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閑中錄) :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궁중에서 한가롭게 쓴 글이라 하여 한중록(閑中錄)이라 하기도 하고, 한 맺힌 글로 피를 흘리면서 썼다는 ‘읍혈록’의 제목도 있다.
사도세자의 사건을 ‘임오화변’이라 하는데 워낙 유명한 사건이어서 역사의 문외한이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혜경궁홍씨는 9살의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이 되어 50년의 궁중생활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수필이다. 총 4편으로 이루어진 글로 제1편은 저자의 어린시절과 세자빈이 된 이후 50년 간 궁궐에서 지낸 이야기로 회갑 때 비교적 한가로운 심정으로 썼으며,
제2편과 제3편은 친정 쪽의 누명이 억울함을 말하는 내용이다.
제4편에서 비로소 사도세자 참변의 진상이 기록되었다.
아들인 정조가 승하한 직후부터 어린 왕 순조에게 보이기 위해 쓴 것으로 비교적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다.
저자가 회갑을 맞던 1795년(정조 19년)에 친정 조카인 홍수영의 소청으로 이 글을 썼다고 전한다. 그 후 67세, 68세, 71세 등 네 번에 걸쳐 썼다.
궁중문학으로 조선후기의 여인상을 연구하는 실질적인 자료로 가치를 인정 받았다.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 사도세자의 죽음과 아들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며 감당할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역사적관점에서 보면 혜경궁홍씨가 지극히 정치적인 여성이라고 한다.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에서 영조가 노론파를 추종하는 세력에 동조하며 남편을 희생양으로 삼고 아들 동궁이 정조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지....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 추존)의 억울한 죽음을 회복케하고 수원화성을 건축하고 융건릉인 아버지묘에서 목놓아 통곡했다는 글을 보고 울컥했었다.
서슬퍼런 정치당파를 지켜보면서 참고 참았던 눈물. 한맺힌 눈물을 30살이 넘어서 쏟아낸 것이다.
능행길을 다니면서 '지지대고개'만 넘어가면 아버지가 계신 융릉이 더디게 간다고 하여 한자로 '더딜 지(遲) '자를 두 번 써서 '지지대'라는 명칭이 오늘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 이제 가면 또 언제 오나 많은 아쉬움으로 고개에서 쉬어가며 노송을 많이 심어 기념했다. '노송지대'로 알려진 노송로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세월을 잊은 채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다.
위치는 수원파장동과 의왕시 왕곡동 사이, 의왕과천 IC가는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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