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능적 책임론
(1) 기능적 책임론의 의의
기능적 책임론이란 책임의 내용은 형벌의 목적, 특히 일반예방의 목적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임이론이다. 예방적 책임론이라고도 한다. 통설인
규범적 책임론에 의하면 책임은 행위자가 달리 행위할 수 있었다는 것, 즉 행위자에게
자유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법행위를 하였다는 데 대한 비난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행위자가 구체적으로 행위시에 달리 행위할 수 있었는가를 {제한시에 소급적으로}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행위자가 달리 행위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이 없다고 하여
처벌하지 않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여기서 기능적 책임론은 책임은 형벌목적과 관련하여
기능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형법상의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형법체계와 형사정책, 즉 책임과 예방의 결합을 처음 시도한 학자는 Roxin이었다. 그는 책임은 예방 필요성의
상한을 설정해주고 예방의 필요성도 책임형벌을 제한한다고 하여 책임과 예방의 상호 제한적 기능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Roxin은 자유의사는 그것이 증명될 수 없는 경우에도 형법이 규범적으로 전제해야 하며
책임개념은 순수한 예방형법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함으로써 전통적인 책임개념과
책임원칙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책임의 내용이 일반예방의 목적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여 전통적인 책임개념을 형사정책적 목적으로 대체시킨
극단적인 기능적 책임론을 전개한 학자는 Jakobs이다. Jakobs에 의하면 목적만이 책임에 내용을 부여할 수 있으며
그 목적이란 국민의 범신뢰의 유지를 내용으로 하는 적극적 일반예방이다. 책임을 결정하는 '목적'은 범죄에
의하여 파괴된 질서신뢰(=규범적 기대)의 안정화이며, 책임과 형벌은 규범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를 확인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책임과 형벌은 범죄행위에 직면하여 동요하는 일반인의 자기안정화요구의 표현이며
형벌은 개인의 규범준수와 일반인의 규범신뢰를 위한 것이므로 행위자에 대한 형벌필요성도 일반예방적.
기능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능적 책임론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2) 기능적 책임론에 대한 비판
기능적 책임론은 형법과 형사정책의 관계를 혼동함으로써 책임주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첫째, 기능적 책임론은 책임을 예방으로 대체함으로써 일반예방에 대한
관계에서 책임주의가 갖는 제한적 기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예방적 관점에 서서 치료될 수 없는
중한 정신질환자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법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누범자에게 일반예방의 관점에서
무거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공정하다가 할 수는 없다. 책임이 예방의 목적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책임주의는 헌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원칙적으로 행위자를 위한 보호규범이므로 기교적인 이론에 의하여 침해될 수 없다. 둘째, 기능적
책임론에 의하는 경우에도 무엇이 질서에 대한 신뢰를 안정화하는가에 대한 실증적인 기준은 없다.
(일반인의 정의감정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응보야말로 법질서에 대한 신뢰 안정화의 길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기능적 책임론도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3. 책임의 구성요소
책임의 본질에 관한 견해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비난가능성이라고 보는 규범적 책임론이
통설이며 타당하다. 다만 규범적 책임론을 취하는 경우에 책임의 요소는 무엇인가에 관하여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여기서는 새로이 인식된 '비난가능성'과 종래 책임의 전제 내지 요소라고 보았던
책임능력 및 고의. 과실과의 관계가 문제된다.
(1) 복합적 책임개념
규범적 책임론을 주장한 Frank는 책임의 본질을 비난가능성으로 보면서도, (당시 심리적 책임론에서
책임요소로 이해되던) 고의와 과실도 여전히 책임의 요소로 인정하였다. 고의.과실은 해위에 대한 비난의
성격(큰 비난/ 작은 비난)을 규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책임요소로서의 지위를 갖는다고 보았다. 한편
채임능력에 관하여 종래의 이론은 책임능력을 책임의 '전제'로 보았지만, 프랑크는 이러한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책임능력이 책임의 전제라면 논리적으로 책임무능력자는 (고의 책임의 근거가 되는)
고의를 가질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책임무능력자도 고의를 가질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행위의
위법성까지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의와 책임능력은 별개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책임은 책임능력, 고의 또는 과실 그리고 기대가능성, 즉 책임조각사유의 부존재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책임을 복합적 성격의 요건들(사실적 요소와 규범적 요소)의 결합체로 이해하는 입장을 복합적
책임개념이라고 하며, 이는 후에 Mezger를 대표로 하는 신고전적 범죄체계의 핵심인식이 되었다.
(2) 순수한 규범적 책임개념
책임에서 심리적 요소를 제거하고 책임을 순수히 규범적으로 구성한 이론으로서 목적적 행위론에
입각하여 주장된 책임론이다. 책임은 심리적 인자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비난가능성이라는 시각에서,
심리적 인자는 '평가의 객체'이지 '객체의 평가'는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심리적 성격을 갖는 고의는
책임과는 무관한 것으로서 책임요소가 아니라, 고의 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의 지위를 가지며,
과실 역시 심리적 관계의 부존재가 아니라 객관적 주의의무위반이라는 규범적 성격의 것으로서 과실
구성요건요소의 지위를 갖게 됨으로써, 고의. 과실 모두 채임의 요소로서의 지위를 갖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순수한 규범적 책임개념은 책임능력, 위법성인식 및 기대가능성을 책임의 구성요소로 보게 되었다.
(3) 고의. 과실의 이중기능
심리적 책임론에서는 책임의 요건을 행위자가 가진 심리적 실재로서의 고의. 과실로 보았다. 복합적
책임개념은 이를 고의. 과실 그리고 기대가능성으로 보았다. 순수한 규범적 책임개념은 책임요건에서 주관적
요소(고의. 과실)를 배제함으로써, 책임판단의 대상으로서는 기대가능성만 남게 되고 이는 대상을 토대로
한 판단이 아니라 순수한 규범적인 판단이 되었다. 그런데 이는 책임의 양. 즉 큰 책임과 작은 책임을
구분하는 지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책임개념의 평준화'에 불과한 것으로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책임판단은 형벌의 양의 척도가 되는 것인바, 순수한 규범적 책임론은 이의 척도를 제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임개념도 규범적 평가를 가늠할 독자적인 기체를 확보할 필요가 있게 된다. 행위는 행위자의
심정에서 비롯되는 것(고의행위)이며, 심정에서 비롯되지 않는 행위(과실행위)는 처벌하지 않거나 예외적으로
처벌한다. 따라서 비난가능성의 양은 이 심정을 토대로 결정되며, 이는 불법요소로서의 고의. 과실과는
다른 측면에서 고려된다. 주관적 불법요소였던 행위자의 주관은 심정이라는 측면에서 책임판단의 대상으로서도
고려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책임은 책임능력과 위법성의 인식 및 책임형식으로서의 고의. 과실 또는
과실과 책임조각사유의 부존재라는 요소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