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21) 회유책(懷柔策)
허유의 회유에 따라 유비는 원소에게 투항하기 위해 그가 머물고 있는 군영으로 찾아갔다.
그리하여 그의 군영을 30 여리 쯤 앞둔 곳에 이르니, 연락병이 달려와,
"허 선생! 유 장군이 온다는 소식에 주공께서 친히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하고, 아뢴다.
그러자 허유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어디 계시냐?"
"저기 앞입니다."
허유가 그 말을 듣고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며 먼 곳을 유심히 보더니 유비를 돌아보며 말한다.
"유 황숙! 내가 뭐라합디까. 우리 주공이 나약할 땐 황당할 정도인데, 일단 현명해지면 사람을 놀랠킬 정도라오. 장군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여기까지 마중을 나오신 것을 보시오, 하하!"
허유는 만족스런 웃음을 보이며 유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유비는 참담한 가운데도 고마운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서 갑시다!"
유비를 정중히 맞아주려는 원소가 반갑기는 허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말고삐를 움켜잡고 박차를 가하니, 유비도 허유를 따라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원소가 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그 앞에 말을 멈춘 유비와 허유가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원소의 앞으로 달려갔다.
허유가 지척에 이른 원소에게 손으로 유비를 가르키며 소개하였다.
"주공! 유 황숙입니다."
원소의 앞에 이르자 유비는 그 앞에 무릅을 꿇고 두 손을 읍하며,
"패장 유비가 원 대장군을 뵈옵니다."
하고, 깍듯이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손수 유비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어서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며, 유비를 마주보고 말한다.
"인의롭고 현명하기로 이름난 유황숙과 함께 대업을 이루고 싶었소. 이렇게 만나니 몹시 기쁘다오."
그러자 유비는,
"유랑(流浪)의 패장(敗將)을 이렇게 융숭히 맞아 주시니, 감격스러운 말씀 다할 길이 없습니다. 제 소원은 단 한가지, 원 공과 함께 조조를 멸하고 한나라를 보좌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원소가,
"나도 같은 소원이오. 또 어린애의 병 때문에 지원군을 보내지 못해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오. 자! 진영으로 가서 회포도 풀겸 한잔 하며, 조조 섬멸 계획을 세우도록 합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유비도,
"과분한 우대에 그저 백골난망(白骨難忘)할 뿐입니다."
하고,대답은 하였지만, 생사조차 모르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속으론 눈물을 삼키며 원소에게 수없이 감사의 말을 올렸다.
"갑시다!"
원소는 손수 유비의 한 쪽 손을 붙잡고 수레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허유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
한편, 서주성과 소패성을 점령한 조조는 서주성에 들어앉아 장수들을 불러모았다.
그 자리에서 장군 조인이 전승보고를 하였다.
"주공! 유비의 군사는 거의 죽고, 삼만에 이르는 투항자는 우리 옛 병사들 입니다."
하고, 말하니 뒤이어 다른 장수가,
"주공, 원소의 지원군은 서주 30리 밖까지 와서, 물러났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허저가,
"주공, 소패는 이미 점령하였고, 하비는 아직 관우가 지키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물러가자, 조인이 나서서 말한다.
"하비성은 외진 곳이라 싸울 의지도 없을 것이니, 소장이 정예군을 이끌고 닷새 안에 점령하겠습니다."
하고, 자신감 있게 호언하였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만 있던 조조가 아무런 대꾸도 아니하고, 장군들과 참모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장군들과 참모들은 조조의 행동에 일제히 의문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조의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이들 모두가 조조의 뒤에 도열하다시피 한 그때, 조조가 입을 열어 말한다.
"관우가 하비성을 지키고 있으니, 하비성을 공격하면 관우도 죽을 텐데, 그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사실, 나는 유비의 수하중에 관우가 제일 맘에 들어, 무예도 뛰어나지, 게다가 충의도 강하지...관우가 내게 투항해 온다면 십만 군사보다 나을 터... 하비를 공격하기엔 관우가 너무 아까워..."
조조는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정욱이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서며,
"주공! 그러시다면 계책이 하나 있사온데..."
하고, 아뢰니 조조는 천천히 입을 열어,
"무슨 계책인지 말해 보게."
하고, 명하였다.
그러자 정욱이,
"관우는 충성스런 자라, 그런 자에게는 총력전보다는 궁지로 몰았다가 충의로 유도하시는 것이 좋은 계책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
한편, 여러날 째 서주성의 전황을 전해 받지 못한 하비성의 관우는 손건과 함께 걱정을 하였다.
"열흘이 넘도록 형님 소식이 없으니, 이거 무슨 큰 일이 일어났는 지도 모르겠군. 오늘도 소식이 없으면 나가봐야겠어."
관우가 성루에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손건이,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왜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서주성은 주공이 잘 지키고 계신게죠."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 대화를 하며 성밖의 조조군의 진영을 유심히 살펴보던 관우가,
"응? 조조군이 철수를 하는군, 무슨 연유지?"
하고, 말하자 손건도 철수하는 조조군을 유심히 바라본다.
"복(福)인가, 화(禍)인가?"
관우가 손건에게 말하자, 성밖을 유심히 살피던 손건이,
"보십시오. 그래도 소수의 병사들은 남겼군요."
하고, 성밖을 가르켰는데, 아닌게 아니라 무기도 없이 걸어서 성문 앞으로 접근하는 소수의 병사들이 있었다.
"우리 군사 같습니다."
손건이 다시 말하자 관우는,
"응? 그렇군. 어서 성문을 열고 들이라고 하게."
하고, 명하였다.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전상(戰傷)을 입은 네댓 명의 군사들이 초최한 몰골로 관우앞에 엎드렸다.
"너희들은 누구 소속이냐?"
손건이 그들을 향해 묻자, 군사들 중 선임인 듯한 자가 관우를 향해 고한다.
"장군! 저희는 장비 장군 수하인데 주공과 함께 서주성을 지켰읍죠."
그러자 관우는 급한 마음이 앞서,
"주공은 무사하시냐? 서주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병사는,
"주공과 장 장군은 지난 밤 서주성을 나와 조조군을 야습했다가 적의 계략에 빠져, 군사들은 흩어지고 대패했습니다. 여기 올 때 까지 본 바로는 주공과 장 장군은 서로 흩어져 망탕산에서 적들에게 쫓기며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지원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하고, 울면서 아뢰는 것이었다.
"뭐라?"
믿어지지 않는 말을 듣게 된 관우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관우는,
"그래? 그렇다면 모든 병사를 소집해 망탕산으로 간다!"
하고, 외치듯 말하였다.
"네!"
수하의 병사들이 관우의 명을 받들고 준비를 위해 자리를 뜨자, 손건이 양 손을 들어 외친다.
"잠깐! 장군!"
그리고 관우를 가로 막으며 말한다.
"서두르지 마시고 우선 사실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형님과 장비의 생사도 모르는데, 시간을 끌 이유가 없네!"
하고,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망탕산은 고작 30 리 밖에 있으니 단숨에 가야하네! 나를 막지 말아!"
하고, 자리를 뜨려 하였다.
그러자 손건이 관우 앞에 부복하며,
"장군! 주공께서 정말 망탕산에 갇히셨다면, 거긴 조조의 대군이 이미 진을 쳤을 텐데, 장군의 소수 병력으로 어찌 대적할 수가 있습니까?"
하고, 만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형님과 장비가 혈전 중인데, 형제를 사지(死地)에 두고 모른체 하란 건가!"
하고, 손건에게 꾸짖듯이 대꾸하였다.
그래도 손건은 물러서지 아니하고,
"턱 없이 적은 병사로 출병했다가는 필시 패배를 면할 수밖에...."
하고, 말하자 관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형님과 장비를 구해야 해! 구하지 못하면 함께 죽을 것이다!"
하고, 결연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손건은 더 이상 관우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 길로 관우는 2천 철기군(鐵騎軍) 이끌고 망탕산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망탕산 입구에서 조조군을 맞아, 청룡 은월도를 휘둘러 접근하는 조조군을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개미떼 처럼 달려드는 수 천의 조조군은 관우의 앞에선 추풍 낙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