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매달려 애틋하다
정동식
어느 날, 컴퓨터 모니터에 눈이 부시도록 글 수정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보험을 권유하는 스팸 전화려니 하면서 확인해 보니 절친 L이었다.
요즈음 지인들과 카톡으로 소통을 많이 하고 있어 오전 중에 전화 오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카톡을 보냈는데 안 봐서 전화했어. 오늘 오후에 삼필봉 어때?”
“좋~지! 몇시?”
“2시쯤.”
우리는 동네 인근 미리내마을 뒤편 등산로 입구에서 만나 숲으로 들어갔다.
등산이 시작되면 L 친구는 내 안부를 묻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최근의 근황을 비교적 상세히 아뢴다.
그래서 L 친구는 내 집안 사정을 꿰뚫고 있다.
한마디 툭 던지면 굳이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전체 상황을 알아차린다. 올라가는 길에 예전 1단지 20층에 살 때 19층 아주머니 일행을 만났다. 그분들은 지난 산행에도 보았었다. 이웃 단짝 언니로 보이는 분과 함께라서 짧은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삼필봉 바로 밑, 마비정 벽화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쌍화차 한 잔을 하고 내려왔다. 앞서가던 친구가 연리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갑자기 감탄사를 넣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 나뭇잎, 정말 아름답다!”
나는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되물었다.
“어디 말인데~”
“여기 왼쪽에 있는 나무, 한번 봐. 햇빛에 반사된 이파리 빛깔이 너무 좋아!”
나는 그가 자연의 모습에 감동하는 표현을 처음 들었다. 가을 단풍도 아닌데 이 한겨울에 무슨 감흥이란 말인가. 의아했지만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나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우와! 저물어가는 석양빛으로 온몸을 감싼 갈색 이파리들! 빨강도, 노랑도 아닌 수수한 갈색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겨울 한가운데에 살아남은 이파리지만 바랜 빛깔이 아니다. 매서운 바람에도 견뎌낸 이파리지만 남루하지 않은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갈색의 어둠을 넘어 연하고도 밝은 갈색 삶을 살고 있었다.
가을에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는 빛의 반사각에 따라 아름다움이 배가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갈색으로 단장한 이파리가 아직 야산의 나무에 예쁘게 매달려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나무일까? 상수리나무 같기도 하고, 잎이 넓지 않아 떡갈나무도 분명 아닌데, 나무에 해박하지 않은 나에겐 모두 비슷한 나무처럼 보인다.
나는 주변에 참나무가 드문드문 있어, 아마 참나무의 일종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L 친구는 참나무 종류는 아니라고 했다.
이럴 때 필요한 ‘모야모’라는 유용한 앱이 있다. 간혹 산길을 걷다가 화초이름이 궁금하여 모야모에 물으면 박사님들이 신속하게 답변을 해준다.
집에서는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어 바로 답장이 오는데,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지는 산에서는 즉시 접속이 안 되는 불편함은 있다. 데이터 한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그 나무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주변에 있는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고 사진을 보냈더니 신갈나무라는 답변이 왔다.
친구는 참나무가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고, 나는 모야모를 깊이 신뢰하며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다.
며칠 후 아내와 솔방울을 줍기 위해 뒷산에 갔다. 하산 중에 내려오면서 아내가 “여보! 연리지, 사이가 더 좋아졌네! 가지가 더 굵어졌어” 라며 연리지에 관심을 보이자, 불현듯 친구와 토론을 벌였던 그 나무, 석양에 이파리가 이쁘게 빛났던 그 나무, 생각이 났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에는 확실하게 사진을 몇 카트 찍었다.
나의 수호신 모야모에 올려 확인해 봤다. 집이라서 그런지 금방 박사님의 답변이 도착했다. ‘감태나무‘라고 한다.
감태나무!시골에 살지 않고, 도시에서 자란 때문인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인가? 세상을 이만큼 살았는데도 늘 배울 게 많다. 그래도 최근에는 글을 읽고 쓴답시고 궁금한 단어는 일일이 찾아보고 넘어가니, 늦게나마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태나무도 깊게 알면 알수록 정말 신비한 나무이다. 해가 바뀌어 새봄이 오는데도 아직 작년의 잎을 안고 있다. 그러면서도 추하지 않다. 오히려 찬란한 빛깔로 단풍 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L 친구 말처럼 석양에도 빛나며 초로의 눈을 현혹시킨다. 더군다나 그냥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겨울에 움트는 눈을 보호하려는 자식 사랑이 숨어있다. 그래서 새순이 자랄 때까지 나무와 이별하지 않는다.
나무 중에서 모성애가 가장 강한 수목이라는데 또 한 번 놀랐다. 동물이나 사람이 아닌 나무에도 내리사랑이
있다니 경이롭지 않은가? 자녀 사랑이 웬만한 사람 못지않아 큰 울림을 준다.
이 나무는 돌산에서 자라,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벼락을 잘 맞는다고 한다. 벼락 맞은 나무의 90%는 죽는 다는데, 감태나무는 불꽃이 치며 자신의 일부를 태우면서도 굳건히 버텨낸다.
연수목이 귀하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나무를 자세히 보면 수피가 터져 나온 곳이 많은데 나무의 생존본능인 것 같다. 벼락을 맞으면 살기 위해, 맞은 부분의 수피를 터뜨려 전기가 외부로 흐르게 하여 나무 전체를
살린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좋은 도장을 만들 듯 벼락 맞은 감태나무도 아름답고 훌륭한 지팡이를 만들 수
있다. 벼락을 몇 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나무가 연수목이다. 연수목 지팡이는 큰 스님들이 좌선하거나 설법을
할 때 주장자로 사용한다. 연수목은 이름 그대로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귀한 나무이다. 그래서 일반인도 지팡이로
사용하거나 액을 막아주고 좋은 기를 받게 해 준다고 하여 목걸이나 핸드폰 걸이 등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땅과 나무, 하늘의 번개 기운이 연수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감태나무는 신비롭고 위대함에 더해 우리의 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뿌리, 줄기, 잎과 열매 등 나무 전체를 약용으로 사용하여 버릴 게 하나 없는 좋은 약재이다. 비염과 관절염, 신경통과 골다공증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카테킨이 많아서 항암작용과 염증을 삭이고 피를 깨끗이 하는 작용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하늘이 내린 나무, 천수목이 맞는 것 같다.
세상의 어머니들도 하느님께서 워낙 바쁘셔서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말이 있다.
자식 사랑이 유별난 감태나무! 눈보라와 벼락을 견뎌낸 이 나무를 보노라니 떠나가신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난다.
가끔 자식을 버리는 어두운 사연들을 접할 때, 나무보다 못한 부모가 있다는 현실에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우리 집 뒷산에 가면 언제나 볼 수 있는 감태나무 군락지가 있어 그나마 일말의 안도감을 느낀다.
나무에서 배운다. 자연은 정말 위대하다.
(2023. 2.20)
첫댓글 정동식 선생님 감태나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더욱 관찰하면서 좋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