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심방 후기
2024년 3월에 시작한 봄철 정기 심방이 은혜가운데 끝났다. 심방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맡기신 목양사명 중의 하나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치고 먹이는 일을 위임하셨는데(요 21:15~17) 이것이 말씀과 심방사역이며 목회의 핵심 임무다. 말씀사역은 양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심방사역은 가까이서 주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주관적, 객관적인 관계가 균형을 이룰 때 성도는 건강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다. 목자와 양은 더욱 친밀해짐으로써 목양의 효과가 더욱 좋아진다.
이번 심방은 예년과는 다르게 심방대원을 동반하지 않고 담임목사 부부만 다녔다. 그동안의 동반 심방은 성도들이 목사에게 속내를 보이기가 꺼렸으므로 심방의 고유한 주관적 영역에 이르지 못했었다. 그러나 올해 봄 심방은 상황이 달라졌다. 여러 성도들이 현재 진행 중인 속 깊은 사연들을 주저 없이 꺼낼 수 있었고 말씀과 기도로 치유받는 기회가 되었다. 저마다의 속사정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어서 그들을 막연하게 바라만 보았던 목사 역시 양들과 좀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혼자서만 속앓이를 하던 그들의 아픔이 목자의 심령에도 저며 오는 듯했다. 가족사에 얽히고설킨 이야기, 남몰라야 할 부부만의 사정, 영원히 밀봉처리하고 싶은 개인의 부끄러운 비밀, 믿음의 여정에서 상하고 찢긴 상흔, 차마 입을 열 수 없는 삶의 여적(餘滴)들이 조심스럽게 개봉되었다.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이렇게나 많을 줄 미처 몰랐다. 그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평상시보다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다. 심방 예배가 끝나자 벌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느낌이 마음에 고인다. 비로소 주님이 명령하신 심방의 목적을 달성한 뿌듯함이 목자의 마음을 채웠다.
장애인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당하며 살던 어느날 그 남편이 뇌졸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어도 20여 년이 넘도록 그의 뒷바라지를 감내해온 한 성도의 사연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교인들에게 상처받고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꿋꿋하게 달려온 또 한 성도의 인생 스토리는 믿음 승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말 못할 사정으로 인해 부부가 분리되어 교회를 다녔어도 홀로 남아서 교회사랑을 실천한 또 한 성도의 이야기는 그를 다시 보게 했다. 또 가족사에 얽힌 일들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굳세게 살아온 성도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최후 승리를 기도했다.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다면서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한 어른의 푸념소리에 누구나 겪을 미래의 이야기 같아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계의 도움이 없이는 호흡이 어려운 데도 예배에 참석하느라 애쓰는 한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건강할 때 열심히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무언의 교훈도 받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인 문제, 자녀들의 진로, 자신만이 앓고 있는 병적 증상들이 신앙의 길을 이탈하게 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신앙이 되었다는 간증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모두 은혜를 받기도 했다. 심방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눈물의 기도를 올려야 했고, 때로는 기쁜 소리로 찬송하기도 했다. 어쩌면~~~, 집집마다 이렇게나 문제가 켜켜이 쌓여있을까? 심방이 끝났지만 목자는 이제 기도의 열차에 올라 새벽마다 다시 그 집을 심방한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다는데 농부는 자기가 키우는 농작물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이 풍요를 가져다주는 농사의 경영 비법이다. 얼마 정도 발자국 소리를 들려줘야 할까? 88번은 해야 한단다. 이는 쌀의 한자어 ‘米(미)’를 근거로 한 대답이다. 이 글자는 十, 八, 八이 합친 구조로 팔십팔(八十八)을 뜻한다. 고희(古稀, 70세), 희수(喜壽, 77세), 산수(傘壽, 80세), 망구(望九, 81세), 미수(米壽, 88세), 망백(望百, 99세) 등은 모두 나이를 일컫는 관용어인데 '쌀의 연수'를 뜻하는 미수(米壽)가 바로 88세다. 어디 농사뿐이겠는가? 환자는 의사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건강해진다. 학생은 선생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만큼 성장한다. 선수는 코치의 발자국 소리를 많이 들을수록 실력이 쌓인다. 국민은 대통령의 발자국 소리를 수시로 들을 때 평안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다스림(統治)의 사명을 주셨다(창 1:28). 다스림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고 사려 깊은 관심에서 나오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내 아담은 각종 짐승의 이름을 지어준다(창 2:19).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그에게만 맞춰진 돌봄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그런 인간이 마귀에게 속아 멸망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창조주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구원받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셨다. 베드로 집에서 들린 주님의 발자국으로 장모의 열병이 나았다(마 8:14). 마르다 자매의 집에서도 그 소리를 들려주시고 위로하셨다(눅 10:38). 그 외 각종 병자, 귀신 들린 자 심지어 최후 십자가에서 죽을 강도까지 주인의 발자국을 들려주심으로 그를 낙원에 이르게 하셨다. 양은 목자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난다는 엄연한 진리를 깨닫는다. 지혜의 임금 솔로몬은 목장에 있는 우양 떼들이 목자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하라고 권면한다. 곱씹어볼 명언이다. “네 양 떼의 형편을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 27:23).
오늘 심방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조진현 성도, 김순옥 권사님은 딸네 집으로 이사하여 고향을 떠났다.
순종 속 심방을 마치고
사랑속 심방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