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베스트 셀러로 흥행을 거두며 서점가에 즐비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희망이란 깊은 고뇌와 갈등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도리를 지키려는 치열한 의지를 보이고, 거기에 고매한 하늘의 뜻이 더해질 때 비로소 기적처럼 발현되는 것이지 진부한 미사여구의 말들로 대신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희망이란 너무도 요원합니다. 빚에 시달리던 주부가 세 아이와 동반자살을 하고, 카드빚을 막기 위해 아이를 납치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서로 작당하여 부패의 온상을 만들어가고, 정치의식이 부재한 국민들은 매번 국가의 희생양이 되어 한평생 사기만 당하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거기에 세계화의 논리 속에 불평등을 야기하는 노동구조가 날로 증가하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무자비한 자연의 파괴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조장하여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짐승만도 못한 일들이 일말의 양심도 없이 난무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작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난감함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니다.
할말이야 많고 많지만 이제 그만 함묵하겠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없이 그저 가십거리나 주고받는 현대인들에게, 민생안정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당파 싸움에만 에너지를 쏟는 참으로 부질없는 정치인들에게, 나라사랑이니 이웃사랑이니 하는 말들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회적 영역의 부재를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사기의 대가인 국가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동여지도는 엉터리입니다. 작가 최인석이 말했듯이, 김정호는 단순히 이 땅의 생김새를 지도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 지도를 통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어떤 지도에도 표시될 수 없는 곳. 이 땅을 너머 이 세상을 너머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곳. 꽃 같은 비가 내리고, 비 같은 꽃이 피어나는 곳. 별 같은 노래가 있고, 노래 같은 별이 빛나는 곳.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고스란히 성취되는 곳. 친구와 친구어미가 사랑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별이 되고 달이 되는 곳. 김정호는 바로 그러한 세상을 그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영혼들의 슬픔이 속수무책의 비로 환생하여 전국을 축축하게 적시는 요즘. 김정호가 꿈꾸던 유토피아처럼 우리가 두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