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을 증명할 수 없는 시기를 공백기라고 부른다. 공인들이 좀처럼 얼굴을 비추지 않는 시기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취업이나 진학을 준비하는 ‘준비생’들 사이에서도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대학생들을 모아놓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을 하면 공백기가 티가 날 텐데 졸업 미룰까요 하는 질문이 종종 올라오고 맞다 아니다 여러 조언들이 뒤따른다. 나는 올해 여름 졸업을 미뤘고 공백기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 어도비 라이센스를 놓아줄 준비가 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로 졸업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은 적어도 당분간만이라도 무얼 해야 할지 알고 있는 표정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다행히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바로 내쫓지 않고 수료생이라는 신분을 주었다. 다음 졸업 시즌까지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어떤 결론이든 내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수료생이 되었다. 공백기를 보내던 중 나는 지금 알면 안 될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별 특별한 것은 아닌데, 일이 없는 삶이 상당히 보람찰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사실이었다. 누가 사람은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다고 했는가. 심지어 은퇴 후의 중장년층이 공허와 우울을 겪는다는 기사도 읽었는데. 나에게 일 없는 삶은 이상할 만큼 평화롭고 풍요롭고 슬기롭고 만족스러웠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 달이 세 달이 되어도 공백의 시간은 질릴 틈이 없었다. 아마 이런 발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람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삶에는 일 말고도 애정을 쏟을 것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어떤 이유에선지 일로 무언가를 이루면서 살겠다고 야망을 품어온 어떤 청년에게는 충분히 당황스러운 사실이었다. 돌아보면 스무 살부터 나의 삶은 오로지 일에 대한 야망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고등학생 때의 삶이 입시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진지한 버전이었다. 스물이 된 나는 세상의 많고 많은 일 중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그 한 가지 질문에 골몰하며 지냈다. 각자에게 고유한 잠재력이 있다면 나에게도 어떤 능력이 있을 텐데 그 능력은 무엇이고 어느 분야에서 터질 것인가. 나의 진정한 흥미와 적성은 무엇이고 어떤 환경에서 무슨 업무를 했을 때 가장 최상의 성취를 할 수 있을까. 일과 삶의 밸런스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일과 삶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머릿속에서만 고민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마땅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바로 일터로 향했다. 새내기가 되어 첫 학기를 마친 직후 휴학을 하고 영상 프로덕션에서 일을 시작했다. 어정쩡한 옷차림으로 촬영 계획표를 나눠주고 촬영 장비를 들고 스태프들 식사를 챙기고 정산을 하고 파일을 백업하고 편집했다. 두 번째 휴학에는 기회의 땅 중국까지 날아가 광저우시의 한 의류 회사에 다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창업 교육을 듣고 총명한 지인들을 따라 사업계획서를 쓰고 창업에 도전했으며 깔끔하게 실패했다. 또 얼마 후에는 한 AI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지냈다. 이렇게 동분서주 나를 움직이던 무언가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적당한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스트레칭을 하고 냄비에 콩물과 우유와 꿀을 넣고 달콤 고소한 두유를 끓이는 동안. 보사노바를 틀어놓고 매일같이 쌓이는 먼지를 쓸어내고 따스한 햇빛 속에서 빨래를 탁탁 털어 널고 개고 다시 돌리는 사이. 계란과 토마토를 볶아 밥에 얹고 양상추 파프리카 양파 해바라기씨 아몬드 호두를 넣고 샐러드를 만들 때. 선선한 저녁 엄마와 집 근처 수로를 돌면서 같이 걷고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이로운지 몇 번이고 호들갑을 떨면서. 그리고 또다시 또다시 같은 일을 기꺼이 반복하면서. 직업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인류가 오랫동안 해온 활동들에 속수무책 매료된 것 같다.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읽고 쓰고 걷고 뛰고. 이른바 ‘바깥 일’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어떤 충만함이 거기에 있었다. 처음 하는 일들도 아닌데 그간 제대로 계발할 기회가 없었던 탓일까. 새삼스럽게 나는 공백의 일들이 자꾸만 좋아졌다. 청소는 하면 할수록 더 번쩍번쩍 윤을 내고 싶었고 신상 청소 도구를 탐내게 되었으며 음식은 할수록 메뉴가 늘고 손맛이 좋아졌다. 한가한 저녁 선선한 공기를 가르며 걷고 뛰면서 몸은 가벼워졌고 더 더 강건하게 단련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해치우다 보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주변의 인재들은 대기업 로스쿨 대학원에 가고 공무원 회계사 변리사를 준비하고 창업가가 되고 더러는 수능을 다시 보고 의사가 되겠다고 재수학원에 있었다. 그래 세상에는 너희가 있으니 걱정없다.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동료들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불로소득도 없으면서 염치없게도 안온한 지금이 좋았다. 문제를 굳이 찾아보자면 지금의 평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일에 뛰어들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는 것일까 혹은 컴포트 존에서 무사안일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야망이 나 몰래 사라진 것은 저성장 시대 일본의 젊은이들을 닮아가는 탓일까 혹은 일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일과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일까. 확실한 것은 청년의 앙증맞은 잔고로 은퇴의 맛을 알아버리면 곤란해진다는 점이다. 한창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해야 할 때는 일 없는 기쁨을 차라리 모르는 편이 훨씬 낫다. 아무리 봐도 공백이 이렇게나 즐겁다는 사실은 한참 나중에 알아야 했다. 빛나는 전성기를 한바탕 치러낸 뒤, 곳간도 인심도 한창 풍족한 즈음 난초와 트로피 몇 개를 슥슥 닦으면서. 지나온 세월 일밖에 모르고 열심히도 살았구나 그래도 난 지금이 좋아 흥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