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화학과 명예교수 심홍구
대부분의 고분자 물질은 일종의 플라스틱 재료로, 금속과 달리 전혀 전기를 통하지 않는 부도체이다. 이러한 고분자들이 전기를 통하게 하려면 몇 가지 구조적인 조건과 부수적인 처리가 필요하다.
1970년대 최초의 전기전도성 고분자로 알려진 폴리아세틸렌은 삼중결합을 갖고 있는 아세틸렌을 중합시켜 만든 고분자 물질로, 단일 결합인 C-C σ-bond와 σ-bond에 수직으로 구성된 이중결합 형태의 π-bond가 교대로 배열되어 있다. 이 수직 결합은 pz 오비탈에 의해 이루어지며, 모든 pz 오비탈이 서로 결합하여 넓게 비편재화된 하나의 분자를 형성한다. 이러한 비편재화된 오비탈에 존재하는 π 전자들은 산화제에 의해 전자를 잃고 p-doping 되거나, 환원제에 의해 전자를 얻어 n-doping 되어, 이들 p-doping된 정공이나 n-doping된 음이온이 비편재화된 고분자 사슬을 따라 이동함으로써 전기전도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산화-환원 도핑은 실리콘 반도체에서 전자가 풍부한 인(P)이나 부족한 붕소(B)와 같은 원자가 실리콘 원자를 소량 대체하여 각각 p형, n형 반도체를 형성하는 도핑 방식과 유사하다. 다음은 polyacetylene(PA)의 p-doping과 n-doping된 분자 구조식이다.
그러나 PA는 합성이 어렵고, 합성된 PA 자체도 매우 불안정하여 실질적인 전기전도성 고분자로의 응용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보다 열적, 산화적 안정성이 더 뛰어난 전기전도성 고분자의 개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고분자 주사슬에 benzene 고리나 thiophene, 혹은 pyrrole을 도입하여 더 안정적인 poly(p-phenylene), polythiophene, polypyrrole 등이 연구되었으며, PA의 주사슬에 벤젠핵을 도입한 poly(p-phenylene vinylene), 즉 PPV의 등장은 전기전도성 고분자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 PPV는 합성이 용이하고 고분자량의 PPV를 얻을 수 있으며, 필름으로 형성했을 때 stretching에 의해 고분자 주사슬을 일정하게 늘려줌으로써 분자 배열을 정렬시켜 전기전도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PPV는 유기용매에 잘 녹지 않아 spin coating과 같은 방법으로 필름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PPV의 phenyl기의 2번과 5번 위치에 methoxy와 ethylhexyloxy group을 도입한 MEH-PPV는 유기용매에 잘 녹아 필름 형성이 용이하고, 이는 전기전도성 고분자 연구에 큰 발전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PPV) (MEH-PPV)
MEH-PPV는 훗날 유기 발광 소재로 응용될 때 가장 전형적인 녹색 발광 고분자로 이용된다.
대부분의 고분자는 낮은 용해도로 인해 가공에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용해도를 높이기 위해 위의 MEH-PPV처럼 가용화 작용기(대부분 long alkyl기)를 도입하였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PEDOT:PSS와 같은 대표적인 수용성 전도성 고분자가 개발되었다. 이 일종의 salt형 고분자는 나노 구조체를 형성하고 계면활성제로 안정화된 전도성 고분자를 물에 분산시킨 일종의 수성 페인트와 비슷하며, 코팅하기 전에는 검정색의 점성 있는 물질이지만, 코팅 후 건조하면 투명하고 전도성이 있는 필름막으로 바뀐다.
또 다른 중요한 전도성 고분자인 poly(p-phenylene), 즉 PP는 주사슬이 벤조이드 방향족 핵으로 구성된 거대 분자이다. PP는 높은 열적, 공기 안정성뿐만 아니라 도핑이 용이하고, 조정 가능한 전도성과 높은 광학 특성으로 인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PP의 용해도는 제한적이지만, 주사슬에 있는 phenyl기에 유연한 측쇄를 도입하면 용해도가 증가하며, 적절한 dopant로 도핑하면 p-type 및 n-type 반도체로서 높은 전기전도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PP는 고분자의 band gap이 비교적 높아 전기전도성 측면에서는 제한이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PP는 전기발광 소자로 응용되었을 때 비교적 높은 band gap으로 인해 청색 계열의 light-emitting diode (LED)로 응용될 수 있다. 반면, 보다 band gap이 낮고 열 안정성과 광학적 특성이 우수한 poly(p-thienylene vinylene), 즉 PTV 고분자가 등장하였다. PTV의 구조는 PPV의 phenyl ring을 thiophene ring으로 교체한 형태이며, 이 PTV 역시 thiophene ring의 3 또는 4번 위치에 hexyl group과 같은 long alkyl group을 도입해 용해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 PTV는 낮은 band gap으로 인해 도핑이 용이하고, LED 물질로 응용될 경우 적색 영역의 전기발광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전기전도성 고분자는 응용성이 매우 다양하여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표적으로는 정전기 방지용 물질, 상업용 디스플레이, 유기 고분자 태양전지 등에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화학 센서, 바이오 센서, 자기차폐 및 투명 전도막의 대체 가능성도 기대되고 있다. 전기전도성 고분자는 우수한 전기적, 물리적 특성과 낮은 비용, 점점 향상되는 가공성 덕분에 그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전도성 고분자의 새로운 나노구조 형태는 높은 표면적과 우수한 분산성으로 이 분야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끝으로, 전기전도성 고분자에 의해 가장 활발히 연구·발전되고 있는 분야는 OLED라는 디스플레이 응용 분야이다. OLED는 전도성 고분자층을 유기 발광층으로 사용하여 전기를 빛으로 변환하며, 각 고분자 물질의 band gap에 따라 특정한 색을 구현한다. 처음 OLED용으로 사용된 전도성 고분자는 PPV 또는, 용해도를 크게 향상시켜 spin coating으로 손쉽게 필름을 형성할 수 있는 MEH-PPV이다. OLED용 전도성 고분자는 공액 구조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특정 파장의 빛을 방출하며, 이때 청색, 녹색, 적색 등 다양한 색의 빛을 얻을 수 있다. Cathode에서는 최저 비점유 분자 오비탈(LUMO)로 부터 전자가 주입되고, Anode에서는 ITO의 최고 점유 분자 오비탈(HOMO)에서 정공이 주입된다. 이들은 각각 electron-transfer layer(전자 운반층), hole-transfer layer(정공 운반층)를 지나 light-emitting layer(발광층)에서 만나 특정한 빛을 발산하게 된다.
이와 같이 전기전도성 고분자가 등장한 지 약 50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루어진 전도성 고분자의 비약적인 발전과 다양한 응용에 대해 간략히 기술한 것이다.
필자소개
KAIST 화학과 명예교수
KAIST 자연과학대 학장 역임
KAIST 석좌교수 역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원로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