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헌법보다 위에 존재하는 법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정서법입니다. 법중의 법이라고도 합니다.물론 다른 나라들도 크고 작은 국민정서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만큼 국민정서법이 위중하고 엄격한 나라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해 두가지 법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외국인의 표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한국에 현존하는 법의 심판이고 또 하나는 국민정서법에 의한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대체로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이 여론과도 비슷한 성격이지만 한국에서는 자칫 이 국민정서법에 저촉되었을 경우 한국에서 얼굴 들고 지낼 수 없는 것은 물론 외국에 도피하더라도 집요하게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정서법은 특정 나라의 국민이 특정 사건에 대해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 즉 국민정서가 법치에 영향을 주는 쪽으로 작용할 때를 뜻한다고 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하하는 표현으로는 떼법이라고도 합니다. 다시말하자면 다수의 힘과 공통된 정서로 만들어지는 여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정서법은 부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긍정적인 면도 상당합니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일 경우 국민정서법으로 권력이 붕괴되거나 독재자를 처단하는데 대단한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민정서법을 악이용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선동주의 정치가들이 대표적이고 몽매한 국민들을 교묘하게 자신이 노리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국민정서법을 오용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혐오감 주입이나 중세에 만연했던 마녀사냥입니다. 일제도 이런 것을 자주 악용했습니다.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국면전환으로 조선인들을 집중 공격한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국민정서법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나라는 아무래도 한국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한국에서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때 일단 언론에게 집중타를 맞습니다. 여론이 끓어 오릅니다. 드디어 국민정서법이 가동됩니다. 그냥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돌맹이를 날립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거치고 재판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지만 그런 것은 생략됩니다. 재판에 회부되기도 전에 해당자는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런 다음 또 재판의 심판을 받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경우가 바로 유명 배우의 마약관여 사건입니다. 경찰에 조사를 받기 전부터 이미 언론에 공개되고 국민들의 지탄을 한몸에 받습니다. 언론들은 앞다퉈 특정인 죽이기에 나섭니다. 그냥 확인도 없이 보도합니다. 국민들은 그런 언론에 충실한 동업자가 되어 움직입니다. 침소봉대도 이런 침소봉대가 따로 없습니다. 해당자는 해명을 해보지만 국민정서법에는 해명이란 소용없는 수단입니다. 악플에 대해 소송도 검토하지만 국민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도 없습니다. 그냥 당해야 합니다. 물론 사회적 책임이 있는 유명 연예인이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된 것을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앞뒤 그리고 경찰의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주변인들의 언급만으로 특정인을 사회에서 매장시켜야 하는 인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국민정서법의 해악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당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국인들의 국민정서법에 가장 많이 회부되는 것이 바로 병역과 교육관련 특혜입니다. 두가지 모두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를 택한 나라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은 힘들게 군대 갔다왔는데 일부 권력자들의 자제들은 적당히 면제시키는 것에 분개합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처럼 교육에 민감한 국민이 없습니다. 교육에 있어 자신의 자녀가 아주 조그만 불평등을 받으면 절대 참지 못합니다. 최근에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있었던 불상사도 국민정서법에 제대로 회부되었습니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가 주장에게 덤벼,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인성을 가진 대표적인 선수의 손가락을 다치게 해, 병역 혜택을 받았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구나 합니다. 한국인의 국민정서법에 대표적으로 걸린 사안입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그 선수 평소에도 건방졌었지, 어린나이에 옹야옹야 했더니 보이는 것이 없었네, 누구는 군대가서 힘들게 복무하는데 군대 면제받았다고 건방을 떨어,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줘야지 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얼마전까지 새로운 축구 영웅으로 여겨지던 선수가 한순간 역적 나아가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버립니다. 외국 유명 선수와 장난을 치는 것을 환호하던 사람들이 한순간 태도가 백팔십도 바뀝니다. 광고업체들도 앞다퉈 그의 사진이 담긴 광고판을 떼어내기에 바쁩니다. 일부 정치인들도 숟가락을 올립니다. 국민정서법에 편승하려는 의도겠지요. 국민정서법에 저촉되면 제 아무리 대단한 로펌도 무용지물입니다. 그냥 나 죽여주세요 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유독 국민정서법이 그 위세를 떨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제대로 된 법을 갖지 못한 사회속에 짓눌린 민심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에도 법전이 있긴 있었습니다. 경국대전이 있습니다. 재정과 토지 조세 녹봉 토지매매 상속에 관한 규정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 법의 보호 또는 적용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한양에 있는 양반들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일반 백성들은 고을 사또의 말이 즉 법이 아니였을까요.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다시말해 그들에게 법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범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까. 외적들에게 끌려 갔다가 겨우겨우 돌아왔지만 화냥년이라며 돌맹이에 맞아 숨진 사람이 한두명입니까.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단지 이 나라에 태어난 죄밖에 없습니다. 오랑캐를 처단할 수 없으니 그런 오랑캐에게 끌려가 요상한 짓을 당한 그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민정서법의 출발입니다. 일종의 집단 분풀이 성격입니다.
백성들의 꽉 막힌 답답한 마음을 풀어준 것은 간혹 나타나는 의적들이나 농민 반란이었습니다. 그나마 그들이 외치는 평등과 자유라는 그런 단어에 삶의 희망을 일시라도 품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를 당합니다. 탐관오리와 양반들에게 갖은 곤욕을 다 겪다가 이제는 나라까지 없어집니다. 일본순사들이 강압적인 지배를 가합니다. 게다가 일본순사옆에서 갖은 패악을 다하는 친일조선인들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법이 제대로 작동되겠습니까.
정상적인 독립이 아니라 일제가 망함에 따라 독립을 됐지만 좌파 우파 이념의 갈등속에 이 나라 국민들은 또 좌절합니다. 낮에는 남한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활동하는 사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이래저래 죽어나갔습니다.갑자기 끌려가서 집단사살을 당합니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말입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집니다. 전쟁 3년동안 국민들은 죽음의 공포앞에서 절규합니다. 그러다 휴전이 되지만 세상은 암흑천지입니다. 이제는 주먹이 법인 세상이 된 것입니다. 깡패들이 득실거립니다. 정치인들이라는 작자들은 깡패를 앞세우고 국민들을 겁박합니다. 국민들에게 법은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법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4.19혁명이 발발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군사독재시대로 접어듭니다. 물론 법이 있지만 그것이 권력과 독재시스템 하에서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독재권력을 비판했다고, 학교에서 시위했다고 ,불의에 저항했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곤욕을 치뤘습니까. 국민들은 이제 법을 믿지 않습니다. 법은 그냥 가진 자 그리고 권력이 있는 자들의 전용물이라 판단합니다.
그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이 져버리고 또 다시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시스템이 이어집니다. 고조선 이후 그 수많은 세월 속에 일반 백성들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법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뇌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래도 법에 의해 보호받고 법에 의해 판단하는 세상이 오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 시스템속에 있어 본 적이 없기에, 제대로 법속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이제 정말 법이 가동되어도 그 법 보다는 그래도 국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었던 3.1민족 독립 운동같은 그런 민족정서에 입각한 그런 상황을 머리에 그리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뭔가 공공의 적과 같은 것이 도출되면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사고가 머리속에 박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적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적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것 만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마치 국민정서법에 의해서 처벌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법에 의해 보호받기도 하고 억울한 사정을 법에 호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국민들의 뇌리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그 엄청난 불만감이 아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현재에도 돈과 권력이 형량을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존재합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닙니다. 판사는 법에따라 형량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받아드리는 입장에서 그것을 잘 수긍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민감한 정치사안에서는 더욱 그리합니다. 그래서 국민들 상당수는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스스로 한번 형량을 결정해 봅니다. 마치 자신이 판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SNS를 통해 널리 전파시킵니다. 그런 과정에 언론과 유튜브 등 매체가 동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에 갈등이 많은 것도 바로 이 국민정서법 때문이다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편 저 편 나뉘어져 서로가 형량을 결정하고 판결을 내리면 상대는 그것에 반기를 들고 반박합니다. 서로 삿대질을 해가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됩니다.여기에 기레기와 각종 매체가 가세합니다. 얼마전 한국축구 대표팀의 불상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매체를 동원해 상대에게 욕설을 날립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냅니다. 지금도 전혀 없는 상황을 마치 현존하는 것처럼 만드는 SNS들이 수두룩합니다.
다시말하지만 한국에 국민정서법이 유독 강한 것은 역사적인 흐름때문으로 보입니다. 유럽과 서방국들은 중세이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법을 다듬고 법의 적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왔습니다. 그러니 굳이 국민정서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국가와 사회가 잘 운용됩니다. 물론 그 나라 속에서는 이런 저런 논란과 갈등이 있지만 한국처럼 이렇게 강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된 법이 가동된 것은 정말 역사가 짧습니다. 이제 천천히 국민정서법이 아닌 현존하는 법에 의해 형량도 결정되고 판단도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정서법은 쉽게 그 위세가 낮아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한국인이 가진 단점이자 대단한 장점도 될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국민정서법이 유지되기를 기대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
2024년 3월 1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