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6.水. 맑음
K시 도심都心 걷기, 아아 옛날이여어!
오십 년 묵은 이야기들.
부산에서 온 사촌 누나와 매부가 밤 10시쯤 되어 출발을 하고나자 K시에 살고 있는 사촌 내외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서울에서 내려온 사촌들은 각자 자기 형제를 따라서 일어났다. 이 집 주인인 큰댁 둘째 형님과 큰댁 사촌 동생 내외內外와 나만 남았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근방에서 살고 있는 사촌 동생 내외도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9년 전에 둘째 형수가 돌아가신 뒤로 혼자 살아오신 둘째 형님과 나 둘이서 거실 소파에 기대고 앉아 오래된 정원을 거닐듯 오래된 기억을 들추어가며 이야기 성을 쌓아갔다. 큰댁의 첫째, 둘째, 셋째 형님들은 시골 고향에서 K시로 유학을 와 있으면서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긴 학창시절을 우리는 함께 생활을 했다. 그래서 모두 친형제나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둘째 형님과 제일 가까웠다. 착했던 큰 형님에 비해 까칠했던 둘째 형님은 항상 군기반장 노릇을 했으나 정이 많으면서도 딱 부러지는 성격의 둘째 형님과 나는 서로 잘 통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 났던 둘째 형님은 ’7.80년대 건설 호황기에 건축사로 일을 하셔서 안정된 생활을 이루었지만 형수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항상 적적해 보였다. 그래서 가끔 만나면 늘 새벽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웠던 옛 추억을 이리저리 더듬고 돌아다녔다.
새벽에야 잠이 들어 일요일 아침에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식사 준비는 형님이 하시고, 설거지는 내가 했다. 16층이나 되는 높이의 평수 넓은 아파트에는 텅 빈 공간이 너무 많아 형님이 혼자 생활하기에는 적잖아 부담이 될 듯싶었다. 한때는 사진과 옛 민속공예품 수집에 열을 올리더니 이제는 그것도 시들하다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60대 중반을 넘어서는 그런 형님의 얼굴 속에 남자들의 가식 없는 민낯이 쓸쓸한 채로 남아있었다. 정오正午가 되는 것을 보고 형님 집을 나섰다.
여기가 어디냐, K시 도심都心을 가로질러 걷기.
둘째 형님 댁이 있는 이곳을 굳이 서울에 비교를 해본다면 서울시 외곽에 걸려있는 강동구 명일동쯤 된다고 하면 비슷할까? 옛날에는 약간의 논밭에다 숲이 울창하던 산골짜기인 이곳에 도시 하나가 들어선 셈인데 몇 차례 와본 지금도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정표를 봐가면서 차분차분 시내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어제에 비해 날이 많이 풀렸고, 바람도 없는데다 따스한 햇살이 걷기에 참 좋았다. 일부는 어제 밤에 걸어 다녔던 길을 다시 걷게 되었지만 낯설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똑 같은 길이라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시선의 위치와 햇살의 각도 때문이라 생각이 되는데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처럼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서로 각각 다른 것처럼 보여서일 것이다. 그렇게 4,50분가량을 걸어 나가자 이정표에 쓰인 지명들이 비로소 낯익어 보였다. 백운동 로터리를 지나고, 대인동로터리를 지나서, 계림오거리를 또 지나 경향로를 한 바퀴 돈 후에 동개천로를 따라 대인시장을 거쳐 전남여고 옆을 지나갔다. 서울에 경기여고가 있고, 대구에 경북여고가 있다면 K시에는 전남여고가 있는데, 이 전남여고와는 약간의 사연이 있었다. ’73년 1월의 어느 날 밤이었을 테지. 그때 대입 수험생이었던 우리들에게 비밀리 전해 내려오는 부적 같은 비밀스러운 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전남여고 붉은 벽돌담에 오줌을 누면 대입시험에 꼭 합격한다는 악동 선배들의 말을 철석 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옛날이여어!
그래서 우리 다섯 명은 어느 날 밤을 거사일로 잡아 작전에 돌입했다. 바깥쪽 담벼락보다는 안쪽 담벼락이 효험이 더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지만 전남여고 내부 사정에 자칭 정통하다는 친구의 정보에 의하면 밤에는 교내에 경비견인 셰퍼드를 세 마리나 풀어놓은 다고 하니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다. 그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전남여고 담벼락에 도착해서 붉은 벽돌담을 뛰어 넘은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캄캄하지, 춥기는 하지, 어디서 뛰쳐나올지 모르는 셰퍼드가 신경이 쓰였지만 전날 내린 소복한 눈을 밟고 서서 안쪽 담벼락을 향해 나란히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 중 한 녀석이 자신은 죽어도 대학에 붙어야 하니 본관 현관에 대고 볼일을 보겠다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지체한 뒤 각자 주문을 외우면서 붉은 벽돌담에 희망을 쏘아대고 있는데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우리들은 미처 옷 정리도 마치지 못하고 담을 넘어 밖으로 나왔는데 본관 현관까지 가서 희망을 쏘아댄 녀석은 급히 담벼락을 넘다 발이 미끄러지는 통에 얼굴이 까지고 손가락을 접질렸다. 다음 날 대낮에 태연한 자세로 전남여고를 방문해 확인해본 결과 안쪽 담벼락과 흰 눈 위에 희망을 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들은 내심 무척 만족해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비밀스러운 의식이 정말 효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섯 명 모두 대입에 무난히 합격을 했을 뿐더러 본관 현관까지 달려가는 열의를 보였던 그 녀석은 S대 경제학과에 차석으로 붙었다. 아아, 옛날이여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전남여고를 거쳐 장동로터리를 지나면 광주여고가 나오는데 이 부근은 우리 집이 있었던 내 나와바리繩張り라 얽히고설킨 사연이 없을 리 없지만 여기서는 이만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5.18민주화 운동의 진원지인 구舊 도청을 지나고, 지하도를 건너서 광주일보 건물이 있는 길을 따라 충장로 입구에 들어서면 지금은 핸드폰 대리점이 요란한 차림새로 서 있지만 예전에는 산수옥山水屋이라는 옥호의 허름한 메밀국수집이 있었다. 아마 K시에 살았던 내 또래 대부분 아이들 외식의 첫 기억은 이 집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 친구와 각각 8원씩 갹출하여 당시 15원 하던 메밀국수를 시켜 둘이서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옛날에는 본정통本町通이라 불렸던 시내의 중심지역인 충장로 1가, 2가, 3가를 지나고 또 4가, 5가를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 한적해진 독립로가 나타났다. 거기서부터 광주천변 길을 따라가면 고속터미널이 나왔다. 16시05분 고속버스를 타고 어제 달려 내려온 길을 다시 달려 올라갔다.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한잠을 푹 자고 났더니 중간 휴게소인 정안 휴게소에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이번 휴게소에서 휴식을 위해 15분간 정차하겠습니다. 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향하다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하고 꼭 15분 동안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좋았다, 참 좋았다.
통기타 가수 최정이.
식당 입구 빈 공간에 마이크를 설치해놓고 통기타를 울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리의 가수가 앞 탁자에 백혈병 모금함을 올려놓은 채 열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마침 내가 그 앞을 지나칠 때 박인희의 방랑자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노래 속에는 박인희의 신비감은 조금 빠져 있었지만 그 빈자리를 이선희의 상큼함으로 충분히 채워 넣고 있었다. 비누거품처럼 톡톡 터지는 노래 소리가 듣기에 좋아 화장실은 참기로 하고 15분 동안 꼼짝 않고 서서 노래를 들었다. 역시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려면 말할 것도 없이 라이브에 강해야 한다. 옆 탁자에 놓여 있던 CD를 한 장 사와 집에서 들어보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만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하고, 축구선수는 공을 잘 차야하고, 댄서는 춤을 잘 춰야하며, 군인은 용맹해야 하고,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써야 한다. 때 미는 사람은 때를 잘 밀어야 하는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는 진리라 할 수 있다.
정안 휴게소를 버스가 출발하고 난 뒤부터는 잠도 오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좌석에서 몸을 뒤척이며 시간을 보냈다. 기쁘고 슬픈 일들이, 기세 등등 하거나 안타까운 일들이 날줄과 씨줄로 엮여 있는 세상사를 탓할 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들에 마주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면 생각 많은 사람보다 별이나 돌로 생겨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 K시 도심都心 걷기, 아아 옛날이여어! -)
첫댓글 전주여고 담벼락이 지린내로 요동을 쳤을 것 같아요. ㅎ ㅎ ㅎ 묵은 추억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고향길이셨네요. *^^*
아마 별이나 돌로 생겨나도 주구장창 생각만 하실껄요.
아주 소중한 입시정보 감사합니다.
전남여고 중앙현관이라...... S대 경제학과 차석이라....
음..... 내일부터 우리 아들 딸 신속하게 볼일보고 튀는 훈련을 시켜야겠군. ㅋ