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_인력거꾼

[천심]

인력거꾼

주 요 섭

밤 새로 두 시에야 자리에 누웠던 아찡이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졸음 오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자리라는 것이 곧 되는대로 얼거리 해놓은 막살이 속에 누더기와 짚을 섞어서 깔아놓은 돼지우리 같은 자리였다. 그 속에서 아직도 돼지같이 뚱뚱한 동거자가 흥흥거리며 자고 있는 것을 깨워 일으켜가지고 아찡이는 코를 흥 하고 풀어 문턱에 때려누이면서 찌그러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자던 거리가 깨기 시작하는 때이었다. 상해 시가의 이백만 백성이 하룻밤 동안 싸놓은 배설물을 실어 내가는 대변 구루마¹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잔돌 깔아 우두럭투두럭한 길 위로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고 하는 것이 아찡의 눈앞에 나타났다. 동편으로 해가 떠오르려 하는 때이다. 일찍 일어난 동넷집 부인님네들이 벌써 일본 사람의 밥통 비슷하게 생긴 똥통들을 부시느라고 길가에 죽 나서서 어성버성한 참대 쑤시개로 일정한 리듬을 가진 소리를 내면서 분주스럽게 수선거리었다. 아찡이와 뚱뚱바위는 약조했던 듯이 한꺼번에 하품과 기지개를 길게 하고 바로 맞은편 떡집으로 갔다. 거리로 향한 왼편 구석에 널빤지 얼거리가 있고 그 얼거리 위에 원시적 기분이 농후한 검은 질그릇 속에 삐죽삐죽하게 콩기름에 지져낸 유자꽤(조반죽 반찬 하는 떡)가 담뿍 꽂혀 있고, 그 옆에는 방금 지져놓은 먹음직한 쏘빙²들이 불규칙하게 담겨 있는 위로는 벌써 잠코 밝은 파리 친구들이 몇 마리 달려와서 윙― 하면서 이 떡 저 떡으로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대로 실컷 그 고소하고 짭짤한 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선반 바로 뒤에는 사람의 중키만이나 하게 높이 쌓은 우리나라 물독 비슷하게 생긴 가마가 놓였고 그 가마 밑 네모난 구멍에 지금 떡 굽는 사람이 풀무를 갖다 대고 풀떡풀떡 하며 가마 안에 물을 활활 피우고 있고 가마 위 나무 뚜껑 아래에서는 길죽길죽하게 빚고 한편에 깨 몇 알 뿌린 쏘빙들이 우구구 하면서 뜨거운 진흙 가에 모래찜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모래찜을 실컷 하여 엉덩이가 꺼무죽죽하게 되면 그 손톱이 세 치씩이나 자란 떡 굽는 이의 손이 들어와서 하나씩 하나씩 잡아내다가 앞에 놓인 선반 파리 무리 잔치 터에 던져주는 것이었다. 바로 이 떡 가마 왼편에는 기다란 부뚜막을 가진 가마가 걸렸고 그 위에서 지금 유자꽤들이 오그그그그 하면서 콩기름 속에서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한길 쪽으로 향한 이편 한 모퉁이에는 네모 방정한 부뚜막 위에 보름달 만큼이나 크게 둥글둥글한 서양철³ 뚜껑을 덮은 깊다란 가마들이 네다섯 개 삥 둘러 걸렸고 부뚜막 바로 중앙에는 직경이 두 치밖에 안 될 쇠통이 뚫려 있어서 이 가마지기가 이따금 이따금 그 조그맣고 뚱그런 뚜껑을 열고는 바로 그 부뚜막 안측에 쌓아둔 물에 젖은 석탄가루를 한 부삽씩 쪼르르 쏟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구멍 속으로부터는 까만 내와 빨간 불길이 흘깃흘깃하고 밖으로 치내미는 것을 서양철 뚜껑으로 덮어 막아버리고는 놋으로 만든 물푸개를 바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이편 가마 뚜껑을 처들고는 부글부글 끓는 맹물을 퍼서 저편 가마 속에 쭈르르 쏟고는 또다시 왼편 가마 속 물을 퍼다가 바른편 가마에 넣고 이렇게 쭈룩쭈룩 소리를 내면서 분주스레 퍼 옮기고 쏟아 옮기고 하다가는 엽전닢 나뭇조각 서너 개씩을 가지고 와서 삥 둘러섰는 아가씨들과 할머니들의 서양철 물통(오리 주둥이 같은 것이 달린 것), 세숫대야, 쇠주전자, 사기주전자 등에 엽전 두 푼에 한 물푸개씩 그 절절 끓는 물을 담아 주는 곳이다.

아찡과 쭐루(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동거자는 어두컴컴한 부엌 속으로 들어가서 둥그런 탁자를 가운데 놓고 뒷받침 없는 교의⁴에 삥 둘러앉은 때 묻은 옷 입은 친구들 틈에 끼여 앉아서 떡 두 개씩과 꺼룩한⁵ 묵물을 한 사발씩 마시고 쩔렁쩔렁하는 전대 속에서 동전을 여섯 닢 꺼내 탁자 위에 메치고 코를 힝힝 방바닥에 풀어묻히면서 걸어 나아왔다.

둘이서는 잠잠히 걸었다. 조약돌을 깔아 울투룩불투룩한 좁은 골목을 꿰어 나와 전찻길을 끼고 한참 올라가다가 다시 조그만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서 인력거 셋방 앞에 다다랐다. 벌써 숱한 인력거꾼들이 와서 널찍한 창고 속에 줄줄이 가득 차게 세워둔 인력거를 한 채씩 끌고 뒷문으로 나아갔다. 아찡도 연극장 입장권 파는 구멍 같은 구멍으로 가서 거의 해어져 떨어져가는 종이에 돌돌 싸둔 대양(大洋)⁶ 팔십 전을 인력거세 하루 선금으로 지불하고 표 한 장을 얻어 들고 어둑한 창고로 들어가 제 차례에 오는 인력거를 한 채 들들 끌고 거리로 나아왔다. 그는 잠깐 우두머니 서서 분주스럽게도 왔다 갔다 하는 군중을 바라다보다가 인력거 뒤채를 부득부득 밀면서 나아오는 뚱뚱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어째 신수가 궁한 것 같애! 어젯밤 꿈이 수상하더라니!”

뚱뚱이는 이 말을 대답할 새도 없이 벌써 저편 맞은 거리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서양 여자를 보고 설마 남에게 빼앗길세라 줄달음질을 쳐 가서 인력거 앞채를 척 내려놓고 그 여자를 태웠다.

아찡이는 절반이나 잊어버려서 무엇인지 잘 생각도 안 나는 꿈을 되풀이해보려고 애를 쓰면서 정거장 쪽으로 향해 갔다.

마침 남경서 오는 막차가 새벽에 정거장에 닿았다. 제섭원(齊燮元)이가 노영상(盧永祥)이를 들이친다⁷고 풍설이 한창 올랐을 때에 이번 차가 아마 마지막 차일는지도 모른다고 소주(蘇州)서 곤산(昆山)서 쓸어 오는 피란민들이 넓은 정거장이 째어져라 하고 밀려 나아왔다. 정거장 정문은 벌써 그동안 각처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잃어버린 짐짝으로 가득 채워 교통 단절이 되고 좌우 문으로 쓸려 나오는 군중이 문간에 수직하고 있는 군인들의 수색을 당하면서 이리 밀치우고 저리 밀치우고 흐늑흐늑하고 있었다.

아찡은 이 기회를 안 놓치리라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기회만 엿보고 서 있었다. 저편 한구석으로 아니나다를까 늙은 할머니 한 분, 젊은 색시 한 분, 또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젊은 사내 하나가 고리짝, 참대 궤짝, 바구니 등 수십 개의 짐짝을 겨우 수색을 마치고 시멘트 길바닥에 쌓아놓고 땀들을 씻고 있었다. 아찡은 곧 그곳으로 뛰어가려코 하다가 ‘이놈아’ 하고 외치는 역전 순사 밑에 쥐 죽은 듯이 한편으로 물러서면서 아까운 듯이 그쪽만을 바라보았다. 짐은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촌닭이 관청으로 온 모양⁸에 두리번두리번하던 젊은 사내가 마침내 짐짝을 여인들에게 잘 보라고 부탁하고 인력거를 부르려 정거장 구외로 나아왔다. 아찡은 인력거를 한 모퉁이에 집어 던지고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벌써 네다섯 다른 인력거꾼들도 달려와서 이 젊은이를 에워쌌다.

“어데 가시려오? 어데요? 여관에 갈려오?”

젊은이는 어찌해야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모양으로 한참이나 어릿어릿하다가 겨우 상해 말은 아닌 어떤 사투리로 여관까지 얼마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사마로(四馬路)까지 가면 육십 전이오” 하고 한 인력거꾼이 즐거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젊은이는 다시 우물우물하다가

“이십 전에 가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고만두어!” 하고 모깃소리만치 중얼거렸다. 인력거꾼 한 서넛이 필쩍 뛰면서 한꺼번에 외쳤다.

“어디를, 우리 그렇게 에누리 아니 한답니다.”

“그자 촌놈일다. 상해 말도 할 줄 모른다” 하고 인력거꾼 하나가 고함을 쳤다. 그들은 이 시골뜨기를 잔뜩 골려먹으려고 그냥 육십 전을 내라고 떠들었다. 얼마 동안에 오고 가는 말이 계속되다가 값은 마침내 매 인력거에 사십 전씩(보통 정가의 4배)에 작정이 되었다. 아찡도 식전 새벽에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새벽 호운(好運)을 웃고 떠들어서 축하하는 동무 인력거꾼들과 섞여서 정거장 구내로 들어가서 고리짝을 한 개 들어 내왔다. 아찡은 큰 고리짝 한 개와 얻어먹다 남았는지 반찬 대가리 싼 조그만 보꾸러미 한 개를 올려놓고 앞장을 서서 줄곧 달음질해 나아갔다.

사마로에 여관은 여관마다 피란민으로 가득 찼다. 그래 그들은 짐들을 싣고 이 여관 저 여관으로 한참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마침내 어떤 어렵고 조그마한 여관에 가서 남은 방은 없으나 응접실에서 자기로 하고 하루에 방세 이십 원씩 주기로 하여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인력거꾼들은 그동안 여기저기 한참이나 끌려다녔다는 것을 핑계로 해가지고 한참이나 요란스럽게 떠들어서 마침내 매인(每人) 대양 일 원씩을 떼내었다. 아찡도 그의 왼손 바닥에 놓인 번들번들하는 은전 대양 일 원을 눈이 부신 듯이 바라다보면서 저고리 앞자락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씻고 서 있었다.

그가 인력거 채를 되는대로 질질 끌면서 다시 큰 거리로 나아올 때 그는 혼자서

“이게 웬 떡이냐! 꿈에 신수가 궁하면 정말은 신수가 좋은 법이야” 하면서 속으로는 좀 있다가 방장에 선술집에 가서 한잔할 기쁨을 예상하면서 그 번들번들하는 큰돈을 허리춤 전대에 잘 간수했다.

정말로 그날은 특히 운이 좋았던지 큰 거리에 척 나서자 가랑이 넓은 바지를 입고 팽갱이⁹ 같은 모자를 쓴 미국 해군 하나를 태우고 팔레스 호텔까지 갖다 주고 해군들이 보통 하는 버릇으로 그냥 막 집어 주는 돈을 받아 헤어보니 이십 전이 한 닢, 동전이 열두 닢이었다.

그는 너무나 좋아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전차 궤도를 건너 인력거 정류소로 들어가 차를 내려놓고 그 살대 위에 편안히 걸어앉아서 행상하는 어린애를 불러다가 동전 두 푼을 주고 쏘빙을 두 개를 더 사서 찻물로 목을 축여가며 맛있게 먹었다.

해는 벌써 거의 오정 이 되었으리라고 그가 생각한 때 제 차례가 와 닿았다. 방금 팔레스 호텔 문지기인 인도인이 망치를 휘두르면서 ‘인력거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려고 펄썩 일어서다가 아찡은 그만 벌떡 나가자빠졌다.

아찡 뒤에서 참새 눈깔 같은 눈을 도록도록하고 있던 뾰족이가 번개같이 아찡 옆으르 뛰어나가 손님을 태우려 달려갔다.

아찡이는 다시 일어나면서 저도 모르게 ‘에코’ 하고 신음을 했다. 한 정류장 안에서 잡담들을 하고 있던 동료들이 여남은이나 죽 둘러서서 웬일인가 물어보았다. 아찡은 겨우 몸을 일으켜 인력거 위에 걸터앉으면서 ‘오륵’ 하고 바로 그 앞에다가 방금 먹은 것을 고 채로 게워놓았다. 동료들은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워서 하하 웃으면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힁하고 온몸이 노곤한 것을 깨달았다. 오 분, 십 분, 십오 분, 그는 다시 제 기운을 차리려고 노력했으나 무효(無效)이었다.

동료 중에 그중 나이 좀 먹은 곰보 영감이 마침내 동정하는 듯이 가까이 와서 아찡의 싸늘하게 식은 손을 주무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요 골목 돌아서 사천로(四川路) 청년회에 가면 돈 안 받고 병 보아주는 의사 어른 계시다니 그리 가보게. 그저께 우리 장손이가 갑자기 아파서 거기 가서 약 두 봉지 타다 먹구 나았다네. 어서 가보게.”

아찡은 무의식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마 곰보 영감 말을 들어야 할까 보다 하고 흐릿하게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젯밤 꿈이 불길하더라니!’ 어떤 무서운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이 반짝하는 전기가 그를 뛰어오르게 했다. 그는 인력거도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홑몸으로 뛰쳐나와 달음질쳐서 남경로로 들어섰다.

그는 그가 어떤 모양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핀잔을 먹어가면서 여기까지 찾아는 왔다. 방 안에는 저 외에 서너 노동자들이 먼저 와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번번이 쳐다보고들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어디서 구루마에 치였는지 그냥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을 추켜들고 ‘흐흐’ 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찡은 한참이나 벽을 기대고 반쯤 누워 있다가, 차차 정신이 드는 것을 깨달았다. 인제는 정신은 똑똑한데 몸이 그저 사시나무 떨리듯 우들우들 떨리고 멎지를 않았다.

의사님은 어데 갔는가?

하인 같은 사람 하나가 비를 들고 들어왔다. 아찡은 거의 본능적으로

“의사님 어데 가셨소?” 하고 물었다. 하인은 대답 없이 비로 방안을 두어 번 슬적거리고 나서는 기지개를 하면서

“규칙이 의사님이 새루 두 시에야. 어데든지 갔다가 두 시에 오라우! 두 시 전에는 의사님이 아니 오는 규칙이야” 하고는 다시 방을 쓸기 시작했다. 아찡은 풀썩풀썩 비가 가는 대로 일어나는 먼지를 흠뻑 받으면서 잇몸이 떡떡 마주 붙어서 떨리는 소리로 다시 말했다.

“지금 맺 시쯤 됐소?”

“열한 시” 하고 하인은 시간을 따로 외고 다니는 듯이 빨리 말했다.

세 시간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기다릴밖에 없다. 이 모양으로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몸이 자꾸 떨릴까?

아쩡이 한참이나 정신없이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때에는 떨리는 증세는 모두 없어지고 그저 머리를 무슨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이 뭉덩할 뿐이었다. 팔 부러진 사람은 아직도 그냥 ‘흐흐’ 하고 앉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절 나는 상관없다 하는 듯이 천장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두려운 암시를 주기 알맞은 침묵이었다. 흐리멍텅한 아찡의 귀에는 밖으로 뿡뿡 쓰르르 하고 오고 가는 자동차 소리들이 어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같이 들렸다. 그는 침묵이 싫었다. 그래서 그는 이 두려운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그의 책임이라는 듯이, “지금 몇 시나 됐을까요?” 하고 공중을 향해 물었다. 천장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잠깐 얼굴을 돌려 표정 없는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다볼 뿐이요,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아찡은 다시 어떤 무서운 생각이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글쎄 어젯밤 꿈이 흉하다니까!’

문이 열리면서 깨끗한 양복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뚱뚱한 신사가 한 분 들어왔다. 아찡은 직감으로 이이가 의사 어른이려니 하고 벌떡 일어나면서

“의사 나리님, 제가 오늘 갑자기…….”

“아니오 아니오! 의사는 아직도 두 시나 있다가야 와요. 좀더 기다리시오!” 하고 젊은 신사는 급급히 대답하면서 뒷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그 젊은 신사가 다시 나아왔다.

아픈 몸과 가슴을 가진 그들의 눈들이 그의 일동일정 (一動一靜)을 멀거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 젊은 신사는 좀 뚱뚱한 딴에 쾌활스런 성격이었다. 그는 조그마한 세 다리 교의에 펄썩 주저앉으면서 구둣발로 마룻바닥을 한 번 쿵쿵 구르고 나서

“당신들, 의사 보러 왔소? 좀더 기다리시오. 아, 당신은 어떡하다가 팔을 다쳤소? 무슨 일을 하오? 소차(小車) 끄오? 인력거 끄오?” 하고 이 사람 저 사람들을 번갈아 보면서 대답은 쓸데가 없다 하는 듯이 주절주절 지껄이고 있었다.

한참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표정 없는 눈들이 신사의 몸을 떠나 다시 천장으로 향하려 하는 때에 신사가 다시 버룩버룩하면서 말을 꺼냈다.

“세상은 괴롭지요? 죄 때문이외다! 아담 이와가 한 번 죄를 진 후로 그 죄가 세상에 관영해서 세상이 이렇게 괴롭게 되었습니다” 하고는 가장 동정이나 구하는 듯이 군중을 한 번 죽 둘러보았다. 군중의 얼굴들에는 일종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다’ 하는 그러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에 끌린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아찡이도 무시무시한 호기심에 끌려 귀를 기울였다. 잠깐 동안 아픈 것을 잊어버렸다.

“당신들은 기도해본 적 이 있소?” 하고 신사는 일동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 신사의 얼굴만 열심으로 바라다보았다. 신사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대답은 쓸데없소이다’ 하는 듯이

“기도함으로 죄 사함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삼 장 십육 절에 말하기를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짐을 지시고 골고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그 피로 우리 죄를 속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는 이렇게 괴로워도 죽어서는 천당에 가서 금거문고를 뜯고 천군 천사와 하느님을 노래하면서 생명수 가의 생명과를 먹으며 살아간답니다” 하고 절반이나 연설체로 흥분해서 한참 내리엮고서는 다시 한 번 일동을 둘러보고는 벌떡 일어서며 마치 기도하는 태도로 눈을 하늘을 향해 올려 뜨고

“오!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여, 이 불쌍한 백성들을 굽어 살피사 당신의 거룩한 성신의 불로 그들의 죄를 태워버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하느님을 믿게 하시오며 풍성하신 은혜를 베푸소서” 하고는 다시 눈을 내리뜨면서 “여러분, 오늘부터 예수 품 안에 들어오시오. 예수 말씀하시기를 ‘내 멍에는 가볍고 쉬우니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 괴로움을 모두 잊고 예수만 진실히 믿었다가 이다음 죽은 후에 천당에 가서 무긍한 복락을 같이 누립시다” 하고 긴 설교를 끝낸 후 일동을 다시 한 번 죽 둘러보고 천천히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소눈깔같이 우둔한 눈브로 흥분한 신사의 머릿짓 손짓을 열심으로 바라다보던 눈들은 다시 일제히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각기 입으로는 약속했던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찡이는 열심으로 그 신사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모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죽은 후에 금거문고를 타고 잘산다’는 말을 알아듣고 ‘그렇게 되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하고 속으로 부러워도 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무슨 아담 이와 죄 때문에 괴롭게 되었다는 소리는 무슨 소린지 모를 소리라 했다. 그럼 인력거꾼은 모두 아담 이와 죄의 형벌을 받거니와 자동차 탄 양귀자¹⁰나 이따금 제가 태워다 주는 비단옷 입은 색시들은 어째 아담 이와 죄 형벌을 아니 받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 같은 인력거꾼은 이렇게 늘 괴로워도 그 비단옷 입고 금반지 끼고 인력거나 마차나 자동차만 타고 다니는 그 사람들은 세상에 조금도 고생이라는 것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신사가

“하느님의 성신의 불로 그들의 죄를 태워버리고…….” 운운할적에는 그는 속으로

‘하느님이 있거든 한 끼 먹을 밥 한 그릇 듬뿍이 주고 이 몸 아픈 것이나 낫게 해주소’ 하고 원했다.

신사가 나간 후에도 아찡이는 한참이나 그 신사가 한 말을 알아들은 대로는 되풀이해보았다. ‘세상에서는 괴롭게 지내다가 일후 죽은 후에 천당에 가서 금거문고 타고…….’ 죽은 후에 금거문고 타려면 왜 살아서는 고생을 해야 되는가? 죽어서 천군 천사와 노래하려면 왜 살아서는 만날 뚱뚱한 사람을 태우고 땀을 흘려야 하며 발길에 채어야 하고 순사 몽둥이로 얻어맞아야 하는가? 죽은 다음에 생명수 가에 있는 생명과를 배부르게 먹으려면 왜 살았을 적에는 남 다 먹는 아침 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고 쏘빙으로 요기하여야 하는가? 그것을 아찡이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신사가 말한 바 소위 그 천당이라는 데는 그러면 우리 같은 인력거꾼들이나 몰려가는 데인가? 그러면 양귀자들과 양복 입은 젊은 사람들과 순사들은 죽은 후에 어떤 곳으로 가는가? 그들

도 그 천당으로 가는가? 만일 그들도 천당에를 가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고생도 아니 했으니 불공평하지 않은가? 옳다. 만일 천당이라는 데가 있다면 거기서는 필시 우리 이 세상 인력거꾼들은 아까 그 사람이 말한 모양으로 금거문고 타고 생명과를 배불리 먹고 놀고 이 세상에서 인력거 타던 사람들은 모두 인력거꾼이 되어서 누더기를 입고 주리고 떨면서 인력거를 끌고 와서 우리를 태워주게 되나 부다! 그러나 그러면 나도 한번 그들을 ‘에잇끼 놈’ 하면서 발길로 차고 동전 세 닢 던져 주고 예수 만나 보려 대문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말 그런가 하고 그는 혼자 흥분하여졌다. 그래 그 신사가 아직 있으면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그는 이제라도 어서 죽을 것이었다. 그래 그 좋은 천당으로 한시바삐 갈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끌려서 미닫이 칸 막은 안방에서 무슨 책인지 웅얼웅얼하면서 읽고 있는 방지기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영감, 영감도 예수 믿소?” 웅얼하는 소리가 뚝 끊기고 한참이나 가만히 있더니

“네, 왜 그러우?” 하는 대답이 나왔다.

“천당에두 인력거꾼이 있다구 그럽디까?”

“인력거꾼? 친당에 인력거꾼 있으면 천당이랄 게 무어요. 없어요.”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빙그레 웃었다. 피가 뚝뚝 듣는 부러진 팔을 들고 앉았는 영감만이 아무것도 귀찮다는 듯이 그냥 물끄러미 팔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아찡이는 낙망했다. 천당에는 인력거꾼이 없다. 그러면 역시 고생하는 놈은 우리뿐이다. 돈 많은 사람은 세상에서나 천당에서나 즐거운 것뿐이다.

그는 그런 천당에는 가기 싫었다. 천당에 가서도 낮은 데 사람이 위에 가고 위엣사람이 아래로 가지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데까지 일부러 다리 아프게 찾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괴롭더라도 이 세상에서나 쏘빙 이나마 잔뜩 먹고 몸이나 성해서 석 달에 한 번씩 이십 전짜리 갈보¹¹네 집에나 가면 그것이 더 행복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몸이 퍽 가뜬해진 것같이 생각이 되어서 아찡이는 오지도 않는 의사를 기다리지 아니하겠다고 그만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러나 그가 분주스런 거리로 이 사람 저 사람 피하면서 걸어나갈 때 홀로 큰 고독을 깨달았다. 아찡은 제가 갑자기 이 세상 밖에 난 것같이 생각이 되어서 슬펐다. 지나가는 사람, 지나오는 사람이 모두 희미하게 멀리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고 저는 지구 밖에 어떤 곳에 홀로 서서 이 사람 떼를 바라다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것이 흉조라고 생각하여 몸을 떨었다.

그는 정신없이 다리가 움직여지는 대로 자기 집 있는 짝으로 자연 가게 되었다. 영대마루 어귀에 내버린 인력거는 기억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제 몸이 어떤 비참한 결과를 거둘 것도 인식되지 않았다. 저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짚신짝으로 걸어오다가 건재 약국에 들어가서 감초 가루약을 동전 두 푼어치 사 들고 그냥 걸어갔다.

아찡이 얼마나 걸었던지 제 집 동구 밖에까지 왔을 때 동구 밖에 울긋불긋한 기를 늘인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안경 쓴 점쟁이를 보았다. 아찡은 그의 본능적 어떤 공포가 그를 자연히 그 점쟁이에게로 제 몸을 끌고 가는 것을 깨달았다.

전대에서 이십 전짜리 은전 한 닢을 꺼내 점쟁이 앞에 던지고 우두머니 서 있었다. 점쟁이는 누런 안경 속으로 큰 두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아찡을 훑어보더니, 조그마한 상자 속에 손을 넣어 돌돌 만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쳐 읽어보고서는 책상 밑에서 커다란 장지책¹² 한 권을 꺼내 세 치나 자란 시커먼 엄지손톱으로 장장을 들치면서 어떤 곳을 찾아 들여다보더니 책을 덮어놓고서, 책상 위 유리판에 먹붓으로 글자를 넉 자를 써서 아찡 앞에 쑥 내밀었다. 그 글자는 ‘천현리흥(天玄李紅)’이었다. 그러나 아찡이 그 한문 글자를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점쟁이는 가장 점잔을 빼면서 관화 비슷한 영파 말로 점 해석을 시작했다. 이러쿵저러쿵 중언부언하는 해석을 다 모아놓으면 대략 이러했다.

‘아찡이는 지금 큰 액에 들었다. 지금 이 액을 넘기면 큰 낙이 돌아오리라.’

아찡이는 정신없이 제 방 안에 꼬꾸라졌다. 점까지 큰 액이 닥쳤다고 나왔다. 아아 그러면 무슨 큰일이 생기나 보다 하고 그는 몸을 떨었다.

몸이 다시 으슥으슥하고 메스꺼움이 나기 시작했으나 먹은 것이 없어서 게우지는 않았다. 아찡의 눈앞에는 그의 전 생애가 한 번 죽 나타났다. 어려서 촌에서 남의 집 심부름하던 것으로부터, 뒷집 닭 채다 먹고 들켜서 석 달을 매 맞으며 징역 하고는 상해로 와서, 공장에 들어갔다가 팔 년 전에 인력거를 끌기 시작했다.

팔 년 동안 인력거를 끌던 생각이 났다. 애스톨 하우스 호텔에서 어떤 서양 신사를 태우고 오 리나 되는 올림픽 극장까지 가서 동전 열 닢 받고 억울한 김에 동전 두 닢만 더 달라고 조르다가 발길에 차이고 순사에게 얻어맞던 생각이 났다. 또 언젠가는 한 번 밤이 새로 두 시나 되어서 대동여사(大東旅舍)에서 술이 잔뜩 취해 나오는 꺼우리(高麗人) 신사 세 사람을 다른 두 동무와 같이 태우고 법계 보강리까지 십 리나 되는 길을 가서 셋이 도합 십 전 은전 한 닢을 받고 어처구니없어서 더 내라고 야료 치다가, 그들은 이들한테 단장으로 죽도록 얻어맞고 머리가 깨어져서 급한 김에 인력거도 내버리고 도망질쳐 나오던 광경이 다시 생각이 났다. 그러고는 또다시 한번 손님을 태우고 정안사로(靜安寺路)로 가다가 소리도 없이 뒤로 오는 자동차에 떠밀려서 인력거 바수

고, 다리 부러진 끝에, 자동차 운전수 발길에 채고 인도인 순사 몽둥이에 매 맞던 것도 생각이 났다.

길다면 길고 멀다면 먼 팔 년 동안의 인력거꾼 생활! 작은 일, 큰 일, 눈물 난 일, 한숨 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시 연상이 되어서 그는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목이 갈한 것을 느끼면서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온몸이 쥐 일어서는 것을 감하여 ‘끙’ 소리를 치고 도로 엎어지고서는 다시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종일 인력거를 끌고 새벽에야 집에 돌아와서 아찡의 시체를 발견하고 공부국(公部局)에 보고한 뚱뚱이를 따라 공부국에서 순사와 의사가 검시를 하러 이 더러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의사는 방 안에서 검시하고 영국인 순사 부장은 중국인 순사 보호 통역을 세우고 뚱뚱이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서 조그만 수첩에 적어 넣었다.

“아찡이가 언제부터 인력거를 끌었어?”

“글쎄 그도 똑똑히는 모릅니다. 이 집에 같이 있기는 바로 삼 년 전부터입니다. 그때 제가 인력거를 처음 끌기 시작하면서 같이 있게 되었어요.”

“그래 모른단 말이야?”

“네, 네, 아찡이 제 말로는 이 노릇 한 지가 금년까지 팔 년째라구 그러구 합디다요 나리!”

순사 부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안에서 검시 하고 나오는 의사를 향하여 웃으면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무엇 저 죽을 때 되어서 죽었소이다. 팔 년 동안 인력거 끌었다는데요. 남보다 한 일 년 일찍 죽은 셈이지만 지난번 공부국 조사에 보면 인력거 끄는 지 구 년 만에 모두 죽지 않습니까?”

의사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팔 년으로 십 년까지. 매일 과도한 달음질 때문에…….”

*

공부국에서 온 일꾼들이 아찡의 시체를 거적에 담아 실어 간 후, 뚱뚱이는 한참이나 멀거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날 오후 두 시에 사람들은 그 뚱뚱이가 역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인력거에 손님을 태우고 에드워드로(路)로 기운차게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그가 아까 순사 부장과 의사의 회화(영어로 하기 때문에)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오 년이나 육 년 후에 아찡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을 모르므로 뚱뚱이는 흐르는 땀을 씻으면서 껑충껑충 아스팔트 매끈한 길을 홀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마치도 한 백 년 더 살 것같이……

-끝-

2016년 4월18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