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ake: What it means for one of my brothers to become pope
by James Martin, S.J. 박경웅 S.J. 역
교황 프란치스코는 역사상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그의 이름이 발표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참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회원이 교황이 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했던 것일까? 그리고 16세기에 예수회를 창설했던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이를 두고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해보자. 왜 이 일이 그토록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었단 말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대부분의 추기경들은 교구 성직자 출신이다. 그들은 대부분 교구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에게 친숙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본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세례를 주며 혼인예식을 거행하는 등 본당 신자들을 사목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다. 일반 사람들은 교구 성직자들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교구 성직자들은 본당 사제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주교 및 대주교로 임명될 수 있으며, 교황이 임명하는 추기경이 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회나 도미니코회, 아니면 예수회와 같은 수도회의 회원들은 다른 삶을 양식을 지니고 있다. 우리 수도자들은 가난(청빈), 정결, 순명의 3대 수도서원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산다. (대조적으로 교구 사제들은 급여를 받는다.) 우리는 본당 사목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의 예를 들면, 사람들이 예수회를 알게 되는 것은 주로 교육기관을 통해서이다. 미국의 예수회 교육기관에는 무수한 중고등학교들을 포함하여 보스턴 칼리지(Boston College)나 조지타운(Georgetown), 포담(Fordham)과 같은 대학교가 있다. “로욜라(Loyola)”라는 이름이 붙은 학교는 모두 예수회에서 맡고 있는 학교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예수회원들은 교구 성직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추기경들에게 수도회의 구성원들은 보다 덜 친숙한 존재일 것이다. 최근의 역사를 봤을 때 수도회 출신의 교황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그래서일 수 있다.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할 때 자신들의 “세계”,
즉 교구 성직자 출신의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추기경들은 이번에는 뭔가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것도 그나큰 변화가.
때때로 바티칸 일각에서는 예수회원들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거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는데, 어떤 이유들은 무척 복잡 미묘한 것이다. 첫 번째 이유를 말하자면, 내가 위에서 말했던 그 “다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회원들이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과 더불어 일한다는 사실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실험적이고 급진적이며 심지어 위험하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 늙은 예수회원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변두리에서 일하다 보면 경계선을 넘어가는 수도 있지.”
1980년대 초, 예수회원들과 바티칸 사이의 긴장으로 인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예수회의 내부 문제에 개입한 적이 있다. 예수회의 총원장이 뇌졸중로 쓰러지자 교황이 (예수회원들이 후임자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정상적인 절차를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측근을 예수회 총원장의 대리자로 임명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교황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기는 했지만, 그러한 처사는 수많은 예수회원들의 기를 꺾어놓았다. 몇 년이 지나서 예수회원들은 새로운 총원장을 선출했고, 좋은 관계는 회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바티칸에서는 먹구름이 남아있었는데, 예수회원이 교황이 된다는 것은 전혀 있을 법한 일이 아니기에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예수회원이 교황이 된 지금으로서는 그 먹구름이 사라진 게 아니라면 적어도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예수회원이 교황이 되었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몇 가지를 말해 볼 수 있다.
첫째, 이 새로운 그리스도의 대리자는 1540년에 예수회를 창설했던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에 무척 정통한 인물이다. 양성기간을 모두 마친 모든 예수회원들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생애에서 지금까지 두 차례의 영신수련을 받았다. 영신수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초점을 두고 한 달 동안 이루어지는 침묵 피정이다. 영신수련을 받는 사람은 기도 안에서 상상력을 활용하여 예수의 생애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척 영적인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가 두 번의 영신수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관상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지난 수요일 이래서 나는 적어도 열 명이 넘는 예수회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야 뭐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그래도 어쨌거나 그가 영신수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군.”
둘째, 예수회원으로서 양성 받는 기간은 무척이나 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58년 22살의 나이로 예수회에 입회했고, 1969년이 되어서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것은 예수회원이 사제가 되기까지 걸리는 데 소요되는 기간으로는 평균치이다. 나도 1988년에 입회해서 1999년에 서품 받았으니까.) 따라서 새 교황은 오랜 양성 기간 동안 다양한 사목 체험으로 숙련된 사람이다. 전형적으로, 양성을 받는 예수회원은 가난한 사람들과 일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살피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등을 하도록 되어있으며, 그러는 동안에도 줄곧 이냐시오 성인이 “비천하고 시시한 일”이라고 부른, 예를 들면 변기를 닦거나 마루에 걸레질을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하도록 요구 받는다.
셋째, 이 새 교황은 가난(청빈)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회원들은 가난(청빈) 서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수련원에서 매우 적은 기부금으로 살아가고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며 자신의 소유물은 전혀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손수 요리를 해 먹는다고 하는 추기경 시절의 유명한 이야기들은 성 이냐시오 로욜라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냐시오 성인이 예수회원들은 가난(청빈)을 “어머니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 예수회원들은 “가난한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 지상에서 가난하게 사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능한 한 간소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예수회원들 가운데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리스도를 더 잘 따른다. 한번 주교, 대주교가 되고 나면 가난(청빈)의 서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가난이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예수회원의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는 새 교황의 영적인 삶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넷째, 예수회원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유용성과 개방성, 그리고 내적인 자유를 갖추도록 요구 받는다. 예수회원의 이상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빈민가에서부터 바티칸시(市)의 교황청에 이르기까지 어떤 곳이라도. 이처럼 우리 예수회원들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에서라도 잘 지낼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ad majorem Dei gloriam)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인 것이다.
다섯째, 우리 예수회원들은 “출세지향적인 사람”이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엄청난 아이러니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수회 사제나 평수사가 자신의 양성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가난(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과 더불어 “선교와 관련하여” 교황께 대한 특별한 서원을 한다. 그것은 교황이 우리를 보내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회원들은 유별난 서약을 한 가지 더 하는데, 그것은 고위직에 오르려고 “애쓰거나 야망을 품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다른 수도회 가운데서 이러한 서약을 하는 곳은 없다.
이냐시오 성인은 후기 르네상스 시기였던 당시 성직자들의 출세지향적인 풍토에 기겁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회원들로 하여금 “출세지향적인 태도”를 갖지 않겠다는 독특한 서약을 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예수회원인 호르헤 베르골리오가 주교가 되고 추기경이 된 것처럼, 교황이 예수회원에게 주교나 대주교의 역할을 맡으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고위직에 오르고자 “애쓰지도 야망을 품지도” 않겠다고 서약한 한 예수회원이 교회의 최고 수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 질문: 이냐시오 성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회원들이 주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심지어는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바티칸에 저항하기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냐시오 성인은 엄격한 규칙이라도 때로는 예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만큼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이냐시오 성인은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헌신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회원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했다.
예수회 설립 당시의 문헌을 보면, 이냐시오는 예수회 설립의 의도가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그분의 지상 대리자인 로마 교황의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에 봉사하기 위함”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예수회의 모토(motto)대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한다고 이냐시오를 말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냐시오 성인이 자신의 후배들 가운데 한 명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로마 교황을 위해서 봉사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으로 선출된 장면을 보면서도 미소를 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 것이라 확신해 본다.
첫댓글 <나의멘토, 나의성인-가톨릭출판사>< <나를 찾아 떠나다-가톨릭출판사> 등등 의 저자
미국 예수회 제임스 마틴 신부가 쓰신 글을 한국 예수회 박경웅신부님게서 번역하신 글입니다.
예수회와 교황님에 대하여 알면 도움이 될까하여 퍼온 글입니다.
음....그렇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