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그의 고난이 구원이 되어
05/16목(木)사 53:4-6, 행 16:30-31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사 53:6).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저주받고 심판받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잘 나타내는 대속 사건입니다. 그분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5:14-15).
주님의 고난이 어떻게 우리에게 축복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와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사 53:5). 우리가 불행한 것은 아담의 원죄를 통해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그분과 교제를 통해 죄악의 저주에서 벗어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갈 3:13)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음으로 마음의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당시 율법학자, 서기관, 제사장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예수를 십자가 죽음에 넘겼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아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우리의 옛사람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나 중심의 옛사람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셔서 화평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롬 6:6). 예수께서 죽으실 때 우리의 옛사람이 함께 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평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을 가져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죽에 납덩어리가 달린 채찍으로 온몸이 다 찢기도록 맞으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가져가기 위한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 2:24). 이 말씀을 믿으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And...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옛사람이 ‘나’ 인줄 착각하는 그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거짓 자아입니다. 옛사람, 아담의 DNA를 물려받은 나입니다. 이 ‘나’를 부인하고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 썩이는 남편, 자녀, 어려운 환경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거짓 된 내가 죽으면 우리의 환경은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기 위해 거짓 자아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면 나의 환경은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기도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넘기기 위한 금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아 죽음을 두렵게 느끼는 것은 그 뒤에 오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주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으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납니다.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는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유지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자만이 주님의 위대한 구속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4년 전에 우리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놀라운 십자가 복음을 전해주고 주님 품에 안긴 이관희 집사님의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암 투병의 과정을 통해 먼저 십자가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故이관희 집사님의 투병 과정을 보며 그동안 우리가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온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삶’을 살아내는 모습에 진한 감동이 왔습니다.
욥의 고난을 삶으로 해석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떻게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는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주인으로 그 마음을 주관하고 있었기에 죽어가는 그 순간에 주님의 십자가의 처절한 버림받음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 대신 그가 택한 것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이 그분을 그렇게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된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그분 뒤에 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의로운 한 사람을 택해 우리에게 십자가 복음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분의 말이 기억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때 꼭 나을 거야, 라고 기도해 줄 때는 감동이 없었지만 지금 상황을 잘 이겨내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해 줄 때는 힘이 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무엇이 가장 최선의 길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잘 해결될 거라는 위로의 말보다 주님이 함께하셔서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그래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는 통로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https://youtu.be/kdFH0iSBU9I?si=UXJ0yGwFk3KreO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