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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스미타’의 가시와우동. 사누키우동의 본류임을 자랑한다. |
하레와 게는 1년 365일을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과 평범한 날로 나눠 두 기간 동안 사람들의 의식·언어·의상·음식·자세·행동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결혼·장례·제사·설날에 이뤄지는 일본인의 문화행태를 보통 날들과 비교하면서 그 의미와 원인, 앞으로의 변화나 방향을 진단하는 민속학 연구의 분석틀이다. 일본 민속학자들이 한국의 무속(巫俗)이나 제례(祭禮)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농경민족의 정서를 하레와 게로 양분해 설명한 야나기타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음식은 농경민의 삶을 하레와 게로 나눌 때 가장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결혼·생일·장례식·제사·설날·회갑 같은 하레에 먹는 음식은 평소와 다르다. 떡, 백미(白米), 오곡밥, 머리와 꼬리가 붙은 생선, 술…. 음식을 위한 그릇이나 그릇의 배치, 먹는 순서 등이 보통 때와는 다르다. 복잡한 제사의식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은 하레를 상징하는 일본의 대표적 음식이다. 쌀(お米)이 아니라 굳이 백미(白米)라 표현하는 이유는 하레의 상징인 쌀의 ‘거룩한’ 위상 때문일 것이다. 쌀에 이어 일본인에게 하레의 상징으로 와닿는 음식은 무엇일까? 우동이다. 밀가루·소금·물을 적당히 배합해서 만든 우동은 하레를 장식하는 품격의 음식이다. 일본 3대면(麵)에 포함된 라멘과 소바의 경우 우동이 갖는 권위에 미치지 못한다. 우동은 뭔가 신성한 음식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동의 성지, 오사카·교토·나고야
우동의 성지(聖地)는 일본 관서지방의 중심인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 나고야(名古屋)다. 이 지역에서는 우동이 주식(主食)에 가깝다. 오사카의 물이 연수(軟水)이기 때문에, 다시마를 넣어 만든 수프의 맛과 향이 살아난다는 점에서 오사카 우동이 특히 유명하다. 나고야는 우동의 면을 납작하게 만든 기시멘(きし麺)으로 유명하다. 관서지방은 전체적으로 면보다 수프에 중심을 둔다. 수프가 면에 스며들 수 있도록 면발이 가는 편이다. 한국의 열차역 플랫폼에서 먹는 우동은 관서지방풍이라 보면 된다.
21세기 들어서는 즉시, 관서지방풍 우동에 대한 반란이 시작된다. 미인이 많이 나온다는 섬, 시코쿠(四國) 북동부 가가와현(香川縣)이 반란의 주역이다. 현재 일본을 석권하고 있는 우동은 사누키(讚岐)우동이다. 사누키우동의 특징은 수프가 아니라 면에 중심을 두는 데 있다. 일단 엄청 굵고, 사각·육각 또는 팔각형의 입체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관서지방풍 우동이 라멘이나 소바의 면보다 굵다고는 하지만, 사누키에 비하면 비교가 안된다. 한 가닥의 두께가 대략 0.5㎝가 될 정도로 굵다.
사누키우동 열풍은 2002년 우동 전문 체인점이 생기면서 폭발한다. 원래 우동은 비싸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손님도 청년층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장년층 남성에 한정됐다. 체인점은 그 같은 발상을 한순간에 바꾼다. 남녀 젊은이들로 가득 찬, 저렴한 우동집이다. 우동 체인점은 이른바 셀프 서비스로 운영된다. 면 위에 넣을 고명, 면의 굵기, 탄력성 정도를 손님이 직접 결정한다. 한쪽 구석에서는 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도 보인다. 튀김과 어묵을 주문하고, 면은 중간 굵기로 약간 딱딱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사누키 체인점 때문인지, 최근 라멘집에서조차 주문에 앞서 면의 탄력성 정도를 묻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사누키는 고명을 두 개 정도 할 경우 대략 500엔 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값싼 청결 음식으로 일본 열도를 지배한다. 단단하고 굵은 우동면을 씹을 때 느껴지는 탄력감, 즉 이로 즐기는 ‘하코타에(歯答え)’가 사누키의 최대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쫄깃한 맛의 면을 이로 씹을 때 느껴지는, 대뇌 전체에 울려퍼지는 상큼한 ‘소리의 맛’이 사누키붐의 원인이다.
4263개 우동전문점 중 1위
- ▲ ‘스미타’의 입구
일본 최고의 우동을 즐기기 위해 찾아간 곳은 사누키우동의 본류(本流)임을 자임하는 스미타(すみた)이다. 최고 정평있는 음식점 가이드북인 다베로그(食べログ) 사이트를 보면, 인기 면에서 도쿄 내 4263개의 우동전문집 가운데 1위이다.(1월 15일 기준) 다베로그에 올라온 코멘트 수가 전부 315건, 평점은 5점 만점에 3.84점이다. 1인당 저녁 평균 식비가 1000엔에서 1999엔 정도로 가격 면에서 보통 수준이다.
코멘트의 대부분이 사누키의 본류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얘기로 메워져 있다. 좌석이 전부 18개밖에 되지 않아 좁고 불편하다는 불만도 있다. 연인이 가기에는 맞지 않는 곳이란 의미이다. 라멘은 청년, 소바는 장년이 찾는 음식이지만, 우동은 청장년 구별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추울 때는 밖에서 기다릴 경우를 대비해 두툼한 옷을 갖고 가라는 도움말도 실려 있다.
언제나처럼 사람이 드문 일요일 밤을 시식일로 잡았다. 스미타는 도쿄역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진 JR 아카바네(赤羽)역 근처에 있다. 한 세대 전 시골풍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른바 ‘시타마치(下町)’이다. 도쿄 외곽으로 가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물가가 엄청나게 싸다. 가격 파괴라는 타이틀하에 의류, 채소, 과일 같은 물건들이 ‘그냥’ 넘어간다. 예를 들자면 1L짜리 우유 한 통에 15엔, 큰감자 10개에 28엔, 운동화 한 켤레에 125엔이란 식이다. 믿어지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도쿄 외곽 시타마치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물건 값이 10엔이나 100엔 단위가 아닌, 1엔 단위로 끝나는 것도 시타마치 상점의 특징이다. 스미타로 가는 길 주변의 상점들은, 실제 가격의 10분의 1 정도에 물건을 파는, 신기한 자본주의 시장의 현장이다.
스미타는 길 옆에 들어선 작은 식당이다. 일본식 광고탑인 깃발형 선전물에 ‘손으로 주물러 만드는 우동(手打ちうどん)’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일요일 밤 8시에 갔는데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한꺼번에 손님이 빠져 나왔기 때문에 10분 만에 들어갔다. 전통적인 우동전문점의 특징 중 하나는 경영자와 종업원의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여성이란 점이다. 라멘집은 철저히 젊은 남성 요리사로 이뤄져 있다. 괜찮은 소바집의 경우, 전통 기모노(着物)를 입은 남성이 식당 어딘가에 서서 젊은 여성종업원을 관리한다. 필자에게 있어서 우동집은 아주머니들의 계모임(?)이 이뤄지는 곳처럼 느껴진다.
소바·라멘집과 달리 술을 즐길 수 있는 곳
- ▲ 문어 튀김
술 한잔이 간절했지만, 하루 전날 마신 포도주 탓에 간을 하루 정도 쉬게 해주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냥 차(茶)와 함께 술안주로 가장 유명한 튀김 요리 두 개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반숙된 계란 튀김(半熟玉子天)이 먼저 나왔다. 자연산 계란을 끓는 기름 속에 넣어 안은 반숙시키고, 바깥은 튀기는 식의 요리이다. 튀김 상태의 딱딱한 표면을 깨니까 반쯤 익혀진 노른자가 흘러넘쳤다. 튀김 상태이기에 고소한 맛과 신선한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비릿하게 느껴지는 계란의 향은 역겨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욕을 돋운다.
일본인은 계란에 소금이 아닌, 간장을 뿌려서 먹는다. 스미타 특산 간장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자 반숙된 계란이 반란을 일으킬 듯 살아난다. 사실 우동집에서 간장이나 소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수프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관서지방 음식의 특징은 맑은 수프가 맛의 중심에 있다는 데 있다. 맑은 수프 속에 소금과 간장을 ‘조금’ 넣어 맛을 내는 정도이다. 도쿄와 같은 관동지방은 수프 대신 간장과 소금으로만 맛을 낸다. 전체적으로 수프의 색깔이 탁한 곳이 도쿄 음식이다. 사누키우동은 간장과 소금이 아닌 다시마로 맛을 낸다.
차가운 우동 vs 뜨거운 우동
- ▲ 반숙된 계란 튀김
튀김 요리를 먹을 때의 중요한 포인트로, ‘잘게 간 무(大根おろし)’를 빼놓을 수 없다. 그냥 먹거나 살짝 간장을 뿌려서 함께 먹을 경우 튀김 속 원래 재료의 향과 맛이 살아난다. 느끼한 맛이 남지 않기 때문에 다음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입가심용으로도 좋다. 물론 소화에도 좋다. 일본산 무의 경우 한국산 무와 달리 결코 강하거나 맵지 않다. 무라기보다 죽순처럼 느껴지는 덤덤한 맛이기에 튀김과 함께 먹어도 결코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요리로 스미타에서 가장 유명한 우동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가시와(かしわ)우동이 나왔다. 다베로그 평가란에 가장 많이 등장한 메뉴로, 스미타 우동 메뉴 중 가장 싼 700엔이다. 수프는 물론 따뜻한 것으로 주문했다. 겨울에도 차가운 수프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여름에도 뜨거운 우동을 즐긴다. 씹는 맛으로만 우동을 즐기려는 ‘100% 면(麵) 신자’라면 차가운 우동이 제격이겠지만, 적어도 수프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따뜻한 우동이 정답이다.
가시와란 한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짙은 고동색의 닭이다. 닭고기를 잘게 잘라서 튀김으로 만들어 고명으로 얹고, 다시마 수프 속에 면이 담겨져 나온다. 김과 파가 살짝 얹어져 있다. 우동이 가져다주는 포만감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강한 맛이 들어가면 위에서 느껴지는 탄수화물에 대한 피로감이 약화된다. 한국인의 비만이 문제가 되지만, 필자 판단으로는 고추나 마늘과 같은 강한 맛 때문에 위의 반응이 약하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라만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강한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우동은 3가닥, 소바는 6가닥
우동 역시 다른 면류처럼 식사법이 정해져 있다. 기본은 우동이 불기 전에 먹는다는 점이지만, 식사법은 수프의 관서지방풍과 면의 사누키로 대별된다. 관서지방풍은 수프 속에 푹 담가서 먹는다. 사누키는 면에 수프를 조금만 적신 상태에서 즐긴다. 튀김을 고명으로 얹을 경우 면을 먹다가 적당한 때에 함께 먹으면 된다. 그러나 튀김을 수프 속에 푹 담근 뒤 녹여서 먹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음식을 섞어 먹지 않는 것이 일본 요리의 기본이다. 튀김을 고명으로 얹을 경우 보통 특제 간장과 같은 튀김용 소스가 따로 제공된다. 우동 수프에 적시지 말고 특제 소스에 약간 적셔 먹는 것이 좋다.
우동의 식사법은 경쟁 상대인 소바와 비교하면 차이가 한층 명확하다. 일본 속담이지만, ‘우동 1척 소바 8촌(饂飩一尺,蕎麦八寸)’이란 말이 있다. 1척은 10촌, 1촌은 3.03㎝이다. 따라서 ‘우동은 30.3㎝, 소바는 26.04㎝’라는 말이 된다. 최적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길이로 우동이 소바보다 조금 길다. 30㎝가 길다고 중간에 잘라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우동을 먹을 때 국자 모양의 숟가락도 함께 제공된다. 긴 우동을 자르지 말고 국자 위에 올려 계속 이어가면서 먹는 것이 포인트이다.
‘우동 삼본, 소바 육본(饂飩三本,蕎麦六本)’이란 속담도 우동 식사법의 포인트 중 하나이다. 한입에 넣는 면의 수가 우동은 세 가닥, 소바는 여섯 가닥이란 말이다. 둘 다 소리를 내면서 빨아들이듯 먹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 일본 여성들은 주변을 의식해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먹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세는 소리를 내면서 먹는 ‘무식한’ 방식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달라진다. ‘새해에 먹는 우동(年明けうどん)’이란 들어보지 못한 낯선 말을 최근 도쿄에서 접했다. 신년이 되면 한국인도 일본인도 국수를 먹는다. 중국인은 만두를 먹는다. 국수의 경우 생일날에 먹는 것이 중국인이다. 도쿄에 사는 일본인의 경우 신년이 되기 직전인 12월 31일 밤 12시 직전에 소바를 먹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른바 ‘한 해를 보내는 소바(年越しそば)’이다. 12월 31일을 넘어가면서 소바를 먹을 경우, 길게 이어진 소바처럼 신년에도 명(命)이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병을 예방하기 위해 잡곡류를 먹는 전통은 정월(正月)에 이뤄진다. 소바는 묵은 해를 보내고 신년을 맞이하면서 먹는 면의 대명사이다. 원래 우동은 신년맞이 행사와 무관하다.
‘새해에 먹는 우동!’ 슬로건도 특허청 등록
- ▲ ‘스미타’의 실내
‘새해에 먹는 우동’은 2009년부터 등장한, 일본 특허청에 등록된 21세기 첨단 슬로건이다. 사누키우동의 본고장 가가와현이 특허 소유자이다. 우동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묵은 해에 먹는 소바라는 이미지에 맞서 신년에 먹는 면이란 이미지를 강조한 슬로건이다. 12월 31일 밤 소바를 먹다가, 1월 1일로 들어서는 순간 우동을 먹어야만 하는 바쁜 일정이다. 가는 소바는 목숨의 길이에 주목하던 ‘양(量)’의 시대에 맞는 국수일지도 모르겠다. 건강하고 내실있게 살아야만 하는 ‘질(質)’의 시대에 통하는 것이 굵은 우동의 이미지에 걸맞다. 흥미로운 것은 전국에 흩어진 소바 생산지의 반응이다. 경쟁 상대인 우동을 적대시하기보다 ‘길고도 굵은 명(命)’을 함께 창조해가는 파트너로서 받아들인다. 수세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인 ‘한 해를 보내는 소바’가 ‘새해에 먹는 우동’과 공유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미타 우동 전문집에서의 추억은 1시간 만에 끝났다. 우동이 왜 하레의 상징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멘과 소바에 비교하자면 신성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맛이나 향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즐기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씹을 때 대뇌 속에 퍼져가는 소리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대뇌의 울림과 함께 신비함에 빠져드는 듯하다. 신비하다는 것은 신성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우동 한 그릇 먹으면서 ‘감히’ 도(道)를 논할 수 있는 곳, 시타마치의 우동집 스미타에서 맞이한 차가운 겨울밤의 따뜻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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