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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진퇴양난(進退兩難), 사면초가(四面楚歌)/ 예레미야 33:1-9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cTNnlzyixjY
진퇴양난(進退兩難)이란 말이 있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사슴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데 갑자기 앞에 깊은 강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뒤에는 호랑이가 따라오고 앞에는 강물이 흐르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나아갈 수도 뒤로도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를 진퇴양난이라고 합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도 있습니다. 중국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때에 항우가 한나라 군대에 포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빠져나갈 길도 보이지 않고 병졸은 줄어들고 군량미도 떨어지고 있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 군사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습니다. 적진에서 심리전으로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항우는 깜짝 놀라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 군사들 대부분을 장악한 것으로 판단하여 마지막 주연을 베풀고 나서 자결하였습니다.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사면초가입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빠진 형편을 이르는 말입니다.
본문의 유다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습니다. 유다왕 시드기야 10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를 침략해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 군대를 이길 힘도 없었고, 그동안 의지했던 애굽은 이미 바벨론에 패한 상태였습니다. 유다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할 것이고, 시드기야 왕은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니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과 백성들은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왕은 왕이 포로가 되고 유다는 멸망한다는 예레미야의 말에 심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시위대 뜰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세 번에 걸쳐 유다를 침공 했습니다. 지금은 3차 침공 때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겹겹이 에워쌓았습니다. 18개월의 공성전 끝에 예루살렘은 불타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전쟁에 패하고 자기 자식들이 바벨론 군사들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군대는 그의 두 눈을 뽑고, 쇠사슬에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유다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유다의 상황을 보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완전 절망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전개 되던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이미 이런 상황에 놓인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에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1절).
1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계시를 받았고,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미래의 소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조국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에 놓인 유다에게 해답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처신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시 119:105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칠흑 같은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빛이 임하면 길이 보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과 개인의 앞날, 가정의 미래가 캄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임하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방향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먼저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시 107:20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기서 위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일까요? 1절부터 보면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입니다. 4절에 보니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10절에 흑암으로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습니다. 마치 죽을 지경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힘들어 곤고합니다. 마치 쇠사슬에 매여 있는 상황 같습니다. 16절에 보면 놋문에 갇혀있고 쇠빗장으로 막혀있는 상황입니다. 18절에 보면 그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여 모든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사망의 문에 이르렀습니다. 죽기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다시 시 107:20을 읽겠습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거나 기적을 일으켜주실 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낳게 하실 때에도 먼저 말씀으로 약속을 해주셨고 그 약속의 말씀대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실 때에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자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방법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40명의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책이지만 하나님의 감동에 의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알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계 3:22을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입니다. 주님은 각 교회에게 메시지를 주신 후에 계 3:22과 동일한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셨습니다. 그 말은 지상의 모든 교회와 모든 목회자, 모든 성도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의 진리 위에 서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성경에 있는 것은 성경대로 하고 성경에 없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피영민목사님이 신학교 교수 시절에 목사님의 사모님들에게 ‘사모학’을 강의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피목사님은 사모님이 아니기 때문에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것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모님들과 수업시간에 사모의 영성, 사모의 경제, 사모의 기도, 사모의 전도, 사모와 여전도회 등 여러 주제를 정한 후 당신들이 목회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나누라고 했습니다.
‘사모와 기도’라는 시간에 한 사모님이 이런 경험을 나눴습니다. 사모님의 남편 목사님과 교회를 개척했는데 개척교회 월급이 5만원이었습니다. 그중 쌀값이 한 주일에 1만원 씩, 한 달에 4만원 들었습니다. 나머지 1만원 가지고 자녀들 옷도 입히고 헌금도 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한 주간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주 1만원이 남더랍니다. 목사님이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길 건너 개척교회 목사님에게 1만원으로 쌀을 사다 주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속으로 자신의 형편도 어려운데 너무하신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으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쌀을 사서 길 건너 개척교회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가보니 목사님이 아침에 자녀 도시락 싸줄 쌀이 한 톨도 없어 낙심해 있더랍니다. 목사님이 하도 답답하여 애한테 “하나님께 달라고 해”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자 애가 강대상으로 가 큰소리로 하나님께 “하나님, 밥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학교를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하는 목사님에게 일주일 금식해 남은 1만원으로 길 건너 개척교회 목사님의 아이가 먹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의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씀에 불순종하고 친애굽 정책을 펴고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나라도 망하고 자기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자신은 두 눈까지 뽑혀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유다는 망한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드리지 않아서 당하게 된 고통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여인에게 병들어 죽게 된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초청해 기도부탁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이 “하나님의 뜻이면 이 아이를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부인이 기도를 막고 “목사님, 그렇게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이든지 아니든지 무조건 아이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자매님, 당신의 이 간구는 결국 당신에게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으나, 그 여인은 그래도 자기 원대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이든지 아니든지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면서 범죄자가 되어 그 여인이 20년 동안 아이 때문에 온갖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아들은 범죄 때문에 사형집행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생각과 달라도 받아드려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그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죽을 것이니 죽을 준비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고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때 히스기야가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더 나을 뻔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일로 교만해졌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이 연장된 15년 간 낳은 아들 므낫세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되었고 므낫세 때문에 유다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렸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3절).
3절에 보니 하나님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 있는 유다의 영적 지도자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 합당한 지헤와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기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외침을 들으시고 우리는 도와주십니다.
갓난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갓난아기는 으앙~ 하고 웁니다. 그건 엄마에게 “엄마! 나 도와주세요”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입니다. 엄마는 아기의 으앙~ 하는 소리를 들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아기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기를 도와줍니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젖을 물려줍니다. 아기가 똥을 쌌으면 귀저기를 갈아줍니다. 으앙~ 하는 아기의 부르짖음에 엄마가 신속히 응답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2000년에 미국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 당시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의 간증입니다. 당시 그는 100층에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힌 후에 그 사람이 살기 위해서 100층에서 뛰어 내려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더랍니다. 롬 10:13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는 이 말씀대로 “주여! 예수님! 하나님!”을 부르며 뛰어내려왔습니다. 그가 뛰어 내려오데 그의 뒤를 따라서 사람들이 같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Call God! Call Jesus!” “하나님을 부르라. 예수님을 부르라” 그는 계속해서 “Call God! Call Jesus!”를 외쳤고 그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함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를 때마다 화염이 비키고 길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르며 50분간을 뛰어 내려 왔고, 그와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안전하게 된 후에 그 거대한 빌딩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사람과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른 자들은 모두 그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으로 인하여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 응답을 이론으로 알지만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이고 기도를 해도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술집이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인근 교회에서는 이 술집이 없어지도록 철야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술집은 손님이 줄고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술집 주인은 인근 교회가 자기 술집이 문을 닫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술집 주인은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회의 기도 때문에 장사가 안 되고 문을 닫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법정의 심리가 시작되자 재판관은 목사님에게 “정말 술집 문이 닫히도록 기도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기도했다고 술집이 문을 닫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판결이 어떻게 났을까요? 마지막 판결은 이랬다고 합니다. “술집 주인-기도를 믿음. 교회 목사-기도의 응답을 믿지 않음” 우리에게 무슨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우리는 기도 응답을 믿어야 한다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을 믿어야 합니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산악인은 고인이 된 고상돈씨입니다. 고씨는 1977년 9월 15일 ‘77에베레스트 원정대’와 함께 세계 58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으며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라는 무전을 했습니다. 그때 등반대장 김영탁씨는 믿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에베레스트에 등반하기 전에 등반대원들이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목사님을 모셔다가 두 차례나 예배를 드렸습니다. 돼지머리 갖다놓고 산신령께 제사 지내고 떠난 사람들은 모두 실패하고 더러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출발한 팀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성공했습니다. 더욱이 외국 등반대는 40~50일이 걸리는데 우리 등반대는 20일 이내에 해냈습니다. 그리고 산소가 떨어져서 계속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났을 때에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눈 속에서 산소가 들어있는 산소통을 주워서 살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온도가 영하 30~40℃나 되는 추위에 두 대원이 정상부근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얼어 죽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등반대장 김영탁씨가 밤새도록 하나님께 두 사람을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밤12시쯤 캠프 밖을 나가보니 신기하게도 봄 날씨 같이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두 대원은 무사했고, 대원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일기예보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는데 눈도 전혀 오지 않아서 기적적으로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은 김영탁 대장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기도교(祈禱敎)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에서 기도는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연애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약혼한 것이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결혼식을 할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이 깊어지려면 대화가 필요합니다. 남녀가 만나서 대화를 하지 않으면 상대를 알 수 없고 상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싹틀 수 없습니다. 대화가 통해서 상대를 알게 되고 상대를 알게 된 만큼 사랑하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려면 하나님과 대화가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깊어지는 만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특별히 진퇴양난, 사면초과의 상황을 만났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3.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3절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은 그 다음 구절인 33:4-52:34까지의 말씀의 내용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크고 은밀한 일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심판(審判)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유다가 뭉쳐서 바벨론에 대항하여 싸웠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셨고 예루살렘 성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②하나님의 구원(救援)입니다. 7절입니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던 것처럼, 바벨론에 포로가 된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포로 된지 70년 만에 포로귀환의 복을 주셨습니다.
③하나님의 강복(降福)입니다. 9절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지금은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열방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베푸신 복이 얼마나 큰지 그 모든 복을 듣고 두려워하며 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려진 은밀한 것을 볼 수 있다면 큰 축복입니다. 국민일보 겨자씨에 나온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간증을 소개합니다. 세계적인 부흥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에게는 문제아 아들 프랭클린이 있었습니다. 프랭클린은 술과 마약에 찌든 채 아버지가 전하는 복음은 거짓말이며 하나님이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그가 밤늦게 자가용 비행기를 조종하여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가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비행기 연료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통신장비에 이상이 생겨서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면초과,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점점 비행기 고도가 떨어졌습니다. 곧 추락을 앞두고 죽음의 공포가 밀려 왔습니다. 그 때 프랭클린은 본문 3절의 말씀대로 그동안 부인하던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하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비행기 앞쪽에 공항 활주로의 유도등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감추어져있어서 그에게는 은밀한 길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프랭클린은 그 불빛을 따라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역의 목사님 한 분이 자기 성도 중에 공항에서 일하는 성도 심방을 가셨습니다. 그때 그 공항 직원인 성도가 목사님께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비행기 활주로의 불을 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그 목사님을 그 곳으로 심방을 가게 하셨고, 프랭클린이 서원까지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할 때 활주로의 불을 켜게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타이밍이었습니다. 프랭클린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놀라운 타이밍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는 서원기도대로 결국 아버지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프랭클린이 캄캄한 밤에 사막 한가운데서 비행기 연료가 떨어지고 통신장비까지 고장나서 연락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은 진퇴양난, 사면초과의 상황을 만난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크고 은밀한 일들을 봐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당시 유다가 당한 진퇴양난, 사면초과의 상황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나 다시 구원하시고 마침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은밀한 영적 진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그 상황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알아져야 표면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것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견고한 심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은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사 26:3으로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저와 여러분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셔서 심지가 견고하고 평강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는 “진퇴양난(進退兩難),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유다의 멸망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우리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이 되어도 승리할 수 있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중심을 잡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기를 바랍니다.
손을 가슴에 대시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 놓여도 하나님의 뜻을 찾겠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 놓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 부르짖겠습니다. 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심판하시나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나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