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들이 상전이여 / 곽주현
이른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어둑어둑한데도 벌써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걷다 보면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 분들을 쉽게 만난다. 안고 가는 아가씨, 목줄을 잡는 아저씨, 아기처럼 등 뒤로 업은 사람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함께 동행한다. 쓰다듬으며 무어라 계속 말을 걸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를 연발하며 지나가는 분도 있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강아지 사랑이 대단해 보인다.
산책하고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뉴스를 검색하니 “文, 트위터 '좋아요' 누른 범인 찾았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하며 열어보니 문제인 전 대통령이 반려묘를 내려다보면서 밝게 웃고 있다. 책상에 태블릿 피시가 놓였고 그 위에 귀엽게 생긴 고양이가 떡 버티고 앉아 있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서 그 녀석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대통령의 표정도 밝아 보인다. 꼭 장난치는 어린 손자를 지켜보는 할아버지 모습 같다. 녀석이 앞발로 자판을 딛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투표하면서 이렇게 화나긴 처음이다. 이재명이라는 쓰레기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인가."라는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논란 때문에 쾌 곤욕을 치렀다. 이제 보니 이 고얀 놈 때문이었다는 거다. 고양이가 대통령 책상에 버젓이 올라가 큰일을 저질러도 허허하고 웃어주니 참 세상 많이 달라졌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애지중지하며 돌보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 부인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기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별일 없다고 하더니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슬픈 일이 있었다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18년을 함께 지냈던 반려견이 어제 그만 자기 곁을 떠났다는 거다. 평균 수명(약 15년) 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꼭 가족을 잃은 것 같다며 눈물을 훔친다. 이런저런 일로 우울증이 와서 고생했는데 그 놈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며 서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그런 동물을 길러 보지 않아서 이런 감정을 공감하기 어렵지만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니 그렇게 정이 깊게 드는가 보다.
내 농장에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있다. 광주에서 올 때마다 음식쓰레기를 가져와 퇴비장에 버리는데 그놈은 거기서 먹거리를 찾는 것 같다. 주인 없이 뜨내기로 살아가는 놈이라 짐작한다. 이 녀석이 나타나면 오래전에 내가 몹쓸 짓을 했던 고양이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렀다.
현직에 있을 때 깊은 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88 올림픽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주로 잡히는 생선은 멸치였다. 가을 이맘때가 되면 특히 많이 잡혔다. 생멸치를 말리려고 많은 건조대가 마당이고 길이고 발 디딜 틈 없이 깔렸다. 그래서 그것들을 훔쳐 먹는 들고양이도 많았다. 수십 마리가 떼로 몰려다니며 널어놓은 것을 막 먹어댔다. 어부들은 이놈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어장이 끝나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집 안으로 들어와 틈만 보이면 말리고 있는 생선을 노렸다. 나도 몇 번이나 당했다. 하루는 밤 중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일어났다. 고양이가 내는 소리였다. 늘 다니던 놈이 부엌으로 들어와 낚시질해서 매달아 놓은 큼직한 우럭을 잡아채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뛰어오르면서 살림 도구를 엎어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응 너 잘 걸렸다.' 싶어 빗자루로 몇 번 후려치니 눈에 불을 켜고 손목을 할퀴며 저항했다. 격한 실랑이 끝에 잡아서 그물망으로 된 통발 속에 가두었다. 놓아 줄까 하다가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누님이 생각났다. 고양이가 뼈에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육지로 나가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했기에 물과 먹이를 주고 살펴봤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어찌나 표독스럽게 으르렁거리는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지가 배고프면 안 먹겠어.’ 하면서 지켜봤다. 사흘이 지나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버티더니 나흘째 되던 날 아침에는 결국 몸이 굳어졌다. 배가 고파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음식을 거부한 그 고양이의 야성에 소름이 끼쳤다. 그냥 살려 보낼 걸. 그 섬을 떠날 때까지 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때는 동물에게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해도 크게 비난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난 토요일에 신안군 안좌면에 있는 반월도와 박지도를 갔다. 퍼플 섬(보라 섬)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제법 관광객이 많다. 두 개의 섬을 나무다리로 육지와 연결했다. 길이가 1,500미터에 이른다. 그 다리를 보라색으로 칠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모든 건물이 같은 색이다. 저쪽에서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젊은 부부가 유아차를 힘겹게 밀며 오고 있다. 쌍둥이를 태운 듯 머리가 둘 보인다. 옆을 지나는데 아이가 아니고 강아지 두 마리다. 빨간 머리핀을 꽂고 귀걸이, 목걸이도 주렁주렁 매달았다. 그리고 층층으로 된 치마도 입었다. 치장이 요란하다. 비껴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쳐다본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영락없이 젖먹이 어린애다. 10여 년 전까지 식용으로 먹었던 것들이라 이런 모습이 참 어색하다. 그때는 지금의 반려동물도 소나 말처럼 실외에서 기르는 일반 가축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지나친 보호와 관리가 애완동물에게 꼭 바람직한 것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반대편에 오던 할머니 두 분이 그놈들을 한 참 들여다보고 혀를 끌끌 차더니만 “아이고 이제 개가 상전이여.”라고 말하며 지나간다. 또 다른 한 분은 “우리 아들 내외도 개밖에 모르더구먼.”하고 거든다.
첫댓글 이젠 우리나라도 강아지를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예전에 고양이가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동네 길고양이들이 수난을 당했던 게 떠올랐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네, 우리 집에도 상전이 따로 없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