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만에 글을 올리게 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마음먹은대로 글을 쓰기가 이렇게 힘들다는것을 새롭게 알게되었다고 할까요?
힘을 내어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메일을 보내주시어 힘을 내게 해주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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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하고 둘이 침대 칸으로 돌아오자 모르는 젊은 남자 셋이 침대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잘못 찾아왔나 착각을 했지만 구석에 자륜의 배낭이 있었다.
"여기는 우리 자리예요. 비켜주세요."
수향이 침대에 앉으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한 남자는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두 남자는 일어날 기색이 없다. 도리어 한 사내가 수향옆으로 다가앉으며 수작을 붙인다.
수향이 자리를 비키라고 소리치면서 뒤로 돌아앉자 사내들은 서로 마주보고 씩 웃으며 수향의 머리카락을 슬쩍 들어올리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수향이 사내의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 나려하자 팔을 잡아 자리에 앉히려 한다.
자륜이 안되겠다 싶어 사내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으켰다. 이 상태에서 뭐라고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네명의 남자가 서있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향은 자륜의 옷을 잡으며 앉으라고 눈짓을 한다.
"조 선생님. 상관하지 말고 안내원을 부르세요."
옆칸에 있던 사람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이쪽 광경을 보고있었으나 사내 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가를 위로 올리면서 어깨로 자륜을 밖으로 밀었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는 뜻으로 알고 낮에 담배를 피우던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뒤에서는 사내들이 킥킥거리며 자기네들끼리 떠들며 따라왔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고 나자 자륜이 벽을 기대고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자 한 사내가 자륜의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낚아챈다. 시비를 거는 것이다. 다시 담배를 꺼내 잎에 무는데 그 사내의 손이 다시 올라온다. 순간 자륜의 검지와 중지로 사내의 수혈(水穴)을 찌르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목을 두손으로 거머쥐며 주저앉는다.
뒤의 사내가 쓰러지는 한 사내를 흘낏 보면서 자륜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로 사내의 정강이를 지르자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구부러진다. 무릎으로 턱을 올려치자 덜컥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진다. 눈 깜짝할 새였다.
그 자리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자 남아있던 사내는 눈치를 보며 주저앉은 사내를 일으키고 있었다.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사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수향이 달려왔다. 넘어져있는 두명의 사내를 보고 사태를 짐작한 것 같았다. 안도의 숨을 쉬는 수향의 눈이 젖어있었다.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자리에 돌아와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사내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다른 곳으로 간 것 같다.
"이런 일이 가끔씩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없었어요. 아마 젊은 남자 하나가 있으니까 장난을 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많이 놀랐지요."
두 번째 저녁에는 미리 잠자리 준비를 했다. 어제는 갑작스럽게 전등이 꺼지는 바람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자리에 누워 지난 몇 일간을 되새겨보았다. 중국 심양에 올 때는 장 학수 선배의 도움으로 일화를 만나게 되었고 어제는 기차안내원의 도움으로 진 수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여자를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마땅히 해볼만한 것이 없었다. 알고있는 것이라고는 태권도와 유도, 합기도를 합해서 7단. 남들처럼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내세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는 선배의 태권도 도장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청소와 어린이들의 사범으로 일을 해왔지만 너무 과격하다는 학부형들의 반발로 그곳도 나와야 했다. 산으로 뛰쳐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들어가면 한 달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파트 짓는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몇 년을 지내고 나서야 지금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다라고 판단이 선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장선배를 만나 중국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잠결에 인기척을 느꼈다. 눈은 뜨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수향이 옆에서 이불을 바로 해주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하려했지만 무안할 것 같아 그대로 있었다. 수향이 제 자리에 돌아간 것을 확인한 후에 잠을 청하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를 않는다. 군대에서 특수교육을 받을 때의 감각이 아직 그대로다 생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눈을 감은 체로 수향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좀처럼 보기 드문 중국여자의 이미지였다. 흰 피부에 하얀 치아,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는 점도 있지만 처음 느껴보는 이미지였다.
어깨에 손을 대는 바람에 잠을 깨었다. 좀처럼 늦잠을 자는 편이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기차 안에서 흔들리고 중국말에 신경을 집중하는 바람에 늦었는가 싶었다. 기차 천장에는 조그만 불이 켜져있고 수향이 자리에 앉아있다. 입에 손을 대고 조용 하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5시가 조금 넘었다.
자륜의 옆자리에 앉더니 귓속말로 소근댄다. 6시면 항주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수향의 입에서 박하향의 치약냄새가 나는 것이 너무나도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위를 쳐다보니 2층, 3층의 사람들은 아직도 잠이 들어있다. 세면장에서 세면을 하는데 어제보다 물이 조금씩 나오고있었다. 아마도 물이 부족한 것 같았다. 세면을 끝낼 때까지도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창밖은 어둠이 흩어지고 있었다.
자리에 돌아오니 수향은 짐을 꾸리고 있었다. 조금 지나면 사람들이 많아서 귀찮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향의 말이 틀린 적이 없어 부지런히 침대정리를 했다. 짐정리는 할 것이 없었다. 배에 차는 조그만 가방과 배낭 하나만 들면 되는 것이다.
창밖이 밝아지면서 사람들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세면을 하러 가는 사람과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등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시장한가운데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조금 늦장을 부리다 여기에 합류를 하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자 수향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기차는 서서히 역에 들어서더니 정차를 했다. 지금까지 내린 사람들 중에서 제일 많이 내린 것 같다.
수향이 앞장서서 자연스럽게 자륜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한다. 문 앞에서 안내원과 눈이 마주치자 조심해가라고 손을 흔든다. 같이 손을 흔들고 수향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바짝 뒤를 따라갔다.
역앞에 나오자 관광객들을 호객 하는 호객꾼들이 깃발을 들고 소리쳐 사람들을 모은다. 몇몇 호객꾼들이 자륜의 팔을 잡고 좋은 곳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관광을 할 수 있다며 침을 튀기면서 한참을 따라오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그곳에서 한참을 빠져나온 수향이 택시를 손을 들어 세웠다. 역앞에서 타면 몇 배나 비싼 값으로 타게된다는 말에 자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아름다웠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수향이 글을 써 보이는데 그럴듯하게 들렸다. 아직 2월이라 날씨가 덥지 않다고 하는데 자륜은 겉에 입은 잠바를 벗어 손에 들었다.
30여분을 달리더니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택시는 들어갔다. 커다란 건물을 돌아 차에서 내렸다. 건물 뒤에는 살림집인 듯한 조그만 집이 네채가 나란히 서있었다. 차소리를 들었는지 한쪽 집에서 어머니인 듯한 여인이 나오자 자륜의 옷소매를 끌고 인사를 시켰다. 수향이 어머니를 닮았는지 어머니의 얼굴이 이국적으로 생겼다고 생각했다. 수향과 수향어머니는 눈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 하면서 수향어머니는 자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는 듯 했다.
수향이 오는 것을 미리 알았는지 식탁에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은 간단했다. 묽은 죽과 심양에서도 먹어본 적이 있는 만두가 큰 바구니에 여러 개 담겨져 있는 것이 다였다. 식탁에 둘러앉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자륜이 이곳에 오게된 설명을 간단하게 한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몇 가지를 자륜에게 묻더니 수향에게 지시를 한다.
그 내용을 자륜이 알아듣기 쉽게 수향이 다시 설명을 해 주었다. 앞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기공이나 무술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것이고 뒤에 보이는 조그만 집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사람들이 쓴다고 한다. 아직 날씨가 추워선 지 비어있으니 당분간 이곳에 있으면서 결정을 하라고 한다. 자륜은 뚜렷하게 결정된 것이 없으니 이곳에서 좋은 것을 배웠으면 한다고 대답하자 수향이 다시 통역을 해주었다. 아직은 자륜의 말이 서투른지 다른 사람은 알아듣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다 듣고 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를 끝내고 수향의 안내로 수련장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이곳저곳을 설명을 하면서 자륜이 배웠던 무술에 관심을 보이자 태권도의 몇 가지 동작을 보여주었다. 수향은 깔깔거리며 동작을 따라 해본다. 수향의 웃음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수향은 한쪽 벽에 세워져있는 칼을 집어들더니 춤을 추는 듯하며 검무동작을 펼쳐 보인다. 무엇이냐고 묻자 이것이 태극검이라고 한다. 자륜이 칼을 받아들자 묵직한 것이 손에 느껴왔다. 조금전 수향이 하던 동작을 생각하고 한 손으로 칼을 앞으로 뻗은 후 옆으로 천천히 돌려보았다.
"그 동작은 그렇게 하면 안돼요."
뒤에서 수향이 자륜의 양쪽 팔을 잡았다. 처음동작의 앞으로 뻗다가 옆으로 돌려주자 두몸은 한데 붙여졌다. 수향의 가슴이 자연스레 자륜의 몸에 닿게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수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팔을 앞으로 뻗다가 옆으로 돌리는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가슴이 닿더니 이제는 배가 자륜의 허리에 닿는 느낌이 온다. 수향이 왼쪽 팔로 자륜의 허리에 감았다.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과 함께 왼손으로 수향의 손을 풀려고 손등에 대자 싸늘한 감촉이 느껴와 차마 풀어 버릴 수가 없었다. 수향의 왼손에 힘이 가해지면서 얼굴을 자륜의 등에 대었다.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리고 아래가 뜨거워지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오른발을 한발 앞으로 내딛어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수향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이제는 서로 마주보는 상태가 되었다. 수향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자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 문 쪽으로 뛰어나간다. 자륜은 손에 들고있던 검을 한참 바라보다가 제자리에 놓고 수향을 뒤쫓아 걸어갔다.
오전 10시가 되자 20여명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련장안으로 모여들었다. 앞에는 수향의 할아버지가 정좌를 하고있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인사를 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륜은 제일 뒷자리에 눈치를 보며 같은 자세로 앉았다. 자꾸만 문 쪽으로 신경이 간다. 혹시 수향이 자기를 찾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옆사람이 하는 데로 따라하는 것이 우선이다 라고 생각이 들면서 나름대로 동작을 분석했다.
수향할아버지가 설명을 하는데 자륜은 전문용어가 섞여있어 그런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두시간 정도가 지나 수련이 끝났는데도 수향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수련을 끝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고 수련장안에는 자륜과 수향할아버지만 남아있었다. 수향할아버지와 함께 안채로 돌아가자 새로운 모습을 한 수향이 의자에 앉아있다 자륜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했지만 차마 눈을 맞댈 수가 없어 시선을 어디에 둘지를 몰랐다.
"오늘 수련장에서 본 소감이 어떠시오?"
"예. 따라는 해 보았지만 잘 안돼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서 수향이 통역을 해주어서 다행히 대답을 했다. 아직까지는 수향외 다른 사람의 말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향 내가 할아버지를 부를 때 사부님이라고 하면 됩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라오스(老師)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여기에서는 사부라고 하면 나이가 들은 일반 공인들을 말해요."
"우리 한국에서는 무술을 배울 때 보통 사부님이라고 하는데요."
"우리 중국에서도 이전에는 사부님이라고 불렀다오."
앞에서 차를 마시던 수향의 할아버지가 나직이 설명했다. 그때는 사부의 그림자도 함부로 밟지를 못하고 예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예의도 없어지고 사부라는 명칭도 없어졌다고 탄식을 한다.
"수향아버님은 어디 가셨나보죠?"
"아버지는 학교에 가셨어요. 대학에서 기공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할아버지는 라오스라고 부르고 아버지는 교수라고 부른다고 설명을 한다. 기공의 기초는 수향이 맡아서 가르치라고 하면서 낡은 책한 권을 내 주며 자륜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조 선생은 그 동안 무엇을 했소?"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무술도장에 몇 년 있었습니다."
"사람은 몇 명이나 죽여보았소?"
"예?"
"조 선생에게는 몸에서 살기가 너무 많이 풍겨, 주변에도 살기가 있고. 이제부터는 무술보다 기공 쪽으로 힘을 쏟는 게 좋을 거요."
자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험하게 생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상위에 올려있던 두손을 아래로 내렸다.
"나처럼 나이가 먹게되면 웬만한 것은 그냥 느끼게 된다오. 아직 살기가 기승을 부리지 않으니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수양을 쌓아두면 후에 도움이 될 것이요."
수향할아버지는 둘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자륜은 숨을 크게 쉬었다. 수향할아버지 앞에서는 뭔지 모를 압박감 때문에 숨도 크게 쉬지를 못하였다.
아침의 일 때문에 수향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를 못하고 상위에 있는 책을 펼쳐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힘이 있는 글씨가 깨끗하게 붓으로 쓰여져 있었다.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넘기면서 내용을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종이가 오래된 것인지 중간중간에 덧붙여 놓은 곳이 많았다.
"지금은 책을 보아도 잘 모를 거예요."
침묵을 깨고 수향이 살며시 입을 뗀다. 자륜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얼굴이 붉은빛으로 물든 수향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찻잔에 더운물을 부어 주었다.
"이게 무슨 책입니까?"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연구하신 기공이라고 해요."
"그럼 이것이 아까 수향이 했던 그것입니까?"
"아니에요. 아까 그것은 태극검이고 이것은 태극권을 본따서 만든 태극기공이에요."
"태극권은 들어봤어도 태극검이나 태극기공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수향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서먹서먹한 것이 많이 없어져 눈을 마주보고 말을 할 수가 있다.
"점심을 먹고나서 제가 기초를 가르쳐 드릴게요. 지금은 나를 따라와요."
상위에 있는 책을 한곳에 치우고 짐을 들고 자륜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자륜이 고개를 흔들고 뒤를 따라 나섰다. 갑자기 수향이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예요. 할아버지가 우선은 여기에 묵으면서 공부를 하래요."
방은 널찍했다. 침대가 4개있고 옆에는 책상이 하나, 문 옆에는 옷장인 듯한 가구가 세워져있고 거기에는 열쇠로 채우게끔 자물쇠장치가 되어 있었다. 이전에 4명이 사용한방 같이 보였다. 세면실과 화장실은 밖에 있었고 식사는 안채에서 한다고 수향이 설명한다.
"이곳에서 공부를 할 때 수업료는 어떻게 합니까?"
"일주일에 5번 와서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100원, 이곳에 머물면서 수련을 하는 사람은 200원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곳의 손님이기 때문에 돈은 받을 수가 없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돈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한쪽의 침대에 시트를 갈아주며 자륜을 쳐다본다. 침대에 앉아보라는 뜻이다. 배낭을 옆에 두고 침대에 앉아보았다. 삐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런 대로 견고하게 만들어놓은 침대였다. 솜이불이 깔려있어 푸근했다. 옆에 수향이 다가앉는다. 기차 안에서와 다른 향기가 수향의 몸에서 풍겨 났다. 가슴에 더운 열기가 모여든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입에서 침이 말라졌는지 말을 하려해도 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두손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수향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가슴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수향이 들을 것 같아 숨을 크게 들여 마셔봐도 소리는 더 커지는 것 같다.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달리 한쪽 손이 수향의 어깨에 올라갔다. 기다렸는지 수향의 머리가 자륜의 어깨에 기대어온다. 가쁜 숨을 쉬는지 자륜의 손에 어깨의 움직임이 전달되어 온다. 어깨에 있던 손이 아래로 내려가 허리에 닿았을 때 수향이 자륜의 손을 잡는다. 아침과는 달리 따스함이 느껴왔다.
"우리 점심 먹으러 가요."
수향이 두손을 내밀어 자륜을 일으킨다. 자륜의 등을 밀면서 문 쪽으로 나갔다. 몇 발자국을 가다 자륜이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려는데 수향이 뒤에서 허리를 감싸고 등에 얼굴을 갖다댄다.
"가만히 있어요."
자륜은 수향의 두손을 감싸안을 수밖에 없었다. 등에는 수향의 심장소리가 전달되어 오는 것 같다. 수향의 두손을 풀자 이번에는 힘없이 풀어졌다. 자륜이 몸을 돌려 두손을 잡자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다. 두손을 앞으로 당기면서 한발 앞으로 다가서도 피하지를 않는다. 수향을 감싸안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소리를 들으려는지 수향의 얼굴이 가슴에 다가온다. 아무생각도 나지를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텐데 머리 속에서 중국말이 생각나지를 않는 것이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어머니가 점심을 먹으래요."
조금전과는 달리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자륜을 바라본다. 자륜을 내밀고 문을 닫는다.
"지금은 아무도 없어서 문을 잠글 필요가 없어요. 다른 사람이 있으면 꼭 문을 잠궈야 되요."
"예. 알았습니다."
중국에서는 내 물건은 내가 꼭 챙겨야 한다고 설명을 해준다. 기차 안에서 자륜이 물건을 잊어버릴까봐 많이 신경을 썼다고 덧붙였다.
점심은 볶음밥이 나왔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까지 오는데 반 가량이 흩어지는 것 같다. 밥에 끈기가 없고 가벼운 것 같아 조금만 흔들려도 밥알이 숟가락에서 떨어진다. 조심스럽게 식사를 끝맞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