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매머드 상권 속에서 50년 넘게 상권 유지 비결은?
대형마트 옆에 슈퍼가 있다면, 아울렛 매장 옆에 의상실이 자리한다면? 가정 자체가 우습기도 하지만 현저한 ‘비대칭 게임’에 결과는 뻔할 것이다.
대구 전통시장 중에 이런 비슷한 게임에서 살아남은 시장이 있다. 도시철도 2호선 북쪽 편에 있는 새길시장이다.
이 시장은 사방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동북쪽으로는 대구 전통시장의 지존 서문시장(700m), 서쪽으로는 신평리시장(1.4km), 남쪽엔 서대구시장(320m), 북쪽으로는 서부시장(940m)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폐점 되었지만 한때는 바로 옆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내당점까지 가세해 새길시장 상권을 압박 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 상 새길시장의 운명은 이미 끝났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주변 시장들 틈새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
현재 서구의 ‘중급 시장’으로 위세를 떨치던 서대구시장은 최근 전통시장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유통업계의 공룡이라는 롯데마트도 결국은 여러 이유로 문을 닫고 말았다.
새길시장이 게임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번창 일로를 걷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곳 역시 시장 가동률이 30~40%에 못미치고, 오른편 두 개의 골목(통로)는 이미 개점휴업 상태다.
그러나 새길시장이 온갖 위기 속에서 서구의 한 모퉁이에서 반세기 이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대구의 전통시장, 유통 역사에서 한번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현저한 전략적 약세를 딛고 53년 전통시장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새길시장을 돌아보았다.
◆내당·평리동 개발 바람 타고 1969년 새길시장 개설=새길시장이 들어선 것은 1969년도. 이 시기 대구는 급속히 시역(市域)이 급속하게 팽창하는 시기였다. 이 당시 대구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제3공단이 준공되며 인구 130만도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동쪽으로는 중동·상동·수성동 일대만 시가화 되었고, 서쪽으로는 비산동·노원동·침산동, 남쪽으로는 대명동, 동쪽으로는 대현동·신천동 일대만이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개발이 가장 늦어진 곳은 바로 새길시장이 위치했던 서구 쪽이었다. 이 시기 내당동·평리동 일대는 주택가가 들어서며 막 개발 기지개를 펴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초반 대구시 지도를 보면 반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논밭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반고개가 시가(市街)와 농촌을 가르는 대구의 서쪽 경계였던 셈이다. 대구와 고령, 성주를 연결하던 서부정류장이 반고개에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입증한다.
반고개의 시외버스정류소를 기반으로 고령, 성주지역 주민들과 대구 지역 시장들이 상거래를 활발하게 펼쳤던 점도 새길시장이 탄생하게 된 주된 배경이었다. 옛날 반고개 임시정류소에는 하루 20회 고령, 성주 방면 시외버스가 운행되었다. 장날이면 시외버스는 장꾼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물론 승객들의 대부분은 바로 옆 서문시장 손님들이었지만 새길시장에도 상당수 단골들이 왕래하며 거래를 펼쳤다.
새길시장의 설립은 바로 이런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였다.
◆1980~90년대 식당·술집 15곳... 가장 전성기=새길시장이 서구의 주요 시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바로 지척에서 서문시장이 버티고 있어 대형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데 한계는 있었지만 내당동, 남산동, 비산동 주택가의 든든한 후광을 업고 중견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새길시장은 세 통로에 상가 100여 곳을 거느리며 중급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인기 상인 회장은 “1980~90년대 새길시장의 주 통로엔 식당, 막걸리집이 15곳이 성업할 정도 성시를 이루었다”며 “당시 술꾼들은 서대구시장, 무침회골목, 새길시장으로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곤 했다”고 회고 했다.
시장엔 언제나 유동인구가 넘쳐 활기가 넘쳤고, 점포마다 단골을 거느리며 제법 돈을 모았다. 새길시장의 원조 격인 서울떡집의 할머니는 “1980~90년대 새벽 3~4시면 시장에 나와서 쌀을 몇 가마씩 불려 놓아도 하루 만에 다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190년대 새길시장에 채소, 건어물 가게를 연 거창상회 이인기 대표도 “당시 배추, 무를 새벽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아도 저녁이면 다 팔려나갔다”며 “그 시절 새길시장 상인들은 서문시장을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점포 가동률 30%선, 활력 잃어=1990년대 후반까지 서구의 남쪽 상권을 책임지던 새길시장은 2000년대 이후 급속한 쇠락기를 맞게 된다.
정부의 유통시장 개방, 급격한 인구의 감소, 서구의 상대적인 발전 지체 등이 원인이었다.
세력을 잃어가는 새길시장에 결정타를 날린 건 2005년에 들어선 홈플러스 내당점. 대형마트의 등장은 인근 서남시장, 신평리시장에 큰 피해를 입혔지만 가장 인접한 서대구시장과 새길시장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인기 회장은 “대형마트 등장, 홈쇼핑 등 온라인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유동 인구가 70%는 줄었을 것”이라며 “시장의 쇠락은 땅값 하락으로 이어져 상인들의 박탈감이 더 컸다”고 말한다. 1990년도 후반 평당 1,200만원을 웃돌던 시세는 지금 500만원에도 못 미친다.
전체 상가 100여곳 중 지금 문을 여는 곳은 30곳 정도다. 가운데 통로는 3~4곳을 제외하곤 폐업 상태고, 동쪽 주택가 상가도 5~6곳만 문을 열었을 뿐 슬럼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간 통로에서 그릇 점포를 하는 한 어르신은 “하루 종일 문을 열어도 하루 10만원 매상도 힘들다”며 “그냥 소일 삼아 나와서 상인들하고 수다 떨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나마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 안쪽 통로는 30여 곳이 문을 열고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 역시 어른들만 오갈 뿐 옛날에 분주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참기름집의 한 어르신은 “그래도 30~40년 된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주는 덕에 그나마 점포를 꾸려간다”며 “아마 이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이 시장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때 달구벌대로 상권의 한 축을 담당하며 번창했던 새길시장은 현재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다. 어떤 상인들은 장사보다 턱밑까지 불어온 재건축, 재개발 바람에 기대를 하는 듯하고, 일부는 평생 땀으로 일궈온 시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한다.
새길시장이 대형마트, 서문시장 등 매머드급 상권의 틈새에서 반세기 이상 시장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대구 전통시장, 유통 역사에 ‘작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새길시장은 대형마트, 서문시장 등 매머드급 상권의 틈새에서 반세기 이상 시장을 유지해왔다는 특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은 새길시장 주출입구. 한상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