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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지킵시다
2007년 5월 16일 / 삼일예배 / 창 3:1-7
어느 여름 날, 두 가정이 속초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가철이라 10시간 넘게 차가 밀렸습니다. 그때 ㉠집사님 가정은 부부가 서로 나누어 운전을 하며 그 지루한 시간을 잘 활용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테이프로 찬송과 설교를 듣기도 하고, 준비한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끝말 이어가기도 하고, 엄마 아빠의 옛날 얘기도 하고, 아이들이 책을 읽은 얘기도 하다보니까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느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집사님 가정은 남편이 혼자 운전했습니다. 길이 너무 막히자 남편이 짜증을 내고 불평을 했습니다. “기름도 안 나는 나라에 웬 놈의 차가 이렇게 많아!” 그리고 아내에게도 짜증을 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휴가철 지나고 휴가 가자고 했잖아!” 그때 아내가 미안한 표정을 하며 “여보! 혼자 고생 많이 하네요. 피곤하면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요. 얘들아! 아빠 고생하지? 아빠 어깨라도 주물러 드려라!”고 하면서 기분을 맞춰주면 될 텐데, 아내도 짜증을 냈습니다. “아니! 당신만 혼자 운전해요? 운전 좀 한다고 뭘 그렇게 유세를 떨어요? 그리고 1년에 한번 휴가 가는데 기분 좋게 가면 어디가 덧나요? 정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결국 ㉡집사님 가정의 여행은 지옥 여행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마음만 잘 붙잡으면 천국이 펼쳐지지만 마음을 잘못 쓰면 지옥이 펼쳐집니다. 지금도 사단은 수많은 사람과 사건과 사기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려고 합니다. 그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한다면 그것은 사단의 전략에 말려드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넉넉한 마음과 믿음으로 우리의 소중한 영혼을 지켜나가십시다.
본문에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사단의 공격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사단은 신앙이 어릴 때는 위협이라는 방법으로 공격합니다. “너, 예수 믿으면 재미없어! 예수 믿으면 죽을 줄 알아!”하고 위협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은 사람에게 “죽인다!”고 하면 오히려 더 하나님의 품을 찾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유혹으로 파고듭니다. 유혹은 사단의 고등수법입니다. “믿으려면 좀 지혜롭게 믿어라. 어떻게 주일날 낮에도 교회에 가고, 수요일 밤에도 또 가고, 매일 새벽에도 교회를 가느냐? 하나님이 교회에만 있냐? 아무개 집사도 새벽기도 안 하잖아? 네가 얼마나 잘 믿는다고 그렇게 난리 야단법석이냐?”고 하며 신식 예수 믿는 법으로 유혹합니다.
본문에서 사단은 하와에게 핍박이 아닌 유혹으로 찾아왔습니다. 만약 사단이 하와에게 “너 하나님 섬기면 죽여!”하고 달려들어 하와를 붙잡고 강제로 선악과를 먹이려고 했으면 하와는 죽어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와에게 유혹이라는 방법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도 그와 유사한 사단의 유혹이 많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 내 영혼을 사단으로부터 지키는 4가지 방법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단의 간교함을 알아야 합니다.
1절 /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교활하고 약삭빠른 것이 뱀이었다. 그 뱀이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것 보게나 그래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그러시던가?'
실제로 본문에 나오는 사단의 유혹을 보면 그 유혹방법이 얼마나 간교한지 모릅니다.
① 사단이 여자를 유혹의 대상으로 먼저 삼았습니다. 창 2:16-17을 보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창 2:22에서 하와를 만들기 전에 주어졌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들었고, 하와는 그 명령을 아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자연히 아담보다 하와가 유혹하기 쉽기 때문에 먼저 하와를 찾아왔습니다.
② 사단이 하와가 혼자 있을 때 유혹했다는 점도 간교합니다. 사실 고독과 외로움은 시험의 최적기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죄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③ 사단이 하와가 선악과 바로 옆에 있을 때 유혹했다는 점도 간교합니다. 6절에 나오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이라는 말을 보면 그때 하와는 선악과 바로 근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 물건을 보면 탐심이 생기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④ 사단이 하와가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접근했다는 점도 간교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사단은 처음부터 “믿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질문 형식을 빌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경계심을 풀고 그 말에 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간교함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영리하다고 하여 사단의 간교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이 없는 영리함은 간교한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간교함을 알고 항상 작은 의심, 작은 죄, 작은 불성실, 작은 부정적 불씨라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2. 불평의 씨앗을 제거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사단은 왜 “하나님께서 정말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어?”라고 물었습니까? 마치 하나님이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게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해서 하와의 마음에 불평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불평하는 마음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암 덩어리입니다.
오늘날 많은 불평과 원망이 어디에서 옵니까? 자기에게 없는 것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꽃을 봐도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고, 동양란 같은 것은 볼품은 별로 없지만 향기가 대단히 좋습니다. 사람도 인물이 좀 못난 사람에게는 천사 같은 마음씨를 주신 경우가 많습니다. 인물이 잘났는데 성격이 추하면 나중에는 그 잘난 얼굴이 오히려 사단이나 뱀처럼 역겹게 보이게 됩니다.
모든 삶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내게는 없다하여 모든 것을 안 주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 다른 것을 발견하는 영안이 열려 자신의 현재의 처지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이 유혹의 그물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나 가진 재물 없으나
3. 유혹의 자리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와가 뱀의 유혹에 걸렸던 것은 그녀가 선악과 근처에서 서성거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면 아예 선악과 근처에는 가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믿음을 과신하고 선악과 주위를 배회하다가 사단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유혹의 자리에는 힘써 가지 말고, 유혹의 물건은 힘써 쳐다보지 맙시다. 우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에 얼마나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특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생긴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어느 날, 한 사람이 죽어 저승사자 앞에 섰습니다. 사자가 물었습니다. “천당에 갈래? 아니면 지옥에 갈래?” 그는 감격했습니다. 지옥에 갈 줄 알았는데 자기에게 선택권을 주다니... 그는 감격하면서 부탁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한번만 구경시켜줄 수 있나요?” 그러자 곧 천당과 지옥에 관한 영상이 인터넷에 떴습니다. 먼저 천당을 보니까 사람들이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높이는 얘기만 했습니다. 따분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옥을 보니까 화려한 카지노가 있었고, 아가씨들이 서빙을 해주고 있었고, 고급 양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전 아무래도 지옥 체질입니다.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하나같이 지옥을 택했습니다. 지옥에 가자마자 뜨거운 불길이 쏟아지더니 사방에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니! 아까 그 장면은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했습니다.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아까 그곳은 관광비자로 잠깐 들르는 곳이고, 영주권자는 평생 이 맛을 봐야 돼.”
우리 눈에 보암직한 것은 내 영혼을 삼키는 미끼가 될 수 있습니다. 나쁜 것이 보이는 자리는 피하고,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이 남 짓누를 궁리나 하고 있는 자리에 가지 말아야 하며, 남 우습게나 여기고 제 잘난 체만 하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말되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 같아서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나날이 푸르리니 하는 일마다 끊임없이 번창케 될 것입니다.
4. 입과 귀를 잘 지켜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말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사단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어?”라고 물으니까 하와가 어떻게 대답합니까?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동산 중앙이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 하와의 말과 창 2:17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비교해 보면 하와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말을 더하는 잘못’입니다. 창 2:17에서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나님 말씀에 자기 말을 더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말씀을 빼는 잘못’입니다. 창 2:17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You will surely die)”고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You will die)"하고 하나님 말씀의 일부분을 뺐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자기 말을 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들은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자기 말씀을 더합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을 자꾸 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분을 빼서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위험한 요소가 되는지 모릅니다.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잘 분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때로 사단도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단의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4-5절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람들은 흔히 이 구절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에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5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뱀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은 뱀의 말처럼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와가 욕심이 생겨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반항심이 있기 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임의로 먹되 동산 동편에 있는 사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뱀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네가 사과를 먹으면 쾌락을 알게 되어 기분이 끝내주게 좋아질 거야.” 그래서 사과를 먹고 타락했다면 무엇 때문에 타락했습니까? <쾌락을 맛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뱀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분이다”라는 뉘앙스로 말하는데, 사실상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최대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Christ like)’입니다.
창 1:26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또한 창 2:7을 보면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런 조치들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뱀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이가 아빠를 존경하면 무슨 말이 나옵니까? “아빠! 저도 앞으로 크면 아빠처럼 될래요.” 그 말을 듣고 아빠가 기분이 나빠서 “정말 나쁜 자식이네. 아주 교만한 자식이네.”하고 그 아이를 집에서 내쫓습니까? 아마 아이의 그런 말을 들은 아빠는 날아갈 것 같은 행복과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주 못된 놈이네. 네가 나처럼 돼! 버릇없는 교만한 놈 같으니라고...”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나도 네가 나의 형상을 드러내고 네가 예수님 닮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런 간절한 바람이 예수님의 고별설교인 요 14:12에도 나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우리가 주님이 하는 일도 하고 또한 주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성경의 다른 것은 다 믿어져도 이 사실만은 믿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님 말씀이니까 사실입니다. 그만큼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뱀은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도록 끊임없이 속삭일 것입니다. “너! 너무 교만 떨지 말라. 산을 옮기는 믿음이란 하나의 비유일 뿐인데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설쳐대. 주님처럼 행동하지 마!” 물론 겸손한 것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너무 비하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뱀의 말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불평이 들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링컨은 말했습니다. “내가 실패할 때 사단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이 실패의 경험으로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사단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말하는 것도 잘 말해야 합니다 / 그처럼 듣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말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만 특별히 언어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격려하며, 서로 발전시키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언어처럼 신비한 것이 없습니다. 언어는 문명도 좌우하고 인격도 좌우합니다. 언어가 발전하면 대개 문명도 발전하고, 인격도 좋아집니다. 또한 언어는 복도 좌우합니다. 남을 깎아내리는 언어가 많을수록 자기 복도 깎이게 되고, 남을 세워주는 언어가 많을수록 자기도 복 받고 세워집니다. 특별히 우리는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사는 세대는 더욱 사단의 공격이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영혼을 지키려면 축복하는 말을 지금부터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는 축복하는 대로 축복받습니다.
▶ 어느 날, 탈옥수 신창원의 아버지가 아들이 하도 애를 먹이니까 경찰에 연락해 잡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경찰에게 “이 아들을 잡아가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이 아들을 붙잡아 달라!”고 했다면 신창원은 그 머리와 능력으로 큰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 자녀들이 잘못하면 매를 들지언정 자녀를 저주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 저주의 말을 들으면 사단이 얼씨구나 좋아서 찾아와 자녀의 영혼을 물어뜯어버립니다. 가끔 자녀에게 막말을 하고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면서 저주를 퍼붓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 저주를 받고 잘 자라겠습니까? 결국 부모와 타인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자라다가 빌어먹는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해도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실 거야.”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그처럼 자녀를 축복하는 일을 입에 체질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험한 세상에서 악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고 축복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영혼을 지키는 4가지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단의 간교함을 알고, 작은 것이라도 의심과 원망의 불씨를 제거하고, 유혹의 자리에 가지 않고, 입과 귀를 잘 지킴으로 소중한 자신의 영혼과 가정을 지켜내고, 축복받는 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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