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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세어 보는 믿음을 갖자
2025년 12월 7일 / 창 15:1-7
창 15:1-7 /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 이런 일이 있은 뒤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가운데서 아브람에게 내렸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브람아! 네가 어떤 위험에 빠진다 해도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 내가 네게 큰 상을 베풀겠다.’ 2) 그러자 아브람이 대답하였다. ‘여호와 나의 주님, 주께서 내게 큰 상을 내리신다 한들 그게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겐 여전히 자식 하나 없지 않습니까? 내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이라고 해야 고작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밖에 더 있습니까?’ 3) 아브람이 말을 이었다. ‘보십시오, 내게 자식이 없기에 우리 집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엘리에셀이란 종이 내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내게 자식을 허락하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4)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이 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니다 네 종이 네 재산을 물려받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몸에서 난 자식이 네 재산을 물려 받을 것이다. 걱정 말아라.’ 5) 그리고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을 이으셨다. ‘아브람아, 보거라. 저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하늘에 저렇게 총총히 반짝이는 별을 다 셀 수가 있겠느냐? 네 후손이 하늘에 떠 있는 저 무수한 별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6) 아브람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굳게 믿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믿는 아브람을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그를 인정해 주셨다. 7) 여호와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너와 네 후손이 이 땅을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바벨론에 있는 우르에서 이끌어내었다.’
오늘의 말씀은 거듭나기 직전에서 가져야 할 성도들의 믿음이다. 마치 누가복음 18:8에 나오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라는 말씀을 대변하는 듯한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났다. 인생 나이 일흔이 넘으면 객지생활을 하던 사람도 고향이 그리워 돌아올 때이다. 뿐만 아니라 75살이 될 때까지 혈육이 없어 형님의 아들 조카 하나를 데려다 양아들로 키우는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 ’(창 12:2)라고 말씀하셨고, (창13: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다.
그런데 세월은 자꾸 흘러갔지만 자식에 관한 소식은 전혀 없었다. 티끌같이 많게 하겠다던 후손은커녕 당장 아내 사래는 나이 많아 잉태할 수 없게 되었다. 함께 하던 조카 롯도 이제는 삼촌과 함께 지낼 수 없다고 목자들 핑계를 대며 독립해 나갔다. 소돔과 고모라를 침공하여 그곳 주민과 함께 포로되어 붙잡혀 갔던 롯을 구원해 주었지만, 롯은 또 다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았다. 이에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허무함과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그리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라고 하셨다.
별을 세어 보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1. 절망 중에도 소망하는 믿음(2)
보통 절망을 캄캄한 밤에다 비유하거나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벽에다 비유를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밤이나 절벽을 만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눈앞이 캄캄하고,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그러한 절박한 현실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대부분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한다. 젊은이든, 나이든 장년도, 예외는 아니다. 제 아무리 큰 소리를 치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현실이 자기에게 닥치면 모두 고민하게 되고, 울분을 참지 못하게 되고, 때로는 스스로 목숨까지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브라함도 인간이기에 고민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는 무자하오니, 조카놈(롯) 하나를 아들로 키우려고 했지만, 그놈도 제길 찾아 나갔으니 이제 내 대를 이을 후사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심기가 그렇게 편하지 못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도 이러한 경우들 당하면 믿음을 표현할 분들이 얼마나 될는지? 때때로 짜증도 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생길 것이다. 믿는 우리도 하나님께 이러한 불평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며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에서도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고 절망적이라고 해도 소망마저 끊어지면 안된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소망이 끊어지지 않았던 사실을 로마서 4:18 말씀을 통하여 발견하게 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 김삼환이라는 소년은 가난으로 공부의 길이 막히자, 14세부터 새벽기도회에 나가 종을 치며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호소하였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이 없어서 어머니 치마를 덮고 가서 종을 치며 기도하였다. 이 소년이 자라서 목사가 되었는데, 그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회에만 3천명이 출석한다고 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목사님은 목사가 되어서도 설교를 못한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교회에서 쫒겨 났었지만 하나님께 둔 그의 꿈이 포기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그 목사는 한국 교계의 지도자가 되었다.
2. 절망 중에도 별을 세는 믿음(5)
대부분 현실 속에서 낙심하는 사람들은 캄캄한 것만 생각하고, 밤이 되었다는 그것만 보고 좌절하다가 그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왜 밖으로 끌어내어 밤하늘을 보게 하셨을까?
천막에 쭈그리고 앉아서 늙은 아내를 바라보고 뼈만 남은 자기 몸을 바라보고 자식 없는 것을 한탄하며 ‘우리의 후손은 없고 이 많은 재산은 다 이방인에게 남겨주고 난 갈 수밖에 없다’라고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람아! 왜 천막 밑에서 늙은 아내나 늙은 너 자신을 바라보고 자식 없는 것을 탄식하느냐? 밖으로 나오라.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려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별들을 헤아려라. 네 자손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새로운 꿈을 가져라. 새로운 믿음을 가져라. 용기를 갖고 담대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당신의 약속이 저 별들처럼 초롱초롱 영원히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 깊어 질수록 별은 더욱 더 영롱하게 빛난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란 밤을 맞을 때, 별을 보는 사람들이 신앙인이다. 밤하늘을 쳐다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한다. 밤이 되었기에 문제가 아니라, 밤에 하늘을 보는 자들이 없기에 문제요, 또 그 밤하늘에 빤짝이는 별들을 세어보는 비젼의 사람들이 못되기에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방황할 때, 그리고 낙심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 처해 있을 때, 가장 가까이 와 계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아브라함을 다시 생각해 보자. 그가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였겠는가? [네 자손이 별과 같으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별이기에 어느 정도 세어 본 후에 더 이상 셀 수 없어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별을 세는 현실은 밤입니다. 아직도 별은 손에 잡힌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별을 보면서 약속을 현실로 받아 드렸다. 그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히 11:1) 했다.
● 세계 2차대전 때 영국과 미국의 포로 20.000명이 수용되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무려 8.000명의 포로가 죽었는데 그 사인이 영양실조나 질병이나 과로가 아니라 <절망>때문이었다. 반면 나치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600만 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되었을 때, 그들이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 벽에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된 사실이 있었다.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태양이 우리에게 비쳐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이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우리는 이 이름 모르게 살아져 간 지하감방의 죄수의 신앙처럼, 현실의 장벽 넘어서 있는 세계를 보는 VISION의 눈이 열려야한다. 비록 지금 고난의 현실의 밤을 맞이했다 할지라도, 밤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을 셀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희망과 용기와 확신만 있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비록 내 몸이 이제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사망선고를 받았을지라도, 내 영혼의 세계가 반짝이는 저 숱한 별들을 셀 수만 있다면 그것이 위대한 승리이다.
왜 신앙이 필요할까?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신앙이란, 밤이 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밤에 별을 보며 꿈을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인생에게는 누구나 밤은 찾아온다. 그러나 밤이 온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밤이 오면 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절망 중에도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믿음(6)
아브라함은 밤하늘에 별을 보면서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비록 연약한 인간이기에 밤이 오면 흔들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했다. 붙들어야 했다. 이 약속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하나님 앞에 의가 되는 것이다.
본문도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결코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로 여기신 것이다.
● 1809년 신․구약 전체를 인도 벵골어로 번역,「현대선교의 창시자」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 목사는 선교활동을 하며 인도 언어를 배워 성경번역에 힘썼다. 어느 날 번역한 원고를 두고 산책을 나갔는데 강아지가 촛불을 건드려 번역한 원고가 불타버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이 사실을 안 캐리는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강아지를 끌어 안고 『더 완전한 번역을 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 후 다시 번역에 착수, 인도선교에 크게 기여했다. 이것이 오뚜기 신앙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몇 번이고 흔들리고, 몇 번이고 좌절하고, 몇 번이고 실망했었을 망정 지금 이 순간, 별을 세어보는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시기를 바란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시며, 의롭다고 인정하시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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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그 마음가짐이어라
그것은 장밋빛 얼굴,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겉모습이 아니라
늠름한 의지, 빼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열, 깊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신선함이라
청춘은 겁 없는 용기, 안이함을 몰아내는 모험심 같은 것 그래서 이십 세 청년만 아니라 육십 세 노인에게도 청춘이 있다네 누구든 나이를 먹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 늙어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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