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를 보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 한가지는 그들의 플레이 메이커였다.
‘나카다’와 ‘나카무라’. ------. 지치지 않는 체력과 스피드, 정확한 패싱력, 세밀한 개인기, 민첩한 판단력. 미드필더가 갖추어야 할 주요 요소를 두루 갖춘 두 명의 게임 리딩에 의해,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는 아시아 변방에서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뚫었다. 유러 2000에 이어, 시드니 올림픽을 지켜 보며, 스피디한 공격 전환의 현대 축구에서 플레이메이커의 패스 한방이야 말로 상대와 일합을 겨루는 서슬퍼런 칼날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들을 보며, 필자가 답답한 마음에 속으로 되물은 질문하나.
‘차범근을 배출한 한국 축구에서 왜 저들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을까?’
한국 축구 플레이 메이커 부재의 배경은, 빠른 측면 돌파에 의한 센터링에 이어지는 포워드의 득점으로 요약되는 한국 축구의 전통적 특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드필더들의 활발한 게임 리딩이 돋보이는 일본 축구에 비해, 한국 축구는 사이드 어태커들의 측면 돌파를 강조한다. 스피디한 윙과 사이드 어태커들의 활발한 측면 공격을 강조 하는 한국의 공격 형태는, 차범근, 변병주, 박경훈, 정해원, 김석원, 김주성, 서정원 등의 빠른 선수들에게는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광활한 무대였으나, 그만큼 미드필더, 링커, 인너들이 뛰기에는 제한된 좁은 무대였다. 80년대 조광래라는 컴퓨터 링커는 뛰어난 패싱이 강점이었지만, 악착 같은 수비력으로 더 대접을 받았으며, 그 전으로는 이영무 처럼 열심히 뛰는 링커들이 각광을 받아왔다.
한편, 포워드쪽에서는, 볼키핑력이나, 순간적인 위치 선정, 화려한 개인기의 테크니션 포워드 보다는 공간 확보 능력이 있는 포워드, 즉 사이드에서 길거나 높게 날라오는 패스를 확보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이 좋은 포워드가 상대적으로 더 선호되어 왔다. 김재한, 오석재, 박종원, 김용세 등의 볼키핑력이 떨어지는 키가 큰 포워드들이 국가 대표 포워드로까지 활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 또한 한국 축구 스타일을 대변해 준다.
결론적으로, 한국 축구 전통의 땅은 빠른 윙플레이어와 대형 포워드에게는 비옥한 옥토였지만, 창조적이며 세밀한 테크니션 플레이 메이커가 활약하기에는 거친 자갈밭이었다. 측면 공격을 강조하는 한국의 공격 형태가 미드필더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한 것은, 게임의 창조적 리딩 보다는, 공격 가담 사이드 어태커의 빈 공간을 차례로 메꿔주는 수비 가담 능력이었다.
결국, 창조적 플레이 메이킹을 즐기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악착같이 수비까지 책임지는 ‘울트라맨 미드필더’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감독에 따라 플레이메이커를 키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이고 역사적으로 볼 때 플레이메이커 중심의 한국 축구는 주류가 아니었다.
지금쯤 이 글을 읽고 있는 축구팬들의 머리에는 벌써 몇 명의 선수들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한국에도 있다. 나카다 만큼의 선수는 있다…’ 그렇다. 필자도 ‘그들’을 그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소수의 천재가 주류를 거스르듯, 한국 축구에서도 한국 축구의 척박한 토양과 맞서서 스스로 자생해 온 천재적인 플레이 메이커들도 분명 있다. ‘그들’의 천재성은 팀 전체의 플레이 스타일을 자신에게 맞출 정도로 뛰어났으며, 한국 축구에서 찾기 힘든 ‘창조적’인 플레이의 전형을 선보였다. ‘그들’은 상대팀의 거친 일대일 표적 방어와 싸움과 동시에, 그들과 태생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 한국 축구의 ‘전통 스타일’과도 맞서 싸우며, 소속팀에서 조용히 그들의 플레이를 이루어왔으며, 또 지금도 이루어가고 있다.
한국 축구의 위기.
추악한 정치판 같은 축구 협회의 더티 플레이를 보며 많은 축구 팬들이 절망하는 이 때,
일본축구가 한국 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것이 역사의 전설로 사라져갈 이 때,
필자에게 떠오르는 것은, 가능성은 있지만 덜 익은 ‘막연한 희망’ 보다, 스스로 치열하게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해온 한국 축구의 비주류, 천재 플레이메이커 3명이었다.
오직 실력으로, 스타일 다른 한국 축구와 팽팽히 맞서있는 천재 플레이메이커 2명과, 부상만 없었다면 한국 축구의 역사를 다시 썼을 은퇴한 전설적 천재 선수 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