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세요"
이 뜬금없는 멘트가 참 황당하게 만듭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지공거사가 된 지 넉 달이 조금 더 지났습니다. 평소에 시내에 나갈 일이 별로 없는 저는 주말에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사진을 찍으러 가면서 경로우대 무임승차권을 이용합니다.
경복궁 입장료가 3000원이고, 창덕궁 입장료가 3000원,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건너 갈 때 1000원을 더 내는데 65세가 된 뒤에 고궁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고궁 입장료를 폐지하라는 얘기는 아직 없는 것 같은데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얘기는 어제 오늘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60이 넘을 때부터 여러 말들이 많았는데 저도 솔직히 65세가 노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우대를 70세로 하든, 80세로 하든, 제가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무임승차권으로 지하철을 타면 뜬금없이 “행복하세요”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갈 때도 그렇고 나올 때도 그렇습니다. 정말 노인들에게 행복하라고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그 말이 아니꼬우면 그 카드를 쓰지 말라는 것인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말에 “갈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헐뜯거나 시비를 걸어 화나게 하다’입니다. 저는 이 ‘행복하세요’멘트가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갈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 경로우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훨씬 좋을 것입니다. 그간 나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고 대한민국의 발전에 노고가 많으셔서, ‘감사합니다.’ 또는 ‘고맙습니다.’라고 멘트를 내보낸다며 기꺼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무슨 거지에게 푼돈을 던지며, ‘행복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그 65세가 안 된 사람들로 보입니다. 곧 65세가 된다는 어느 대학교수가 이준석을 패륜으로 얘기했다고 노인회장을 엄청 비난했던데 그건 자신은 살만한 사람이니 문제가 없는 것이고, 노인회장은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어려운 노인들을 생각해서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40년 전에는 국민 100명 중 네 명이 무료 탑승권을 받았다. 이제는 국민 100명 중 20명으로 늘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는 의미에서 ‘지공거사’로 불리는 이들이다.
현재 서울·부산 등 주요 대도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 탑승 혜택을 준다. 노인 복지란 한쪽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지공거사의 숫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은 고령 인구 구성비(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가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누군가 공짜 혜택을 본다면 그 뒤에선 누군가 값을 치러야 한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둔다면 그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게 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비싼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혜택은 노인 세대가 누리겠지만 결국 현역에서 일하는 세대가 이 돈을 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데도 애써 모른 척했다. ‘내 임기 중에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님투’(Not in My Term of Office) 의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중앙정부가 메워달라고 요구한 경우가 있긴 했다. 지자체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느낌이 든다. 사실 국민 전체로 보면 비용 부담의 주체가 중앙정부냐, 지자체냐는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정작 시급한 일은 따로 있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불가피하게 축소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축소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다. 노인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최대한 이런 논의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다행히 정치권 전체가 이 문제를 외면한 건 아니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정강정책위원장 자격으로 발표한 정책 공약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다. 이 대표는 “표가 떨어지는 얘기라도 올바른 얘기를 하겠다. (노년층) 도시철도 무료 이용 폐지는 굉장히 논쟁적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찬반 여부를 떠나서 정치권이 뭐라도 정책 대안을 내놓은 건 일단 긍정적이다. 노인 무임승차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기초로 삼을 수 있어서다. 어려운 숙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대표의 정책 공약을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의 무제한 노인 무임승차는 폐지한다. 대신 노인 1인당 연간 12만원의 선불 교통카드를 준다. 서울 지하철 요금(교통카드 기준 1400원)을 고려하면 월간 7회 정도 무료로 탈 수 있다. 선불카드의 잔액이 다 떨어지면 노인도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 이때는 청소년과 같은 40%의 할인을 적용한다.
여기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월간 7회 정도 무료 탑승으로도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 선불카드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다만 “결혼 안 하고 애 안 키워봐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식의 공격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회적으로는 노인이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중교통으로 외출하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노인 건강 증진과 우울증 감소 ▶노인 운전 감소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축소 ▶노인 경제활동 확대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노인 무임승차의 긍정적 효과다.
영국 런던의 방식도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평일 오전 9시 이전의 출근시간대는 유료, 그 외 시간대는 무료로 하는 식이다. 직장인이 몰리는 출근 시간대에 대중교통(지하철·버스)을 이용하려면 노인도 돈을 내라는 얘기다. 시간대별로 요금을 차별화하는 건 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 패턴이 달라지면서 출근 시간대 혼잡도는 낮아질 것이다. 혼잡 시간대가 아니면 무료 승객이 다소 늘어도 지하철 공사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퇴근 시간대에도 출근 시간대와 마찬가지로 노인 무임승차를 제한하는 식이다.
정치권에선 이런저런 혜택을 늘리자는 얘기는 많아도 어떤 식이든 혜택을 줄이자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노인 무임승차의 정책 대안을 찾는 토론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발상의 전환 시급한 노인 무임승차
제 친구에게 들으니 천안아산은 지자체에서 65세 노인들에게 교통카드를 별도로 지급해서 하루 한 번만 태그하면 몇 번이고 무한 환승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지자체가 그런 발상을 하고 있는데 유독 수도권만 그 무임승차를 가지고 말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천안아산 노인도 수도권 지하철은 무료로 탑니다.
‘1호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온라인에 떠도는 유명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굉음의 악마’ 5호선, 완행 급행이 냉온탕이 되는 ‘두 얼굴의 악마’ 9호선, 지하철 노선별로 오명이 넘치지만, 그중 압권은 ‘대악마’로 불리는 1호선이라고 합니다. 노후 노선인 데다 노숙인, 행상인, 취객이 함께 몰리며, ‘움직이는 할렘가’로 통한다는데, 팩트체크해 보면 진짜 ‘대악마’는 1호선이 아닌, 2호선이라고 합니다.
민원 건수 1위에, 성범죄를 포함한 범죄 건수 1위가 2호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1호선은 ‘대악마’라는 오명을 얻었을까요?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선인 데다 ‘무임승차자 노인’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노인들의 집합처로 인식된 탓이라고 합니다. 실제 많은 노인이 1호선 타고 전시 보고, 도시락 먹고 또다시 지하철로 돌아갈 것입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일신우일신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인 빈곤 세계 1위, 노후 준비된 75세 이상 고령자 비율 43%,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그 알량한 지하철 요금 무료로 해준다고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나이 먹은 사람들만 서럽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일하고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것, 국가가 또 우리 각자가 느껴야 할 책임입니다. 정작 노인들응 말이 없는데 왜들 정치권에서 찧고 까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 동안 폐지론이 나오다가 그걸 유지하는 것이 노인 건강과 지역 사회 경제에 훨씬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온 뒤에 그게 쑥 들어갔는데 왜 다시 정치권에서 황당한 소리들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