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3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1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7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9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이 세상을 맡길만한 사람
'효경(孝經)'편에 자식들이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친다는 '입신양명'(立身揚名) 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기만 하면 자신의 체면이나 서러움과 고통쯤은 개의치 않습니다. 자식에게 평생을 헌신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아주 잘되면 그 기쁨과 영광은 부모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서 자식의 영광을 부모는 참으로 기뻐하면서도 꼭 부모의 영광만을 위하여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내가 이제 무슨 영광을 보겠니? 네가 잘되기만을 바란다. 그래도 내 자식이 이렇게 잘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나는 못 배우고 못나서 너희를 고생만 시켜서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기만 하는구나!" 하는 말처럼 부모는 자기 자식만은 원 없이 공부시키고 싶어 하고, 자신이 못한 것을 자식들이 꼭 해주기를 바라고, 그 일을 이루어 내면 부모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효성스러운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주 잘 살아서 우리의 이름을 드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성인이 되면 하느님께 영광이 되지만 우리가 자포자기하면 하느님을 자포자기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 이름을 남기면 하느님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 무엇을 받고 싶어 하시지도 않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자식이 무엇을 해야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며, 부모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일까요. 졸업시즌에 대학교의 학위수여식장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자식이 학위를 받으면 가운과 모자를 쓰게 됩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정작 수여식장에는 참석 하지 않다가도 가운과 모자를 벗어서 부모님께 꼭 입히고 모자를 씌워드립니다. 부모는 당신이 박사가 된 듯이 그 옷과 모자를 쓰고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식이 무슨 일을 하여야 부모가 영광스럽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식이 부모를 영광스럽게 하는 해답을 주고 계십니다. '자식에게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라고 하시고 숨을 거두셨는데 고사 성어에도 '오사필의'(吾事畢矣)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은 무엇인가요? 가끔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일을 잘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일은 우리가 자주 말씀하시고 들었던 세 가지 사명입니다. 사제직분(司祭職分), 예언직분(豫言職分) 또는 예언직분(預言職分), 왕직분(王職分)이지요. 이렇게 주신 주님의 사명에 대하여 완수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말만 계속 되 뇌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빨리 그 일을 충실히 감당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최후의 순간에 '오사필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아버지의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고, 그리고 지켰고, 믿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람들이 되었고, 당신의 사람들이 되었다고 제자들을 하느님께 소개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들을 그렇게 날마다 "처음부터 하느님의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지켰다."고 하느님 아버지께 소개하시고 강력하게 추천하시며 당신의 품에 받아 주시도록 우리를 추천하실 것입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직접 뽑아주셨다고 소개하십니다. 이 죄인을 죄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그리고 뽑아서 제자로 삼아 주셨으니 이제 염치없는 우리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반열까지 올려주시며 주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치켜 올려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장담하시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주님의 사람이라고 소개하십니다. 하지만 매일 주님을 아프게 하고, 가슴 저리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매 순간 주님을 배반하는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니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에게 가시고, 이 세상에는 주님을 믿는 우리만 남아 있게 놓으시고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고 온전히 떠나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두고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리떼와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 어린 아기를 떼어놓고 발걸음을 돌리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그렇게 숨김없이 표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어떻게 살았나요? 이 순간 주님께서 불러 가신다면 오사필의(吾事畢矣)를 말할 수 있나요? 그렇게 감히 믿을 만한 고백을 할 수 있나요?
저를 떼어놓고 가시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는 주님! 저는 당신의 추천을 받을 만한 삶을 못살았지만 저를 아버지 하느님께 강력히 추천하시며 저를 그렇게 믿고 당신의 간절한 기도로 이 세상을 맡길만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하라고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하십니까? 지금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당신께 기도합니다. 주님! 그냥 당신의 구멍 뚫린 아픈 손으로 이 눈물을 닦아주시고, 가만히 머리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당신의 발치에 엎드려 이 눈물로 당신의 발을 적시거든 일으켜 당신의 품에 안아주십시오. 그냥 그대로, 오래 오래 안겨있게 하소서. 주님!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를 다 마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0,17-27
그 무렵 17 바오로는 밀레토스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18 그들이 자기에게 오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9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20 그리고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회중 앞에서
또 개인 집에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21 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2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5 이제, 내가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26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27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축일5월 23일 성 요한 세례자 데 로시 (John Baptist de Rossi)
신분 : 신부
활동 연도 : 1698-1764년
같은 이름 :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볼타지오(Voltaggio) 태생인 성 요한 세례자 데 로시(Joannes Baptista de Rossi)는 그 지방에서 존경받던 집안의 후손으로 10세 때에 어느 귀족 집안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다. 후원자 집에서 3년을 지낸 어느 날 그 집에 카푸친회의 두 수도자가 왔다. 그들은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그를 초청하였다. 그래서 그는 13세 때에 로마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72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학생 때부터 병원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40년 동안이나 인근의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그의 음식은 보잘 것 없었고 의복도 남루하였다. 그는 또한 고해신부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고백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세례자 데 로시 (John Baptist de Ross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