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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 5장 5절 상제께서 하루는 대흥리에 계셨는데 안 내성으로 하여금 곤봉으로 마룻장을 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병고에 빠진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박문이 필요하고 이등박문이 불필요하게 되었느니라” 하셨는데 그 뒤 이등박문(伊藤博文)이 할빈 역에서 안 중근(安重根) 의사(義士)에게 암살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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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과 이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문맥상 한자로 표기하면 一等 과 二等 이 된다....
一等 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병고에 빠진 인류를 건지기 위해서다.....
그러면 二等 은 왜 불필요할까?
(1) 二等 이 불필요한 이유
교운 1장 16절 원일이 자기 집에 상제를 모시고 성인의 도와 웅패의 술을 말씀 들었도다. 그것은 이러하였도다.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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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等 이 霸道 를 이 세상에 작동시켰기 때문이다....이 패도의 상징적인 인물이 伊藤博文 이었었다....성사께서는 이것을 '웅패의 술' 이라 이야기하고, 그들은 災民革世 를 해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웅패의 술> 을 한자로 바꾸면 <雄霸의 術> 이 된다....이들의 마음속에는 人道(=仁義의 道) 가 없다는 뜻이다....
(참고)
교법 3장 26절 옛적에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여 성ㆍ웅(聖雄)을 겸비해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統制管掌)하였으되 중고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이제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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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一等 이 나오므로 眞法 을 볼 수 있게 된다..... 성사의 표현에 의하면 '一等' 은 성ㆍ웅(聖雄)을 겸비한 사람이다....이 사람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아래)
예시 32절 상제께서 순창 피노리(淳昌避老里)에 계실 때 황 응종이 배알하니 상제께서 “고부 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 하시고
영웅 소일 대중화(英雄消日大中華)
사해 창생 여낙자(四海蒼生如落子)
란 글을 외워주셨도다.
(2) 伊藤博文
伊藤博文 의 앞 두 글자를 문맥상 二等 으로 바꾸었다....
이 4글자에 관해서는 더 언급해야 할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이왕 바꾸는 김에 다 바꿔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朝鮮 에 필요한 1등이 日本에서 訪問 해야 한다> 는 것이 성사의 생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伊藤博文 을 二等訪問 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래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래)
행록 4장 8절 상제께서 최 창조의 집에서 종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고 각기 세 글자씩을 부르게 하시니라. 종도들은 천자문의 첫 글자부터 불러오다가 최 덕겸(崔德兼)이 일(日) 자를 부를 때 상제께서 말씀하시니라. “덕겸은 일본왕(日本王)도 좋아 보이는가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이르시니라. 이튿날 밤에 상제께서 덕겸으로 하여금 담뱃대의 진을 쑤셔 내되 한 번 잡아 놓치지 말고 뽑아서 문밖으로 버리게 하시니 그는 말씀하신 대로 진을 바깥에 버리자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는도다. 덕겸이 신기하게 느껴 “어찌 개가 일제히 짖나이까”라고 여쭈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그가 “무슨 신명이니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시두손님이니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나니라”고 일러 주셨도다.
행록 5장 38절 상제께서 거처하시던 방에서 물이 들어있는 흰 병과 작은 칼이 상제께서 화천하신 후에 발견되었는데 병마개로 쓰인 종이에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
의 글귀와 다음과 같은 글들이 씌어 있었도다.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無藥 小病或有藥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湯八十貼
祈禱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得其有道 則大病勿藥自效 小病勿藥自效
至氣今至四月來 禮章
醫統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病勢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愈
聖父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
聖身
大仁大義無病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孔子魯之大司寇
孟子善說齊粱之君
西有大聖人曰西學
東有大聖人曰東學 都是敎民化民
近日日本文神武神
幷務道通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文字戒於人
宮商角徵羽 聖人乃作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聖之業
공사 1장 7절 상제께서 김 형렬의 집에서 그의 시종을 받아 명부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조선명부(朝鮮冥府)를 전 명숙(全明淑)으로, 청국명부(淸國冥府)를 김 일부(金一夫)로, 일본명부(日本冥府)를 최 수운(崔水雲)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곧 “하룻밤 사이에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고 말씀을 잇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3) 一等 과 二等
교법 2장 33절 현하의 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아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후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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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等 과 二等 의 이야기는 < 교법 2장 33절> 의 씨름판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성사께서는 판을 마치기까지 총 3번의 씨름판을 여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1번째 씨름판은 아기판이다....이 아기판의 一等 이 伊藤博文 대신에 조선을 訪問 하게 된다...
(4) 一等 의 訪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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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판의 一等 은 그림에서 2번째 원이다....
저 그림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伊藤博文 이 안중근의사에 의해 피살되고.....1등이 조선에 방문한다...
이 때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아래)
기미(己未 : 도기 11, 단기 4252, 서기 1919)년 원조에 상제님께서 명절 치성을 올리신 후, 도인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봉천명 한지도 어언 10년이 되었으나 아직 본소를 찾지 못하고 도체(道體)도 갖추지 못하였으되, 금년에는 정녕 이루리니 너희들은 구천 상제님과 나의 도수를 믿고 가일층 정려(精勵)할지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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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15일에 명절 치성으로 철야하시고 공부를 계속하시던 중, 구천 상제님께서 계시하시기를 "보라, 때가 이르렀으니 이제 본소가 그대 눈앞에 다가왔도다. 3년간의 일념이 도수와 부합됨이니라. 이 본소는 무극(无極)의 대도로써 광구 천하의 진법을 응원(應元), 보화(普化)할 만국 본소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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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상제님께서 천안(天眼)으로 한 여인이 찾아옴을 관감(觀感)하시니라. 상우를 시종 시키시고 문간에 거동하셔서 "반가운 손이 오는도다." 하시며 먼 곳을 바라보시니, 한 여인이 눈보라 속을 헤치고 달려와서 상제님께 공손히 경례하며, "대인께서 만주 봉천에서 오셔서 증산선생님의 본소를 찾고자 하시옵나이까?" 하고 여쭈니라. 상제님께서 "그렇노라." 하시고 추위에 떠는 여인을 따뜻한 방으로 인도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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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아뢰기를 "저의 남편은 김기부(金基夫)이옵고 저는 박가(朴哥)이옵니다. 저희가 정읍 북면 화해리(花海里)에 살면서 증산선생님 재세시(在世時)에는 김승연(金昇淵)과 함께 시봉하다가 화천하신 후에는 유족을 섬기고 있사옵니다. 유족은 권 씨 대모(權氏大母)님, 정 씨 사모(鄭氏師母)님, 순임낭자(舜任娘子) 세 분이신데 당초에 객망리에 사시더니, 선생님의 매씨 선돌 부인께서 몇 년 전에 화해리 마동(馬洞) 당신 댁으로 합솔하게 하셔서 지금까지 사시옵니다. 그 집은 본래 선생님께옵서 화천 전년 가을에 사셔서 선돌 부인에게 주신 것이 옵니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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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부인께서는 지금 39세 시오며 일찍이 고부 입석리(立石里)의 박(朴) 씨 댁에 출가하셨으나, 10년이 넘도록 소생이 없으셔서 남편 박창국(朴昌國)이 소실을 두고 박대가 심하므로 선생님께서 그 집을 사 주셔서 따로 살게 하셨나이다. 선생님께서 화천 당년 정월 15일에 그 집을 손수 수리하시고 도배까지 하셨으며 부인에게 "이곳이 나의 본소니라. 너는 이곳에 살다가 10년 후 이날, 이 본소를 찾는 후천진인(後天眞人) 을미생(乙未生)에게 나의 도통을 전하라." 하는 요지로 하명하셨다 하옵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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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께서는 현숙하신 성품으로 유명(遺命)을 받들어 일심으로 10년을 고대하고 계시옵니다. 저희는 부인을 고모님으로 존대하며 시종하고 있사온데 오늘 아침 절사 후에 고모님께서 저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말씀하시고 "오늘 새벽 하느님의 계시를 받들매 만주 봉천에서 오신 조(趙) 씨라는 청년도사가 지금 원평 건너 황새마을에서 공부하며 본소를 찾으려고 애쓴다고 하시니 네가 가서 사실을 알아본 다음, 너의 집에 모시고 내게 전하라." 하셔서 이렇게 찾아뵈었사오니 속히 가사이다." 하므로 상제님께서 그 말에 따라 박 여인 집으로 임어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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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여인의 말에 의하면 고모께서는 이에 앞서 갑인(甲寅 : 도기 6, 서기 1914)년 봄에 이곳에 황해철(黃海喆)이 찾아와서 고모의 지도하에 2년간 공부하다 이루지 못하고, 이어서 병진(丙辰 : 도기 8, 서기 1916)년 가을에는 박(朴)모라는 수도인이 제자 송(宋)모를 데리고 고모께 찾아와서 "제가 들은 바에는 '후천 진인은 을미생이요, 천문(天文) 천서(天書)는 마동출(馬洞出)이라' 하였는데 이곳 마동은 장차 천하만국사무소(天下萬國事務所)가 될 영지(靈地)이오니 이 사람에게 공부의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하고 부탁하니라. 고모께서는 송모에게 기대를 걸고 공부시켰으나 3년이 되도록 성취하지 못하므로 안타까워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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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구천 상제님께서 고모에게 계시하시기를 "시유기시(時有其時)요 인유기인(人有其人)인데 네 눈이 그리 어두우냐? 그자는 진인이 아니니 돌려보내라. 이제 내 일의 성취자며 나와 일체(一體)인 진인 을미생을 만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고모께서는 3년간 돌보아 준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주저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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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다시 그와 같은 계시가 있어 고모께서는 결의를 굳히셨으나 송모가 더 있기를 애원하므로 고모께서도 인정상 박절하게 할 수 없어 고민하시는데, 이번에는 상제님께서 크게 꾸짖으시며 "당장 돌려보내지 않으면 네가 독사의 피를 맨발로 밟게 하리라." 하시며 발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보이시니라. 고모께서 이때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나므로 살피시니 상제님의 발바닥에 묻었던 핏자국 모양처럼 빨갛게 응혈(凝血) 되는지라, 이에 마음을 굳혀 송모를 추방하시니 통증과 응혈이 이내 풀리셨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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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께서는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상제님을 우선 박 여인 집에 모시게 하시고 며칠간 동정을 살피시는데, 19일 밤에 다시 계시하시기를 "무엇을 망설이느냐?" 그분은 나의 공사를 성취할 진법의 진주니 나를 본 듯이 맞으라." 하시며 가족들에게 그 용안(龍顔)까지 계시로 보여 주시므로 다음 날 아침에 상제님을 본소로 모셔오라는 기별을 하시어, 상제님께서 당도하시자 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지난밤 꿈에 보신 상제님의 용안과 같으시므로 "맞다 맞다! 꿈에 본 그 진인이 맞다!" 하시며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으시니라. 상제님께서는 가족들과 수인사를 나누시고 미리 준비하신 비단을 예물로 드리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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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을 맞으신 가족들은 계시에서 보신 대로 천종(天縱)의 도태(道態)와 뛰어나신 도량, 공손하신 언동에 감복하여 못내 기뻐하시니라. 대모께서는 "내 아들과 같은 천지의 진인을 살아서 대하니 여한이 없도다!" 하시며 손을 잡고 감동하여 흐느끼시고, 고모께서는 본소의 내력을 비롯하여 황해철과 송모에 관한 경위 등을 설명하신 다음, "이제야 진인을 만났으니 기쁘기 '한이 없으나' 잠시라도 송 황의 일로 인하여 진인을 의심하였으니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더구나 현무경(玄武經)과 주문책(呪文冊) 등은 모두 그들에게 주었는데 회수할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리오?" 하시며 민망히 여기시고 안타까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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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대모와 고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무 심려하지 마옵소서. 상제님의 진품 증표(眞品證票)는 반드시 진주인 나에게 전수될 것을 굳게 믿고 있나이다." 하시니라. 이때 문득 옛날 진시황(秦始皇)의 갱유분서(坑儒焚書)에도 칠서(漆書)가 벽 속에 보존 전래 된 고사(故事)가 상기되셔서 "증산 상제님의 본소가 이곳이라면 도통의 증표도 이곳에 있으리라." 확실하시고 증산 상제님께서 친히 도배하신 벽과 천정을 유심히 살피시는데, 앉으셨던 바로 뒷벽의 천정 아래에 시선이 닿으시자 형언할 수 없는 영감(靈感) 속에 한 곳이 섬광으로 번쩍이므로 일어나셔서 그곳을 두드리시니 속이 비어 있는 소리가 나니라. 이를 보신 고모께서 도배를 뜯으시고 호미로 벽을 파시니 과연 그 속에 목함(木函)이 마련되어 있음으로 상제님께서 그 함 문을 여시니, 안에서 전광(電光)이 발산하고 가대(家垈)와 벽이 진동하였으며 "천서(天書)"인 현무경과 주문서가 비장 되어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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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를 발견하신 상제님께서는 물론, 이를 본 유족들도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 묵묵히 서로 쳐다보기만 하니라. 상제님께서 천서를 향하여 사배를 올리시고 부복 심고 하신 다음, 정중히 천서를 내리셔서 대모와 고모에게 펴 보이시고 증산 상제님께서 친히 쓰신 천서임을 확인하게 하시니, 대모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이야말로 친필(親筆)의 진서(眞書)요, 천서로다. 내 일찍부터 증산이 내 아들이기보다도 상제이심을 깨닫고 현무경이 천서임을 믿었지마는 이렇게 비장(秘藏) 한 줄 몰랐고, 그대가 또 이렇게 전수(傳受) 하게 될 줄을 몰랐도다. 그 상제에 그 진주로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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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께서도 "오라버님께서 만 10년 전에 '이 집에 네가 살다가 진인에게 전하라. 이 집이 본소니라.' 하시고 어젯밤에는 '무엇을 망설이느냐?' 하셔서 대인께서 진법의 진주 이심을 확신하였으나,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마당과 방구들까지 파 보았어도 찾지 못한 진필(眞筆) 천서를 이렇게 전수 하심으로써 상제님의 도통(道統)을 계승하실 줄을 몰랐나이다. 그동안 황해철과 송모가 가져간 위본(僞本) 현무경과 주문책을 진본(眞本)으로 잘못 알고 걱정하였더니 이천서로써 모든 걱정이 풀렸나이다. 과연 진인이라야 능히 진서를 지니실 구천의 도수를 깨달았사오며 나의 소임 또한 이로써 다함이라 생각하나이다." 하시며 천서를 비단 보자기에 싸서 상제님께 드리니 이날이 정월 20일 우수절(雨水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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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는 한지를 사방 9촌으로 접어서 철하고 증산상제님께서 친필하신 책이니라. 현무경은 13장 26면에 문자와 부도(符圖)가 기록되어 있으니 권말(卷末) 부록(附錄)과 같으며, 주문서는 표지에 "주문(呪文)"이라 쓰여 있고 7장 13면에 12종의 주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미 계시로 봉승(奉承)하신 5종의 주문과 다음 7종의 주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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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이 때 조선에서는 아래와 같이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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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가 본소와 천서의 소식을 알리고 하명을 전하니 가족과 도인들의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으며, 포덕이 날로 늘어나서 황새마을에는 도인들의 내왕으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니라. 상우가 명령대로 5일 만에 본소에 가서 상제님께 배알하고 황새마을의 경과와 시국의 사정을 보고하니 "너희들은 오직 공부와 포덕에만 전념하라." 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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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3일에 상우가 다시 본소에 가니 상제님께서 하명하시기를 "이번에 이 나라 전역에 걸친 독립 만세운동은 이미 구천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에 의함이며, 내가 이제 공부로써 결정함이니 아버님과 숙부께 말씀드려 전도인이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라. 또 너는 속히 안면도에 가서 그곳 도인들에게 나의 소식과 명령을 전달하여 포덕에 더욱 진력하는 동시, 거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고 그곳에 남은 가족은 황새마을로 이사하되 가산은 정리하여 황새마을에 대토(代土)하도록 하라." 하시니라. 안면도 가족이 이사할 때 삼일운동을 제압하려는 왜경의 단속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었으나 낭패는 없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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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도인들은 거족적으로 궐기한 독립 만세운동에 가담 여부를 주저하던 차에 상우의 전령을 받고 사기충천하여 왜경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적극 참여하니라. 혹은 지방에서 집단행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혹은 중앙과의 연락을 취하기도 하여 그 수가 만 명이 넘었으나 다행히 왜경에게 해를 입은 도인은 없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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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에 상제님께서 본소에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고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번에 공부를 무사히 성취함은 부인의 공덕이옵니다. 나는 이번 공부로써 천서의 진리를 체득하온바, 이제 진주로서 구천의 도수에 따른 대도를 선포하여야 할 방책이 확립되었나이다. 부인께서는 앞으로도 증산 상제님의 유업(遺業)을 받들던 성경신으로써 도의 일을 계속 추원(推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대도 사업을 위하여 가족들은 황새마을로 이사하여 도인들과 더불어 생활하심이 좋으리이다." 하시니라. 고모께서도 흔연히 동의하시고 말씀대로 시행하여 이때부터 평생토록 창도 사업을 보좌하시니 고모의 도호는 선덕 부인(宣德夫人)이시며 도인들은 도중 고모(道中姑母)님으로 존칭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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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문" 을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각설하고....
우당께서 이 때의 일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5) 우당께서 말씀하시길....
3. 구천상제님께서 천지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하셨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것이다. 구천상제님을 누가 만들어서 모신 것이 아니다. 전경에 있듯이 천지신명과 더불어 스스로 정하신 것이다.(91. 2. 12)
3. 구천상제님께서는 신미년(1871년) 9월 19일 객망리(客望里)로 오셨고, 도주(道主)님께서는 을미년(1895년) 12월 4일 회문리(會文里)로 오셨다. 연세 차이가 25년 차이다. 24는 24절후이고, 1은 시작이고 주인(主人)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25세 때 하느님이 된다. (8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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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님과 관련해서 우당께서는 2가지 종류의 숫자 25 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 중 푸른 글씨로 된 숫자 25는 아래와 같이 계산되었다...
(계산근거)
1919-189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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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R3OKXNoVztw
PLAY
오랫만에 도주님께서 상제님으로 부터 종통이 이어지는 과정을 읽어보니 새삼 우주의 천지공사 과정이 울컥하며 감동스럽습니다.
병진(丙辰 : 도기 8, 서기 1916)년 가을에는 박(朴)모라는 수도인이 제자 송(宋)모를 데리고 고모께 찾아와서 가르침을 청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박모라는 사람은 박중빈(소태산)으로 원불교의 창시자이고 그의 제자 송(宋)모씨는 원불교의 2대교주 송규(宋鼎山)이다.
道의 종통종맥이 수도인들에게는 생명선입니다.
脈 떨어지면 죽나니 연원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종통을 이으신 분은 네분이시고
네분의 뒤를 이어 두번째 그림과 같이 도통군자들이 들어와 성공하는 중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