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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나누었다.
5. 베드로가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8. 그들이 바로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서로 물었다.
11. 그들이 예수께 묻기를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니,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마가복음9:1-13)
1. And he went on to say, “I tell you, there are some here who will not die until they have seen the Kingdom of God come with power.”
2. Six days later Jesus took with him Peter, James, and John,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where they were alone. As they looked on, a change came over Jesus, 3. and his clothes became shining white—whiter than anyone in the world could wash them. 4. Then the three disciples saw Elijah and Moses talking with Jesus. 5. Peter spoke up and said to Jesus, “Teacher, how good it is that we are here! We will make three tent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6. He and the others were so frightened that he did not know what to say.
7. Then a cloud appeared and covered them with its shadow,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own dear Son—listen to him!” 8. They took a quick look around but did not see anyone else; only Jesus was with them.
9. As they came down the mountain, Jesus ordered them, “Don't tell anyone what you have seen, until the Son of Man has risen from death.”
10. They obeyed his order, but among themselves they started discussing the matter, “What does this ‘rising from death’ mean?” 11. And they asked Jesus, “Why do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Elijah has to come first?”
12. His answer was, “Elijah is indeed coming first in order to get everything ready. Yet why do the Scriptures say that the Son of Man will suffer much and be rejected? 13. I tell you, however, that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at people treated him just as they pleased, as the Scriptures say about him.”
1.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1. And he went on to say, “I tell you, there are some here who will not die until they have seen the Kingdom of God come with power.”
우리는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세상 사람 살 듯이 이렇게 살면 되나?
남들 하는 대로 음란과 죄의 바람이 부는 대로 밀려다녀도 되는가?
선장이 해도를 보면서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가듯이 우리에게도 가야할 목적지가 있습니다.
목적지는 사람이 창조될 때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목적지를 향해 갈 때 죄의 바람을 역류해야 하는 것입니다.
냉장고가 만들어질 때 얼음을 만드는 목적이
선풍기가 만들어질 때 바람 만드는 목적이 정해졌던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 여러분이 가야 할 목적지도 명확하게 정하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선풍기 하나를 내다 버렸습니다.
전기를 꽂아도 날개가 돌지 않아서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목적지에 제대로 왔는지 결과를 엄중하게 심판받는 날이 있습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눅2:9)
오늘 본문의 전 절은 바로 이것을 이릅니다.
38.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막8:38)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는 당장 우리의 현실을 이릅니다.
주께서 천사를 거느리시고 오실 때는 바로 그 심판의 그 날을 이릅니다.
그런데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이야 소파에 드러누워서 딸깍하고 TV 체널만 틀면 확인할 수 있지만 과연 주님이 천사를 데리고 오실 그 날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부자는 죽은 후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자가 바로 그 날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내일 베풀 잔치 자리였습니다.
내일을 불고기냐 비빔밥이냐?
상어알?
주님 오실 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내다가 그는 불 위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그 자리에서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살았을 때 진작 이런 상황을 더 확실하게 알려 주셨더라면 내가 이런 곳에 와 있을 리 없지!
나사로처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을텐데.......
아브라함에게 따진 것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께서 부자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신 것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큰 구렁텅이로 서로 막혀있다는 것입니다.
26.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지도 못한다.'(눅16:26)
그는 건너갈 수 없고 건너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주님이 천사를 데리고 오시는 날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때에 그 장소를 옮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고 나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사 갈 수가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그 경계선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의 천국과 지옥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말입니다.
살았을 때 그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수를 써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음란하고 죄가 많은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사느냐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운명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2. Six days later Jesus took with him Peter, James, and John,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where they were alone. As they looked on, a change came over Jesus,
주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이시겠다고 말씀을 하신 지 육 일이 흘렀습니다.
주님이 제자들 눈 앞에 척 하니 그 나라를 보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주님이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 외진 곳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 자리는 예수님께서 배에 타셔서 수많은 사람을 가르치셨던 너른 해변이 아니었습니다.
외진 곳 사람이 올라 오지 못할 곳을 주님께서 찾으셨던 것입니다.
왜 그 나라를 사람들에게 감추시는 것인가?
또 12 명의 제자들을 다 데려오시지 않고 9명을 산 밑에 따로 놔두시고 3 사람만 데려오신 것인가?
15. "어떤 잘못이나 어떤 범죄라도,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판정할 수 없다.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만 그 일을 확정할 수 있다.(신19:15)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 증거를 위한 최소한의 사람을 구성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도 그 세 사람에 끼워주시지 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나라를 구경시켜주시지.......
그런데 그거 구경하는 일이 대수가 아닙니다.
3명에 뽑히든지 9명에 남든지.......
실은 무슨 예언하고 입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갔다오고 그런 능력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 맞추어서 뭐 하겠다는지 모르겠습니다.
용한 권사님이 우리의 미래를 맞춘다고?
그 미래의 일은 성경에 떡하니 씌어있습니다.
생명 사랑과 정의가 없으면 지옥!
그 말을 권사님이 소금치고 후추치고 말해주는 것 뿐입니다.
사람 숨이 떨어지는 순간 큰 구렁텅이가 떡하니 그를 막아 세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부자처럼 그 죽음 후의 영원한 현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자를 보세요.
그에게는 당장 연회를 베풀어서 손님 초대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죽고 나서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특별히 그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실감 나게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의 현실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날마다 연회를 베푸는 일 또 세모시 옷을 일상 옷으로 삼고 치장하는 일을 그만 둘 지 모르겠습니다.
음란하고 악한 세대를 역행해서 심판을 예비할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세 사람에 안 뽑혔어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 믿으면 그만입니다.
더 중요한 증언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그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목격하는 그런 경험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고 3학생 학교 대표로 몇 명 유명 대학을 탐방한 일이 있습니다.
전교 회장 부회장 서기 탐방을 다녀온 그 세 명이 전교생 앞에서 그 학교를 소개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 내서 탐방했던 그 3명이 나중에 그 학교의 학생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때 세 명에 뽑히지 못하고 학교에 남아서 책 펴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막상 그 학교의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탐방 간 것이 대수가 아니고 수학 문제 영어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그 학교의 학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을 그 세 명에 뽑힌 것이 아니라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현실에서 그 세상을 역행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제대로 생명을 사랑하며 정의를 실천하느냐는 것입니다.
나 같으면 차라리 저는 탐방을 안 갈래요!
학교에 남아서 수학과 영어 문제 더 풀어 볼래요 할 것입니다.
그 나라를 미리 보고 예언하고 방언하고 입신하고.......
그 탐방이 실재로는 득 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 때는 그 일이 자랑스러웠겠지만......
예언하고 입신하고 투시도 하는 권사님 목사님 장로님을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부러워할 사람은 생명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살상 거짓말을 하면서 세속을 챙기는 간신배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많은 헌금을 하고.......
그 헌금은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입니다.
11.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14.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사1:11-14)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3. and his clothes became shining white—whiter than anyone in the world could wash them.
그런데 이 세 명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주님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의 변화!
그러니까 가발 쓰고 성형하고 그런 껍데기가 아닙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그 사람의 내부입니다.
그 종말의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사람들은 이 현실에서 그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25.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27.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28.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겔36:25-28)
껍데기를 성형한 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하나님의 나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그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거기 천국 학교 전교 회장은 고재봉이었을 것입니다.
고재봉이는 자신의 상관에게 앙심을 품었습니다.
그 상관이 자신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죽여버리기로 작정하고 장교 관사에 들어가서 일가족을 몰살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원한을 품었던 장교는 전근을 가고 엉뚱한 장교 가족이 재앙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 사형을 선고받은 고재봉은 감옥에서도 포악했습니다.
그런 그가 집사님의 전도를 받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감옥의 모든 죄수를 전도했습니다.
그에게 사형의 순간이 왔습니다.
그는 남들은 오줌을 질질 싸면서 끌려가는 그 길을 찬송을 부르면서 간 것입니다.
그는 찬송을 부르면서 총에 맞았습니다.
“--나는 부족 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그는 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찬송 잘 부르는 것이 그의 변화를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쳐서 기도하는 것이
방언하는 것이
예언하는 것이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성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고재봉과 같은 살인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재봉이와 같이 찬송하며 죽음을 수용할 정결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에서 반장은 못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성결함으로 변화되었는가?
흰 눈과 같은가?
지금의 교회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변론을 통해 의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18. 주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사1:18)
그런데 교회가 그 존재를 목적을 잃었습니다.
간신배 고위 관리를 만들어 놓고 그 장로님 복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회 신분이 아니라 간신배 짓을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를 만드는 곳입니다.
사람 눈을 속이지 못해서 세상 것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복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천국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든이 날리면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서 권력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의 중심이 성결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나누었다.
4. Then the three disciples saw Elijah and Moses talking with Jesus.
그 자리에 엘리야와 모세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인물을 그 산에서 만나게 될 줄 생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사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나 들었던 인물입니다.
그 분들이 버젓이 나타나셔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 세 제자들이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그 나라를 직접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나라를 보여주신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말해도 도무지 믿지를 않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엄연한 현실임을 물리적으로 확인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나라를 보여주신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를 확인했다면 이제 삶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의도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하고 죄많은 이 세상 현실에 그 과녁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 음란한 세대에서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 현재의 행위가 미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엉뚱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5. 베드로가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5. Peter spoke up and said to Jesus, “Teacher, how good it is that we are here! We will make three tent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그 번쩍거리며 화려한 그 변화산의 장면!
그들은 당장 그들 눈앞에 있는 현란한 영적인 현실을 소유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막 셋을 지어서 그 현란한 자리에서 안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모세와 엘리야 예수님을 무슨 대화를 나누고 계셨을까요?
주님의 죽으심이었습니다.
30. 그런데 마침 두 사람이 예수와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죽으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눅9:30,31)
주제가 이렇게 다를 수가!
세 명의 제자들은 현란한 장소에서의 안주를 말하고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주님의 죽음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회들이 법을 어겨가면서 사랑의 교회들을 지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빚을 내가면서.......
성경을 보면 그 기적의 현실을 인해서 그들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정신을 잃고 바로 이 말을 했던 것입니다.
5.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5. “Teacher, how good it is that we are here! We will make three tent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사람들이 천상의 경험을 하는 장소는 곧 그들의 이 땅에서의 소명감을 잃게 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가시적이며 즉흥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드럼을 치며 소리를 지르며 황홀경에 빠진 것입니다.
황홀경이 정신없는 자들이 추구하는 예배입니다.
제정신으로 한 소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쁜 말은 아니었습니다.
사심 없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더 헷갈리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대한 예언을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제발 그 고난을 당하시지 말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베드로의 주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에 그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은 사탄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식적인 말들이 문제였습니다.
신앙에서 몰상식이 문제가 되지만 또 사탄은 우리 상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상식이 아닌 성서적 근거가 중요합니다.
입신하고 예언 방언하는 변화산의 자리는 그들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닙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장소는 음란하고 죄가 많은 세상입니다.
거기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보여야 할 것은 변화산에 초막 셋을 짓는 삶이 아닙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6. He and the others were so frightened that he did not know what to say.
성경은 베드로의 어리석은 고백의 배경을 이렇게 이르고 있습니다.
그가 겁에 질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겁에 질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접촉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음란하며 죄 많은 세상에서 뒹굴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물리적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서 보이는 이 세상만 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거기에서 오는 위기감입니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7. Then a cloud appeared and covered them with its shadow,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own dear Son—listen to him!”
구름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그들을 뒤덮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현실이 뜻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했던 것입니다.
5.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5. “Teacher, how good it is that we are here! We will make three tent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그들의 눈앞 10여m 앞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자 겁에 질렸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그들은 덮쳤을 때는 오금이 절였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고난을 부인했을 때 주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부께서 그들의 잘못을 교정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성부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7. “This is my own dear Son—listen to him!”
하나님의 지적하신 말씀은 첫째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앞에 모셔둔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 성부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텐트 세 개를 짓겠다는 헌신의 고백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종교적인 방식의 헌신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음란하고 죄가 많은 세상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그 장소를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외면한 이런 화려한 종교 의식과 시설들을 통해 거짓 평화를 누리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시도들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롬10:2,3)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성취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부인하므로 사탄이라는 지적을 들었습니다.
둘째 영적인 현실에 안주하므로 역사적인 책임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기적을 잘못 해석할 우려가 농후했기 때문에 주님은 사람을 피해 깊은 곳을 찾으셨고 또 소수의 제자만 택하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종교적 호기심을 채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게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변화산을 본 제자들에게 임무를 주셨는데 이 현장을 사람들에게 나중에 들려주라는 것입니다.
8. 그들이 바로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8. They took a quick look around but did not see anyone else; only Jesus was with them.
화려한 현실도 사라졌으며 오직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 가운데 오신 예수님만 남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다는 그 간증이 아닙니다.
이 현실에서 제 십자가를 감당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역사적 주님만 남으셨습니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9. As they came down the mountain, Jesus ordered them, “Don't tell anyone what you have seen, until the Son of Man has risen from death.”
제자들이 거기 그 자리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하니 구름을 몰고 성부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엄중히 그들을 지적하셨습니다.
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7. “This is my own dear Son—listen to him!”
여러분 기독인에게 보는 것이 중요합니까? 듣는 것이 중요합니까?
성부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던 그들은 심각한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려 때문에 주님은 그들에게 당장 본 것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9.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9. “Don't tell anyone what you have seen, until the Son of Man has risen from death.”
주님은 제자들에게 메시야 비밀을 언급하셨습니다.
물론 그 시한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 증언에 있어서 그 시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밥을 그대로 따뜻하게 해두면 다음 날 틀림없이 썩은 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누룩을 넣은 다음에 그것을 따뜻하게 하면 그것이 식혜가 됩니다.
그 누룩을 넣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점이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그 부활이라는 누룩 없이는 썩은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경험 후에 그들은 이 하나님 나라 경험의 간증을 세 명의 제자에게 들어야 합니다.
한국의 교회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죽음과 부활로 인한 하나님 나라 생명의 고백이 있기 전에 나병이 치료되고 또 하나님 나라 현실을 보았다는 간증부터 들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적하신 그 시점을 무시하고 보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큰 무당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믿쉽니다.
그러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되는.......
그 분은 철저히 정의에 대한 책임을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물으신 것입니다.
그 분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한 생명의 목적으로 희생의 죽으심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무너지는 죽음의 절대 세력을 경험 위에서 그 간증을 들을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죽으심과 부활의 사실입니다.
실은 다른 간증거리는 있어도 없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전제가 없이 믿쉽니다를 외치고 있으니 간신배 장로들과 비겁한 목사들이 교회로 썩은 밥이 되게 한 것입니다.
식혜가 아닙니다.
지금도 한국 교회에서는 메시야 비밀 선언되어야 합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목사가 사람 웃기고 다니는 것을 좀 막아야 합니다.
정의와 사랑의 내용성이 없는 자들에게 세 명의 제자가 본 그 나라는 비밀에 감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누룩이 사라지고 드럼을 쳐대면서 큰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복음을 잘못 해석하며 적용해대는 일이 그쳐져야 합니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서로 물었다.
10. They obeyed his order, but among themselves they started discussing the matter, “What does this ‘rising from death’ mean?”
예수님께서는 힘들여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뭔 소리!” 했습니다.
주님의 답답하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정말 생명을 거시고 말씀을 전하셨는데 제자들은 죽었다가 다시 사시는 것이 뭐야 하면서 서로 속닥거렸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목사를 감당했습니다.
현재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목사를 믿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바랍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목사는 믿을 존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도록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이 역사를 모두 이해하시고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지금 죽은 사람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뭐지 하면서 그 세 명의 제자처럼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단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령 자체라는 둥
아니면 그리스도라는 둥
제 교리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는 둥
늙은 영감이 흰말을 타고 유치한 옷으로 치장하고
아니면 유치 찬란한 치마 저고리를 두른 할머니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달했다고 합니다.
얼룩덜룩한 가마를 타고서.......
11. 그들이 예수께 묻기를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니,
11. And they asked Jesus, “Why do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Elijah has to come first?”
그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고백을 하자마자 엄청난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그 승리의 그리스도가 비참한 고난을 당해야 하시나?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할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엘리야를 언급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임하심은 메시야의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먼저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막1:2)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12. His answer was, “Elijah is indeed coming first in order to get everything ready. Yet why do the Scriptures say that the Son of Man will suffer much and be rejected?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답을 해주셨는데 첫째로 엘리야가 와서 하실 일은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 모든 것을 회복하였다면 왜 그리스도가 멸시와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
선풍기를 다 고친 줄 알았는데 전기를 꽂아도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고쳐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고치려 했던 것은 특별히 예배의 회복입니다.
38. 그러자 주의 불이 떨어져서, 제물과 나뭇단과 돌들과 흙을 태웠고, 도랑 안에 있는 물을 모두 말려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땅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그분이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주 하나님이시다!"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잡아라. 한 사람도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곧 그들을 사로잡았고, 엘리야는 그들을 데리고 기손강 가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왕상18:38-40)
유대인의 예배는 다수의 이방신으로 점령당해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 예배를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방 교주들은 다 죽였는데 이세벨이 살아있었습니다.
그것이 더 악을 쓰며 엘리야를 죽이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엘리야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은 옳은 것입니다.
엘리야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세벨이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고난은 대속의 제물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필연적인 조건인 것을 옳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길은 고난으로 정해진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길이 또한 죄인에 의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요한의 말씀을 제대로 듣더니 바라바가 아닌 예수님을 살리라고 외쳤더라면 예수님은 그 고난을 당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주님께서 사시는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은 바로 그 결정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죄인이니까!
죄인의 의지는 분명합니다.
주님을 십자가로 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없는 한!
그래서 하나님의 정해지신 뜻과 죄인의 악의가 그 십자가를 결정한 것입니다.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13. I tell you, however, that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at people treated him just as they pleased, as the Scriptures say about him.”
그들은 일관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죄성을 가지고 그들은 엘리야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인간의 죄성 때문에 엘리야가 주의 길을 예비하시는 일에 실패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엘리야를 부인한 것은 곧 그리스도의 부인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헤롯은 제 동생을 죽이고 제수를 제 마누라로 삼은 자였습니다.
그 악당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청난 서초동의 교회를 건축한 것입니다.
종교의 방식으로 거짓을 일삼은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엄청나게 화려하게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리 크게 불러도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자 그들은 엘리야를 죽인 것입니다.
그 밑에서 간신배짓 하는 자들이 헤롯과 함께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