은 볼품없지만 속은 어질고 정이 깊은 남자로 거듭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