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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제사건추적-그들은살고싶었다 원문보기 글쓴이: 아름다운현후_
1987년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
1987년 3월 22일 원생 1명이 구타로 숨지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은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여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하였고, 일부 시신은 3백~5백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1987년 형제 복지원 사건 박인근 근래 사진
사건개요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은 부산시 진구 당감동의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전국 최대의 부랑아 수용시설로, 이곳에서 1987년 3월 22일 원생 1명이 구타로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여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하였고, 일부 시신은 3백~5백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원장 박인근은 매년 20억 원의 국고 지원을 받는 한편, 원생들을 무상으로 노역시키고 부실한 식사를 제공하여 막대한 금액을 착복하였다. 또한,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이 사건으로 박 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비롯한 직원 5명이 구속되었으며, 형제복지원 원장은 1989년 9월 14일에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서울과 전국으로알려져 결국 운영하던사람들은 다체포돼고 복지원은 없어지고 아파트단지가생겼지만 피해자들은 아직까지보상을 받지않는다는 사실이다.
사건 후 대책
형제복지원 사건이후 부랑인수용소의 인권침해문제가 시민단체의 화두로 등장하였으며, 정부에서는 부랑인 시설운영 개선을 위해 입·퇴소절차 개선, 수용보호의 전문성 확보 및 직업보도 강화 등 복지서비스 제고 및 시설운영의 내실화에 관한 부랑인 선도시설 운영규정(1987.4.6)을 제정(보건사회부 훈령 제523호)하였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수용보호시설의 강제입소 등의 문제는 감소되었다.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에 따르면 부랑인 및 노숙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활 및 자활 프로그램의 서비스, 상담서비스를 제공하여 이들을 보호하게 하고 있다.
박인근 근래 활동
12년동안 무려531명의 목숨을 파리죽이듯죽여 암매장하고 일부시신은 몇백만원에 병원에팔아넘기고 겨우2년6개월의 형을받고 지금도 부산지역에서 추종세력이잇으며 어느교회의간부이며 어느 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잇는 인간의 탈을쓴 박인근이라는 마귀입니다 현재 부산 사상의 사상해수온천과 사하의빅월드레포츠라는찜질방을 운영하죠.
(아래 기사는교회복음신문이라는 쓰레기 기독 단체의 신문기사입니다)
..기사 시작..
장학사업, 국내외선교사 지원, 무료급식소 운영, 개척교회 지원 등 활발한 선교사업을 펼치고 있는 형제복지지원재단 이사장 박인근 장로(실로암교회·인물사진)가 최근 경남 김해시 생림면 소재의 대안학교인 신영중·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 비행청소년 선도에 심혈을 쏟게 됐다.
사회복지법인 신양원, 사회복지시설 샘터학교 법인 및 시설명의 대안학교는 대지 21,348㎡(6457.77평)에 건평 4,560.59㎡(1379.5평)의 규모로써 지난 1986년 법인이 설립되고 2004년 2월과 9월에 각각 경남교육청과 부산시교육청으로부터 대안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아동복지법 제16조 제3항에 의거 불량행위를 하거나, 할 우려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인성훈련과 함께 학업교육 및 특성화 교육을 통해 그들의 비행력 반성과 사회적응력을 향상시키며 아울러 그들이 가장 밀접하게 소속되어 있었던 가족구성원과의 갈등 요소를 제거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일정 기간 본 시설에서 교육을 받고 가정으로 복귀 시 평범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재도약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에 설립목적을 두고 있다.
위탁교육기관인 신영중·고등학교는 지난 87년 소년기술훈련원으로 설립인가를 받고 비행청소년에 대한 기술습득에 중점을 뒀다.
이후 제과제빵반, 중등검정고시반, 고입검정고시반, 컴퓨터반, 조리반, 미용반 등을 운영해 왔으며 비행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 선정을 통해 인성교육 및 사회적응력을 길러왔다.
현재 신영중·고등학교에는 90명의 학생들이 입소해 있으며 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비행의 우려가 있는 만 12세-18세 청소년들로써 이곳에서 문제 행동을 치료받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현재 주소지 관할 시, 군, 구청을 통해 ‘대안위탁교육 입소’를 받는 경우와 가정에서 훈육이 불가능 할 경우 관할 구청을 통해 시설에 입소하는 ‘보호자 의뢰 입소’ 등 2가지 형태로 구분돼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년원에 가야 할 비행 청소년들의 인성교육과 학업교육 등 특성화 교육을 통해 반성 및 사회적응력을 키워 달라는 법무부의 부탁으로 새로운 차원의 입소생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과거 부랑인 선도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박인근 장로가 대표이사에 취임, 그의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을 토대로 비행 청소년 선도에 새 지평을 열어 가게 됐다.
“대안학교 운영에 대한 부탁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을 운영 하면서 가족 전체가 부랑인들과 시설장에서 함께 고생하며 살아 왔는데 모략과 중상, 시기와 질투로 의욕상실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그와 비슷한 특성교육을 맡아 달라는 제안에 선뜻 답을 줄 수 없더군요. 그래서 아내와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 앞에 합당한 대안학교를 운영해 보겠다는 결심이 마음 속 깊이 굳어 졌습니다”
80년대 형제복지원을 운영할 당시 박인근 장로는 전적으로 경찰의 허락과 도움을 받아 입소, 퇴소 절차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운영 등 모략과 중상을 받아 왔기에 금번 대안학교 이사장 취임에 있어 적잖은 고민이 뒤따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취임 소감에서 “학생들에 대한 신앙적인 교육과 기술습득”을 우선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교목을 상근시키는 것과 자동차정비기술실습장을 세우는 야심찬 포부를 내비쳤다.
“앞으로는 법무부에서 보내는 비행 청소년들을 받게 됩니다. 이들을 제대로 선도하기 위해서는 돈독한 신앙심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 적응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이를 대비한 자동차정비기술 자격증을 취득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내 몇 곳에 자동차정비소를 차려 주면 이들이 함께 일하면서 보람된 삶을 영위해 나가지 않을까 봅니다. 양파껍질을 벗겨 나가 듯 차근차근 시설확장과 환경개선에 힘을 쏟을 것입니다”
취임 후 학생들의 기숙사에 새롭게 설치한 침대를 바라보며 환히 웃음 지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서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강인함이 교차한 건강미가 넘쳐나 보였다.
..기사 끝..
제발 기독교는 앞 뒤 좀 구분하고 행동했으면 .....
형제복지원피해자가남긴글
난1976년 8월 17일 에 태어나 아버지 와 큰누나 작은누나와 함께 1984년도 까지 함께 살았다.
그러나 1984년 아버지의 알콜중독증세로 인해 가정을 꾸릴수 없었던 아버지는 나와함께 작은누나를 형제 복지원이란곳으로 보내게 되었다...일년 후에 데리러 오겠다던 아버지...
그당시 형제복지원은 많은 부랑자와 장애인들을 보살펴 준다던 광고를 접하게 된 아버지..
나와 작은누나를 그곳으로 잠시 맡긴다는 생각에 그곳에 보냈었다..
하지만...난 작은누나와 그곳에서 3년여를 보내면서 차마 말로 다 표현할수 없을정도의 고문과 기합등으로 지옥같은 생활을 보내야만 햇었다...그곳에서 작은누나는 어른들의 강간등으로 정신질환을 일으켜...지금도 정신병원에서 복역중인걸루 알고 있다....
나역시 그곳에서 죽을고비를 당했었다...그당시 내나이 8살...죽도록 미웠던 아버지가 보고싶을정도로 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당신들은 아는가...8살때의꼬마가 어른들의 손아귀에 멱살을 붙잡혀 이리끌려다니고 저리끌려다니고 눈물이라도 흘리거나 울음소리가 나오면...죽지않을정도로 말그대로 반만죽일정도로 구타를 하였고...어린나이에 살려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나왔던 그시절....살려달라는소리가 크면클수록 더욱더 잦은 매질과 존간나 소리를 들어가면서..물고문을 당해야만 햇었던 나의 유년시절.....그곳에서 생활이 죽을정도로 엄청난 거엿지만...죽지않을정도의 고문이였기에..어느덧 1년이라는 새월은 그렇게 흘러 갓다...하지만 1년후 아버지가 찾으러 오겟다던 시간은 이미 지나간 후였다...그후...3개월여지난 어느날....
어떤 아저씨가 세벽 체조 시간때 나에게 조용히 와서 나의이름을 부르며 너가 영태 아들이냐?
라는 말에...난 무척이나 기대 하며...큰소리로 네 맞아요...아버지 어딧어요? 라고 대물었지만.
그아저씨에 말에 난 작은 희망이나마 가지고 있었던 내가 정말 이젠 정말 죽었구나 란 생각을 가지게 되엇다...그아저씨 말에따르면 아버지가 술에 취해 거리에 쓰러져 자고있었는데...형제복지원이라는 차에 실려 이곳에 오고 말았다는것이다...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전부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같은곳에서의 삶을 영원히 보내는거 같앗다...작은누나는 그곳에서 2년여를 버티다가 결국 강간과 구타..고문 등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었고...1987년 교회당에 예배를 보러 갔을때 일이다...그때...난27소대소속이였다 조장중에 빤빤이 라는 별명을 가진 조장이 내뒤에 앉아있었는데...내어깨를 두드리며 나 도망갈테니까 나중에 나찾으면 그냥 모른다고 해라 라고만 했다.
나역시 같히 가고 싶었지만..전에 한원생이 도망가다 잡혀서 엄청난 구타와 물고문 전기빳따 라는 구타에 못이겨 결국 숨을 거둔걸 알고 있던터라 난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그래서 뒤도 돌아 보지 못한 상황이였다...예배가 끝난후 모두 정열을 해서 인원을 마춰보는데 빤빠이 조장이 보이지 않았다...하필 조장이 내뒤에 앉아 있어서...난 그날도 죽지 않을정도로 맞았다...
우리 소대는 그당시..120명 정도 인걸루 안다...그때 내가 당한 구타는 원생들이 날 때리는것으로 되었다..일명 모다구리라는 것인데....소대안에 보면 중앙은 복도로 되어있고..양옆으로 2층씩 침대로 되어 있다....모두 침대쪽으로 일렬종대로 서있다가 내가 복도 한가운데에 불려 가고
내머리 위로 이불을 덮어 쒸우고 소대장이 모다구리라는 말과 동시에 원생들은 날 짓밟았다....
그렇게 얻어맞고 정신을 잃으면 바로 세면장에 끌고가서 팬티만 입혀놓고 한겨울에물고문을 해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그러나 난 끝까지 모릅니다..라고만 외쳐됐었다..
그일이 기적을 부를줄은 꿈에도 몰랐었다...결국 1987년 우린 자유가되엇다...하지만 그당시
난 아버지와 작은누나 모두 같은형제복지원에 있었지만...나만 소년의집으로 이송되었다..
그후 1997년 이 되도록 가족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었다....정신병원에 아버지와 작은누나가 있다란 말도 큰누나를 찾으면서 큰누나에게 듣게 되어 알게되었을뿐이였다...
나라에서 형제복지원이란곳에 20여억을 투자해주면서 정작 나와 가족 원생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마음의 아픈상처만을 가지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왜 나라에서 세금을걷어 그런곳에 20억을 지원해주면서 또 박원장이란 작자에게 훈장을 주면서 그곳에 삶은 한번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나같은 사람이 받은 피해보상은 안해주는건가...내어린 유년시절 지금도 생각만해도 치가 떨릴정도이다.....
부모가있어도 부모에게 정을 받지 못하고...나라에서 조차 나를 버렸다...
여러분의 아들딸들 이글을 읽어 본후 사소한 일로 자녀들과 다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잘못된일이 있다면 따끔하게 혼도 내야 하고...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없어집니다...또 자녀들은 부모님이 간혹 마음을 몰라준다 하더라도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하는일들은 없었으면 합니다....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다...아무리 불행하다 하더라도 여러분보다 더 불행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여러분들 희망을 포기 하지 마십시요....
세상이 힘들다 하여도 희망이라는 단어는 버리지 마십시요....희망을 버린자는 12가지의 복이 사라지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포기 하지않고 끝까지 지니고 있는사람은 12가지 복이 들어온다고 하였습니다...모두 사랑하세요....
복지원에서 살아온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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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새끼가 아직도 이나라 이땅에서 같은 하늘아래 떳떳이 살고 있다는것 자체가 가증스럽네요.
억울하게 희생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