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
대청호 주변에 꾀꼬리가 육추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과 촬영한 사진을 보고 급한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꾀꼬리가 있다는 둥지 주변에 가니 있어야 할 대포 카메라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장소를 잘못 알았나? 새끼가 아직 이소 할 때는 안되어 보이던데. 이쪽저쪽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이 근방에 사는 지인한테 전화했다. “언니 어제 이소 했어요”” 한다.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아침부터 두어 시간을 걸려 찾아왔는데 너무 서운해서 눈가에 눈물이 빙 돈다. 그런데 마침 꾀꼬리 두 마리가 내 앞으로 날아와 앉았다. 재빨리 삼각대 세우고 세팅을 서둘렀다. 촬영하려던 순간 저쪽으로 쌩~ 날아가 버린다. 육추장면은 못 찍어도 어미라도 담을 욕심으로 쫓아다녔다. 그러나 꾀꼬리는 저 멀리 금성마을 쪽으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금성마을에 가면 있을까? 금성마을에 가면 어린 유조와 어미들이 살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참을 걸어서 갔다. 땀이 얼굴에서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금성마을에 도착해서 꾀꼬리를 찾았다. 그러나 꾀꼬리는 또 높은 하늘에서 날아다닐 뿐, 좀처럼 내 곁으로 와 주지 않았다.
다음 날 잘 아는 사진가 선생님께 어제 고생만 했던 얘기를 하며 꾀꼬리를 한번 가까이에서 보고 사진 좀 예쁘게 담아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그게 그렇게 소원이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선생님은 내가 안 되어 보이는지 아끼는 장소가 있는데 혼자만 가서 소원을 풀고 오라고 알려 주셨다. 사진가들이 알고 몰려가면 새들이 오지 않으니 염려스러워서 하는 말씀이셨다.
다음 날 바로 혼자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고 내려서 마을로 들어갔다. 알려 주신 대로 산길로 올라가니 폐가가 있는 곳에 보리수나무가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가자마자 보이는 꾀꼬리, 두 마리의 꾀꼬리가 날아와서 보리수 열매를 따 먹으며 예쁜 모습을 취해 주었다. 와! 내가 그렇게 담고 싶었던 꾀꼬리가 내 앞에 있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꿈만 같다. 그렇게 촬영하기 힘들었던 꾀꼬리가 두 마리나 왔다 갔다 한다. 그런가 하면 직박구리 물까치 딱따구리 그 외 이름 모르는 새들도 왔다. 새들의 낙원이었다.
비밀을 꼭 지켜야 한다는 선생님의 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렇게 평화로운 새들의 천국을 누구도 방해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나도 들었다.
아무도 없는 외딴 산중의 폐가, 허술한 헛간에서 처마 밑으로 렌즈만 내놓고 사진을 찍는다. 마당에는 풀이 우거지고 지저분한 헛간은 겨우 의자 하나 놓을 수 있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다. 새가 오지 않을 때는 금방 뱀이라도 나올까 봐 일부러 인기척을 하고 막대기로 고무통을 두드리며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도 새들이 오면 무서움도 까맣게 잊고 몇 시간을 새들과 즐겁게 보냈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란.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과 약속한 비밀의 장소는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평화스럽게 노는 새들을 보니 언제까지고 약속을 지켜 새들이 언제라도 와서 마음 놓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비밀을 지켜낼 것 같다.
첫댓글 노란 꾀꼬리가 붉은 보리수 열매를 먹는 풍경 참 좋습니다, 감사드려요.
최선생님, 반갑습니다. 허접스런 작품에 고운 댓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재미도 없는 긴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주셔서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